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강나림 기자

려나씨의 성형수술

려나씨의 성형수술
입력 2015-12-07 11:09 | 수정 2015-12-15 11:19
재생목록
    여대생인 조선족 려나씨는 지금까지 성형수술을 서른 번을 받았습니다.

    또래 여성들처럼 예뻐지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살기 위한 성형수술입니다.

    그는 10살 때 집에서 일어난 가스폭발 화재로 화상을 입었습니다.

    얼굴을 모두 다친 려나씨는 이후 재건을 위한 성형수술을 지금까지 받아 온 것입니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화상환자의 재생을 위한 성형수술은 미용을 위한 성형수술과 똑같이 취급받습니다.

    1년 동안의 치료만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뿐, 그 이후는 아무도 돌봐주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느날 닥칠 수 있는 화상입니다.

    그저 평생 혼자 짊어지고 가야할 천형인가. 그들의 절규에 귀기울여 봅니다.

    -------------------------------------------------

    이화여자대학교 캠퍼스.

    영어영문학과 2학년 최려나 씨가 바쁜 걸음으로 강의실로 향합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수업을 준비하는 려나 씨.

    여느 대학생들과 다를 게 없는 일상이지만, 사실 려나 씨의 외모는 평범하지 않습니다.

    려나 씨는 어릴 때 사고로 전신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최려나]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죠 그런데 다니다 보니까 너무 재밌는 것 같아요 학교생활이. 그리고 꿈만 같아요 제가 지금 학교 다니고 있다는 게. 그때는 정말 이렇게 학교생활할 수 있을지 상상도 못했거든요."

    캠퍼스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대학 생활.

    대부분의 학생들에겐 평범한 일상이지만 려나 씨는 이런 하루하루가 기적과도 같다고 말합니다.

    려나 씨는 중국동포인 부모님과 함께 중국 지린성에 살았습니다.

    려나 씨가 10살이던 2003년 7월 31일.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고 어머니가 가스불을 켠 순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최려나]
    "아침에 일어나니 집에 가스 냄새가 났어요 엄마도 비염이셔서 그걸 냄새를 못 맡았고 저도 인지하지 못했고 그래서 가스 불을 켰는데 그 순간 폭발을 했어요."

    몸 전체가 타버린 전신 95%의 화상.

    려나 씨의 어머니는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고, 의사들은 려나 씨도 살 수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이낙연/최려나 씨 후원자]
    "의사들 말로는 화상을 95% 입으면 5% 생존률밖에 없답니다. 저는 처음 봤어요 그렇게 그런 참혹한 건.."

    베이징에서 다섯 차례의 수술이 이어졌고, 려나 씨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살아나긴 했지만 극심한 고통 속에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

    [이낙연/최려나 씨 후원자]
    "소독 약을 통에 담아서 부어요 그럼 파닥파닥 떤다고 그 고통은 뭐 말로 못하죠 그게 지옥의 고통이라고 려나가 표현하는데.."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이 모금에 나섰고, 려나 씨는 2005년 한국에 와서 본격적으로 수술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가 (수술) 제일 하고 싶어요? (손이랑 얼굴이랑..) 여러 번 해야 될 것 같은데.."

    사고 이후 성형수술만 30여 차례.

    겨우 혼자 움직일 수 있게 된 려나 씨는 초등학교 때 멈춘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작년에 이화여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했습니다.

    낮에는 학교 공부, 저녁엔 직장인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재능 기부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김주은]
    "내가 이렇기 때문에.. 이거 좀 어렵지 않을까 내가 이런데? 이런 게 하나도 없어요. 언니는 뭐든지 도전하고, 도전만 하는 게 아니라 참 잘해요."

    이렇게 되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최려나]
    "앞에서 누군가가 마주 오면 그냥 지나가면 되는데 꼭 한번 다시 뒤돌아서 쳐다보고.. 정말 걸어만 다닐 수 있으면 밖에 나올 줄 알았는데 걸어 다닐 수 있게 됐는데 그런 시선들 때문에 못 나오게 되는 거예요."

    하지만 계속 숨어서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다고 합니다.

    [최려나]
    "그렇게 하다 보면 제일 힘든 건 제 자신이더라고요 제 가족들과.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살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지금도 세상 밖으로 나가려고 지금도 많이 노력하고 있는 중이에요."

    "원장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

    이번 겨울 방학 때 려나 씨는 다시 수술을 받을 예정입니다.

    려나 씨에게 무료로 수술을 해주고 있는 성형외과 원장님은 이번엔 려나 씨의 코를 높여줄 계획입니다.

    [이재화 원장/성형외과 전문의]
    "코 같은 경우 모양도 모양이지만 워낙 많이 막혀서 숨쉬기가 답답하다고요. 아직 려나는 기능적인 회복을 위한 수술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죠."

    려나 씨에게 성형 수술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주는 치료입니다.

    화상 환자들이 받는 성형 수술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형과는 좀 다릅니다.

    더 보기 좋은 외모로 만드는 수술인 건 맞지만, 화상 환자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에 가깝습니다.

    경남 마산에서 세 남매를 키우는 엄경자 씨.

    첫째인 10살 우성이의 얼굴과 목 부분에는 화상 흉터가 있습니다.

    우성이 흉터 치료를 위해 임씨는 아이 셋을 다 데리고 부산으로 가는 중입니다.

    마산에서 가장 가까운 화상전문병원이 부산에 있기 때문입니다.

    [엄경자/정우성 군 어머니]
    "놔두고 갈 수가 없는 거예요 불안해가지고 우리끼리 그냥 데리고 가거든요, (병원) 갈 때마다 맨날 다 데리고 가거든요."

    아이들만 둘 수 없는 건 4년 전 사고 때문입니다.

    엄 씨가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당시 6살이던 우성이가 라이터를 갖고 놀다 옷에 불이 붙었고 엄 씨가 대문 앞에서 우성이를 발견했을 땐 상반신 전체가 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엄경자/정우성 군 어머니]
    "(집 밖으로) 탄 채로 내려왔죠 활활 탄 채로. 바람도 얼마나 부는 데서 내려와가지고 완전 활활 타면서 밖으로까지 불이 번지더라고요."

    전신 70% 3도 화상.

    몸통과 팔 전체가 원래 색깔을 찾아볼 수 없게 됐고 턱과 귀까지 타버렸습니다.

    "많이 아파 엄마 엄마... 아야.."

    크고 작은 수술은 스무 번 넘게 이어졌고, 아이는 지켜보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엄경자/정우성 군 어머니]
    "하.. 누가 그 마음을 알겠어요 안 당해본 사람들은 그 마음을 몰라요. 그 고통.. 엄마 엄마 아야 아야 아파 엄마 하는데.."

    앞으로가 더 문제입니다.

    우성이처럼 어린 나이에 심한 화상을 입으면 성장 과정에 따라 수술을 계속해줘야 합니다.

    [신명하/외과전문의.화상재건담당]
    "흉터가 이걸 당겨버려서 크질 못하니까 입을 다물고 침 안 흘리고 이런 과정들이 힘들어지겠죠. 운동을 하지도 못할 거고.. 그러니까 이런 것 때문에 중간중간 성장 단계를 보면서 수술해야 하는 거예요."

    아무리 수술을 해도 원래의 얼굴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아는 엄마는 앞으로 우성이가 외모로 인해 받을 스트레스도 큰 걱정입니다.

    [엄경자/정우성 군 어머니]
    "지나가면 전부 다 혀를 차고 쯔쯔쯔... 열 명이면 열 명, 백 명이면 백 명 천 명이면 천 명 다 그렇게 혀를 차더라고요. (우성이가) 엄마 자꾸 쳐다본다, 엄마 이상하게 자꾸 얘기한다 엄마 나는 이상해? 내가 이상한 애야? 이러면서 자꾸 그렇게 물어보더라고요."

    집에 오자마자 엄마는 우성이를 씻기기 시작합니다.

    울퉁불퉁한 흉터 위에 보습제와 연고를 바르고, 상처에 쓸리지 않게 특수 제작된 옷을 입힙니다.

    1년 내내 입은 옷은 여기저기 구멍이 났습니다.

    어쩌나 떨어져가지고.

    기초생활수급자인 우성이네로선 매일 바르는 약 값도 버겁습니다.

    화상환자는 몸과 마음의 고통뿐 아니라 가난의 고통까지 짊어져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상 환자에 대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기간은 최대 1년 6개월에 불과합니다.

    희귀난치성 질환이나 암 환자가 5년인데 비하면 짧은 편입니다.

    또 우성이처럼 나이가 어린 소아 화상 환자나 중증 환자 입장에서는 많게는 수십 번씩 수술을 해야 하는데, 가장 부담이 큰 얼굴 성형 수술비는 화상을 입은 뒤 딱 한차례만 건강보험이 적용됩니다.

    이후 수술부터는 신체 기관의 기능을 개선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미용 성형으로 보기 때문에 비싼 비용을 내야 합니다.

    하지만 화상 흉터에 대한 성형 수술과 치료는 단순히 미관의 문제가 아니라 정상적인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치료인 만큼 일반적인 미용 성형과는 달리 봐야 한다고 의료진들은 말합니다.

    [김선규 진료부장/화상재건외과]
    "이 안면 부는 굉장히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어요. 딱 크면 코 입이면 입 이렇게밖에 (수술을) 못해주는데 코 한번 (수술) 하고 끝나는 거예요 그러면 말이 안 되죠."

    [양희택 교수/협성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예뻐지기 위해서 하나요? 더 예뻐지기 위해 하는 게 일반 성형이라고 한다면 화상장애인의 성형 같은 경우 일반 (기준)에서 밑에 있는 부분을 최소한 인간답게 만드는 성형이거든요."

    의료뿐 아니라 복지 혜택을 받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현행법상 신체 기능에 장애가 있을 경우 법적 장애인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얼굴에 화상 흉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장애 등급을 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화상 환자 입장에서는 분명 흉터 때문에 차별을 받으면서도 제도 안에서는 소외되는 셈입니다.

    [양희택 교수/협성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우리 나라 복지 정책과 제도는 활동을 하지 못하는 분들, 걷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하거나 보지 못하는 분들의 활동을 돕는 제도들이 중심이거든요. 화상 환자에 대해 당신들은 걷고 먹고 말하고 보고 이런데 문제가 없으니까 문제가 없는 거 아냐?라고 덮어두는.."

    작년 화상환자는 50만 명. 이 가운데 성형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2-3만 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특히 화상 환자의 고충이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건, 화상 환자 스스로 좀처럼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흉터를 치료하는 수술 외에도 심리 치료와 재활 치료 등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한 사회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

    미국에서는 화상 환자들이 매년 모여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여기에 소방관들이 함께 참여해 이들에 대한 인식 개선을 돕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인 만큼, 화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겁니다.

    려나 씨 역시 지난달 미국에서 이 모임에 참석해 많은 걸 느꼈다고 말합니다.

    [최려나]
    "제가 미국 가기 전에는 모자를 쓰고 다녔거든요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싫어서. 그런데 갔다 오고 나서는 모자를 안 쓰게 되는 거예요.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당당하게 살고 있더라고요 다른 사람 시선 신경 쓰지 않고. 그런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어요."

    모든 병이 사람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지만 화상이 주는 고통은 유난히 독하다고 의료진들도 말합니다.

    [김선규건/외과 전문의/화상재건 담당]
    "화상이 우리 교과서에서도 암보다 더 힘든 병으로 되어 있어요. 저희 치료하는 간호사들이 있어요. 그 치료하는 간호사들 보면 꼭 저승사자 같다고 그래요. 쉽게 얘기해서 치료하는 게 죽을 것 같다는 거죠."

    신체적 고통만큼 이들을 아프게 하는 건 어딜 가나 따갑게 쏟아지는 시선, 그리고 이것이 평생 계속될 거라는 두려움입니다.

    [엄경자/정우성 군 어머니]
    "괴물이라고 하고 전부 다 동물원 원숭이처럼 다 쳐다보고 다 손가락질하고.. 지금 시간이 지난 만큼 좋아지고 그랬는데도 요새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게 끝이 언제 있을런지.."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조금이라도 감추려고 성형을 반복하는 사람들.

    스스로 천형이라고 말하며 고통을 감내하는 이들이 보다 나은 여건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