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송양환 기자
송양환 기자
중환자실에서 벌어진 일
중환자실에서 벌어진 일
입력
2015-12-14 10:35
|
수정 2015-12-14 14:49
재생목록
'폐동맥고혈압'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던 12살 성은이.
외출 중 호흡곤란으로 경상 대병원에 후송됐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동안 인공호흡기가 두 차례 빠지는 사고 끝에 결국 숨졌습니다.
성은이 부모님은 병원 측과 의료과실 여부를 두고 4년째 소송 중인데요.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의료 사고의 진실.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
2011년 4월 4일.
12살 성은이는 아빠와 나들이 중이었습니다.
폐동맥고혈압.
폐에서 혈액으로 산소 공급이 원활치 않아 쉽게 숨이 차는 희귀병 진단을 받은 지 4년째였지만, 아빠가 휴대용 산소공급기를 갖고 있었고, 성은이도 혈중 산소포화도 측정기로 몸 상태를 확인할 만큼 지병 관리에 익숙했습니다.
[김황수/성은 아빠]
"애들하고 뛰어놀다가 힘들다 싶으면 한번 측정해보는 거예요. 이렇게 측정해보고 상태가 안 좋으면 나 잠깐만, 나 쉴게."
그런데 나들이 도중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서 호흡곤란이 왔고, 아빠는 구급차를 불러 가까운 진주 경상대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구급차 안에서 산소 공급을 받은 성은이는 의식이 또렷했다고 합니다.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철학 책에 관한 토론까지 할 만큼 멀쩡했던 성은이.
[김황수/성은 아빠]
"어린이 동화책으로 나온 샤르트르에 관한 게 있었는데요. 그날 오면서 한가하게 시간이 남고 성은이도 좀 뭔가 심리적으로 안정되니까 '아빠 나 읽은 책 얘기할게' 하면서 그 얘기 도란도란하면서 온 거예요."
하지만 밝고 영특했던 성은이의 모습은 그날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김황수/성은 아빠]
"아빠가 병원에 데려간 것, 그게 제일 미안하죠. 정말 그럴 줄 몰랐어요. 어떻게 그런 병원이 다 있어요."
씩씩하고 밝은 아이였던 성은이는 4년 전 이 바닷가에 잠들었습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성은이의 엄마와 아빠는 성은이가 세상을 떠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 모를 싸움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응급실 의료진은 곧바로 입으로 관을 넣어 폐로 공기를 공급하는 '기관 삽관'을 시도했습니다.
고통스러운 처치여서 아이는 강하게 거부했고, 여러 번 시도 끝에 겨우 성공하긴 했지만 부모는 이 와중 에 성은이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주장합니다.
[박연실/성은 엄마]
"(산소포화도) 65% 저산소증 상태에서 기관 삽관을 6분 동안이나 세 번이나 거듭해서 반복했다는 거거든요. 그리고 기관삽관 성공하고 나서 6분 후에 동맥혈 가스 검사한 걸 보면 산소포화도 2%로 나와요. 거의 사망환자 수준으로."
그리고 중환자실로 옮긴 이튿날, 성은이의 입에 꽂혀 있던 인공호흡기관이 빠져버렸습니다.
다시 꽂기까지 10여 분이 걸렸고, 이후 30분 동안 심박동이 멈추면서 뇌사로 이어졌습니다.
병원에서는 호흡기 튜브가 빠진 이유를 성은이의 기침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부모는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김황수/성은 아빠]
"성은이는 진정제가 투여돼서 이제 진정돼 있는 상태고 손발은 묶여 있었어요. 여기 테이프까지 이렇게 길게 발라 놔요. 그것이 콜록콜록한다고 빠질까요? 기침으로 빠졌다? 납득할 만큼 설명해보라는 거예요."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성은이의 생명을 유지시키던 인공호흡기가 두 차례나 고장이 난 것.
중환자실 의료진은 인공호흡기를 재가동시키지 못했고, 외부 병동의 의사를 부르는 동안 성은이는 또다시 심정지 상태에 빠졌습니다.
[박연실/성은 엄마]
"두 명의 간호사가 그걸 처리 못하니까 한 명은 전화하러 가고 한 명은 이쪽에 기계 보러 가고 하면서 앰부배깅(수동인공호흡)하던 걸 멈추고 가니까 애 심박동 수가 떨어지더만 심정지 돼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와가지고 또 엉망진창인 아이를 또 심폐소생술을 또 실시한 거예요 수도 없이."
한 달여를 혼수상태로 보내던 성은이는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순간에 생사가 갈릴 수 있는 중환자실에서 잇따라 벌어진 인공호흡기 이탈과 고장.
성은이 부모님은 의료사고라며 항의했지만 병원 측은 '법대로 하라'고 답했습니다.
[박연실/성은 엄마]
"손발 다 묶어놓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해가지고 치료하는 애를 인공호흡기 유지를 못 해서 이건 사람 죽인 거 아니냐고 이렇게 얘기했더니 '인공호흡기 이탈 많이 일어나요' 이렇게 얘기하대요. '많이 일어나요, 자주 일어나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슴이 심장이 막혀버리더라고요."
결국 의료진의 잘못을 밝히는 건 고스란히 의학지식이 전무한 엄마 아빠의 몫이 됐습니다.
어렵게 의학 서적과 인터넷을 뒤져가며 성은이의 의무 기록을 분석하던 부모들 눈에 이상한 점이 발견됐습니다.
두 차례 발급받은 의무 기록이 서로 달랐던 것.
처음 발급받았을 땐 아무런 처치 기록도 없던 곳이 나중엔 모두 채워져 있었습니다.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의무 기록이 병원 맘대로 언제나 쓰고 고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성은이의 죽음을 둘러싼 법정 싸움은 3년 넘게 이어지고 있고 엄마, 아빠의 좌절감은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김황수/성은 아빠]
"의사 하고 싸운다는 것은 사실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의료사고 피해자가 그 의료사고인 내용을 증명한다는 것 이거는 정말 부당한 거죠."
2580은 경상대병원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병원 측은 소송 중이라는 이유로 거부했습니다.
대신 경상대병원은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성은이의 죽음은 아이의 지병과 부모의 잘못 때문이지 병원의 진료행위와는 상관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상대병원]
"폐 고혈압 환자인 아이를 데리고 장거리 여행을 하고 중증 질환자를 위험에 빠뜨린 부모 본인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의료진에게 잘못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완치가 어려운 희귀 성 난치병인 폐고혈압 등 환자 본인의 질환으로 일어난 사망과 병원의 진료행위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전혀 없습니다."
호흡기가 생명인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조금만 주의를 더 기울였다면 아이를 살릴 수 있진 않았을까.
성은이 부모님 생각처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의료사고는 병원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울산대 의대 이상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예방 가능한 의료사고에 의한 사망자는 우리나라에서 연간 1만 1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의 2배 가까운 수치입니다.
[이상일 교수/울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환자안전, 의료사고에 관한 문제는 실은 문제의 크기나 그런 데 비하면 국민들의 관심도 상대적으로 적고 정책적으로 그걸 줄이려고 하는 노력이나 이런 것도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고."
미국과 영국 등에선 의료사고 예방 차원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했던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국가적으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엔 내년 시행 예정인 환자안전 법에 의료사고를 보고하는 규정이 들어있지만 의료단체의 반대로 의무보고가 아닌 자율보고 규정에 그쳤습니다.
[이상일 교수/울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하마터면 일어날 뻔했던 사건이나 아주 환자에게 경미한 종류의 해를 입힌 사건들이 보고가 돼서 그런 보고가 된 사건들의 원인을 분석해서 그 원인을 줄이거나 제거해주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환자의 상황을 의료진이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쉬쉬하는 풍토는 의료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의료사고에 대한 의심도 키우게 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안기종 대표/환자 단체 연합회]
"아이나 가족이 사망하더라도 의사 선생님이 왜 사망했는지 설명해주면 대부분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막상 사망을 하든지 아니면 사망하기 전이라도 환자가 심각한 상황이 되면 의사 선생님이 오시지도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다음에 또 원무과 법무팀 만나라고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지난해 1월 빈혈증 세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찾았던 9살 예강이.
레지던트 2명이 번갈아가며 척추 사이에 긴 바늘을 넣어 척수액 채취를 시도합니다.
환자의 통증이 크기 때문에 숙련된 전문의가 시술해야 하는 '요 추천자'. 하지만 계속된 실패로 40분 동안 5차례나 시도하다 고통스러워하던 예강이는 쇼크에 빠졌습니다.
2시간 가까이 심폐소생술이 이어졌지만 예강이는 그대로 숨졌습니다.
부모님은 의료과실을 의심했지만 병원 측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최윤주/예강 엄마]
"응급환자라고 취급도 안 하고 그렇게 태연하게 있다가 그제야 이제 말을 바꿔서 응급환자였고 예강이가 그런 시술을 안 했어도 예강이는 떠날 아이였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예요."
예강이 부모님은 의료분쟁 조정중재원을 조정을 신청했습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소송보다는 전문가들의 중재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병원 측이 거부하면서 무산됐습니다.
피해자가 신청하면 자동으로 조정이 시작되는 여타 소비자 분쟁과는 달리, 의료분쟁은 피해자 측에서 요청해도 병원이 거부하면 그만입니다.
이러다 보니 중재원으로 들어온 신청 가운데 반 이상은 시작도 못한 채 각하되고 있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의료계의 반발.
의사협회는 의료분쟁 조정, 중재제도가 도입된 지난 2012년, 공개 보도자료를 통해 조정, 중재를 거부하라고 전국 의사들에게 유도했습니다.
조정, 중재를 받아들이면 진료기록을 제출해야 하고, 비전문가 집단에게 의료사고 여부를 판단 받게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재원 측은 충분히 전문성을 갖춘 의료인들이 사고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이희석 상임위원/의료분쟁 조정중재원]
"상임 감정위원은 65세 정년을, 대학교나 전문, 상급 병원에서 마치고 오신 분들이에요. 의료인의 과실 문제를 갖고 왔을 때 저희가 보고 거기에 대해서 추가적인 검토를 하고 그다음에 여기 의료인 한 분 또 들어와 계세요. 그래서 그분이 의학적으로 혹시나 잘못 가는 건 없는지 살펴봅니다."
예강이 부모님은 억울함을 이야기할 기회조차 얻기 힘든 이 반쪽짜리 제도를 고치기 위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최윤주/예강 엄마]
"당연히 개시돼서 누가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게 맞는 건데 거기에서 그렇게 거부를 당하고 나니까 이 나라 법이 너무나 이런 서민보다는 있는 사람들한테 위한 법으로 만들어져있구나 싶어서 그 법을 꼭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결과 국회에선 지난해 3월 의료 분쟁 조정 신청이 들어오면 자동 개시하게 하는 이른바 '예강이법'이 발의됐고, 지난해 10월 가수 신해철 씨가 사망한 이후 한 차례 더 법이 발의돼 현재는 '신해철 법'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법안은 심사조차 받지 못한 채 국회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국회 관계자들은 역시 의료계의 반발과 압력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합니다.
[A 의원실 보좌관]
"보건 복지의 중요한 의사 정책을 결정하는데 가장 힘 있는 집단이 아닐까요. 지역구의 오피니언 리더인 의사를 배제하고 이야기할 순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역구 활동하시는데 혹시 걸림돌이 되거나 신경 쓰이지 않으실까."
[B 의원실 보좌관]
"기본적으로 의사집단들이 반대하기에 안 되는 거고. 의협이라고 하는 조직이 굉장히 크니까 각 지역구에서 지역 의사들이 달려드는 게 가장 크고요."
실제로 의사협회는 예강이법이 발의됐을 때 의사들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조정 신청이 남발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했고, 공개적으로 법안 통과를 막겠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의료계의 반발 속에 심의조차 받지 못한 예강이법과 신해철 법은 내년 2월 19대 국회가 종료되면 자동 폐기될 처지입니다.
2580은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의사협회는 거부했습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
"지금 상황에선 충분히 피력을 했기 때문에 저희가 입장을 또다시 설명을 해야 될 것은 판단을 했을 때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고." (이번 국회 회기가 끝나면 자동으로 폐기될 법안이잖아요. 그래서 더 입장 표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여러 가지 정황을 다 판단해서 내린 결론이에요."
바닷가 오솔길을 내려와 만난 나무 한 그루 들꽃 한 줌과 과자 몇 봉지를 올리고 엄마는 나무 밑에 뿌려진 딸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박연실/성은 엄마]
"성은아. 하늘나라 어때? 추워? 엄마는 너 보고 싶다 성은아."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일부러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의사는 없습니다.
법대로 하라고 내몰기보다는 실수가 있다면 인정하고, 오해가 있다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일 필요하다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제도화에 힘을 보태는 일 그것이 진정 생명을 구하고 사람을 살리는 의술의 본질일 겁니다.
외출 중 호흡곤란으로 경상 대병원에 후송됐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동안 인공호흡기가 두 차례 빠지는 사고 끝에 결국 숨졌습니다.
성은이 부모님은 병원 측과 의료과실 여부를 두고 4년째 소송 중인데요.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의료 사고의 진실.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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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4일.
12살 성은이는 아빠와 나들이 중이었습니다.
폐동맥고혈압.
폐에서 혈액으로 산소 공급이 원활치 않아 쉽게 숨이 차는 희귀병 진단을 받은 지 4년째였지만, 아빠가 휴대용 산소공급기를 갖고 있었고, 성은이도 혈중 산소포화도 측정기로 몸 상태를 확인할 만큼 지병 관리에 익숙했습니다.
[김황수/성은 아빠]
"애들하고 뛰어놀다가 힘들다 싶으면 한번 측정해보는 거예요. 이렇게 측정해보고 상태가 안 좋으면 나 잠깐만, 나 쉴게."
그런데 나들이 도중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서 호흡곤란이 왔고, 아빠는 구급차를 불러 가까운 진주 경상대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구급차 안에서 산소 공급을 받은 성은이는 의식이 또렷했다고 합니다.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철학 책에 관한 토론까지 할 만큼 멀쩡했던 성은이.
[김황수/성은 아빠]
"어린이 동화책으로 나온 샤르트르에 관한 게 있었는데요. 그날 오면서 한가하게 시간이 남고 성은이도 좀 뭔가 심리적으로 안정되니까 '아빠 나 읽은 책 얘기할게' 하면서 그 얘기 도란도란하면서 온 거예요."
하지만 밝고 영특했던 성은이의 모습은 그날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김황수/성은 아빠]
"아빠가 병원에 데려간 것, 그게 제일 미안하죠. 정말 그럴 줄 몰랐어요. 어떻게 그런 병원이 다 있어요."
씩씩하고 밝은 아이였던 성은이는 4년 전 이 바닷가에 잠들었습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성은이의 엄마와 아빠는 성은이가 세상을 떠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 모를 싸움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응급실 의료진은 곧바로 입으로 관을 넣어 폐로 공기를 공급하는 '기관 삽관'을 시도했습니다.
고통스러운 처치여서 아이는 강하게 거부했고, 여러 번 시도 끝에 겨우 성공하긴 했지만 부모는 이 와중 에 성은이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주장합니다.
[박연실/성은 엄마]
"(산소포화도) 65% 저산소증 상태에서 기관 삽관을 6분 동안이나 세 번이나 거듭해서 반복했다는 거거든요. 그리고 기관삽관 성공하고 나서 6분 후에 동맥혈 가스 검사한 걸 보면 산소포화도 2%로 나와요. 거의 사망환자 수준으로."
그리고 중환자실로 옮긴 이튿날, 성은이의 입에 꽂혀 있던 인공호흡기관이 빠져버렸습니다.
다시 꽂기까지 10여 분이 걸렸고, 이후 30분 동안 심박동이 멈추면서 뇌사로 이어졌습니다.
병원에서는 호흡기 튜브가 빠진 이유를 성은이의 기침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부모는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김황수/성은 아빠]
"성은이는 진정제가 투여돼서 이제 진정돼 있는 상태고 손발은 묶여 있었어요. 여기 테이프까지 이렇게 길게 발라 놔요. 그것이 콜록콜록한다고 빠질까요? 기침으로 빠졌다? 납득할 만큼 설명해보라는 거예요."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성은이의 생명을 유지시키던 인공호흡기가 두 차례나 고장이 난 것.
중환자실 의료진은 인공호흡기를 재가동시키지 못했고, 외부 병동의 의사를 부르는 동안 성은이는 또다시 심정지 상태에 빠졌습니다.
[박연실/성은 엄마]
"두 명의 간호사가 그걸 처리 못하니까 한 명은 전화하러 가고 한 명은 이쪽에 기계 보러 가고 하면서 앰부배깅(수동인공호흡)하던 걸 멈추고 가니까 애 심박동 수가 떨어지더만 심정지 돼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와가지고 또 엉망진창인 아이를 또 심폐소생술을 또 실시한 거예요 수도 없이."
한 달여를 혼수상태로 보내던 성은이는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순간에 생사가 갈릴 수 있는 중환자실에서 잇따라 벌어진 인공호흡기 이탈과 고장.
성은이 부모님은 의료사고라며 항의했지만 병원 측은 '법대로 하라'고 답했습니다.
[박연실/성은 엄마]
"손발 다 묶어놓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해가지고 치료하는 애를 인공호흡기 유지를 못 해서 이건 사람 죽인 거 아니냐고 이렇게 얘기했더니 '인공호흡기 이탈 많이 일어나요' 이렇게 얘기하대요. '많이 일어나요, 자주 일어나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슴이 심장이 막혀버리더라고요."
결국 의료진의 잘못을 밝히는 건 고스란히 의학지식이 전무한 엄마 아빠의 몫이 됐습니다.
어렵게 의학 서적과 인터넷을 뒤져가며 성은이의 의무 기록을 분석하던 부모들 눈에 이상한 점이 발견됐습니다.
두 차례 발급받은 의무 기록이 서로 달랐던 것.
처음 발급받았을 땐 아무런 처치 기록도 없던 곳이 나중엔 모두 채워져 있었습니다.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의무 기록이 병원 맘대로 언제나 쓰고 고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성은이의 죽음을 둘러싼 법정 싸움은 3년 넘게 이어지고 있고 엄마, 아빠의 좌절감은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김황수/성은 아빠]
"의사 하고 싸운다는 것은 사실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의료사고 피해자가 그 의료사고인 내용을 증명한다는 것 이거는 정말 부당한 거죠."
2580은 경상대병원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병원 측은 소송 중이라는 이유로 거부했습니다.
대신 경상대병원은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성은이의 죽음은 아이의 지병과 부모의 잘못 때문이지 병원의 진료행위와는 상관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상대병원]
"폐 고혈압 환자인 아이를 데리고 장거리 여행을 하고 중증 질환자를 위험에 빠뜨린 부모 본인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의료진에게 잘못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완치가 어려운 희귀 성 난치병인 폐고혈압 등 환자 본인의 질환으로 일어난 사망과 병원의 진료행위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전혀 없습니다."
호흡기가 생명인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조금만 주의를 더 기울였다면 아이를 살릴 수 있진 않았을까.
성은이 부모님 생각처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의료사고는 병원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울산대 의대 이상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예방 가능한 의료사고에 의한 사망자는 우리나라에서 연간 1만 1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의 2배 가까운 수치입니다.
[이상일 교수/울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환자안전, 의료사고에 관한 문제는 실은 문제의 크기나 그런 데 비하면 국민들의 관심도 상대적으로 적고 정책적으로 그걸 줄이려고 하는 노력이나 이런 것도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고."
미국과 영국 등에선 의료사고 예방 차원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했던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국가적으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엔 내년 시행 예정인 환자안전 법에 의료사고를 보고하는 규정이 들어있지만 의료단체의 반대로 의무보고가 아닌 자율보고 규정에 그쳤습니다.
[이상일 교수/울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하마터면 일어날 뻔했던 사건이나 아주 환자에게 경미한 종류의 해를 입힌 사건들이 보고가 돼서 그런 보고가 된 사건들의 원인을 분석해서 그 원인을 줄이거나 제거해주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환자의 상황을 의료진이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쉬쉬하는 풍토는 의료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의료사고에 대한 의심도 키우게 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안기종 대표/환자 단체 연합회]
"아이나 가족이 사망하더라도 의사 선생님이 왜 사망했는지 설명해주면 대부분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막상 사망을 하든지 아니면 사망하기 전이라도 환자가 심각한 상황이 되면 의사 선생님이 오시지도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다음에 또 원무과 법무팀 만나라고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지난해 1월 빈혈증 세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찾았던 9살 예강이.
레지던트 2명이 번갈아가며 척추 사이에 긴 바늘을 넣어 척수액 채취를 시도합니다.
환자의 통증이 크기 때문에 숙련된 전문의가 시술해야 하는 '요 추천자'. 하지만 계속된 실패로 40분 동안 5차례나 시도하다 고통스러워하던 예강이는 쇼크에 빠졌습니다.
2시간 가까이 심폐소생술이 이어졌지만 예강이는 그대로 숨졌습니다.
부모님은 의료과실을 의심했지만 병원 측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최윤주/예강 엄마]
"응급환자라고 취급도 안 하고 그렇게 태연하게 있다가 그제야 이제 말을 바꿔서 응급환자였고 예강이가 그런 시술을 안 했어도 예강이는 떠날 아이였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예요."
예강이 부모님은 의료분쟁 조정중재원을 조정을 신청했습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소송보다는 전문가들의 중재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병원 측이 거부하면서 무산됐습니다.
피해자가 신청하면 자동으로 조정이 시작되는 여타 소비자 분쟁과는 달리, 의료분쟁은 피해자 측에서 요청해도 병원이 거부하면 그만입니다.
이러다 보니 중재원으로 들어온 신청 가운데 반 이상은 시작도 못한 채 각하되고 있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의료계의 반발.
의사협회는 의료분쟁 조정, 중재제도가 도입된 지난 2012년, 공개 보도자료를 통해 조정, 중재를 거부하라고 전국 의사들에게 유도했습니다.
조정, 중재를 받아들이면 진료기록을 제출해야 하고, 비전문가 집단에게 의료사고 여부를 판단 받게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재원 측은 충분히 전문성을 갖춘 의료인들이 사고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이희석 상임위원/의료분쟁 조정중재원]
"상임 감정위원은 65세 정년을, 대학교나 전문, 상급 병원에서 마치고 오신 분들이에요. 의료인의 과실 문제를 갖고 왔을 때 저희가 보고 거기에 대해서 추가적인 검토를 하고 그다음에 여기 의료인 한 분 또 들어와 계세요. 그래서 그분이 의학적으로 혹시나 잘못 가는 건 없는지 살펴봅니다."
예강이 부모님은 억울함을 이야기할 기회조차 얻기 힘든 이 반쪽짜리 제도를 고치기 위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최윤주/예강 엄마]
"당연히 개시돼서 누가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게 맞는 건데 거기에서 그렇게 거부를 당하고 나니까 이 나라 법이 너무나 이런 서민보다는 있는 사람들한테 위한 법으로 만들어져있구나 싶어서 그 법을 꼭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결과 국회에선 지난해 3월 의료 분쟁 조정 신청이 들어오면 자동 개시하게 하는 이른바 '예강이법'이 발의됐고, 지난해 10월 가수 신해철 씨가 사망한 이후 한 차례 더 법이 발의돼 현재는 '신해철 법'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법안은 심사조차 받지 못한 채 국회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국회 관계자들은 역시 의료계의 반발과 압력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합니다.
[A 의원실 보좌관]
"보건 복지의 중요한 의사 정책을 결정하는데 가장 힘 있는 집단이 아닐까요. 지역구의 오피니언 리더인 의사를 배제하고 이야기할 순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역구 활동하시는데 혹시 걸림돌이 되거나 신경 쓰이지 않으실까."
[B 의원실 보좌관]
"기본적으로 의사집단들이 반대하기에 안 되는 거고. 의협이라고 하는 조직이 굉장히 크니까 각 지역구에서 지역 의사들이 달려드는 게 가장 크고요."
실제로 의사협회는 예강이법이 발의됐을 때 의사들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조정 신청이 남발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했고, 공개적으로 법안 통과를 막겠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의료계의 반발 속에 심의조차 받지 못한 예강이법과 신해철 법은 내년 2월 19대 국회가 종료되면 자동 폐기될 처지입니다.
2580은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의사협회는 거부했습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
"지금 상황에선 충분히 피력을 했기 때문에 저희가 입장을 또다시 설명을 해야 될 것은 판단을 했을 때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고." (이번 국회 회기가 끝나면 자동으로 폐기될 법안이잖아요. 그래서 더 입장 표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여러 가지 정황을 다 판단해서 내린 결론이에요."
바닷가 오솔길을 내려와 만난 나무 한 그루 들꽃 한 줌과 과자 몇 봉지를 올리고 엄마는 나무 밑에 뿌려진 딸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박연실/성은 엄마]
"성은아. 하늘나라 어때? 추워? 엄마는 너 보고 싶다 성은아."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일부러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의사는 없습니다.
법대로 하라고 내몰기보다는 실수가 있다면 인정하고, 오해가 있다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일 필요하다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제도화에 힘을 보태는 일 그것이 진정 생명을 구하고 사람을 살리는 의술의 본질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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