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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권혜진 기자

부상병에 치료비 폭탄

부상병에 치료비 폭탄
입력 2015-12-14 10:40 | 수정 2015-12-1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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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 도중 무릎을 다친 육 일병은 군에서 방치하는 바람에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됐습니다.

    형인 육 상병도 제때 치료받지 못해 휠체어 신세를 지는 처지입니다.

    형제는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PRS)이라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수천만 원의 치료비 부담은 부모 몫입니다.

    군 병원이 아닌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인데요.

    국방의 의무를 다하려다 장애의 굴레는 물론 치료비까지 떠안아야 하는 대한민국 군 의료 실태와 원인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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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오른손.

    손목만 남은 아들의 팔 끝을 어머니가 쓰다듬고 있습니다.

    아들 손지환 훈련병의 나이는 이제 스무살.

    [이은정/손지환 훈련병 어머니]
    "물에서 막 이렇게 손 올리고 찍은 사진을 보면 아 앞으로는 저렇게 반팔 입을 날이 없겠구나 싶은 .. 평생 이제 반팔을 못 입을 거잖아요."

    아들은 훈련소로 입대한 지 3주 만인 지난 9월, 훈련 도중 손에 쥔 수류탄이 갑자기 폭발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얼굴과 치아, 머리까지 치명적인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은정/손지환 훈련병 어머니]
    "어떻게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죠. 얼굴도 다 피가 줄줄 흐르고."

    의연하려 애쓰는 어머니를 보면서 아들은 자신의 불운을 자책할 뿐입니다.

    [손지환 훈련병]
    "죄송하죠. 왜 하필 손을 잃는 사고를 당해 가지고 괜히 저 때문에 일이라거나 동생도 못 챙기시고.. 좀 많이 죄송하긴 하죠.."

    군 복무를 하다 보면 병사들은 치명적인 부상에 누구보다도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군 병원의 수준은 열악하고, 그래서 군대 밖의 민간 병원을 찾는다면, 그때는 막대한 치료비를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 놀랍게도 현실입니다.

    사고가 난 뒤 군은 경기도 성남의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받으라고 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동생을 집에 홀로 남겨둘 수 없어 대구에 있는 민간병원에 가겠다고 했지만 군은 그렇다면 치료비를 못 대준다고 했습니다.

    군 의료시설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부상은 민간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이은정/손지환 훈련병 어머니]
    "수도병원 가서 치료해라. 안 그러면 치료비가 지원이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못 가는 이유를 또 계속 설명을 했죠."

    결국 손 훈련병은 대구의 민간병원으로 갔고, 치료비는 모두 본인이 부담했습니다.

    군은 의수 비용으로 8백만 원을 지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홀로 일하며 세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온 어머니는 다섯 손가락이 움직이는 3천만 원짜리 의수 대신 세 손가락만 움직이는 2천백만 원짜리 의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은정/손지환 훈련병 어머니]
    "8백만 원만 지원이 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좋은 거 해줄 형편이 안되니까 손가락 3개 움직일 수 있는 거를 주문했어요."

    억울했던 어머니는 국민신문고에 안타까운 사연을 호소했습니다.

    [이은정/손지환 훈련병 어머니]
    "병원비를 내가 낼 형편도 안되고 의수도 내가 해야 한다면 해주긴 해야 되겠지만 그게 너무 억울했어요. 제가 해야 한다는 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길밖에 없다. 알려야겠다."

    그러고 나자 군의 태도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의수 비용을 전액 지원하기로 규정을 바꿨고, 민간 병원 치료비는 내년에 정산해 주겠다고 한 발 물러선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가족의 소득은 끊어졌고, 병사들이 거둬준 성금으로 치료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습니다.

    군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데 굳이 민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려 하는 이유는 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 병원에서 오진을 받거나 작은 부상을 잘못 처치해 손 대기조차 어려운 큰 병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차가운 바깥바람에 닿은 진훤 상병의 오른쪽 다리가 점점 퍼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바람에 닿는 등의 미세한 자극에도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는 CRPS, 복합 위통증 증후군의 증상입니다.

    [유선미/육진훤 상병 어머니]
    "발은 새까매지고 여기는 좀 심하면 새까매져요."
    "참을만해요? 아니면 좀 힘들어요?"
    "힘들어요."

    스치기만 해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옷이나 양말을 걸칠 수도 없습니다.

    고통은 24시간 사라지지 않습니다.

    [문동언/통증전문의]
    "상상할 수가 있는 최대 통증, 극형의 고문을 계속 받고 있는 거의 10점이라고 봐요. 애기 낳을 때가, 7점 8점 손발을 자를 때가 8점, 9점. CRPS는 거의 10점이거든요. 쉽게 말하면 워낙 아프기 때문에 자살시도한 사람이 15%가 되고 있거든요."

    지난 5월, 육진훤 상병은 훈련 도중 무릎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진료를 한 군 의료진은 무릎에 파스 한 장을 붙여줬습니다.

    [육진훤 상병]
    "괜찮다고. 걸어 다녀도 된다고 그래서 2,3주 걷다가 계속 통증이 계속 통증이 오니까 그런데 갔는데도 깁스나 부목 그런 거 하나 안 주고.."

    휴가를 내서 외부 진료를 받았지만, 부대에 복귀해 근무하면서 증세는 악화됐습니다.

    기역 자로 굽은 다리는 새카맣게 부었고 통증은 견딜 수 없이 심해졌습니다.

    증세가 심해져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군병원은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진통제만 투여할 뿐이었습니다.

    고통은 더욱 심해졌고, 지난 10월, 결국 찾아간 대학병원의 검사에선 심각한 상태의 CRPS,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으로 확진됐습니다.

    [김영훈/통증 전문의]
    "지금 검사하실 건 다 했는데 저희가 봐도 이건 100% CRPS 맞아요. 그죠?"

    공교롭게도 훈련소에서 무릎를 다친 뒤 방치됐던 동생마저 비슷한 통증 증후군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유선미/육진훤 상병 어머니]
    "아들들은 통증이 오면 죽여달라고 했었어요. 저한테 통증 때문에 다리를 잘라주든지 아니면 통증이 약을 먹어도 안 잡히니까 그냥 죽고 싶다고.."

    전문의들은 CRPS의 발병 원인은 현재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육 상병의 경우 군에서 초기 치료를 잘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문동언/통증전문의]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는 그런 약을 빨리 쓰고 처음부터 신경차단 치료를 했으면 그게 아마 (CRPS로) 넘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국군수도병원 근처에 있는 환자 보호자를 위한 좁은 숙소.

    집을 떠나 이곳에서 생활하는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줄 반찬과 따뜻한 밥을 챙기고 있습니다.

    [유선미/육진훤 상병 어머니]
    "진통제만 찾아요 진통제만. 먹는 약 먹는 걸로도 안되니까.. 부모 입장에서는 뭐라도 하나 더 해먹이고 싶고.."

    그리고는 밥과 반찬을 들고 빗 길을 걸어 아들의 병실로 향합니다.

    [유선미/육진훤 상병 어머니]
    "차라리 제 다리 주고 싶어요. 솔직히 말해서 엄마로서 제 다리라도 주고 제가 그러고 살고 싶거든요."

    부상병 아들들을 외부 병원에 데려가는 것도 부모의 몫입니다.

    병원비며 교통비 등으로 이미 1천5백만 원의 돈이 들어갔지만 모두 부모가 부담했습니다.

    [육민수/육진훤 상병 아버지]
    "직장생활을 하는 아니라 현장일을 하다 보니까 일주일 (돈) 받아다가 병원비하고 일주일 받아다가 병원비를 하고 그런 거죠."

    넉넉하지 않아도 단란했던 한 가족의 행복은 두 아들의 입대를 계기로 그렇게 무너졌습니다.

    [육민수/육진훤 상병 아버지]
    "여기서 있는 애들도 그렇지만 집에 하나 있는 딸 걔도 저녁 혼자 먹어야 되고.. 밤에 무섭다고 전화 오고.."

    군은 지난 목요일, 두 형제를 군에서 내보내는 전역 대상자로 결정했습니다.

    전역 뒤 군이 지원하는 치료 시한인 6개월이 지나면 모든 치료비용을 가족이 평생 부담해야 합니다.

    [유선미/육진훤 상병 어머니]
    "그냥 우리 애들 들어갈 때 두 다리로 걸어갔으니까 나올 때도 데려갈 때처럼 나올 수 있게 걸어서 나올 수 있게 해달라 그랬거든요.."

    국방부는 2580 측에 군 병원에서 진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는데도 환자와 보호자가 원해 민간병원에서 진료했기 때문에 치료비를 줄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중철 씨는 작년, 군에서 훈련 도중 허리를 다쳐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차마 군병원에 허리를 맡길 수는 없었습니다.

    [이중철/허리부상으로 전역]
    "잘못 건드렸을 때는 신체 부분이 완전히 기능을 못할 수도 있고요. 평생 불구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이 씨는 민간병원에서 수술한 뒤 수술 부위가 아물 때까지 군병원에 입원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이중철/허리부상으로 전역]
    "민간에서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군병원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면서 입원을 시켜줄 수가 없다.."

    결국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훈련에 참가해야 했고, 이후엔 걸을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이중철/허리부상으로 전역]
    "아무리 힘을 주고 정신을 차리려 해도 의지와는 상관없이 허리가 무너져 내리는듯한 그런 느낌이었고.."

    이번엔 더 큰 허리 수술, 결국 이 씨는 위로금 450만 원과 장애를 얻고 전역했습니다.

    군은 이 씨가 군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다쳤음을 서류로 인정했습니다.

    [이종석/행정사]
    "국지도발 훈련을 하다가, 임무를 수행하다가 다치신 경우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2차례의 병원 수술비 2천만 원은 모두 농사짓는 부모님이 부담했습니다.

    [이중철/허리부상으로 전역]
    "국가의 일원인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다가 다친 건데 국가는 거기에 대해서 나 몰라라 하는 것 같아서 많이 원망스럽고.."

    지난 9일 개정된 군인연금법.

    군의 위탁으로 민간병원에서 치료받은 경우, 30일에 불과하던 치료 기간의 제한이 없어졌습니다.

    장병들이 민간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입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민간 병원의 치료비를 지원받으려면 우선 군이 민간병원에서 치료받아도 좋다고 승인을 해줘야 하는데, 병사들이 이런 민간위탁 진료를 인정받기는 극히 어렵다는 점이 여전히 문제입니다.

    수류탄 사고를 당한 손지환 훈련병이나 육진훤 상병 모두 민간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할 상황이었지만 군이 민간위탁을 승인하지 않아 치료비를 자신이 부담한 경우입니다.

    예산도 민간병원 이용을 어렵게 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국방부의 올해 민간 위탁진료 예산은 장교와 사병을 합쳐 불과 46억 원, 군 골프장 건설 등에 책정된 예산 280억 원의 1/6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김종대 국방개혁단장/정의당]
    "이제는 어떻게든 또 역으로 민간 병원에 안 보내기 위한 장벽을 높게 세울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군 병원 의료수준은 어떨까.

    군 최고의 의료기관인 경기도 성남의 국군수도병원.

    수년 동안 기준 미달로 2년째 응급의료기관 지정이 취소된 상태입니다.

    전국 430개나 되는 응급의료기관의 기준에조차 못 미친다는 뜻입니다.

    전문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군병원은 오진이 잦고, 일선 부대에서는 의료진이 아닌 의무병들이 병사들을 진료하고 있습니다.

    [임채도 사무국장/의료 인권연구소]
    "의무병이라든지 임상 병리 병 이런 사병들이 간호인력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사실은 이게 의무법 위반이거든요. 의료 인력이 아닌데 의료 행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죠."

    다친 병사들이 병원비 개인 부담을 무릅쓰고 민간병원을 가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입니다.

    근본적으로는 병사들의 생명에 대한 군의 인식이 낮기 때문이라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김종대 국방개혁단장/정의당]
    "한국 징병제가 무한대로 장병을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공급을 해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사람 귀한 줄 모르게 됐고, 그것이 의료, 복지와 안전에 대한 부실함으로 연결된 재래식 군대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간직한 군대가 된 겁니다."

    나라를 위해 기꺼이 젊음을 바치는 청년들과 이들을 군에 보내고 하루하루 기도하듯 사는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게 국민이 져야 할 신성한 의무이듯 이를 수행하다 다친 국민을 끝까지 책임지고 돌보는 것 역시 두말할 나위 없는 국가의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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