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전쟁고아 돌보던 '미애원' 국유지 논란, 폐쇄?
전쟁고아 돌보던 '미애원' 국유지 논란, 폐쇄?
입력
2015-12-14 11:23
|
수정 2015-12-1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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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부터 수백 명의 고아들을 돌봐온 부산의 미애원이 문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2009년 철도청 조사 결과 미애원 부지가 국유지로 밝혀진 것입니다.
철도청은 무단점유에 따른 변상금과 연체료로 10억 원을 요구하며 미애원 건물을 압류한 상태입니다.
유일한 집이자 사회안전망인 미애원을 잃게 된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
동도 트지 않은 깜깜한 새벽, 이른 알람 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됩니다.
"여러분 알람이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일어나십쇼."
깨우는 선생님과 이불을 붙드는 아이들.
부쩍 쌀쌀해진 아침 공기 탓인지 이불 밖으로 끌어내는 게 쉽지 않습니다.
"(선생님) 응 왜 (추워요) 추운 건 좋은데 일어나야 되지 않겠냐? 옷을 입으면 우리 덜 춥지 않을까?"
한쪽에서 아이들 깨우느라 진땀을 빼는 동안 보일러실에선 한 교사가 장작불을 때고 있습니다.
[주정대/사회복지사]
"보일러 가동하지 않게 되면 보온도 그렇고 씻는 물도 마찬가지로 덥혀지지 않으니까..."
이 동네에서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곳은 이곳 보육원 뿐입니다.
가스 대신 장작.
겨울밤이면 매 두 시간마다 보일러에 땔감을 넣어줘야 합니다.
[주정대/사회복지사]
"화목 보일러다 보니까.. 자동으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한 번 씩 와서 교대로 화목 보일러를 주기적으로 나무를 넣어 주고 만약에 불이 꺼지게 되면 그만큼 냉기가 돌고 추우니까."
그나마 연기가 많이 나면 이웃 주민들의 항의가 들어오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불을 때지 못 합니다.
[주정대/사회복지사]
"저희들이 뭐 이렇게 개보수를 공사라든지 이런 비용도 저희들이 지원을 못 받고 있는 상황이라서 현 실정이 그렇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은 언제나 고달플 수밖에 없는 계절이지만, 땔감으로 겨울을 버텨야 하는 이곳 아이들에게 올 연말은 어느 때보다도 더 차갑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낡고 오래됐지만 소중한 보금자리인 보육원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전쟁고아들을 돌보던 천막 구호소에서 시작한 미애원.
60년 넘는 세월 동안 700여 명의 아동들이 이곳을 거쳐갔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9년 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뜻밖의 통보를 받았습니다.
[한희수 대표/미애원]
"뭐 50년 이상 연락이 없다가 2009년 6월 30일 날 처음으로 철도시설공단에서 토지 무단 임대료(변상금)를 내라는 통보를 받아가지고..."
철도청이 공사로 전환되면서 재산 목록을 점검했는데, 전쟁통에 빈터인 줄 알고 세웠던 미애원 땅이 국가 토지였던 게 확인됐으니 그동안의 토지 사용료를 변상하라는 겁니다.
처음 통보받은 변상금 4억 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사이, 연 15%의 연체료까지 붙어 내야 할 돈은 10억 원 가까이로 불었습니다.
"얘들아 간식 먹으러 가자."
간식이란 말에 쏜살같이 달려가는 아이들.
십여 명이 넓은 방 한구석에 깔린 전기장판 위에서 간식을 먹습니다.
난방장치가 고장 나 냉골이 된 방이지만 변상금을 내지 못해 건물이 압류되는 바람에 마음대로 수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한희수/미애원 대표]
"(독촉장) 올 때마다 연체되고 배상금액은 계속 불어나니까 이미 부과된 금액은 또 저희들이 사실 부담할 수 없는 금액인데 계속 금액이 늘다 보니까 저희들한테는 이제 한계가 오는 것이겠죠."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전화녹취)]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법으로 딱 되어 있는 부분이어서 심정은 이해가 가는데.. 법적 절차를 안 따르면 저희들이 책임 문제가 소지가 발생하거든요."
철도시설공단 측은 현재까지 부과된 변상금을 갚겠다는 서약서를 쓴다면 더 이상 연체료는 물리지 않겠다는 입장.
하지만 지자체 보조금으로 살림을 꾸리기도 빠듯한 미애원으로선 10억 원의 거액을 마련할 방법은 지금까진 없습니다.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전화녹취)]
"부산 시내에 아동들을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이 여유가 미애원 아니더라도 많은데... 다른 데로 수용하든지.."
미애원에는현재 서른여섯 명의 아이들이 남매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형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나면 남은 아이는 막내인 다섯 살배기 하윤이뿐입니다.
선생님 품을 떠날 줄 모르는 응석받이 하윤이에겐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깨물면 안에 흰색 보이는 거 이게 뭐지 이거? 하윤이 이거 뭐예요? (딸기) 좀 더 크게 하자 이거 뭐예요? (딸기) 그래 잘 했다."
단어 하나도 힘들게 뱉을 만큼 또래보다 말이 서툰 아이.
[배미진 생활지도교사/미애원]
"(이게 언어가 힘든 게 선천적인 건가요) 아니요. 태어났을 때 부모님께 방치되어 있었어요.. 아이가 처음 태어나면 그때 본인은 움직이지만 그때 제일 많이 느끼고 제일 많이 배우는데 딱 그 시기 때 전현 교육을 못 받으니까.."
하윤이는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채우지 못한 미숙아로 태어났습니다.
뱃속에 하윤이를 가진 엄마를 아빠가 수시로 폭행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하윤이를 낳자마자 집을 나갔고 일용직인 아빠는 시끄럽게 운다며 하윤이를 매일 장롱 안에 넣어두고 일을 나갔습니다.
하루 종일 굶주린 채 매일 어둠 속에서 혼자 울던 하윤이는 결국 미애원에 맡겨졌습니다.
[이은실 간호사/미애원]
"맨 처음에 10개월도 안 돼 걷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엉덩이에도 살도 하나도 없이 이렇게 들어왔었거든요. 못 먹어 가지고..."
어둠 속에 갇혀 있던 탓에 시력이 심하게 손상되고 말도 늦된 하윤이.
기구한 사연 하나 없는 아이가 없지만, 미애원이 문을 닫을 위기 앞에서 이곳 선생님들은 특히 하윤이가 마음에 걸립니다.
[이은실 간호사/미애원]
"너무 어릴 때 와 가지고 조금 너무 미숙아로 와 가지고... 그래서 선생님하고 잘 안 떨어지려 그러거든요. 그래서 하윤이 클 때까지만, 우리 다른 애들도 그렇지만 클 때까지만 이 시설에서 그냥 이대로만 유지해주시면..."
법을 지키는 것도, 규정을 따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누가 봐도 가혹한 일을 법의 이름으로 밀어붙이는 건 너무 야속하지 않느냐는 게 미애원 식구들의 하소연입니다.
가엾은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줘야 할 제도가 오히려 막막한 장애물로 변해버린 상황, 여기 한 곳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경기도 양주의 한 시골 마을.
한 무리의 소녀들이 강아지들과 함께 마당에서 뒹굴며 놀고 있습니다.
이곳 강아지들은 모두 안락사 처리될 뻔한 유기견들, 하지만 소녀들이 밥도 주고 털도 깎아 주며 돌봐준 덕에 지금은 하나같이 깔끔하고 귀여운 모습입니다.
[김아연(가명)]
"움직이면 할퀴고 물고... 그래도 일단 다 깎고 미용하고 씻기고 나면 냄새도 좋고 깨끗하잖아요. 그것도 뿌듯하고."
여기는 사실 유기견 보호소가 아니라 청소년 보호시설입니다.
비행을 저질렀지만 딱한 사정이 있거나, 비교적 가벼운 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잠시 수용하는 곳.
일반 소년원과 달리 담장도, 철문도 없는 이곳에서 소녀들은 애견 미용 자격증도 따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돌보는 법까지도 배우고 있습니다.
친구들을 따라 가출했다 약물에 손을 댔던 아연 양은 여기 들어온 뒤 오히려 또래보다 1년 빨리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자신감도 붙었습니다.
[김아연(가명)]
"저는 못 붙을 줄 알았는데 붙었어요. 신기하대요 내가 붙은 게, 아빠도 막 잘했다 하고 그러니까. 저는 잘 하는 게 많아요 저는.."
벌주고 가두는 곳이 아니라, 보호하고 가르치는 곳이다 보니 법원 판결로 정해진 보호처 분기 간이 지나도 이곳에 남고 싶다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손지수(가명)]
"서로 서로 도움이 되고 울 때는 그 아이를 달래주면서 같이 울기도 하고 선생님들도.. 그냥 새로운 가족을 정말 정말로 다시 만든 것 같아요 여기서."
지수 양은 한때 잃었던 꿈을 이곳에서 다시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손지수(가명)]
"사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꿈이 없었어요. 근데 여기 와서 지내면서 사회복지사라는 꿈이 생겼어요. (사회복지사, 누구를 제일 도와주고 싶어요?) 비행청소년들이요. 그래서 이곳에서 일하면 더 좋겠지만..."
전국에 이런 아동보호 치료시설은 여덟 군데, 여성만 수용하는 시설은 이곳 나사로 청소년의 집을 포함해 단 두 곳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곳도 존폐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1년에 9억 원이 드는 운영비 가운데 7억 원을 대는 양주시가 지원을 끊겠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양주시청 관계자]
"재정 자립도가 높지 않은 지자체 입장에선 시설의 부담이 점점 늘어나지 줄지는 않다 보니까 애로사항이 좀 있죠."
이곳에 있는 청소년들 전원이 다른 지자체 출신이라는 점 역시 양주시가 자체 복지예산을 투입하기 꺼리는 주된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일반의 후원을 기대하기도 힘들어 시의 지원이 끊기면 바로 문을 닫아야 할 형편.
당장 지금 있는 아이들이 검정고시 시험을 볼 내년까지만이라도 지원을 끊지 말아 달라며 경기도와 양주시에 읍소하는 중입니다.
[최영재 원장/나사로 청소년의 집]
"저희들 쪽에서는 어떻게든 2016년도까지 이렇게 운영을 할 수만 있어도... 지금 현재 1년만 더라도 그렇게..."
현행법상 노인과 장애인 보호시설의 경우 국비 지원이 원칙이지만 아동 청소년 시설만은 지자체가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정익중 교수/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노인, 장애인 시설도) 지방이양 사업이었어요. 그런데 재작년부터 노인 시설하고 장애인 시설이 국고보조 사업이 됐습니다. 그런데 아동 같은 경우에는 여러 번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 청소년 시설도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법안이 제출됐지만, 아직까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영재 원장]
"상습 전과자가 안 되고 그 아이들이 일생을 바르게 살아가면 국가적 이익이 어마어마할 텐데 왜 청소년들 이 문제만큼은 왜 이런 식으로... 아이들에게는 투표권이 없다는 거예요."
[정익중 교수]
"워낙 요즘에는 아동도 적고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에 꼭 아이가 그 가족의 아이뿐 아니라 국가의 아이일 수도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국가가 부모인 셈인데 이 아이들이 갈 곳 없게 만든다는 건 국가가 부모 역할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이거든요."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지만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역할마저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겁니다.
쫓아내지만 말아달라는 호소가 겨울, 찬 바람에 떨리고 있습니다.
2009년 철도청 조사 결과 미애원 부지가 국유지로 밝혀진 것입니다.
철도청은 무단점유에 따른 변상금과 연체료로 10억 원을 요구하며 미애원 건물을 압류한 상태입니다.
유일한 집이자 사회안전망인 미애원을 잃게 된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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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 트지 않은 깜깜한 새벽, 이른 알람 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됩니다.
"여러분 알람이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일어나십쇼."
깨우는 선생님과 이불을 붙드는 아이들.
부쩍 쌀쌀해진 아침 공기 탓인지 이불 밖으로 끌어내는 게 쉽지 않습니다.
"(선생님) 응 왜 (추워요) 추운 건 좋은데 일어나야 되지 않겠냐? 옷을 입으면 우리 덜 춥지 않을까?"
한쪽에서 아이들 깨우느라 진땀을 빼는 동안 보일러실에선 한 교사가 장작불을 때고 있습니다.
[주정대/사회복지사]
"보일러 가동하지 않게 되면 보온도 그렇고 씻는 물도 마찬가지로 덥혀지지 않으니까..."
이 동네에서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곳은 이곳 보육원 뿐입니다.
가스 대신 장작.
겨울밤이면 매 두 시간마다 보일러에 땔감을 넣어줘야 합니다.
[주정대/사회복지사]
"화목 보일러다 보니까.. 자동으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한 번 씩 와서 교대로 화목 보일러를 주기적으로 나무를 넣어 주고 만약에 불이 꺼지게 되면 그만큼 냉기가 돌고 추우니까."
그나마 연기가 많이 나면 이웃 주민들의 항의가 들어오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불을 때지 못 합니다.
[주정대/사회복지사]
"저희들이 뭐 이렇게 개보수를 공사라든지 이런 비용도 저희들이 지원을 못 받고 있는 상황이라서 현 실정이 그렇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은 언제나 고달플 수밖에 없는 계절이지만, 땔감으로 겨울을 버텨야 하는 이곳 아이들에게 올 연말은 어느 때보다도 더 차갑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낡고 오래됐지만 소중한 보금자리인 보육원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전쟁고아들을 돌보던 천막 구호소에서 시작한 미애원.
60년 넘는 세월 동안 700여 명의 아동들이 이곳을 거쳐갔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9년 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뜻밖의 통보를 받았습니다.
[한희수 대표/미애원]
"뭐 50년 이상 연락이 없다가 2009년 6월 30일 날 처음으로 철도시설공단에서 토지 무단 임대료(변상금)를 내라는 통보를 받아가지고..."
철도청이 공사로 전환되면서 재산 목록을 점검했는데, 전쟁통에 빈터인 줄 알고 세웠던 미애원 땅이 국가 토지였던 게 확인됐으니 그동안의 토지 사용료를 변상하라는 겁니다.
처음 통보받은 변상금 4억 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사이, 연 15%의 연체료까지 붙어 내야 할 돈은 10억 원 가까이로 불었습니다.
"얘들아 간식 먹으러 가자."
간식이란 말에 쏜살같이 달려가는 아이들.
십여 명이 넓은 방 한구석에 깔린 전기장판 위에서 간식을 먹습니다.
난방장치가 고장 나 냉골이 된 방이지만 변상금을 내지 못해 건물이 압류되는 바람에 마음대로 수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한희수/미애원 대표]
"(독촉장) 올 때마다 연체되고 배상금액은 계속 불어나니까 이미 부과된 금액은 또 저희들이 사실 부담할 수 없는 금액인데 계속 금액이 늘다 보니까 저희들한테는 이제 한계가 오는 것이겠죠."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전화녹취)]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법으로 딱 되어 있는 부분이어서 심정은 이해가 가는데.. 법적 절차를 안 따르면 저희들이 책임 문제가 소지가 발생하거든요."
철도시설공단 측은 현재까지 부과된 변상금을 갚겠다는 서약서를 쓴다면 더 이상 연체료는 물리지 않겠다는 입장.
하지만 지자체 보조금으로 살림을 꾸리기도 빠듯한 미애원으로선 10억 원의 거액을 마련할 방법은 지금까진 없습니다.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전화녹취)]
"부산 시내에 아동들을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이 여유가 미애원 아니더라도 많은데... 다른 데로 수용하든지.."
미애원에는현재 서른여섯 명의 아이들이 남매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형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나면 남은 아이는 막내인 다섯 살배기 하윤이뿐입니다.
선생님 품을 떠날 줄 모르는 응석받이 하윤이에겐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깨물면 안에 흰색 보이는 거 이게 뭐지 이거? 하윤이 이거 뭐예요? (딸기) 좀 더 크게 하자 이거 뭐예요? (딸기) 그래 잘 했다."
단어 하나도 힘들게 뱉을 만큼 또래보다 말이 서툰 아이.
[배미진 생활지도교사/미애원]
"(이게 언어가 힘든 게 선천적인 건가요) 아니요. 태어났을 때 부모님께 방치되어 있었어요.. 아이가 처음 태어나면 그때 본인은 움직이지만 그때 제일 많이 느끼고 제일 많이 배우는데 딱 그 시기 때 전현 교육을 못 받으니까.."
하윤이는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채우지 못한 미숙아로 태어났습니다.
뱃속에 하윤이를 가진 엄마를 아빠가 수시로 폭행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하윤이를 낳자마자 집을 나갔고 일용직인 아빠는 시끄럽게 운다며 하윤이를 매일 장롱 안에 넣어두고 일을 나갔습니다.
하루 종일 굶주린 채 매일 어둠 속에서 혼자 울던 하윤이는 결국 미애원에 맡겨졌습니다.
[이은실 간호사/미애원]
"맨 처음에 10개월도 안 돼 걷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엉덩이에도 살도 하나도 없이 이렇게 들어왔었거든요. 못 먹어 가지고..."
어둠 속에 갇혀 있던 탓에 시력이 심하게 손상되고 말도 늦된 하윤이.
기구한 사연 하나 없는 아이가 없지만, 미애원이 문을 닫을 위기 앞에서 이곳 선생님들은 특히 하윤이가 마음에 걸립니다.
[이은실 간호사/미애원]
"너무 어릴 때 와 가지고 조금 너무 미숙아로 와 가지고... 그래서 선생님하고 잘 안 떨어지려 그러거든요. 그래서 하윤이 클 때까지만, 우리 다른 애들도 그렇지만 클 때까지만 이 시설에서 그냥 이대로만 유지해주시면..."
법을 지키는 것도, 규정을 따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누가 봐도 가혹한 일을 법의 이름으로 밀어붙이는 건 너무 야속하지 않느냐는 게 미애원 식구들의 하소연입니다.
가엾은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줘야 할 제도가 오히려 막막한 장애물로 변해버린 상황, 여기 한 곳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경기도 양주의 한 시골 마을.
한 무리의 소녀들이 강아지들과 함께 마당에서 뒹굴며 놀고 있습니다.
이곳 강아지들은 모두 안락사 처리될 뻔한 유기견들, 하지만 소녀들이 밥도 주고 털도 깎아 주며 돌봐준 덕에 지금은 하나같이 깔끔하고 귀여운 모습입니다.
[김아연(가명)]
"움직이면 할퀴고 물고... 그래도 일단 다 깎고 미용하고 씻기고 나면 냄새도 좋고 깨끗하잖아요. 그것도 뿌듯하고."
여기는 사실 유기견 보호소가 아니라 청소년 보호시설입니다.
비행을 저질렀지만 딱한 사정이 있거나, 비교적 가벼운 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잠시 수용하는 곳.
일반 소년원과 달리 담장도, 철문도 없는 이곳에서 소녀들은 애견 미용 자격증도 따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돌보는 법까지도 배우고 있습니다.
친구들을 따라 가출했다 약물에 손을 댔던 아연 양은 여기 들어온 뒤 오히려 또래보다 1년 빨리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자신감도 붙었습니다.
[김아연(가명)]
"저는 못 붙을 줄 알았는데 붙었어요. 신기하대요 내가 붙은 게, 아빠도 막 잘했다 하고 그러니까. 저는 잘 하는 게 많아요 저는.."
벌주고 가두는 곳이 아니라, 보호하고 가르치는 곳이다 보니 법원 판결로 정해진 보호처 분기 간이 지나도 이곳에 남고 싶다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손지수(가명)]
"서로 서로 도움이 되고 울 때는 그 아이를 달래주면서 같이 울기도 하고 선생님들도.. 그냥 새로운 가족을 정말 정말로 다시 만든 것 같아요 여기서."
지수 양은 한때 잃었던 꿈을 이곳에서 다시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손지수(가명)]
"사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꿈이 없었어요. 근데 여기 와서 지내면서 사회복지사라는 꿈이 생겼어요. (사회복지사, 누구를 제일 도와주고 싶어요?) 비행청소년들이요. 그래서 이곳에서 일하면 더 좋겠지만..."
전국에 이런 아동보호 치료시설은 여덟 군데, 여성만 수용하는 시설은 이곳 나사로 청소년의 집을 포함해 단 두 곳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곳도 존폐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1년에 9억 원이 드는 운영비 가운데 7억 원을 대는 양주시가 지원을 끊겠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양주시청 관계자]
"재정 자립도가 높지 않은 지자체 입장에선 시설의 부담이 점점 늘어나지 줄지는 않다 보니까 애로사항이 좀 있죠."
이곳에 있는 청소년들 전원이 다른 지자체 출신이라는 점 역시 양주시가 자체 복지예산을 투입하기 꺼리는 주된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일반의 후원을 기대하기도 힘들어 시의 지원이 끊기면 바로 문을 닫아야 할 형편.
당장 지금 있는 아이들이 검정고시 시험을 볼 내년까지만이라도 지원을 끊지 말아 달라며 경기도와 양주시에 읍소하는 중입니다.
[최영재 원장/나사로 청소년의 집]
"저희들 쪽에서는 어떻게든 2016년도까지 이렇게 운영을 할 수만 있어도... 지금 현재 1년만 더라도 그렇게..."
현행법상 노인과 장애인 보호시설의 경우 국비 지원이 원칙이지만 아동 청소년 시설만은 지자체가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정익중 교수/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노인, 장애인 시설도) 지방이양 사업이었어요. 그런데 재작년부터 노인 시설하고 장애인 시설이 국고보조 사업이 됐습니다. 그런데 아동 같은 경우에는 여러 번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 청소년 시설도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법안이 제출됐지만, 아직까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영재 원장]
"상습 전과자가 안 되고 그 아이들이 일생을 바르게 살아가면 국가적 이익이 어마어마할 텐데 왜 청소년들 이 문제만큼은 왜 이런 식으로... 아이들에게는 투표권이 없다는 거예요."
[정익중 교수]
"워낙 요즘에는 아동도 적고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에 꼭 아이가 그 가족의 아이뿐 아니라 국가의 아이일 수도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국가가 부모인 셈인데 이 아이들이 갈 곳 없게 만든다는 건 국가가 부모 역할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이거든요."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지만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역할마저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겁니다.
쫓아내지만 말아달라는 호소가 겨울, 찬 바람에 떨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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