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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강나림 기자

친절한 김씨의 이중계약

친절한 김씨의 이중계약
입력 2015-12-28 11:02 | 수정 2015-12-2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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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넘게 한자리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면서 동네 사람들의 신임을 얻었던 김 씨가 어느 날 사라졌습다.

    그와 동시에 동네 사람들은 집주인으로부터 "왜 월세를 안 내냐"는 전화를 받기 시작합니다.

    알고 보니 김 씨가 세입자들과 전세 계약을 맺고, 집주인과는 월세로 이중계약을 맺은 것입니다.

    이런 피해자가 이 동네에 만 현재까지 64명에 89억 원. 전 재산인 전세보증금을 잃고 집에서도 쫓겨나게 된 사람들은 막막하기만 합니다.

    부동산 중개인의 단순 사기로만 볼 수 없는 제도의 헛점들입니다.

    내 전세보증금은 과연 안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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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부천시의 한 아파트 단지.

    한 주민이 취재진을 만나자마자 눈물을 쏟습니다.

    [정 00/부동산 사기 피해자]
    "늙어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게 생겼으니 어떡하면 좋아요.. 미칠 것 같아요 노후자금이고 뭐고 다 없어졌으니.. 전세자금까지 다 날리게 생겼으니 어떡해.."

    바로 앞 동에 사는 김 모 씨도 전 재산을 날렸다고 하고.

    [김 00/부동산 사기 피해자]
    "한 서너 달 동안 내가 3억 이상을 지금 날린 거야 거지가 된 거야 아무 보증도 없이.. 아휴 기가 막혀가지고 말도 안 나와."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식당에, 그 옆의 미용실까지 다들 사정은 비슷합니다.

    [정미화/동네 주민]
    "여기가 완전히 나쁘게 진짜 흔한 말로 얘기하면 쑥대밭이 된 거죠 여기는 정말 이 동네.."

    최근 이 동네는 분위기가 뒤숭숭합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사기를 당해 거의 전 재산을 날렸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든 사기 사건은 친절하기로 소문났던 한 부동산에서 시작됐습니다.

    동네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한기우 씨.

    숯불을 피우고 닭을 올려놓자 작은 주방에 금세 연기가 자욱해집니다.

    지난 15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한기우/부동산 사기 피해자]
    "그냥 기계처럼 일만 하고 로봇처럼 살고 다람쥐 챗바퀴 돌듯이 가게에서 집, 집에서 가게 이것밖에 없어요 365일 쉬어보질 않았어요."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지난 2009년 6천만 원에 작은 아파트를 전세로 얻었습니다.

    계약을 진행한 사람은 동네에서 10년 넘게 부동산을 해온 중개업자 김 모씨.

    김 씨는 이후에도 한 씨를 살뜰하게 챙겨줬다고 합니다.

    전세금이 오를 때마다 집주인을 설득해 깎아보겠다며 발 벗고 나설 정도였습니다.

    [한기우/부동산 사기 피해자]
    "우리는 2년 후에 5월달이 되면 항상 불안했어요 (전세금) 올려줘야 되는데 돈은 없고. (전세금) 올리려고 하면 돈이, 목돈이 들어가니까 항상 걱정스러운데 그나마 좀 작게 해주고 하니까 그게 고마웠죠."

    이런 김 씨를 믿고 최근 1억 원짜리 전세를 구해 이사 갔습니다.

    그런데 이달 초 집주인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한기우/부동산 사기 피해자]
    "이 집 주인인데 지나가다가 들렀다, 월세 계약인데 알고 있느냐. 그러니까 황당하잖아요 갑자기 그러니까. 그래서 무슨 말이냐 우린 전세 계약인데 하고 그 1억 짜리 (계약서)를 보여줬어요."

    한 씨는 김 씨의 부동산업소를 찾아가 어떻게 된 거냐고 따졌고,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당황하던 김 씨는 얼마 뒤,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렸습니다.

    알고 보니 중간에서 김 씨가 한 씨와는 1억 원짜리 전세 계약을, 집주인과는 허위 세입자를 내세워 월 80만 원의 월세 계약서를 쓴 이중 계약을 한 거였습니다.

    김 씨는 한 씨의 전세보증금 1억 원을 챙긴 뒤 집주인에게는 직접 매달 월세 80만 원을 부쳐 의심을 피했습니다.

    집주인의 계약서 상에는 한 씨가 아닌 사람이 월세 세입자로 되어 있다 보니, 한 씨는 남의 집에 무단으로 살고 있는 처지가 됐습니다.

    [한기우/부동산 사기 피해자]
    "(집 주인에게는) 모르는 사람이죠 저는. 그러니까 왜 당신들은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해서 살고 있느냐.."

    김 씨가 잠적하면서 더 이상 월세가 들어오지 않자 집주인은 한 씨에게 월세를 대신 내든지, 아니면 집을 비우라고 하는 상황.

    [한기우/부동산 사기 피해자]
    "어떻게 해야 되지, 어떻게 해야 되지, 그 생각 밖에 없어요 방법도 생각 안 나고. 어디로 가는지 몰라요. 그냥 나가는 거예요. 나가다니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어후.."

    김 씨가 잠적한 뒤 그에게 속았다는 주민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대에만 60명이 넘었습니다.

    피해자 가운데 상당수는 전세보증금이 전 재산인 서민들.

    아들 둘을 키우는 정 모 씨도 전세금 6천만 원을 고스란히 김 씨에게 뺏겼습니다.

    강화도에 사는 집주인이 바빠서 서류에 도장만 찍고 먼저 갔다는 김 씨의 말에 집주인의 신분증과 집의 등기부등본을 꼼꼼히 확인했지만, 그게 이중 계약을 하면서 받아놓은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정 00/부동산 사기 피해자]
    "등본 상 이름하고 모든 것이 다 일치했고 그래서 더 이상 뭐 의심할 여지가 없더라고요."
    "전세입자 유의 사항 주민등록증, 주소 이전하고 확정일자랑 이것만 받으면 된다고.. 저희는 그것만 믿었죠 부동산에서 설마 사람을 속일 거라고 생각도 안 했죠."

    10년 전 남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봉제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모은 돈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겁니다.

    [정 00/부동산 사기 피해자]
    "사실상 이게 우리가 30년 동안 모든 돈이예요. 저희 남편 일찍 가고 일찍 죽고서 두 아들을 키우는데 먹고 쓰고 애들 공부 가르치고.. 남이 보면 그 6천만 원 별로 큰 돈 아니겠지만 저한테는.. 정말 그래요."

    [김 00(아들)/부동산 사기 피해자]
    "저는 이거 당하고 다음날 정말 너무 슬펐던 게 여길 엄마랑 같이 왔어요. 근데 앉아서 우시면서 미싱을 이렇게 하시는 거예요. 이걸 안 하면 못 사니까. 살 수가 없으니까 우시면서 막 미싱을 하는데.."

    10년 넘게 간병인을 하며 모은 돈으로 3천5백만 원 짜리 전세를 얻은 김영화 씨도 방을 빼라는 집주인의 전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김영화/부동산 사기 피해자]
    "해결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다 무섭죠. 길에 가는 사람이고 뭐고 다 무서워요. 무서워요."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당장 빈손으로 쫓겨날 처지입니다.

    [정 00/부동산 사기 피해자]
    "갈 데가 없어요. 그러니까 미칠 것 같아요. 지옥이 따로 없어요. 제가 지금 지옥이예요. 우리 신랑은 밤마다 잠도 못 자요. 우리 어디 가니 우리 어디 가니.. 그러니까 제가 죽을 것 같아.. 내가 잘못해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김 씨에게 속은 걸까.

    김 씨는 2007년부터 남편의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빌려 부동산 업무에 뛰어들었는데, 주변을 살갑게 챙겨주는 '친절한 복덕방 아줌마'였다고 합니다.

    또 큰 아들은 의사, 작은 아들은 기자라면서 아들의 의사면허증과 기자 명함을 뿌리고 다녀, 더 믿었다고 동네 사람들은 말합니다.

    [김순옥/사기 피해자]
    "아들은 의사라 그러고 이비인후과 한다 그러더라고요? 둘째 아들은 기자라 그러면서 그래서 아~ 아들 너무 잘 키웠네. 그러면서 이제 더 믿음을 갖게 됐죠."

    [정미화/동네 주민]
    "우리 둘째 아들, 첫째 아들 팔면서 이렇게 자신감 있게 그걸 믿어라. 내가 뭐 아들을 내걸고 거짓말하겠냐 이러면서.."

    동네에서 신뢰를 쌓은 김 씨는 세입자에겐 싼 전세가 있다, 집주인에겐 비싼 월세를 받을 수 있다며 사람을 모았습니다.

    자신의 아들이나 친정 엄마 등 가족을 허위 세입자로 올려 집주인과 월세 계약을 맺고, 세입자에겐 '집주인이 지방에 산다', '바빠서 자신에게 계약을 위임했다'며 신과 직접 전세 계약서를 쓰게 했습니다.

    세입자들은 김 에게 전세 보증금을 직접 건네면서도, 평소에 잘 알고 지낸 데다, 김 씨가 월세 계약 때 받은 집주인의 신분증에 인감증명서까지 보여줬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00/부동산 사기 피해자]
    "보통 금융권 거래 같은 걸 할 때 위임해서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인감증명서 있고, 위임한 사실이 있다라는 내용이 있으면 자필로 썼으니까.."

    전세가 귀한 와중에 세입자들이 집주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 힘들다는 점도 대리 계약의 빌미가습니다.

    [장정훈 원미구청 부동산관리팀장]
    "(세입자가) 주인을 만나자고 몇 번 말을 했대요. 그런데 집주인이 이런 거 싫어한다 괜히 이것저것 하다 면 이 전세가 깨질 수도 있다.. 당신 지금 그런 식으로 나오면 전세 구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니까 빨리 계약해라. 날 믿고 해라.."

    김 씨는 집주인과 통화하거나 만나겠다고 하는 세입자에겐 대역을 구해 가짜 집주인까지 내세웠습니다.

    [정 00/부동산 사기 피해자]
    "(어머님이 만난 집주인은 뭐예요?) 가짜였나 봐요 지금 보니까 가짜였더라고. (김 00이 그 사람이 집주인이다 이렇게 소개시켜준거예요?) 네 와서 다 싸인하게 하고.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 사람이 다 보여주는데, 등본도 다 떼어놨는지 다 보여주더라고. 그래서 몰랐어요.

    [부천 원미 찰서 관계자]
    "(대역하는 데) 건당 5만 원을 받은 경우도 있었고 10만 원을 받은 경우도 있었고. 부동산 사무실에 와서 자기가 그 집 주인인 것처럼 수긍만 해주는 거죠. 집 좀 이렇게 깨끗하게 써 줘 뭐 이렇게 말 한마디 한다든지.."

    구청에서 부동산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조차 이렇게까지 하면 속지 않을 사람이 있겠냐고 혀를 내두릅니다.

    [장정훈 원미구청 부동산관리팀장]
    "우리가 중개업소를 찾아서 방문했는데 그렇게까지 모든 서류를 보여주면서 자 봐라, 위임 받았다라고 하는데 하나하나 서류를 꼬집으면서 진위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겠어요. 제가 볼 때는 없다고 보거든요.

    신분증과 인감 등을 확인한 뒤에도 집주인을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통해 거듭 확인하고, 송금은 반드시 집주인 명의의 통장에 송금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런 계약 과정에서 속지 않고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공인중개사가 있는 거 아니냐고 피해자들은 되묻습니다.

    [강 00/부동산 사기 피해자]
    "당연히 공인중개사니까, 나라에서 공인했으니까 그걸 믿고서 일부러 부동산을 이용하는 건데 그 비싼 수수료 내면서.. 제가 솔직히 너무 창피한 게 금융권 다니거든요? 알만큼 아는 사람도 이렇게 당했어요. 근데 이렇게 당하고 보니까 웬만한 사람들은 당하기 쉽겠더라고요.

    김 씨는 지난 13일 경찰에 구속됐습니다.

    경찰이 지난주까지 확인한 피해자만 64명, 피해 액수는 89억 원에 이릅니다.

    지금도 추가로 피해자가 나타나고 있지만 김 씨 명의의 재산은 남아 있는 게 없는 상황.

    수십억 원을 생활비 돌려 막기로 다 썼다는 게 김 씨의 주장입니다.

    [부천 원미 경찰서 관계자]
    "네 실제로 없어요 (한 푼도 안 남아있나요?) 네 가족 명의 것까지 다 팔아먹었어요. 다 팔아가지고 메꿀 대로 메꾸다가 터졌어요."

    이렇게 부동산에서 작정하고 속이려 들면 그냥 당할 수밖에 없는 걸까.

    중개 사고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부동산들은 보험에 가입하고 있습니다.

    보험 약관상 1년 동안 책정된 배상 금액은 1억 원.

    이에 근거해 대법원은 지난 2008년 부동산 사기 사건에서 피해자 한 명당 1억 원까지 보상받을 수 있다고 해석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공인중개사협회가 약관의 내용을 해석의 여지가 없도록 바꿈에 따라 지금은 '중개 사고로 손해를 입은 사람의 수나 사고 건수, 손해 액수와 상관없이 총 보상금액이 1억 원'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피해 액수가 수백억 원이라도 여러 명의 피해자들이 1억 원을 나눠 가져야 해 보험이 피해자 구제 방안으로서는 거의 실효성이 없는 셈입니다.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
    "협회에서 그렇게 되면 굉장히 타격이 있거든요. 저번에도 중개사 한 명당 1인당 뭐 몇십억까지도 나가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래가지고 이 협회에서 운영이 도저히 안 돼버리니까.."

    [최광석 부동산 전문 변호사]
    "우리가 일반적인 중개사 고도 대체로 피해 자체가 1억 원을 넘어서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거든요 뭐 요즘 전세보증금이 몇 억씩 하는 판이니까. 소비자 보호에는 문제가 있어서 보호 금액 자체를 전체적으로 좀 인상을 해주는 그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달 초 인천에서도 부동산중개업소가 이중 계약으로 전세금을 가로챈 사건이 터져 세입자 60여 명이 쫓겨날 처지에 놓였습니다.

    집값은 날로 치솟고, 전세는 귀한 상황에서 서민들의 절박함을 이용하는 사기가 잇따르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

    [한기우/부동산 사기 피해자]
    "믿어도 너무 바보처럼 믿었고...... 살면서 사람 안 믿을 거예요 이제 난. 절대로."

    [한 00/부동산 사기 피해자]
    "우리 나라 법도 너무 무서운 것 같아요 제대로 했다고 했는데도 당신이 잘못한 거라고만 하니까.. 나이 60에 어디 가서 비비고 어디 가서 일하고.. 내 노후는 이제 어떻게 되는데 생각만 하면 미칠 것 같아요 우리 서방님한테 제일 미안하고 새끼들한테 미안해서 미칠 것 같아요.

    서민들에게 집은 평생 모은 재산일 뿐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금자리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당할 수 있고, 당한 사람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부동산 사기.

    더 조심했어야 한다며 피해자를 탓하기 앞서 사기 행위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함께 실질적인 피해자 구제 대책이 절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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