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노경진 기자
노경진 기자
2580 그 후의 이야기
2580 그 후의 이야기
입력
2015-12-28 11:47
|
수정 2015-12-2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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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도 연고도 없다는 이유로 장기밀매 일당의 표적이 된 10대 소년 김 군.
안타까운 사연이 방송된 뒤 돕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요청이 쇄도했고, 김 군은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준 모든 분들께 감사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경찰의 팔을 꺾었다는 누명을 쓰고 직장까지 잃은 박 철씨 부부, 대기업의 횡포로 하루아침에 망하게 된 중소기업의 억울한 사연.
2580 방송 이후 그들은 어떻게 됐는지 방송 이후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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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장기밀매 조직 25명이 한꺼번에 체포됐습니다.
지난 6일 방송된 '장기 밀매 표적이 된 소년.'
넉넉한 집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고, 공부도 잘했던 김 군은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사망한 뒤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혼자가 됐습니다.
[김 군]
"하루 하루 사는 게 너무 힘드니까 길만 걷다가 춥기만 해도 엄마 생각이 나고 ...나도 죽을까 이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갈 곳 없는 김 군에게 손을 뻗친 친구는 장기밀매 희생자를 찾던 조직원.
끝에서 끝으로 몰린 인생이었지만 김 군은 의외로 의연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김 군/18세]
"저 같은 사람 분명 있을 거라고. 조금 더 신경 써주셨으면 고맙겠고.."
김 군의 사연이 방송된 뒤 2580에는 돕와주겠다는 문의가 폭주했습니다.
돕고 싶다, 일자리를 찾아주겠다는 온정이 국내는 물론 일본, 베트남, 미국에서도 모여들었습니다.
[크리스 박/미 알래스카 주]
"이민을 오게끔 저희가 미국으로 초청을 해가지고 영주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서 미국에 살게끔 해주려고요."
예상 못한 수많은 따뜻한 위로에 김군은 열심히 살겠다는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부산의 한 공공기관에서 김 군의 후원계좌를 만들었고 적지 않은 정성 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해운대구 정신건강증진센터]
"안정적인 주거환경과 일상생활 유지하는 부분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지원을 할 계획이고요."
2580은 김 군을 다시 만났습니다.
불과 20일 남짓 지난 뒤였지만 한 눈에도 많이 밝아진 모습이었습니다.
고시원에 살던 그는 며칠 전 화장실이 딸린 단칸방으로 옮겼다고 했습니다.
[김 군/18세]
"씻으러 멀리 안 가도 되고 일어나서 하품을 하면 김이 안 나오죠. 온풍이 솔솔 솔 나오고 .(좋죠?)완전좋죠. 방에서 땀 흘려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힘내라는 말 한 마디, 혼자가 아니라는 관심의 힘은 이렇게 컸습니다.
[김 군/18세]
"주변 눈치만 살피고 한다고 앞을 못 보고 좀 멈춰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어요. 여러분들 덕분에 요새는 앞만 보게 되고 이대로 계속 걸어나가 가지고 여러분들 생각하시는 거보 다도 밝고 건강하고 그렇게 지내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고 그렇게 할 거예요."
2015년도 이제 나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2580이 올 한 해 취재하고 방송했던 사건과 사람들, 각종 부조리한 사건과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사연들도 많았는데요.
이후에 어떻게 바뀌었을지, 다시 현장을 찾아 그 뒷이야기를 따라가봤습니다.
9월6일 공무 집행 방해입니다.
"아아아"
박 모 경사가 팔을 뒤로 꺾인 모습으로 비명을 지르며 몸을 앞으로 구부립니다.
이 채증 영상 하나로 경찰의 팔을 꺾은 죄인이 됐던 박 씨 부부 공무집행방해와 위증죄 등 6년간 모두 7번의 재판을 겪으며 직장까지 잃고 모든 삶이 망가졌습니다.
[박철]
"먹는 것 자는 것 무슨 사람의 리듬 자체가 다 깨져버립니다.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그리고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 것도 싫고.."
2580은 이들의 억울한 사연과 함께 완전히 뒤집힌 8번째 재판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채증 영상을 정밀 분석했더니 박 씨의 자세로는 경찰의 팔을 뒤트는 건 불가능하고 오히려 경찰이 팔을 꺾인 양
행동하는 것 같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당시 해당 경찰과 충주 경찰서 모두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다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580 취재진은 방송이 나간 지 석 달여만에 다시 박 씨 부부를 찾았습니다.
보름 전 박 씨 부부가 이겼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난 시점이었습니다.
[최옥자]
"주문도 그냥 검찰의 항소를 기각한다. 그 외에는 없었어요.(그렇죠. 20초) 그거 딱. 그 말 외에는 (그거 하나 들으시려고 몇 년을 고생하신거에요.)"
6년 반만에 되찾은 결백.
기쁨이 컸지만 그동안 쌓여왔던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는 한순간에 회복되지 않더라고 말합니다.
[박철]
"사람들이 보통 가슴에 못 박힌 거 시간이 가면 낫겠지. 그런 말들. 위로를 해주고 하지만, 그런 위로가 아직은 귀에 안 들어오죠. 그냥 멍한 상태이고, 꼭 깊은 잠을 자다 깬 것 같아요."
곧 전 직장인 유치원으로 돌아가게 될 아내도 마음처럼 준비가 잘 되지 않습니다.
[최옥자]
"설레기도 하고, 또 몇 년 쉬었잖아요. 교육과정도 바뀌고 해서 책 좀 보자 하고서는 꺼내도 머릿속에 안 들어와요.(좀 쉬어)"
공권력의 힘으로 6년 동안 한 가정의 삶을 파괴한 경찰 측은 박 씨 부부에게 사과는 고사하고 판결 내용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충주 경찰서 관계자]
"아 지금 대법원 판결이 또 뭐가 났어요?"
박 씨는 그동안의 피해 보상과 소송비용 등을 청구할 계획입니다.
[박철]
"제 이후에, 다른 사람들은 경찰 조직이 각성하라는 거죠. 경찰 개인에 대해서가, 개인적인 일은 내가 겪은 일이지만, 남은 경찰들도, 경찰 조직이 이런 짓을 하면 안되겠다."
지난 한 해 2580이 관심을 기울였던 주제 중 하나는 바로 갑의 횡포였습니다.
대기업, 거대 조직의 부조리와 맞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눈물겨운 싸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졌는데 여전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1월18일 어느 중소기업의 몰락'
충남 당진의 한 플랜트 시공업체
자재와 제품이 쌓여있어야 할 야적장은 휑하게 비었고, 부지런히 움직이던 기중기는 붉게 녹이 슬었습니다.
지난 2008년 롯데건설로부터 기계, 배관 공사를 하청 받은 아하엠텍.
당초 설계에 없던 추가 공사로 공사비는 147억 원이나 불어났지만 롯데건설이 내민 돈은 고작 24억 8천만 원이었습니다.
이 회사는 경영난에 빠져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3백 명 넘는 직원들도 다 내보냈습니다.
[안동권/아하엠텍 사장]
"나름대로 작지만 강한 기업이라는 그런 슬로건을 가지고 회사를 키워왔습니다. 그런 직원들을 한 명, 한 명 집으로 돌려보낼 때.. (눈물) 그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거예요."
롯데호텔 앞 시위.
2580 방영 열 달 뒤인 지난 11월 30일.
아하엠텍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집무실이 있는 롯데호텔 앞에서 회사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안동 권 아하엠텍 사장이 대통령 표창장을 영정 삼아 들었고 직원들이 상여를 멨습니다.
[안동권/아하엠텍 사장]
"사람이 한 명이 죽어도 장례를 치르고, 장례를 치르는 것에 대해서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 회사는 수백 명 우리 가족들까지 하면 천몇백 명이 롯데건설 때문에 회사가 죽었는데 왜 장례를 못 치릅니까."
가을 국정감사에서도 이 사건이 다뤄졌지만.
[이학영 의원/국회 정무위원회]
"또 아하엠텍이라고 롯데건설 산하에 하도급업체가 있습니다. 거기서 추가 공사 대금을 100억 정도 받지 못했다고.."
[신동빈/롯데그룹 회장]
"그게 사실이라면 문제라고 생각하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돌아가서 좀 체크해보겠습니다."
신 회장의 답변과 달리 롯데건설 측은 여전히 감감무소식.
그 사이 아하엠텍의 경영상태는 더욱 악화됐고, 어음 만기를 미뤄가며 간신히 부도를 막아내고 있는 중입니다.
[안동권/아하엠텍 사장]
"도대체 우리가 아하엠텍이 롯데에다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저희 회사가 부도 안 나게 해달라. 나는 그거면 된다. 그? O게 해서 대화를 하자."
부조리한 제도를 바꾸고, 사법기관의 수사를 이끌어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길게는 1년여를 출근하면서도 매일매일 하루짜리 근로계약서를 쓰다가 어느 날 갑자기 퇴직금도 못 받고 해고당한 롯데호텔 아르바이트생들은 호텔 측의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책을 받아냈고.
[김영/롯데호텔 해고자]
"청년위원회에서 먼저 연락이 왔었어요. 롯데에서 교섭을 하자고 제안을 해왔다 했었을 때 당연히 먼저 기뻤고.."
5월31일 버림받은 4할 타자
[홍승우/전 고교 야구선수]
"일이 터지고 나서 방에서 안 나왔어요. 한 이틀 동안 울기만 했었는데.. (야구할 때도 울어본 적 별로 없죠?) 네, 우승하고도 안 울었고.. 그만둔다고 생각하니까 그때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대학과 고교 감독, 학부모들이 짜고 친다는 야구 특기자 입시전형에서 전국 대회 우승을 이끌어낸 4할 타자임에도 야구의 꿈을 접어야 했던 승우 군의 아버지는 결국 대대적인 검찰 수사를 이끌어냈습니다.
[홍창기/홍승우 아버지]
"이거를 항의할 수 없는 어떤 부모님들, 이런 부모님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야구판에서 찍히지 않기 위해서 말들을 안 하는 거죠. 그런 속앓이들을 하고 결국은 대부분의 아이들은 사라져 가는 거고요."
8월23일 폐업하는 날.
지난여름 2580이 폐업 직전의 족발집에서 만난 김연화 씨.
가게 건물이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하루아침에 권리금도 못 받고 길거리로 나앉을 처지였습니다.
[김연화/자영업자]
"나쁜 생각도 했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근데 지금도 마음 일부분은 그런 마음이 있는데.. 아직 9월달이 온 게 아니니까.. (눈물) "
곱창 굽는 김연화 씨.
잘 손질된 곱창을 굽고, 보글보글 된장찌개도 끓여냅니다.
열흘 전 경기도 남양주에 새로 문을 연 곱창집.
김연화 씨의 새 가게입니다.
방송이 나간 뒤 친척, 지인부터 모르는 이들에게까지 돕겠다는 손길이 줄을 이었습니다.
[김연화/자영업자]
"어떤 분들은 자기네 가게에 와서 일할 생각은 없냐. 또 어떤 분들은 기술 전수해서 얼마를 받아라. 그렇게 연락도 많이 왔는데 저희 외숙모가 선뜻 너무나 큰 돈을 빌려주시는 거예요. 열심히 사니까 좋은 날 있을 거라고.. (눈물) 이쪽으로 가게를 옮기게 되었어요.."
"엄마~~"
이전 가게를 폐업하는 순간까지 엄마의 옆을 지켰던 7살 어린 딸도 훨씬 활기찬 모습으로
새 가게 이곳저곳을 오갑니다.
[김연화 씨 딸]
"잘 자라라~" "00이가 화분에 물주는 거야?" "네~~~"
로또같이 갑작스런 행운이 찾아왔다고 여길 법도 하지만, 연화 씨는 더 소중한 건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믿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열심히 잘 살아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김연화/자영업자]
"한 분 두 분 손길이 왔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요. 그분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저를 보듬어주고 하니까 용기가 다시 나더라고요. 저보다 더 힘든 분들도 많겠지만, 저처럼 힘든 걸 잘 이겨내시고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몇 번의 해가 더 지고 나면 2016년을 맞습니다.
내년 달력에는 20대 총선과 브라질 올림픽 등 굵은 동그라미가 쳐져 있고, 세상은 또 올해 못지않게 바삐 돌아갈 겁니다.
그 크고 바쁜 세상사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먹고사는 일은 또 어떻게 변할까요.
작은 목소리가 세상을 바꾸고, 따뜻한 시선이 사람을 살린다는 믿음이 내년에도 힘을 발휘하길 기대합니다.
안타까운 사연이 방송된 뒤 돕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요청이 쇄도했고, 김 군은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준 모든 분들께 감사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경찰의 팔을 꺾었다는 누명을 쓰고 직장까지 잃은 박 철씨 부부, 대기업의 횡포로 하루아침에 망하게 된 중소기업의 억울한 사연.
2580 방송 이후 그들은 어떻게 됐는지 방송 이후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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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장기밀매 조직 25명이 한꺼번에 체포됐습니다.
지난 6일 방송된 '장기 밀매 표적이 된 소년.'
넉넉한 집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고, 공부도 잘했던 김 군은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사망한 뒤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혼자가 됐습니다.
[김 군]
"하루 하루 사는 게 너무 힘드니까 길만 걷다가 춥기만 해도 엄마 생각이 나고 ...나도 죽을까 이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갈 곳 없는 김 군에게 손을 뻗친 친구는 장기밀매 희생자를 찾던 조직원.
끝에서 끝으로 몰린 인생이었지만 김 군은 의외로 의연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김 군/18세]
"저 같은 사람 분명 있을 거라고. 조금 더 신경 써주셨으면 고맙겠고.."
김 군의 사연이 방송된 뒤 2580에는 돕와주겠다는 문의가 폭주했습니다.
돕고 싶다, 일자리를 찾아주겠다는 온정이 국내는 물론 일본, 베트남, 미국에서도 모여들었습니다.
[크리스 박/미 알래스카 주]
"이민을 오게끔 저희가 미국으로 초청을 해가지고 영주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서 미국에 살게끔 해주려고요."
예상 못한 수많은 따뜻한 위로에 김군은 열심히 살겠다는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부산의 한 공공기관에서 김 군의 후원계좌를 만들었고 적지 않은 정성 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해운대구 정신건강증진센터]
"안정적인 주거환경과 일상생활 유지하는 부분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지원을 할 계획이고요."
2580은 김 군을 다시 만났습니다.
불과 20일 남짓 지난 뒤였지만 한 눈에도 많이 밝아진 모습이었습니다.
고시원에 살던 그는 며칠 전 화장실이 딸린 단칸방으로 옮겼다고 했습니다.
[김 군/18세]
"씻으러 멀리 안 가도 되고 일어나서 하품을 하면 김이 안 나오죠. 온풍이 솔솔 솔 나오고 .(좋죠?)완전좋죠. 방에서 땀 흘려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힘내라는 말 한 마디, 혼자가 아니라는 관심의 힘은 이렇게 컸습니다.
[김 군/18세]
"주변 눈치만 살피고 한다고 앞을 못 보고 좀 멈춰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어요. 여러분들 덕분에 요새는 앞만 보게 되고 이대로 계속 걸어나가 가지고 여러분들 생각하시는 거보 다도 밝고 건강하고 그렇게 지내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고 그렇게 할 거예요."
2015년도 이제 나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2580이 올 한 해 취재하고 방송했던 사건과 사람들, 각종 부조리한 사건과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사연들도 많았는데요.
이후에 어떻게 바뀌었을지, 다시 현장을 찾아 그 뒷이야기를 따라가봤습니다.
9월6일 공무 집행 방해입니다.
"아아아"
박 모 경사가 팔을 뒤로 꺾인 모습으로 비명을 지르며 몸을 앞으로 구부립니다.
이 채증 영상 하나로 경찰의 팔을 꺾은 죄인이 됐던 박 씨 부부 공무집행방해와 위증죄 등 6년간 모두 7번의 재판을 겪으며 직장까지 잃고 모든 삶이 망가졌습니다.
[박철]
"먹는 것 자는 것 무슨 사람의 리듬 자체가 다 깨져버립니다.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그리고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 것도 싫고.."
2580은 이들의 억울한 사연과 함께 완전히 뒤집힌 8번째 재판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채증 영상을 정밀 분석했더니 박 씨의 자세로는 경찰의 팔을 뒤트는 건 불가능하고 오히려 경찰이 팔을 꺾인 양
행동하는 것 같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당시 해당 경찰과 충주 경찰서 모두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다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580 취재진은 방송이 나간 지 석 달여만에 다시 박 씨 부부를 찾았습니다.
보름 전 박 씨 부부가 이겼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난 시점이었습니다.
[최옥자]
"주문도 그냥 검찰의 항소를 기각한다. 그 외에는 없었어요.(그렇죠. 20초) 그거 딱. 그 말 외에는 (그거 하나 들으시려고 몇 년을 고생하신거에요.)"
6년 반만에 되찾은 결백.
기쁨이 컸지만 그동안 쌓여왔던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는 한순간에 회복되지 않더라고 말합니다.
[박철]
"사람들이 보통 가슴에 못 박힌 거 시간이 가면 낫겠지. 그런 말들. 위로를 해주고 하지만, 그런 위로가 아직은 귀에 안 들어오죠. 그냥 멍한 상태이고, 꼭 깊은 잠을 자다 깬 것 같아요."
곧 전 직장인 유치원으로 돌아가게 될 아내도 마음처럼 준비가 잘 되지 않습니다.
[최옥자]
"설레기도 하고, 또 몇 년 쉬었잖아요. 교육과정도 바뀌고 해서 책 좀 보자 하고서는 꺼내도 머릿속에 안 들어와요.(좀 쉬어)"
공권력의 힘으로 6년 동안 한 가정의 삶을 파괴한 경찰 측은 박 씨 부부에게 사과는 고사하고 판결 내용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충주 경찰서 관계자]
"아 지금 대법원 판결이 또 뭐가 났어요?"
박 씨는 그동안의 피해 보상과 소송비용 등을 청구할 계획입니다.
[박철]
"제 이후에, 다른 사람들은 경찰 조직이 각성하라는 거죠. 경찰 개인에 대해서가, 개인적인 일은 내가 겪은 일이지만, 남은 경찰들도, 경찰 조직이 이런 짓을 하면 안되겠다."
지난 한 해 2580이 관심을 기울였던 주제 중 하나는 바로 갑의 횡포였습니다.
대기업, 거대 조직의 부조리와 맞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눈물겨운 싸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졌는데 여전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1월18일 어느 중소기업의 몰락'
충남 당진의 한 플랜트 시공업체
자재와 제품이 쌓여있어야 할 야적장은 휑하게 비었고, 부지런히 움직이던 기중기는 붉게 녹이 슬었습니다.
지난 2008년 롯데건설로부터 기계, 배관 공사를 하청 받은 아하엠텍.
당초 설계에 없던 추가 공사로 공사비는 147억 원이나 불어났지만 롯데건설이 내민 돈은 고작 24억 8천만 원이었습니다.
이 회사는 경영난에 빠져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3백 명 넘는 직원들도 다 내보냈습니다.
[안동권/아하엠텍 사장]
"나름대로 작지만 강한 기업이라는 그런 슬로건을 가지고 회사를 키워왔습니다. 그런 직원들을 한 명, 한 명 집으로 돌려보낼 때.. (눈물) 그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거예요."
롯데호텔 앞 시위.
2580 방영 열 달 뒤인 지난 11월 30일.
아하엠텍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집무실이 있는 롯데호텔 앞에서 회사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안동 권 아하엠텍 사장이 대통령 표창장을 영정 삼아 들었고 직원들이 상여를 멨습니다.
[안동권/아하엠텍 사장]
"사람이 한 명이 죽어도 장례를 치르고, 장례를 치르는 것에 대해서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 회사는 수백 명 우리 가족들까지 하면 천몇백 명이 롯데건설 때문에 회사가 죽었는데 왜 장례를 못 치릅니까."
가을 국정감사에서도 이 사건이 다뤄졌지만.
[이학영 의원/국회 정무위원회]
"또 아하엠텍이라고 롯데건설 산하에 하도급업체가 있습니다. 거기서 추가 공사 대금을 100억 정도 받지 못했다고.."
[신동빈/롯데그룹 회장]
"그게 사실이라면 문제라고 생각하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돌아가서 좀 체크해보겠습니다."
신 회장의 답변과 달리 롯데건설 측은 여전히 감감무소식.
그 사이 아하엠텍의 경영상태는 더욱 악화됐고, 어음 만기를 미뤄가며 간신히 부도를 막아내고 있는 중입니다.
[안동권/아하엠텍 사장]
"도대체 우리가 아하엠텍이 롯데에다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저희 회사가 부도 안 나게 해달라. 나는 그거면 된다. 그? O게 해서 대화를 하자."
부조리한 제도를 바꾸고, 사법기관의 수사를 이끌어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길게는 1년여를 출근하면서도 매일매일 하루짜리 근로계약서를 쓰다가 어느 날 갑자기 퇴직금도 못 받고 해고당한 롯데호텔 아르바이트생들은 호텔 측의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책을 받아냈고.
[김영/롯데호텔 해고자]
"청년위원회에서 먼저 연락이 왔었어요. 롯데에서 교섭을 하자고 제안을 해왔다 했었을 때 당연히 먼저 기뻤고.."
5월31일 버림받은 4할 타자
[홍승우/전 고교 야구선수]
"일이 터지고 나서 방에서 안 나왔어요. 한 이틀 동안 울기만 했었는데.. (야구할 때도 울어본 적 별로 없죠?) 네, 우승하고도 안 울었고.. 그만둔다고 생각하니까 그때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대학과 고교 감독, 학부모들이 짜고 친다는 야구 특기자 입시전형에서 전국 대회 우승을 이끌어낸 4할 타자임에도 야구의 꿈을 접어야 했던 승우 군의 아버지는 결국 대대적인 검찰 수사를 이끌어냈습니다.
[홍창기/홍승우 아버지]
"이거를 항의할 수 없는 어떤 부모님들, 이런 부모님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야구판에서 찍히지 않기 위해서 말들을 안 하는 거죠. 그런 속앓이들을 하고 결국은 대부분의 아이들은 사라져 가는 거고요."
8월23일 폐업하는 날.
지난여름 2580이 폐업 직전의 족발집에서 만난 김연화 씨.
가게 건물이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하루아침에 권리금도 못 받고 길거리로 나앉을 처지였습니다.
[김연화/자영업자]
"나쁜 생각도 했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근데 지금도 마음 일부분은 그런 마음이 있는데.. 아직 9월달이 온 게 아니니까.. (눈물) "
곱창 굽는 김연화 씨.
잘 손질된 곱창을 굽고, 보글보글 된장찌개도 끓여냅니다.
열흘 전 경기도 남양주에 새로 문을 연 곱창집.
김연화 씨의 새 가게입니다.
방송이 나간 뒤 친척, 지인부터 모르는 이들에게까지 돕겠다는 손길이 줄을 이었습니다.
[김연화/자영업자]
"어떤 분들은 자기네 가게에 와서 일할 생각은 없냐. 또 어떤 분들은 기술 전수해서 얼마를 받아라. 그렇게 연락도 많이 왔는데 저희 외숙모가 선뜻 너무나 큰 돈을 빌려주시는 거예요. 열심히 사니까 좋은 날 있을 거라고.. (눈물) 이쪽으로 가게를 옮기게 되었어요.."
"엄마~~"
이전 가게를 폐업하는 순간까지 엄마의 옆을 지켰던 7살 어린 딸도 훨씬 활기찬 모습으로
새 가게 이곳저곳을 오갑니다.
[김연화 씨 딸]
"잘 자라라~" "00이가 화분에 물주는 거야?" "네~~~"
로또같이 갑작스런 행운이 찾아왔다고 여길 법도 하지만, 연화 씨는 더 소중한 건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믿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열심히 잘 살아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김연화/자영업자]
"한 분 두 분 손길이 왔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요. 그분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저를 보듬어주고 하니까 용기가 다시 나더라고요. 저보다 더 힘든 분들도 많겠지만, 저처럼 힘든 걸 잘 이겨내시고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몇 번의 해가 더 지고 나면 2016년을 맞습니다.
내년 달력에는 20대 총선과 브라질 올림픽 등 굵은 동그라미가 쳐져 있고, 세상은 또 올해 못지않게 바삐 돌아갈 겁니다.
그 크고 바쁜 세상사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먹고사는 일은 또 어떻게 변할까요.
작은 목소리가 세상을 바꾸고, 따뜻한 시선이 사람을 살린다는 믿음이 내년에도 힘을 발휘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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