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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수 기자
장인수 기자
폐가전 처리도 삼성, LG?
폐가전 처리도 삼성, LG?
입력
2016-03-21 11:09
|
수정 2016-03-2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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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쓰게 된 TV, 세탁기 등 폐가전을 수거해 재활용하는 업체들이 현재 우리나라에 143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100곳 이상이 일감을 찾지 못해 속속 폐업하고 있습니다.
재활용 조합에 가입돼 있지 않다는 이유입니다.
조합에 가입하지 않으면 폐가전 수거도, 재활용 작업도 일절 할 수 없도록 법이 바뀌었기 때문인데요.
문제는 조합에 가입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와중에 조합에 이미 가입돼 있는 몇몇 업체들만 넘쳐나는 일감을 감당 못 할 정도로 성업중인데요.
대체 이 조합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운영되는 곳일까요.
------------------------------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재활용업체.
못 쓰게 된 가전제품을 재활용하는 곳입니다.
손으로 꺼낼 수 있는 건 꺼내고 프레온 가스도 뽑아냅니다.
[도시알씨 직원]
"플라스틱이나 그다음 저 이런 모터 같은 거 이거 다 제거를 하는 거예요."
그다음엔 분쇄기에 집어넣어 잘게 부순 뒤 고철, 구리, 플라스틱 등을 종류별로 모아 담습니다.
이 공장은 하루에 450대의 냉장고를 처리할 수 있는데 요즘은 하루 200대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처리할 물건을 구하지 못해섭니다.
[인태민 대표/도시알씨]
"보통 이 야적장에는 한 3천대 이상 폐가전제품이 쌓여 있었죠. 근데 지금은 굉장히 (폐가 전) 회수율이 떨어져서 지금 보시다시피 텅 비어 있는 상황이죠."
이 업체는 매달 2천만 원의 적자를 보고 있어 폐업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화성의 이 업체는 지난달 문을 닫았습니다.
역시 폐가전을 구하지 못해섭니다.
[이○○ 대표/○○산업]
"제가 웬만하면 공장을 안 와보려고 그래도 걱정돼서 가끔 이렇게 와보면 참 뭐 죽고 싶은 마음입니다. 진짜."
경기도 김포의 이 업체도 폐업했습니다.
[문찬석 대표/도원산업]
"버티다 버티다 결국은 작년 10월달부터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이제 부도 아닌 부도가 났죠."
모든 업체가 다 이럴까.
용인에 있는 이 업체의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폐가전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김만수 차장/수도권자원순환센터]
"냉장고는 7천대 정도 되고요. 세탁기는 6천대 정도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이게 며칠이나 걸리면 처리할 수 있는 양인가요?) 지금 저희가 한 보름 정도 처리할 수 있는 물량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업체는 최근 폐가전 물량이 늘어나면서 야근까지 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폐가전을 재활용 업체인데, 남양주시의 업체처럼 물건이 없어서 문을 닫는 곳이 있는가 하면, 방금 보신 용인의 업체처럼 물건이 넘쳐나 야근까지 하는 곳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요?
두 곳이 폐가전을 수거하고 재활용하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김 모 씨는 주택가를 돌며 못쓰게 된 가전제품을 수거해 파는 수집업자입니다.
요즘은 폐가전을 구하기 쉽지 않아 무작정 돌아다니기보다는 인터넷으로 수거를 신청한 곳만 찾아가고 있습니다.
[김○○/폐가전 수집상]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그러면 기름 값 빼고 뭐 밥 사먹고 그래도 돈 좀 집에 좀 가지고 있는데 요즘엔 많이 줄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서울 면목동에 왔습니다.
며칠 전 김치냉장고와 세탁기를 수거해 달라는 신청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김치냉장고는 바로 폐기해야 할 상태라 무상으로 넘겨받았고 중고로 되팔 수 있는 세탁기는 3만 원을 주고 샀습니다.
[임승기/서울 면목동]
"사장님이 보시고서 세탁기는 그래도 어느 정도 가격을 매겨줄 수가 있다고 말씀하셔가지고 세탁기는 뭐 조금 받고.. 한 3만 원.."
돈 주고 산 세탁기는 중고 업체에 넘기고 나니 이틀 동안 모은 폐가전은 모두 넉 대.
앞서 본 남양주의 재활용 업체를 찾아갑니다.
폐가전은 무게로 돈을 받습니다.
김씨가 넘긴 냉장고 두 대와 김치냉장고, 세탁기를 다 합친 가격은 2만 6천 원.
[도시알씨 직원]
"넉 대고요. 2만 6천 원어치요. (2만 6천 원. 얼마 안 하네요?) 네 요즘에 물품대가 싸져 갖고요. 가격이 얼마 안 해요."
재활용 업체는 이렇게 사들인 폐가전을 부숴서 나온 쇠붙이 등을 종류별로 분류해 다시 팝니다.
100kg짜리 대형 냉장고 한 대를 재활용할 경우 이 업체가 벌어들이는 돈은 약 14,600원.
여기서 수집업자에게 준 8,000원을 빼고 인건비 2,400원, 공장운영비 5,000원, 프레온가스처럼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기물 처리비용 2,500원을 제하고 나면 3,200원의 적자가 납니다.
재활용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겁니다.
이제 물건이 많이 쌓여 있던 용인 재활용 업체의 경우로 가보겠습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오응수 씨가 못쓰게 된 냉장고를 버리기 위해 전화를 겁니다.
전화를 받은 곳은 경기도 화성의 콜센터.
[콜센터]
"콜센터: 혹시 제품 버리실 거 있으신가요?"
[오응수/서울 강동구]
"네. 냉장고입니다. 냉장고하고 그저 뭡니까? 전자렌지하고."
다음날 폐가전 수거 기사들이 왔습니다.
"가전수거 기사입니다. 안녕하세요. 수거할 게 어떤 거죠?"
기사들은 냉장고를 꺼내 화물차에 옮겨 싣습니다.
꽤 힘든 작업이지만 무상입니다.
[오응수/서울 강동구]
"아 너무 좋죠. 미안할 정도로 고맙고 좋다고요. 기분이."
이렇게 수거된 폐가전들은 용인에 있는 재활용업체로 옮겨집니다.
이 업체 역시 폐가전을 뜯어서 고철 구리 플라스틱 같은 유가물을 모아 팝니다.
이 업체는 냉장고 한 대를 분해해 팔면 18,000원 정도를 받습니다.
여기서 인건비 2,400원, 폐기물 처리비 2,500원, 공장운영비 11,300원을 빼고 나면 1,800원의 이익이 남습니다.
똑같은 일을 했는데 누구는 적자고 누구는 돈을 버는 겁니다.
보조금 때문입니다.
남양주의 업체는 수거기사들에게 8,000천 원을 주고 냉장고를 샀지만 용인의 재활용업체는 공짜로 폐가전을 받고 있습니다.
대신 수거 기사들은 냉장고 한 대당 7,600원의 보조금을 다른 곳에서 받고 있습니다.
이 보조금의 정체는 뭘까?
우리나라는 재활용 활성화를 위해 '생산자 책임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품을 만든 사람이 재활용도 책임지고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일일이 폐가전을 수거해 재활용을 하기는 어려운 일.
그래서 가전회사들은 재활용을 직접 하는 대신 재활용 분담금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공제 조합이 이 분담금을 받아 폐가전을 재활용한 업체들에게 재활용 실적에 따라 이 분담금을 나눠줍니다.
이렇게 분담금을 받는 업체는 그럭저럭 공장을 운영해가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업체들은 적자를 보고 도산까지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모든 업체들이 조합에 가입해 보조금을 받으면 될 일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나 받아주는 조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조합의 정식 명칭은 한국전자제품자원순환공제조합.
삼성과 LG 등 가전회사들이 낸 한 해 3백억 원 안팎의 재활용분담금을 맡아 관리하고 재활용업체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합니다.
정부 허가를 받은 국내 가전재활용업체는 모두 143곳이지만 현재 이 조합에 가입돼 있는 곳은 39곳뿐입니다.
특히 냉장고 세탁기 에어콘 TV 등 대형가전을 처리하는 곳은 권역별로 하나씩, 9곳만 지정해 놓고 있습니다.
지역별 거점을 지정해 놓고, 가까운 지역에서 나오는 폐가전을 모아 재활용하겠다는 겁니다.
이른바 '물류최적화'.
이 9곳을 뺀 다른 대형가전 재활용업체들은 물류효율이 떨어진다는 설명입니다.
[손병용 사무관/환경부 자원재활용과]
"수집소를 지정해서 운영하는 이유는 그 판매업자가 회수한 폐가전 제품을 적정하게 보관을 하고 재활용이 적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요."
처리과정에서 프레온 가스유출로 인한 환경오염의 우려도 이유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조합가입에 탈락한 업체 대부분이 법에서 요구하는 설비를 갖춰 정부가 공장 인허가를 내줬던 곳입니다.
그런데 조합에 가입된 업체 9곳을 들여다보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만든 업체가 하나씩, 조합이 자체로 만든 업체가 두 곳, 나머지 4개 업체도 조합이 지분 투자를 한 곳들입니다.
대형가전 재활용 업체는 전국에 40곳이 넘지만 이 9곳이 전체 물량의 90%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기훈 대표/○○산업]
"한마디로 뭣 같죠. 하여튼 열 개 가진 놈이 하나 가진 사람 거 뺏어 먹으려고 덤비는 거니까."
한 대형 폐가전처리업체의 인태민 사장도 보조금을 받기 위해 작년 5월 조합에 가입신청을 냈지만 탈락했습니다.
개인 수집상들로부터 폐가전을 사들여 재활용하는 업체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조합은 삼성전자와 LG전자 같은 가전회사, 하이마트, 전자랜드 같은 판매회사, 또는 지자체가 수거한 폐가전을 받아서 재활용해야만 보조금 지급대상이라고 못박았습니다.
처리실적을 부풀려 보조금을 더 많이 받아갈 우려가 있다는 이유입니다.
[한국전자제품자원순환공제조합 관계자]
"허위실적 조장과 같은 문제가 발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정상적인 유통경로를 통해서 폐제품이 수거되고 재활용이 되도록..."
하지만, 영세업체에겐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입니다.
[인태민 대표/도시알씨]
"그 기준을 충족시킬 수가 없어요. 저희가 가서 (삼성전자, LG전자와) 계약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죠. 환경부가 주관하고 있는 사업에 뭐 일개 중소기업체가 들어가 갖고 폐가전 제품 위탁 계약서를 쓰자고 얘기할 수가 없는 상황이죠."
문제는 또 있습니다.
환경부는 지난 2012년, 폐전자제품은 전자제품 제조·수입업자나 공제조합이 설치한 수집소로 운반하여 인계해야 한다고 법을 바꿨습니다.
삼성 LG 같은 가전회사 또는 공제조합만 수거해 처리할 수 있도록 제한한 겁니다.
이 때문에 2012년부터 각 지자체와 전자제품 판매사들은 수거한 폐가전을 모두 공제조합에만 넘기고 있습니다.
조합에 가입하지 못하면 보조금만 못 받는 게 아니라 아예 폐가전을 모으지도 못한다는 얘깁니다.
애초에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어 조합 가입을 막고, 이후엔 가입이 안돼 있다는 이유로 손발을 묶어 자신들을 고사시키고 있다는 게 소규모 업체들의 하소연입니다.
[문찬석 대표/도원산업]
"참말로 욕은 못하겠고 문 닫으란 식이죠. 쉽게 얘기해서 동네 구멍가게니까 구멍가게는 다 없어지고 대형 슈퍼마켓이나 대형마트식으로 하겠다. 그런 취지 같아요."
공제조합과 환경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손병용 사무관/환경부 자원재활용과]
"회원 가입에 어떤 기준은, 일정한 기준을 가진다는 것은 상식적이라고, 상식적인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소규모 재활용업체들은 최근 스스로 조합을 만들겠다며 환경부에 인허가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환경부는 이마저도 불허했습니다.
[이○○ 대표/○○산업]
"그냥 너네 다 죽으라는 얘기죠! 사실은. 주위에 도와준 분들, 그분들한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버티고 있는 거죠."
똑같은 재활용 일을 하면서도 누구는 법으로 금지당해 문을 닫고 누구는 법으로 보호받고 보조금까지 받는다면 공정하다고 볼 순 없습니다.
더구나 보호받는 쪽이 약자가 아닌 삼성, LG 같은 대기업이라면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들 중소재활용 업체들이 무너지면 결국 가정에서 나오는 폐가전들의 재활용에도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의 재활용 정책이 애초 방향에 맞게 가고 있는 건지 다시 챙겨봐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100곳 이상이 일감을 찾지 못해 속속 폐업하고 있습니다.
재활용 조합에 가입돼 있지 않다는 이유입니다.
조합에 가입하지 않으면 폐가전 수거도, 재활용 작업도 일절 할 수 없도록 법이 바뀌었기 때문인데요.
문제는 조합에 가입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와중에 조합에 이미 가입돼 있는 몇몇 업체들만 넘쳐나는 일감을 감당 못 할 정도로 성업중인데요.
대체 이 조합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운영되는 곳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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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재활용업체.
못 쓰게 된 가전제품을 재활용하는 곳입니다.
손으로 꺼낼 수 있는 건 꺼내고 프레온 가스도 뽑아냅니다.
[도시알씨 직원]
"플라스틱이나 그다음 저 이런 모터 같은 거 이거 다 제거를 하는 거예요."
그다음엔 분쇄기에 집어넣어 잘게 부순 뒤 고철, 구리, 플라스틱 등을 종류별로 모아 담습니다.
이 공장은 하루에 450대의 냉장고를 처리할 수 있는데 요즘은 하루 200대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처리할 물건을 구하지 못해섭니다.
[인태민 대표/도시알씨]
"보통 이 야적장에는 한 3천대 이상 폐가전제품이 쌓여 있었죠. 근데 지금은 굉장히 (폐가 전) 회수율이 떨어져서 지금 보시다시피 텅 비어 있는 상황이죠."
이 업체는 매달 2천만 원의 적자를 보고 있어 폐업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화성의 이 업체는 지난달 문을 닫았습니다.
역시 폐가전을 구하지 못해섭니다.
[이○○ 대표/○○산업]
"제가 웬만하면 공장을 안 와보려고 그래도 걱정돼서 가끔 이렇게 와보면 참 뭐 죽고 싶은 마음입니다. 진짜."
경기도 김포의 이 업체도 폐업했습니다.
[문찬석 대표/도원산업]
"버티다 버티다 결국은 작년 10월달부터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이제 부도 아닌 부도가 났죠."
모든 업체가 다 이럴까.
용인에 있는 이 업체의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폐가전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김만수 차장/수도권자원순환센터]
"냉장고는 7천대 정도 되고요. 세탁기는 6천대 정도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이게 며칠이나 걸리면 처리할 수 있는 양인가요?) 지금 저희가 한 보름 정도 처리할 수 있는 물량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업체는 최근 폐가전 물량이 늘어나면서 야근까지 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폐가전을 재활용 업체인데, 남양주시의 업체처럼 물건이 없어서 문을 닫는 곳이 있는가 하면, 방금 보신 용인의 업체처럼 물건이 넘쳐나 야근까지 하는 곳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요?
두 곳이 폐가전을 수거하고 재활용하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김 모 씨는 주택가를 돌며 못쓰게 된 가전제품을 수거해 파는 수집업자입니다.
요즘은 폐가전을 구하기 쉽지 않아 무작정 돌아다니기보다는 인터넷으로 수거를 신청한 곳만 찾아가고 있습니다.
[김○○/폐가전 수집상]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그러면 기름 값 빼고 뭐 밥 사먹고 그래도 돈 좀 집에 좀 가지고 있는데 요즘엔 많이 줄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서울 면목동에 왔습니다.
며칠 전 김치냉장고와 세탁기를 수거해 달라는 신청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김치냉장고는 바로 폐기해야 할 상태라 무상으로 넘겨받았고 중고로 되팔 수 있는 세탁기는 3만 원을 주고 샀습니다.
[임승기/서울 면목동]
"사장님이 보시고서 세탁기는 그래도 어느 정도 가격을 매겨줄 수가 있다고 말씀하셔가지고 세탁기는 뭐 조금 받고.. 한 3만 원.."
돈 주고 산 세탁기는 중고 업체에 넘기고 나니 이틀 동안 모은 폐가전은 모두 넉 대.
앞서 본 남양주의 재활용 업체를 찾아갑니다.
폐가전은 무게로 돈을 받습니다.
김씨가 넘긴 냉장고 두 대와 김치냉장고, 세탁기를 다 합친 가격은 2만 6천 원.
[도시알씨 직원]
"넉 대고요. 2만 6천 원어치요. (2만 6천 원. 얼마 안 하네요?) 네 요즘에 물품대가 싸져 갖고요. 가격이 얼마 안 해요."
재활용 업체는 이렇게 사들인 폐가전을 부숴서 나온 쇠붙이 등을 종류별로 분류해 다시 팝니다.
100kg짜리 대형 냉장고 한 대를 재활용할 경우 이 업체가 벌어들이는 돈은 약 14,600원.
여기서 수집업자에게 준 8,000원을 빼고 인건비 2,400원, 공장운영비 5,000원, 프레온가스처럼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기물 처리비용 2,500원을 제하고 나면 3,200원의 적자가 납니다.
재활용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겁니다.
이제 물건이 많이 쌓여 있던 용인 재활용 업체의 경우로 가보겠습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오응수 씨가 못쓰게 된 냉장고를 버리기 위해 전화를 겁니다.
전화를 받은 곳은 경기도 화성의 콜센터.
[콜센터]
"콜센터: 혹시 제품 버리실 거 있으신가요?"
[오응수/서울 강동구]
"네. 냉장고입니다. 냉장고하고 그저 뭡니까? 전자렌지하고."
다음날 폐가전 수거 기사들이 왔습니다.
"가전수거 기사입니다. 안녕하세요. 수거할 게 어떤 거죠?"
기사들은 냉장고를 꺼내 화물차에 옮겨 싣습니다.
꽤 힘든 작업이지만 무상입니다.
[오응수/서울 강동구]
"아 너무 좋죠. 미안할 정도로 고맙고 좋다고요. 기분이."
이렇게 수거된 폐가전들은 용인에 있는 재활용업체로 옮겨집니다.
이 업체 역시 폐가전을 뜯어서 고철 구리 플라스틱 같은 유가물을 모아 팝니다.
이 업체는 냉장고 한 대를 분해해 팔면 18,000원 정도를 받습니다.
여기서 인건비 2,400원, 폐기물 처리비 2,500원, 공장운영비 11,300원을 빼고 나면 1,800원의 이익이 남습니다.
똑같은 일을 했는데 누구는 적자고 누구는 돈을 버는 겁니다.
보조금 때문입니다.
남양주의 업체는 수거기사들에게 8,000천 원을 주고 냉장고를 샀지만 용인의 재활용업체는 공짜로 폐가전을 받고 있습니다.
대신 수거 기사들은 냉장고 한 대당 7,600원의 보조금을 다른 곳에서 받고 있습니다.
이 보조금의 정체는 뭘까?
우리나라는 재활용 활성화를 위해 '생산자 책임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품을 만든 사람이 재활용도 책임지고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일일이 폐가전을 수거해 재활용을 하기는 어려운 일.
그래서 가전회사들은 재활용을 직접 하는 대신 재활용 분담금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공제 조합이 이 분담금을 받아 폐가전을 재활용한 업체들에게 재활용 실적에 따라 이 분담금을 나눠줍니다.
이렇게 분담금을 받는 업체는 그럭저럭 공장을 운영해가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업체들은 적자를 보고 도산까지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모든 업체들이 조합에 가입해 보조금을 받으면 될 일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나 받아주는 조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조합의 정식 명칭은 한국전자제품자원순환공제조합.
삼성과 LG 등 가전회사들이 낸 한 해 3백억 원 안팎의 재활용분담금을 맡아 관리하고 재활용업체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합니다.
정부 허가를 받은 국내 가전재활용업체는 모두 143곳이지만 현재 이 조합에 가입돼 있는 곳은 39곳뿐입니다.
특히 냉장고 세탁기 에어콘 TV 등 대형가전을 처리하는 곳은 권역별로 하나씩, 9곳만 지정해 놓고 있습니다.
지역별 거점을 지정해 놓고, 가까운 지역에서 나오는 폐가전을 모아 재활용하겠다는 겁니다.
이른바 '물류최적화'.
이 9곳을 뺀 다른 대형가전 재활용업체들은 물류효율이 떨어진다는 설명입니다.
[손병용 사무관/환경부 자원재활용과]
"수집소를 지정해서 운영하는 이유는 그 판매업자가 회수한 폐가전 제품을 적정하게 보관을 하고 재활용이 적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요."
처리과정에서 프레온 가스유출로 인한 환경오염의 우려도 이유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조합가입에 탈락한 업체 대부분이 법에서 요구하는 설비를 갖춰 정부가 공장 인허가를 내줬던 곳입니다.
그런데 조합에 가입된 업체 9곳을 들여다보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만든 업체가 하나씩, 조합이 자체로 만든 업체가 두 곳, 나머지 4개 업체도 조합이 지분 투자를 한 곳들입니다.
대형가전 재활용 업체는 전국에 40곳이 넘지만 이 9곳이 전체 물량의 90%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기훈 대표/○○산업]
"한마디로 뭣 같죠. 하여튼 열 개 가진 놈이 하나 가진 사람 거 뺏어 먹으려고 덤비는 거니까."
한 대형 폐가전처리업체의 인태민 사장도 보조금을 받기 위해 작년 5월 조합에 가입신청을 냈지만 탈락했습니다.
개인 수집상들로부터 폐가전을 사들여 재활용하는 업체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조합은 삼성전자와 LG전자 같은 가전회사, 하이마트, 전자랜드 같은 판매회사, 또는 지자체가 수거한 폐가전을 받아서 재활용해야만 보조금 지급대상이라고 못박았습니다.
처리실적을 부풀려 보조금을 더 많이 받아갈 우려가 있다는 이유입니다.
[한국전자제품자원순환공제조합 관계자]
"허위실적 조장과 같은 문제가 발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정상적인 유통경로를 통해서 폐제품이 수거되고 재활용이 되도록..."
하지만, 영세업체에겐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입니다.
[인태민 대표/도시알씨]
"그 기준을 충족시킬 수가 없어요. 저희가 가서 (삼성전자, LG전자와) 계약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죠. 환경부가 주관하고 있는 사업에 뭐 일개 중소기업체가 들어가 갖고 폐가전 제품 위탁 계약서를 쓰자고 얘기할 수가 없는 상황이죠."
문제는 또 있습니다.
환경부는 지난 2012년, 폐전자제품은 전자제품 제조·수입업자나 공제조합이 설치한 수집소로 운반하여 인계해야 한다고 법을 바꿨습니다.
삼성 LG 같은 가전회사 또는 공제조합만 수거해 처리할 수 있도록 제한한 겁니다.
이 때문에 2012년부터 각 지자체와 전자제품 판매사들은 수거한 폐가전을 모두 공제조합에만 넘기고 있습니다.
조합에 가입하지 못하면 보조금만 못 받는 게 아니라 아예 폐가전을 모으지도 못한다는 얘깁니다.
애초에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어 조합 가입을 막고, 이후엔 가입이 안돼 있다는 이유로 손발을 묶어 자신들을 고사시키고 있다는 게 소규모 업체들의 하소연입니다.
[문찬석 대표/도원산업]
"참말로 욕은 못하겠고 문 닫으란 식이죠. 쉽게 얘기해서 동네 구멍가게니까 구멍가게는 다 없어지고 대형 슈퍼마켓이나 대형마트식으로 하겠다. 그런 취지 같아요."
공제조합과 환경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손병용 사무관/환경부 자원재활용과]
"회원 가입에 어떤 기준은, 일정한 기준을 가진다는 것은 상식적이라고, 상식적인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소규모 재활용업체들은 최근 스스로 조합을 만들겠다며 환경부에 인허가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환경부는 이마저도 불허했습니다.
[이○○ 대표/○○산업]
"그냥 너네 다 죽으라는 얘기죠! 사실은. 주위에 도와준 분들, 그분들한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버티고 있는 거죠."
똑같은 재활용 일을 하면서도 누구는 법으로 금지당해 문을 닫고 누구는 법으로 보호받고 보조금까지 받는다면 공정하다고 볼 순 없습니다.
더구나 보호받는 쪽이 약자가 아닌 삼성, LG 같은 대기업이라면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들 중소재활용 업체들이 무너지면 결국 가정에서 나오는 폐가전들의 재활용에도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의 재활용 정책이 애초 방향에 맞게 가고 있는 건지 다시 챙겨봐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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