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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장인수 기자

20대 청년들 5명 잇달아 실명, 장애 '공포의 공장'

20대 청년들 5명 잇달아 실명, 장애 '공포의 공장'
입력 2016-04-04 11:38 | 수정 2016-04-04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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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한 20대 여성 근로자가 갑자기 눈이 안 보인다며 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이 근로자는 나중에야 자기가 일하는 공장에서 똑같은 일을 겪은 근로자가 또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다른 공장에서도 조선족 근로자와 중국인 근로자가 똑같이 실명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휴대폰 케이스 제조에 필요한 알루미늄 절단 작업을 했다는 것과 작업 과정에서 똑같은 액체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시력을 앗아간 공포의 액체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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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살 이 모 씨는 최근 시력을 잃었습니다.

    인천의 한 공장에서 일하던 그녀는 지난 2월 초 갑자기 눈이 안 보여 병원 응급실에 갔고 그 뒤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이○○/28살]
    "갑자기 앞이 안 보였어요. (일하고 있는 중간에?) 안 보이니까 병원 가야겠다 하고 응급실 갔어요."

    목숨까지 위태로워 중환자실로 옮겨진 그녀는 다행히 고비를 넘겼지만 끝내 시력은 잃었습니다.

    [이○○/28살]
    "(이게 몇 개인지 보여요?) 두 개인가? 하나인가? 한 개?"

    뇌까지 손상돼 말도 어눌해졌고 사고 능력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이○○/28살]
    "앞이 이제 완벽하게 안 보이니까.. 장애인 연금 받으면서 살아야 되나."

    서울에 사는 29살 김 모씨도 지난 1월 16일, 시력을 잃었습니다.

    [김○○/29살]
    "(보이세요?) 안 보여요. (안 보여요?) 네."

    역시 공장에서 일하다. 갑자기 눈이 안 보여 병원에 갔는데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깨어나 보니 앞이 안 보였다는 겁니다.

    [김○○/29살]
    "지금도 제일 힘든 게 '내가 쟤(딸) 얼굴을 언제까지 볼 수 있나' 이거밖에 생각이 안 나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1월 22일 김씨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29살 박 모씨도 실명했습니다.

    다시 나흘 뒤, 역시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20살 김 모씨에게 시야가 좁아지는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작년 12월엔 부천의 공장에서 일하던 25살 양 모씨가 실명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석 달간 20대 젊은이 5명이 잇달아 실명하거나 눈에 장애가 왔다는 마치 공포영화 같은 이야기.

    한 공장에서 3명의 피해자가 나왔고 다른 두 공장에서 각각 한 명의 피해자가 나왔습니다.

    공장은 달랐지만, 공교롭게 이들이 한 일은 같았습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경기도 부천의 한 공장.

    최신형 스마트폰의 부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곳입니다.

    여기서 만드는 부품은 스마트폰에 달려 있는 각종 버튼입니다.

    CNC라는 기계가 자동으로 알루미늄을 깎아 버튼을 만듭니다.

    [공장 관계자]
    "(이게 어디 들어가는 부품인가요?) 예 유심에 들어가는, 유심 집어넣는 심 트레이입니다."

    기계가 다 깎으면 알루미늄판을 꺼내고 새 알루미늄판을 기계에 집어넣습니다.

    앞서 본 20대의 젊은이들도 공장은 다르지만 이런 일을 했습니다.

    딱히 위험할 게 없어 보이는 작업.

    눈을 멀게 한 범인은, 알루미늄을 깎을 때 열을 식히기 위해 뿌리는 액체, 알코올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이 일한 공장에서는 알코올 중에서도 메탄올을 사용했습니다.

    메탄올은 사람이 마실 경우 시신경과 중추신경을 공격해 눈을 멀게 하고 심하면 목숨을 잃게 만듭니다.

    [김현주 교수/이화여대 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메탄올은) 유기화합물 중에서도 독특하게 시신경 독성이 있는 물질로 알려져 있어서 두 가지, 눈에 대한 독성과 중추신경계에 대한 독성이 있는 것으로.."

    의료진은 피해자들이 장기간 메탄올에 노출된 것이 실명의 원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고, 고용 부는 이 소견을 받아들여 산업재해를 인정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작업방식이었습니다.

    알루미늄 절삭 작업이 끝나면 묻어있는 가루를 날리기 위해 공기총으로 바람을 쏘는데, 이때 메탄올이 사람에게 튀었고, 증발한 메탄올 증기가 작업장에 가득 차게 된 겁니다.

    [김○○ 메탄올 중독 피해자/○○테크 근무]
    "그거를 조절을 못 하면 그냥 다 튀는 거예요. 저희는 솔직히 그렇게 무서운 건지도 몰랐던 거잖아요. 그래서 솔직히 장난도 많이 쳤거든요. 네 공기총으로 이렇게 사람 쏘고 막 이런 게 많았어요."

    겨울이라 공장 환기도 제대로 안 했습니다.

    [김○○/전○○테크 근로자]
    "창문을 활짝 열어놓진 않았어요. 바람이 많이 들어오면 춥잖아요. 그럼 알코올을 쓰면 분사량이 쫙 나오기 때문에 결국 퍼지게 돼 있어요."

    사고 직후 정부가 조사해 보니, 김씨가 일했던 공장의 공기 중 메탄올 농도는 1103~2,220ppm.

    허용 기준치보다 최대 11배나 높았습니다.

    이 메탄올 증기를 들이마시고 변을 당한 겁니다.

    이 때문에 메탄올을 사용할 때는 사람에게 흡입되지 않도록 밀폐 설비 또는 배기 장치를 갖추거나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그러나 사고가 난 사업장들은 이런 장비를 갖추지 않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직원들이 자신들이 쓰는 액체가 메탄올인지 자체를 몰랐다는 겁니다.

    [김○○ 메탄올 중독 피해자/○○테크 근무]
    "(다니시면서 메탄올이라는 얘기를 전혀 못 들으셨어요?) 네 전혀 못 들었어요."

    이 때문에 보호 장비를 나눠줘도 직원들은 착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메탄올 중독 피해자/○○테크 근무]
    "귀마개 주고 마스크 주고 안경 주고 주기는 다 나눠 줬는데 안 했어요. (메탄올이 그렇게 위험한 물질인 거를 전혀 몰랐던 거네요?) 네 몰랐어요."

    사업주는 위험 물질을 사용할 경우 반드시 직원들에게 알리고 안전 교육도 실시해야 하지만 이런 간단한 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박혜영 공인노무사/노동건강연대]
    "사람들은 자기가 썼던 게 메틸알코올인 줄 몰라요. 본인이 메틸알코올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어 썼는데 알코올 같은 건 썼는데 우리건 안전해' 이렇게 얘기해요."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스마트폰 부품의 상당수를 협력업체에서 납품받습니다.

    그런데 1차 협력업체는 일부 물량을 다시 하청을 주고, 2차 하청업체는 또다시 재하청을 줍니다.

    3차 하청을 받은 업체가 부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겁니다.

    피해자 5명이 일했던 업체 세 곳 모두 이런 3차 하청 업체였고, 그나마 직접 고용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을 고용한 곳은 인력 도급 업체로 도급업체가 가라고 지시한 공장에 가서 일해주고 월급은 도급업체를 통해 받았습니다.

    이른바 파견근로.

    영세한 3차 하청업체로 파견된 근로자들의 안전을 신경 쓴 사람은 없었습니다.

    [김○○ 메탄올 중독 피해자/○○테크 근무]
    "(그런 거(메탄올)는 조심해라. 이런 설명도 못 들었어요?) 그런 거 하나도 못 들었어요.(설명을) 들었으면 이렇게 안 됐겠죠."

    인력도급업체는 피해자들의 4대 보험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불법입니다.

    [이상윤 전문의/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사용 사업주도 그렇고 파견 사업주도 그렇고 노동자에 대한 관리 책임은 자기네들한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 노동자만 붕 떠서 인력시장에 그냥 완전히 떠돌아다니는 몸뚱이 팔러 다니는 사람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세 명의 피해자가 나온 업체를 찾아가봤습니다.

    [○○테크 직원]
    "(사장님 좀 만나 뵐 수 있을까 해서요?) 인터뷰 안 합니다. (그래도 말씀 좀 해 주시죠. 사람 두 명이 실명하셨는데) 할 말 없습니다."

    파견 업체는, 사고를 낸 공장이 책임질 일이라고 말합니다.

    [○○파견 업체 이사]
    "저는 정말 원망스러운 건 뭐냐면 실질적으로 컨트롤하고 관리하는 관리자 자체가 이런 부분을 위험성도 모르고 현장에서 지휘하고 감독을 했다는 부분은 사용 사업자가 잘못, 법적으로도 그렇게 나와.."

    4대 보험조차 가입돼있지 않다는 건 정부에 집계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고, 결국 이런 위험한 일을 하는 근로자가 전국에 몇 명이나 있는지도 알 수 없다는 얘깁니다.

    정부는 피해자가 속출하자 긴급 대책을 내놨습니다.

    메탄올을 사용하는 전국 3,100여 곳의 사업장을 전수 조사하고 근로자에 대한 건강검진을 실시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효과가 있었을까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지난 2월 3일 산업안전감독관이 인천의 한 CNC공장을 찾았습니다.

    사장은 문제가 된 메탄올을 에탄올로 모두 교체했다고 감독관에게 진술했습니다.

    [고동우 과장/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
    "구매대장 등을 확인하고 창고에 가서도 확인까지 했는데 (메탄올을) 찾아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며칠 뒤, 피해자 중 한 명인 이 씨가 인력파견업체 소개로 이 공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도 안 돼 이씨는 메탄올 중독으로 쓰러졌고 앞에서 본 것처럼 실명했습니다.

    공장주가 거짓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고동우 과장/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
    "에틸알코올을 사용한다고 거짓 진술을 하였고 의도적으로 메틸알코올을 옥상에 숨겨놓았었습니다."

    공장주들이 이렇게 메탄올에 집착하는 이유는, 값이 싸기 때문입니다.

    인체에 해롭지 않은 에탄올은 kg당 1,200원 정도 하지만 인체에 해로운 메탄올은 절반도 안되는 500원입니다.

    [이○○ 메탄올 중독 피해자/○○테크 근무]
    "(누구한테 제일 많이 화가 나요?) 그런(위험하다는) 걸 말해주지 않은 사람들도 그렇고.. 음.. 사장님이랑 거기 직원 분들?"

    이 공장뿐이 아닙니다.

    지난 2월 24일엔 최 모 씨가 일하는 CNC공장에도 공무원들이 현장 조사를 나왔습니다.

    하지만, 공장 측에선 이미 알고 대처를 했다고 합니다.

    [최○○/OOENG 근로자]
    "아침에 조회를 시작했을 때 '오늘 감사 나온다고 들었다 오늘 올 거다. 아마. 그런 것들 다 감춰야 한다.' 이런 식으로.. 오전 중에 다 감추거나 뺏어 가거나..용제를 다 치웠으니까 더 이상 뭔가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작업)하는 척만 했어요."

    조사가 끝나자 다시 메탄올과 유기용제를 꺼내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최○○/OOENG 근로자]
    "다시 메탄올 쓸 거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바로 옆에서 들었고..그 다음날부터 바로 메탄올 다시 썼고.."

    이 공장을 찾아갔습니다.

    메탄올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잡아뗍니다.

    [OOENG 직원]
    "이게 저희가 쓰는 절삭유고요. 메탄올 종류가 전혀 아니에요. (메탄올을 사용하지 않는다? 여기 사업장은?) 네. 애초에 저희는 메탄올 사용할 일이 없죠."

    하지만, 최씨가 제보해온 사진에는 메탄올 통이 찍혀 있습니다.

    적지 않은 공장들이 간단한 눈속임으로 정부의 단속만 피해가고 있는 겁니다.

    [최○○/ ○○ENG 근로자]
    "그런 식으로 (단속을) 해서 뭐 의미가 있을까요? 어차피 전혀 변한 게 없는데.."

    [이○○ 메탄올 중독 피해자/○○테크 근무]
    "정부도 똑같은 거 같아요. (앞으론) 관리 잘하고 메탄올 안 쓰게 잘 지켜보고.."

    정부는 이같은 업체들을 영원히 퇴출시키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고동우 과장/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
    "의도적으로 감독관에게 허위 진술을 하고 감독관의 점검을 회피했기 때문에 상당히 죄질이 불량하다고 보고 이러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최대한의 조치를 취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건 아닙니다.

    정부가 관리해야 하는 산재보험 가입 사업장은 전국에 237만 개.

    하지만, 산업안전감독관은 305명에 불과합니다.

    업체를 한 번씩만 돌아봐도 60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처럼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근로자들의 건강은 악화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실시한 임시 건강검진 결과를 보면, 메탄올을 취급한 한 공장 전체 직원 30명 중 28명의 소변에서 노출 기준치의 세 배가 넘는 메탄올이 검출됐고, 이 안에서 시야가 좁아지는 증상을 보인 환자가 확인됐습니다.

    [박혜영 공인노무사/노동건강연대]
    "파견 노동이라는 사각지대에 있었던 노동자들이고 거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오만 가지 이상의 화학물질에 어떤 식으로든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데 이런 근본적인 문제는 어떻게 할 거냐."

    정부는 피해자 5명 중 상태가 심각한 4명에 대해 산업재해 보험을 사후 승인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력이 돌아올지, 뇌손상 때문에 망가진 신체 기능이 회복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 메탄올 피해자 아버지]
    "울지 마라. 다 큰아기가 돼가나.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응) 왜 자꾸 슬프나? 왜 자꾸 안 보여서? 눈이 안 보여서? 아빠도 안 보이나? (응)"

    우리나라에서 산업현장에서의 메탄올중독사고가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1960년대 이후론 보고된 적이 없을 정도로 후진적인 산업재해가 어이없게도 2016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겁니다.

    [이상윤 전문의/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굉장히 관리하기 어렵지 않은 물질을 그런 식으로 관리해서 사고가 났다는 것들이 사실 국제적 망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용당국은 이번 메탄올 중독사고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벌이는 건 물론, 유해물질을 사용하는 업체 전반에 대한 신속한 실태조사를 벌일 필요가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한 상황에서 실명피해자들이 잇따라 발견된 만큼 또 어느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유해물질 중독의 위험에 놓여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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