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최 훈 기자
연금보험의 배신
연금보험의 배신
입력
2016-04-11 11:06
|
수정 2016-04-11 14:28
재생목록
오모씨는 두 달 전 연금보험을 첫 수령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20년 전 가입 당시 연 1,440만 원은 받을 수 있다던 연금액이 연 541만 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알고 보니 보험사가 내세운 7.5% 확정금리는 기본금에만 적용됐습니다.
십여 년 전부터 큰 인기를 끌어온 변액연금은 몇 년이 지나도 원금회복이 안 된다는 불만이 쌓여가고 있는데요.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연금보험. 과연 우리의 노후를 지켜줄 수 있을까요?
-----------------------------------------------------------------
서울의 한 주택가.
20년째 동네 문구점을 하고 있는 오만호 씨는 요즘 경기가 나빠져 한 달에 1백만 원 벌기도 버겁습니다.
그래도 20년 전 가입한 연금보험이 있어 노후 걱정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매달 24만 원씩 15년을 납입하면 60살 때부터 해마다 천4백~천6백만 원씩 받고, 60세와 77세, 88세에는 여행자금과 장수축하금도 나옵니다.
[오만호]
"진짜 떵떵거렸어요. 친구들 와도 니네들 (국민)연금 타지? 난 (국민)연금 안 타도 나도 종신연금 들었어. 난 한 달에 150만 원 타 평균·걱정 없어. 이랬어요."
그런데 60살이 된 두 달 전 첫 연금을 받아보니 암담했습니다.
당시 가입 설계서엔 첫해 1년 동안 1,940만 원이 나온다고 적혀있는데, 실제 연금은 1천만 원가량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내년부턴 1년에 5백여만 원만 나옵니다.
한 달에 40여만 원꼴, 생각했던 금액의 1/3 수준으로 깎인 겁니다.
가족끼리 가려던 일본 여행도 취소했고, 노후 계획도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오만호]
"너무 해요 이건 진짜 너무한 거예요. 이건 진짜 사기 치는 거예요. 사기. 이 소비자한테 사기 치는 거야. 도둑놈 칼만 안 들었지 죽으라는 거야."
20년 동안 간직했던 가입설계서엔 금리가 떨어져도 연 7.5%를 보장해준다고 적혀 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보험사에 항의했더니 보험사 직원이 과일 들고 찾아와서는 판결문 하나를 건네 주고 가버렸습니다.
[오만호]
"다른 사람이 (소송) 해서 졌는데 해 봐라. 이 얘기죠. 쉽게 얘기해서 (그러니까 소송해봐야 소용없다?) 해봐야 소용없단 얘기죠. 그런 얘기예요."
노후를 준비해라.
인생의 황금기를 풍요롭게 설계하라며 보험사들은 연금 가입을 권유합니다.
그런데 이 연금 상품에 가입했다 손해를 봤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개인연금은 국민연금과 함께 노후를 위해 필요하지만, 무턱대고 가입했다간 노후를 완전히 망칠 수도 있습니다.
지난달부터 연금을 받기 시작한 58살 오점자씨도 19년 전 가입 당시 안내받았던 것보다 실제 수령액이 크게 줄었습니다.
연 8백만 원 예상액이 올해는 6백여만 원.
그나마 내년부터는 4백여만 원에 불과합니다.
80살까지 2억 4천만 원 나온다던 연금 총액은 실제론 1억 원 넘게 줄어듭니다.
[오점자]
"(1년에) 265만 원 나온다고 하면 그거 얼마나 되겠어요. 한 달에 10몇 만 원밖에 안 나오는데. 그런데 여기 준다는 대로 줘야 될 거 아니에요."
현재 연금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1990년대 가입했고, 연 7.5% 확정금리를 보장받는 조건이었습니다.
김혁분 씨도 이 말을 믿고 연금보험 상품 5개에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연금을 받고 보니 애초 설명과 너무 달랐습니다.
88살에 5천2백만 원 나온다던 연금은 실제론 4천 원만이 깎일 예정입니다.
[김혁분]
"우리는 진짜 제가 이거 들면서 동아줄이다. 우리 노후에 살아갈 수 있는데. 그런데 썩은 새끼줄만도 못 하게 됐다는 얘기죠."
그렇다면, 보험사들은 왜 연 7.5% 최저 보장 이율을 지키지 않는 걸까?
설계서를 보면 연금은 기본연금과 배당연금으로 나뉩니다.
기본연금은 지급액이 확정된 연금이고, 배당연금은 보험사가 수익에 따라 배당하는 연금을 말합니다.
그런데 최저보장이율 7.5%가 적용되는 건 기본연금뿐입니다.
이 때문에 900만 원 준다던 배당연금이 실제 41만 원만 지급된 겁니다.
[조연행 대표/금융소비자연맹]
"보험사에서 지금 연금액에 얹어서 확정배당연금 또는 증액연금, 가산연금이라고 가입 설계서에 이렇게 그림을 그려서 판매를 했는데 이것이 정확히 들어맞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거의 다 제로로 물거품이 돼버렸습니다."
보험사에 따지면 직원이 찾아와 미안하다며 사은품만 주고 갈 뿐이었습니다.
보험사들은 작은 글씨이긴 하지만 가입설계서에 배당연금은 변동될 수 있다고 써 놨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보험사도 저금리로 손해가 커져 배당연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승철 차장/OO생명]
"기대보다 낮은 수익률은 회사도 마찬가지로 기대했던 당초의 금리보다 낮아졌기 때문에 많은 적자를 떠안고 같이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배당할 여력이 없다는 건가요?) 네 현재로는..."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도 법적으로 방법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김금태 팀장/금융감독원 금융저축감독팀]
"가입설계서 상에 조그만 글씨로 보이지 않는 그런 걸로 (소송)할 경우에는 법원 등에서 그걸 그 소비자 편보다는 보험회사 편을 들어주고 있는 게 지금 사실입니다."
목돈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가 어이없는 푼돈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1961년 은행에 다니던 김 모 씨는 당시 16살이던 딸의 이름으로 연금에 가입했습니다.
1만 7,600환을 일시에 납입하고, 50년 뒤인 2012년에 딸이 연금으로 12만 환을 받는 상품.
[윤소정/가입자 김씨 손녀]
"할아버지가 은행에 다니셨어요. 일본 가서 유학도 하셨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아무도 안 넣는 시기에 넣으신 거죠. 이걸 믿고."
그런데 50년이 흘러 2012년이 됐는데도 보험사는 연금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따졌더니 처음엔 50년 전 계약문서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가 몇 달 뒤 터무니없는 연금액을 제시했습니다.
화폐 개혁 이전인 1961년 보험증서에 약정된 연금 12만 환을 단위만 고쳐서 1만 2천 원을 분기마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한 달로 치면 4천 원꼴, 가입자 가족들은 어이가 없다며 4년째 연금 수령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윤소정/가입자 김씨 손녀]
"지금 과자 한 봉지를 사도 1천 원은 될 텐데. 용돈도 안 되는 거죠. 연금이라는 의미는 아예 찾을 수가 없고, 보험회사에 이용당하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
당시 약정한 연금 12만 환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한국은행 홈페이지에서 금 시세를 기준으로 환산했더니, 현재 가치로 250만 원이라고 나옵니다.
가입자는 이 정도 금액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보험사 측은 국민연금과 달리 민간 보험은 물가상승률이나 화폐가치가 전혀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생명보험협회 답변]
"예컨대 50년 후에 매달 100만 원씩 준다고 약정했는데 50년이 지나고 보니 100만 원이 식사 한 끼에 해당하는 금액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금리에 따라 변동되는 연금들도 불만이 많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박 모 씨는 2012년과 2014년에 즉시 연금 상품에 각각 가입했습니다.
5천만 원씩 일시에 납입했고, 이자 생활비처럼 매달 연금이 지급되는 상품입니다.
똑같은 보험사에 똑같은 상품이지만, 작년 11월부터 유독 한 개 상품 연금만 12만 7천 원에서 9만 5천 원으로 매달 3만 원 넘게 깎였습니다.
[박 OO]
"공시이율이라는 거는 법으로 정해진 거거든요. 이걸 해놓고 자기들 마음대로 많이 주고 싶음 많이 주고 적게 주고 싶음 적게 주는 이렇게 믿지 못할 회사하고 어떻게 거래를 하겠습니까."
해당 보험사는 취재진에게 2013년에 공시 이율 적용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에 2개 상품에 차이가 생겼다고 해명했습니다.
[김도권 OO생명]
"13년 3월 이전에 팔았던 상품들은 공시 이율이 떨어짐에 따라가서 금리를 많은 폭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고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먼저 가입한 게 더 불리한 거네요?) 그렇게 보시면 안 되고요. 뒤에 가입한 상품 고객분들이 오히려 유리하게 적용된 부분이 있습니다."
요즘 가장 불만이 쏟아지는 상품은 변액연금입니다.
서울 동대문에서 옷장사를 하는 김 모 씨 부부는 버는 돈 대부분을 여러 개의 변액 연금과 연금 보험상품에 쏟아부었습니다.
처음엔 5개로 시작해 21개까지 늘었고, 매달 보험료가 많게는 천만 원, 평균적으로 6백만 원씩 들어갔습니다.
5년 동안 모두 3억 6천만 원을 납입하면 5년 뒤 5억 원을 받을 수 있다고 꼬드긴 설계사를 철석같이 믿은 겁니다.
[담당 설계사 녹취]
"이 변액이 나온 지가 꽤 됐어요. 상품이 그런데 거의 확정적으로 5년 이상 수익이 안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하지만, 설계사의 장담과 달리 돈을 넣으면 넣을수록 손실액이 커졌고, 납입총액이 2억 5천만 원에 이르렀을 때 손실액은 8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김 OO]
"너무 억울하고 너무 화가 나죠. 일단은 힘들게 번 돈을 이런 식으로 이제 굉장히 화가 나고요. 돈보다는 사람이 미워지고 이런 걸 판매하는 회사 자체도 밉고..."
김 씨 부부는 보험사와 설계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지만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
재판부는 상품 가입 당시 콜센터 직원과 전화통화에서 김 씨 부부가 상품 설명을 잘 들었다고 답한 녹취를 근거로 보험사 손을 들어줬습니다.
[김 OO]
"상품 설명에 잘못된 점에 대해서 나중에 설계사가 인정한 녹취록이나 동영상까지도 확보하고 있는 상태에서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건 거예요. '네 '네' 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린다고 하면 좀 불합리하지 않나."
변액연금이 수익은커녕 손실만 커지는 이유는 뭘까.
변액연금 상품은 사업비가 평균 11%에 달합니다.
가입자가 1백만 원을 납입하면 보험사가 11만 원을 회사 운영비 등으로 먼저 떼어가고, 나머지 89만 원만 적립됩니다.
이 89만 원을 펀드에 투자해 12% 이상 수익을 내야 겨우 원금이 회복되는 겁니다.
하지만, 요즘같이 경제 환경이 나쁘고, 저금리 시대가 계속되면 꾸준히 수익을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승철 차장/OO생명]
"고객께서 생각하실 때는 내가 낸 보험료 전체가 펀드에 투자되는 줄 알고 계시겠지만 일부는 사업비로 빠져나간다는 점을 인지를 하셔야 될 것 같고 (기대수익률을 좀 낮춰야 한다는?) 네네."
실제 작년 한 해 모든 변액연금 상품은 평균 10%의 손해를 봤습니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사업비를 뺀 적립금만으로 수익률을 계산하기 때문에 적립금 89만 원이 98만 원이 되면 10% 고수익이라고 발표합니다.
소비자들은 이익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원금조차 까먹은 겁니다.
[조연행 대표/금융소비자연맹]
"보험사들이 발표하는 수익률은 펀드에 투입된 금액 대비 수익률을 발표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보험료를 낸 돈 대비 수익률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걸 감안하게 되면 최근 3년간 모든 변액 연금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조사됐습니다."
변액연금의 이런 특성을 잘 모를 경우엔 차라리 안정적인 금융상품에 가입하라고 전문가들은 충고합니다.
[신기철 교수/숭실대학교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본인이 금융지식에 자신이 없고 또 앞으로 적립할 기간이 짧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변액연금이나 실적배당형 연금보다는 차라리 은행이나 또는 자산운용회사에서는 국공채형이라든지."
이처럼 금융지식이 부족한 소비자들만 손해의 책임을 지게 되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지만 보험사들은 여전히 판매에만 열을 올리고 있고 금융 당국 역시 소비자들이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는 식의 대책만 반복적으로 내놓고 있을 뿐입니다.
[조남경 팀장/금융감독원 보험감리실]
"(고객들한테만 모든 책임을 져라. 조심해라 라고 말하는 건 금감원 입장에서는 너무 무책임하신 거 아닌가요?) 그래서 이번에 금융개혁 20대 과제 한 꼭지로 선정이 돼있습니다. 변액보험 관련 불합리함 개선해서 올해 중으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서 추진토록 할 예정입니다."
2014년 우리 국민이 납입한 연금보험료는 36조 원에 이를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연금보험은 대표적인 노후대비 수단입니다.
하지만, 이를 고수익 재테크 상품으로 포장해 소비자를 현혹하고 이마저도 푼돈으로 돌아온다면 100세 시대를 맞는 우리의 노후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20년 전 가입 당시 연 1,440만 원은 받을 수 있다던 연금액이 연 541만 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알고 보니 보험사가 내세운 7.5% 확정금리는 기본금에만 적용됐습니다.
십여 년 전부터 큰 인기를 끌어온 변액연금은 몇 년이 지나도 원금회복이 안 된다는 불만이 쌓여가고 있는데요.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연금보험. 과연 우리의 노후를 지켜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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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주택가.
20년째 동네 문구점을 하고 있는 오만호 씨는 요즘 경기가 나빠져 한 달에 1백만 원 벌기도 버겁습니다.
그래도 20년 전 가입한 연금보험이 있어 노후 걱정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매달 24만 원씩 15년을 납입하면 60살 때부터 해마다 천4백~천6백만 원씩 받고, 60세와 77세, 88세에는 여행자금과 장수축하금도 나옵니다.
[오만호]
"진짜 떵떵거렸어요. 친구들 와도 니네들 (국민)연금 타지? 난 (국민)연금 안 타도 나도 종신연금 들었어. 난 한 달에 150만 원 타 평균·걱정 없어. 이랬어요."
그런데 60살이 된 두 달 전 첫 연금을 받아보니 암담했습니다.
당시 가입 설계서엔 첫해 1년 동안 1,940만 원이 나온다고 적혀있는데, 실제 연금은 1천만 원가량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내년부턴 1년에 5백여만 원만 나옵니다.
한 달에 40여만 원꼴, 생각했던 금액의 1/3 수준으로 깎인 겁니다.
가족끼리 가려던 일본 여행도 취소했고, 노후 계획도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오만호]
"너무 해요 이건 진짜 너무한 거예요. 이건 진짜 사기 치는 거예요. 사기. 이 소비자한테 사기 치는 거야. 도둑놈 칼만 안 들었지 죽으라는 거야."
20년 동안 간직했던 가입설계서엔 금리가 떨어져도 연 7.5%를 보장해준다고 적혀 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보험사에 항의했더니 보험사 직원이 과일 들고 찾아와서는 판결문 하나를 건네 주고 가버렸습니다.
[오만호]
"다른 사람이 (소송) 해서 졌는데 해 봐라. 이 얘기죠. 쉽게 얘기해서 (그러니까 소송해봐야 소용없다?) 해봐야 소용없단 얘기죠. 그런 얘기예요."
노후를 준비해라.
인생의 황금기를 풍요롭게 설계하라며 보험사들은 연금 가입을 권유합니다.
그런데 이 연금 상품에 가입했다 손해를 봤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개인연금은 국민연금과 함께 노후를 위해 필요하지만, 무턱대고 가입했다간 노후를 완전히 망칠 수도 있습니다.
지난달부터 연금을 받기 시작한 58살 오점자씨도 19년 전 가입 당시 안내받았던 것보다 실제 수령액이 크게 줄었습니다.
연 8백만 원 예상액이 올해는 6백여만 원.
그나마 내년부터는 4백여만 원에 불과합니다.
80살까지 2억 4천만 원 나온다던 연금 총액은 실제론 1억 원 넘게 줄어듭니다.
[오점자]
"(1년에) 265만 원 나온다고 하면 그거 얼마나 되겠어요. 한 달에 10몇 만 원밖에 안 나오는데. 그런데 여기 준다는 대로 줘야 될 거 아니에요."
현재 연금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1990년대 가입했고, 연 7.5% 확정금리를 보장받는 조건이었습니다.
김혁분 씨도 이 말을 믿고 연금보험 상품 5개에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연금을 받고 보니 애초 설명과 너무 달랐습니다.
88살에 5천2백만 원 나온다던 연금은 실제론 4천 원만이 깎일 예정입니다.
[김혁분]
"우리는 진짜 제가 이거 들면서 동아줄이다. 우리 노후에 살아갈 수 있는데. 그런데 썩은 새끼줄만도 못 하게 됐다는 얘기죠."
그렇다면, 보험사들은 왜 연 7.5% 최저 보장 이율을 지키지 않는 걸까?
설계서를 보면 연금은 기본연금과 배당연금으로 나뉩니다.
기본연금은 지급액이 확정된 연금이고, 배당연금은 보험사가 수익에 따라 배당하는 연금을 말합니다.
그런데 최저보장이율 7.5%가 적용되는 건 기본연금뿐입니다.
이 때문에 900만 원 준다던 배당연금이 실제 41만 원만 지급된 겁니다.
[조연행 대표/금융소비자연맹]
"보험사에서 지금 연금액에 얹어서 확정배당연금 또는 증액연금, 가산연금이라고 가입 설계서에 이렇게 그림을 그려서 판매를 했는데 이것이 정확히 들어맞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거의 다 제로로 물거품이 돼버렸습니다."
보험사에 따지면 직원이 찾아와 미안하다며 사은품만 주고 갈 뿐이었습니다.
보험사들은 작은 글씨이긴 하지만 가입설계서에 배당연금은 변동될 수 있다고 써 놨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보험사도 저금리로 손해가 커져 배당연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승철 차장/OO생명]
"기대보다 낮은 수익률은 회사도 마찬가지로 기대했던 당초의 금리보다 낮아졌기 때문에 많은 적자를 떠안고 같이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배당할 여력이 없다는 건가요?) 네 현재로는..."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도 법적으로 방법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김금태 팀장/금융감독원 금융저축감독팀]
"가입설계서 상에 조그만 글씨로 보이지 않는 그런 걸로 (소송)할 경우에는 법원 등에서 그걸 그 소비자 편보다는 보험회사 편을 들어주고 있는 게 지금 사실입니다."
목돈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가 어이없는 푼돈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1961년 은행에 다니던 김 모 씨는 당시 16살이던 딸의 이름으로 연금에 가입했습니다.
1만 7,600환을 일시에 납입하고, 50년 뒤인 2012년에 딸이 연금으로 12만 환을 받는 상품.
[윤소정/가입자 김씨 손녀]
"할아버지가 은행에 다니셨어요. 일본 가서 유학도 하셨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아무도 안 넣는 시기에 넣으신 거죠. 이걸 믿고."
그런데 50년이 흘러 2012년이 됐는데도 보험사는 연금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따졌더니 처음엔 50년 전 계약문서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가 몇 달 뒤 터무니없는 연금액을 제시했습니다.
화폐 개혁 이전인 1961년 보험증서에 약정된 연금 12만 환을 단위만 고쳐서 1만 2천 원을 분기마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한 달로 치면 4천 원꼴, 가입자 가족들은 어이가 없다며 4년째 연금 수령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윤소정/가입자 김씨 손녀]
"지금 과자 한 봉지를 사도 1천 원은 될 텐데. 용돈도 안 되는 거죠. 연금이라는 의미는 아예 찾을 수가 없고, 보험회사에 이용당하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
당시 약정한 연금 12만 환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한국은행 홈페이지에서 금 시세를 기준으로 환산했더니, 현재 가치로 250만 원이라고 나옵니다.
가입자는 이 정도 금액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보험사 측은 국민연금과 달리 민간 보험은 물가상승률이나 화폐가치가 전혀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생명보험협회 답변]
"예컨대 50년 후에 매달 100만 원씩 준다고 약정했는데 50년이 지나고 보니 100만 원이 식사 한 끼에 해당하는 금액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금리에 따라 변동되는 연금들도 불만이 많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박 모 씨는 2012년과 2014년에 즉시 연금 상품에 각각 가입했습니다.
5천만 원씩 일시에 납입했고, 이자 생활비처럼 매달 연금이 지급되는 상품입니다.
똑같은 보험사에 똑같은 상품이지만, 작년 11월부터 유독 한 개 상품 연금만 12만 7천 원에서 9만 5천 원으로 매달 3만 원 넘게 깎였습니다.
[박 OO]
"공시이율이라는 거는 법으로 정해진 거거든요. 이걸 해놓고 자기들 마음대로 많이 주고 싶음 많이 주고 적게 주고 싶음 적게 주는 이렇게 믿지 못할 회사하고 어떻게 거래를 하겠습니까."
해당 보험사는 취재진에게 2013년에 공시 이율 적용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에 2개 상품에 차이가 생겼다고 해명했습니다.
[김도권 OO생명]
"13년 3월 이전에 팔았던 상품들은 공시 이율이 떨어짐에 따라가서 금리를 많은 폭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고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먼저 가입한 게 더 불리한 거네요?) 그렇게 보시면 안 되고요. 뒤에 가입한 상품 고객분들이 오히려 유리하게 적용된 부분이 있습니다."
요즘 가장 불만이 쏟아지는 상품은 변액연금입니다.
서울 동대문에서 옷장사를 하는 김 모 씨 부부는 버는 돈 대부분을 여러 개의 변액 연금과 연금 보험상품에 쏟아부었습니다.
처음엔 5개로 시작해 21개까지 늘었고, 매달 보험료가 많게는 천만 원, 평균적으로 6백만 원씩 들어갔습니다.
5년 동안 모두 3억 6천만 원을 납입하면 5년 뒤 5억 원을 받을 수 있다고 꼬드긴 설계사를 철석같이 믿은 겁니다.
[담당 설계사 녹취]
"이 변액이 나온 지가 꽤 됐어요. 상품이 그런데 거의 확정적으로 5년 이상 수익이 안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하지만, 설계사의 장담과 달리 돈을 넣으면 넣을수록 손실액이 커졌고, 납입총액이 2억 5천만 원에 이르렀을 때 손실액은 8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김 OO]
"너무 억울하고 너무 화가 나죠. 일단은 힘들게 번 돈을 이런 식으로 이제 굉장히 화가 나고요. 돈보다는 사람이 미워지고 이런 걸 판매하는 회사 자체도 밉고..."
김 씨 부부는 보험사와 설계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지만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
재판부는 상품 가입 당시 콜센터 직원과 전화통화에서 김 씨 부부가 상품 설명을 잘 들었다고 답한 녹취를 근거로 보험사 손을 들어줬습니다.
[김 OO]
"상품 설명에 잘못된 점에 대해서 나중에 설계사가 인정한 녹취록이나 동영상까지도 확보하고 있는 상태에서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건 거예요. '네 '네' 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린다고 하면 좀 불합리하지 않나."
변액연금이 수익은커녕 손실만 커지는 이유는 뭘까.
변액연금 상품은 사업비가 평균 11%에 달합니다.
가입자가 1백만 원을 납입하면 보험사가 11만 원을 회사 운영비 등으로 먼저 떼어가고, 나머지 89만 원만 적립됩니다.
이 89만 원을 펀드에 투자해 12% 이상 수익을 내야 겨우 원금이 회복되는 겁니다.
하지만, 요즘같이 경제 환경이 나쁘고, 저금리 시대가 계속되면 꾸준히 수익을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승철 차장/OO생명]
"고객께서 생각하실 때는 내가 낸 보험료 전체가 펀드에 투자되는 줄 알고 계시겠지만 일부는 사업비로 빠져나간다는 점을 인지를 하셔야 될 것 같고 (기대수익률을 좀 낮춰야 한다는?) 네네."
실제 작년 한 해 모든 변액연금 상품은 평균 10%의 손해를 봤습니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사업비를 뺀 적립금만으로 수익률을 계산하기 때문에 적립금 89만 원이 98만 원이 되면 10% 고수익이라고 발표합니다.
소비자들은 이익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원금조차 까먹은 겁니다.
[조연행 대표/금융소비자연맹]
"보험사들이 발표하는 수익률은 펀드에 투입된 금액 대비 수익률을 발표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보험료를 낸 돈 대비 수익률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걸 감안하게 되면 최근 3년간 모든 변액 연금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조사됐습니다."
변액연금의 이런 특성을 잘 모를 경우엔 차라리 안정적인 금융상품에 가입하라고 전문가들은 충고합니다.
[신기철 교수/숭실대학교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본인이 금융지식에 자신이 없고 또 앞으로 적립할 기간이 짧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변액연금이나 실적배당형 연금보다는 차라리 은행이나 또는 자산운용회사에서는 국공채형이라든지."
이처럼 금융지식이 부족한 소비자들만 손해의 책임을 지게 되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지만 보험사들은 여전히 판매에만 열을 올리고 있고 금융 당국 역시 소비자들이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는 식의 대책만 반복적으로 내놓고 있을 뿐입니다.
[조남경 팀장/금융감독원 보험감리실]
"(고객들한테만 모든 책임을 져라. 조심해라 라고 말하는 건 금감원 입장에서는 너무 무책임하신 거 아닌가요?) 그래서 이번에 금융개혁 20대 과제 한 꼭지로 선정이 돼있습니다. 변액보험 관련 불합리함 개선해서 올해 중으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서 추진토록 할 예정입니다."
2014년 우리 국민이 납입한 연금보험료는 36조 원에 이를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연금보험은 대표적인 노후대비 수단입니다.
하지만, 이를 고수익 재테크 상품으로 포장해 소비자를 현혹하고 이마저도 푼돈으로 돌아온다면 100세 시대를 맞는 우리의 노후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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