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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최 훈 기자

섬마을의 비극, 그 후...

섬마을의 비극, 그 후...
입력 2016-06-20 10:31 | 수정 2016-06-2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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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섬마을에서 발생한 학부모들의 여교사 성폭행 사건.

    일부 주민들이 피의자들을 감싸는 듯한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섬 전체가 지탄 받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섬을 찾는 관광객들은 절반으로 줄고, 섬 주민들은 묻지마 항의 전화에 시달리며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한편, 교육당국은 섬마을에 여교사를 발령하지 않겠다는 비현실적인 대책을 내놓는가 하면, 사망사건이 아니라며 상부기관에 보고하지 않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처사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끔찍한 사건, 그리고 이상한 대책입니다.

    섬마을의 비극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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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쾌속선을 타고 도착한 전남의 한 섬마을.

    배에서 내리자 누군가 휴대폰으로 2580 취재팀을 촬영합니다.

    취재팀이 움직이는 대로 휴대폰 방향이 바뀝니다.

    방송사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택시도 잘 태워주지 않고,

    [마을 주민]
    "지금 여기 지역 정서가. 이곳 분위기가 좀 그렇습니다."

    주민들은 말을 걸어도 못 들은 척하기 일쑤입니다.

    [마을 주민]
    "(선생님 안녕하세요. MBC에서 왔는데요. 요즘에 관광객들 많이 오나 여쭤 보려고요.) 됐어요."

    이 섬은 지난달 학부모와 주민들이 여교사를 성폭행한 바로 그곳.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 언론에 대한 경계심이 커진 겁니다.

    섬주민들은 사건을 언급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평화롭던 섬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은 범죄자들에게 화가 나 있습니다.

    [최인태 마을 주민]
    "그런 일을 했다는 건 아무리 미개인이라고 셈치더라도 나이 먹은 사람이 그건 상식 아니여."

    [마을 주민]
    "진짜 개만도 못한. 개도 그런 짓은 안 하거든요. 진짜 솔직히 말해서 그건 진짜 나쁘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이 끔찍한 범죄에 놀랐고, 또 분노했습니다.

    이 섬마을 주민들은 모두가 죄인인 양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합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이 한 달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지난달 21일 저녁 6시쯤.

    한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던 여교사에게 식당 주인 박 모 씨가 직접 담근 술을 권합니다.

    주민 이 모 씨도 이 자리에 합류해 술을 권했고, 여교사는 결국 정신을 잃었습니다.

    박 씨는 여교사를 데려다 주겠다며 술에 취해 차를 몰고 학교 관사로 향했습니다.

    주민 이 모 씨와 학부모 김 모 씨도 곧이어 뒤따라 왔고, 이 3명은 잇따라 여교사를 성폭행했습니다.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과]
    "한 장소에서 세 사람이 모두 성폭행에 가담했으면 특수강간이 성립될만한 사건인데, 이 세 사람이 서로 전화를 해가면서 순차적으로 하나씩 들어가서 성폭행을 했다는 점."

    여교사는 정신을 차린 뒤 경찰에 신고했고, 곧바로 증거를 수집하고 DNA를 채취해 피의자 3명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김 OO/피의자]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정말 죄송합니다.)"

    파장은 컸습니다.

    [김동석 대변인/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
    "여교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또 심신의 큰 충격을 받아서 지금 병가 중에 계십니다. 과연 병가 이후에도 제대로 된 학교생활 할 수 있을까."

    존경의 대상이었던 교사가, 학부모들에게 성폭행당하는 현실에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재희]
    "자기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님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식으로 몰상식한 행동을 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강승원]
    "여자로서는 다니기에 많이 불안하고 특히 부모님들이 많이 걱정하시더라고요. 치안이 좋지만 성폭행 면에서는 아직 많이 부족한 나라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번 사건을 대하는 공적 기관들의 대응은 어땠을까.

    먼저 검찰.

    사건 발생 5일 만에 경찰은 체포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이를 기각했습니다.

    처음부터 이 사건을 심각하게 보지 않은 겁니다.

    그러다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자 뒤늦게 2주 만에 피의자들을 구속했습니다.

    2주 동안 피의자들에겐 서로 말을 맞출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고, 실제로 피의자들은 줄곧 사건을 공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배상훈 교수/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성범죄를 너무 많이 다뤄봤기 때문에 검사들이나 판사들이 되게 웃기게 생각해요. 발바리 사건들, 연쇄 강간 사건들 처리하는 거 보면 별 심각성을 느끼지 않아요. 그런데 문제는 그 성범죄 당한 여자들 자살하고 인생 파멸돼서 정신병원 가고 많거든요."

    교육당국의 대응도 비슷했습니다.

    전남도교육청은 사건 발생 2주 뒤에야 교육부에 늑장보고 했습니다.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선태무 부교육감/전라남도 교육청(6월8일 간담회)]
    "교육 중에 선생님이 사망했다든가 그런 상황도 아니고, 어떤 차원에서 보면 개인적인 측면도. 일과 후에 있었거든요."

    검찰과 교육당국의 인식이 이렇다 보니 사건 이후 나온 대책들도 본질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멉니다.

    교육부는 여교사를 오지에 발령 내지 않겠다고 발표했다가 슬그머니 계획을 접었습니다.

    여교사 비율이 70%에 이르는 현실을 무시한데다 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인 여성으로 돌리는 안이한 대책이라는 집중 비난을 받았습니다.

    [김지선]
    "정부가 낸 대책은 남자 교사를 둔다는 건데 그게 잘못된 게 아니잖아요. 여자가 가는 게 잘못된 게 아닌데 자꾸 여자가 잘못된 것처럼 그렇게 하는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후에 나온 대책은 도서 벽지 관사에 CCTV와 방범창을 설치하겠다는 것.

    [김동원/교육부 학교정책실장]
    "여성 교원이 단독으로 거주하는 관사에 대해서는 대책 수립 전에 우선적으로 CCTV를 설치하는 등 안전 대책을 강구하겠습니다."

    실제 도서벽지에 있는 관사들의 치안상태는 어떨까.

    충남의 이 섬마을 초등학교엔 전교생이 2명, 교사는 여교사 단 한 명뿐입니다.

    CCTV도 없고, 방범창도 없는 관사에서 여교사 홀로 지냅니다.

    다른 섬 지역 관사들도 비슷합니다.

    [홍복희 교사/충남 OO초등학교]
    "거의 혼자서는 나가지도 못해요. 특히 낮에도 사실 잘 안 다니고 있어요. 불안하더라고요."

    이런 사정은 섬뿐만이 아닙니다.

    전남의 한 농촌지역 관사는 출입문이 유리라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깰 수 있고, 자물쇠도 없습니다.

    강원도의 관사들도 마찬가지.

    지은 지 40년이 넘은 이 건물은 유리문에 잠금장치도 없고, 관사 주변에는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서 밤이 되면 암흑천지로 변합니다.

    [오동숙 춘천OO학교 행정실장]
    "기존에 설치된 구조물 자체에서 보완하기엔 한계가 있고…."

    교사들은 여러 차례 시설 보완을 요청했지만, 예산이 부족하다는 답변뿐 누구도 교사들의 안전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김동원 실장/교육부 학교정책실장]
    "그동안 안전 관리에 소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실 CCTV와 방범창 등 방범시설은 꼭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성범죄를 막을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이번 사건이 벌어진 학교 관사엔 방범창도 있고, 잠금장치도 다른 관사들보다 훨씬 잘 돼 있었습니다.

    보다 실효성 있는 방안은 관사를 외진 곳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있는 마을 안에 두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배상훈 교수/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방범창 몇 개 넣고 CCTV 몇 개 넣는다고 해서 성범죄자가 침입을 못한다? 그런 넌센스가 없단 얘기예요. 하려고 하면 충분히 하죠. 중요한 것은 성범죄라는 것은 사람에 의한 범죄이고 사람으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범죄이기 때문에 사람들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예요. 관사를 뚝 떨어뜨려 놓는 게 아니라."

    성범죄를 바라보는 언론들의 인식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몇몇 언론사는 피해 교사의 제자인 초등학생들에게 인터뷰를 시도해, 충격을 받은 아이들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히기도 했습니다.

    [장만채 교육감/전라남도 교육청]
    "학생들에게 2차 피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해당지역 학생들이 정신적 공황상태를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부 종편 방송사는 범죄자들을 두둔하는 듯한 주민 인터뷰를 내보냈습니다.

    [주민 A씨]
    "남자들이니까 잘 아시잖아요. 혼자 사는 남자들이 80이라도 그런 유혹 앞에서는 견딜 수도 없어."

    물론 일부 주민의 발언은 매우 부적절했지만, 이 보도는 섬 전체 주민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도화선이 됐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 섬이 범죄자로 우글거리는 곳이고, 관광도 가지 말아야 한다는 혐오의 글들로 넘쳐났습니다.

    실제로 관광객 수는 사건 이후 절반 가까이 줄었습니다.

    [권동행 영업부장/쾌속선 업체]
    "현재 성수기 대비해서 예약이 들어와야 되는데 예약 전화가 굉장히 뜸해졌다는 거죠."

    식당과 상점들에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욕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마을 주민]
    "나만 그런 줄 알았더만 전화 오는 사람들이 많더만 전화 와 가고. 다짜고짜 이 OO 저 OO너희들이 사람이야 이러고 전화를 해버리니까 이거는 사람 환장하겠어."

    섬주민들은 모든 주민을 한데 묶어 비난하진 말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김경화/마을 주민]
    "그건 절대 아니에요. 죄는 죗값을 받아야죠. 나는 지금도 조금 흥분되는데 쟤는 죗값 받아야 해. 걔네들은 진짜. 받아야 해. 당연히. 어디 인간 이하의 짓이잖아요."

    [정일윤/마을 주민]
    "마치 이 지역 전체가 죄인인 양 그런 생각을 하고 미안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그래서 (주민들끼리) 말이 없어진 거죠."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면서 섬 주민들과 시민단체, 군의회와 도지사 등 지역사회는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낙연/전남지사]
    "이번 일을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 섬에서의 인권 개선을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이 지역만의 특수한 사건이라기보다 한국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은폐되는 성범죄의 일면이라고 말합니다.

    [이나영 교수/중앙대 사회학과]
    "섬이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얘기죠. 그렇게 되면 뭐냐면 특정한 섬에서 일어난 특수한 사례고 그리고 가해자들도 아주 특수한 예외적인 사례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만 처단하면 된다. 그러니까 섬에만 여자를 안 보내면 된다. 이런 발상이 나오는 거예요."

    며칠 전 한 대학 메신저 대화방에서 일어난 집단 성희롱 문제.

    언어성폭력을 우스갯거리 농담이나 별일 아닌 실수로 치부하는 문화가 지속한다면 그릇된 성 의식과 이로 인한 성범죄는 뿌리뽑기 어렵습니다.

    [배상훈 교수/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그러니 얼마나 위험한 사회예요. 우리나라가. 그거를 인식해야 해요. 그거를 인식 못 하면 영원히 우리나라는 강간 공화국이 되는 거예요."

    성범죄를 심각한 폭력이라기보다 정조의 문제로 접근하는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피해여성을 조롱하거나, 사진과 신원을 공개하는 이른바 '신상 털기'가 일상화된 것도 이런 인식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피해 여교사의 신상을 공개하려던 네티즌 5명이 경찰 수사를 받기도 했고, 한 지자체 공무원이 피해 교사를 조롱하는 댓글을 달았다가 적발돼 인사조치를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나영 교수/중앙대 사회학과]
    "가해자들이 행위를 하게 한 우리 사회의 구조가 문제인 거잖아요. 이 문제를 봐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당한 사람, 이 정조를 잃은 여자가 누구냐. 이러는 거죠. 이번에 박유천 사건의 피해 여성이라고 했던 사람의 신상이 털린 것도 그런 거죠."

    2014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은 2만 9천여 건, 4년 만에 45% 증가했고, 해마다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깊이 뿌리내린 남녀 성 인식 격차와 성 차별이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줄이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섬마을 사건은 또 다른 형태로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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