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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최 훈 기자

'장래 유망' 30대 현직검사, 왜 죽음을 택했나?

'장래 유망' 30대 현직검사, 왜 죽음을 택했나?
입력 2016-07-11 10:32 | 수정 2016-07-1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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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2년차 초임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직속상관인 부장검사는 검사의 부모에게 "업무가 과다했던 것 같다"고 말했지만 가족과 친구들은 김 검사가 부장검사의 잦은 술자리 호출, 폭언과 폭행 등 인격모독에 괴로워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김 검사가 친구들에게 보낸 문자에는 "부장 검사가 술에 취해 때렸다.", "매일 욕을 먹으니 살이 쭉쭉 빠진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급기야 김 검사의 사법연수원 동기들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고, 이번 일을 계기로 검찰 특유의 철저한 상명하복 조직문화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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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일어난 듯한 침대.

    여기저기 널려 있는 옷가지.

    남자 혼자 사는 평범한 원룸의 모습입니다.

    장래가 유망하던 한 30대 초반의 현직 검사는 지난 5월 19일, 이곳에서 홀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2년차 현직 검사의 안타까운 사연은 당시만 해도 과중한 업무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과로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증언과 정황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김 검사는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요.

    주변 사람들은 김 검사가 매우 밝은 사람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이선경 변호사/사법 연수원 동기]
    "기억이 나는 게 얘는 맨날 웃고 돌아다녔단 말이에요. 쟤는 뭐가 이렇게 좋을까. 그랬는데 늘 웃는 상인 거예요."

    운동도 잘하고, 의리도 있어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김OO/사법 연수원 동기]
    "성격도 재미있고 실제로 저희 반에서 남녀 불문 인기 제일 많았던 애가 얘라서, 대학 때도 인기가 많았고."

    늘 쾌활했던 김 검사는 지난 1월 부서가 바뀌면서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친구들과 주고받은 대화 내용입니다.

    '매일 부장검사한테 욕먹어서 살이 빠진다.'

    '맨날 욕 먹으니 죽고 싶다.'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거나 지방에 가서 편하게 살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또 죽고 싶다고 말합니다.

    '울적해서 유서를 써봤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하면 죽지는 못하겠다며 친구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이 OO/친구]
    "어떠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온 놈이기 때문에 잘할 거라 생각했는데 한 말 자체도 저희가 좀 의미 있게 받아들였으면 괜찮았을 텐데 그게 지금 와서 너무 미안하고 후회되고 그렇죠. 좋은 친구였는데."

    자주 밤을 새야 할 정도로 사건이 많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잡무에도 힘겨워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어금니에 덧씌운 금니가 빠지고, 귀에서 피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병원도 제대로 못 갔습니다.

    [이 OO/친구]
    "그럴 때마다 (부장 검사가) 더 더 더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니까 친구가 분명히 병원 갈 시간이 있었을 텐데 자기는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도 같고."

    하지만, 김 검사를 괴롭힌 건 업무 스트레스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김 검사는 친구들에게 지난 1월부터 함께 일하게 된 부장검사 얘기를 유독 많이 했습니다.

    부장검사가 업무와 관련해 욕을 자주 했고, 술을 마시면서 잘하라며 때리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늦은 시간 부장검사가 술을 먹는 곳으로 15분 내로 오라고 하면 싫어도 부리나케 가야 했습니다.

    [이선경 변호사/사법 연수원 동기]
    "이 친구는 그냥 검사가 되고 싶었던 거예요. 자기는 검사로 살고 싶었는데 검사로 살지 못하게 한 거죠. (부장 검사를) 집에 데려다 주고 혼자 우동을 먹으면서 사는 게 슬프다 새벽에. 이게 검사의 업무는 아니잖아요."

    어느 날엔 결혼식장에서 부장 검사가 따로 식사할 방을 구해오라고 했습니다.

    김 검사는 알아본 뒤 혼주들이 쓰는 방이라 안된다고 했다가 술 마시는 내내 욕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 상황에 계속되는 상관의 폭언은 김 검사에게 참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박 OO/친구]
    "1년차 때도 일은 많았는데, 많아도 걔는 재미있게 했었거든요. 잠을 못 자도 일이 많은 것 때문에 심적으로 힘든 이런 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부장 바뀌고 나서는 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인간 대접을 안 해주니까."

    하지만, 김 검사는 부장검사에게 말 한마디 못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털어놓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 검사는 평소와 달리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한참 울기도 했습니다.

    어버이날 바로 전날이었습니다.

    [故 김홍영 검사 아버지]
    "(평소) 눈물을 흘린 적은 거의 없었지요. 상당히 충격을 받아서 당장 내일 아침에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하니까 그래도 또 올라오지 마라."

    그게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였습니다.

    김 검사는 유서에 해결해야 할 사건이 쌓여가고 돌아오는 장기 사건들이 목을 조인다고 했습니다.

    물건을 팔지 못하는 영업사원들의 심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검사들이 한 달 동안 해결해야 하는 사건은 보통 150건에서 200건가량.

    [검찰 관계자 A]
    "생각을 해보세요. 그러면 하루에 몇 건을 처리해야 하나요? 5~6건을 처리해야 하잖아요. 근데 공소장에 기소 사실 쓰는 것도 장난이 아니고 공소 사실만 쓰는 것도 아니고 그다음에 그 사람에 대해 조사도 해야 하고."

    해결 짓지 못한 미제 사건이 쌓이면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고 합니다.

    미제 사건 수는 검사들의 주요 평가 항목이고, 많이 쌓이면 위에서 압박이 내려온다고 합니다.

    [전직 검사]
    "미제는 한 사건을 기준으로 하면 3개월이 넘으면 그게 사건부에서 맨 위에 뜨면서 빨간 불이 들어옵니다. 3개월 초과 사건을 몇 건 가지고 있는가, 그 검사가. 그리고 그달에 월 말에 미제는 몇 건인가."

    하지만, 이런 업무 스트레스는 다른 검사들도 마찬가지.

    이 때문에 김 검사의 유족들은 직접적인 죽음의 원인은 과도한 업무가 아니라 부장검사의 폭언과 인격모독적인 발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상 조사를 해달라며 대검찰청에 탄원서를 제출한 겁니다.

    [이기남/故 김홍영 검사어머니]
    "아들의 죽음에 책임 있는 사람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가해자는 두 발 뻗고 자는데 피해자는 하루 하루 눈물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검찰은 해당 부장검사를 서울 고등검찰청으로 전보시켰을 뿐 한 달 동안 가족들에게 어떤 설명도 없었습니다.

    유가족들은 한 번 더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이기남/故 김홍영 검사어머니]
    "그 구체적인 글들은 아무것도 아빠, 엄마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요즘 오히려 그 글이 공개되는 모습들을 보면서 평소에 우리 애 성격을 알기 때문에 고통 속에서 매일매일을 지옥처럼 보낸 애를 생각하면 정말 피를 토하고 싶습니다..."

    보다 못한 김 검사의 사법연수원 동기들이 이례적으로 집단행동에 나섰습니다.

    사법연수원 동기 9백여 명 가운데 7백여 명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자처했습니다.

    [양재규 변호사/사법연수원 동기 회장]
    "김 검사에 대한 폭언, 폭행과 업무 외적인 부당한 지시가 있었는지를 철저히 조사하여 그 결과에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을 대검찰청에 강력히 촉구한다."

    한 달 넘게 조용하던 검찰은 바로 다음날 대검찰청이 진상 규명에 착수했다고 발표했고, 유가족들은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30대 젊은 검사들의 자살 사건은 이미 1993년 부산지검과 2011년 대전지검에서도 있었습니다.

    모두 상관에게서 받은 인간적인 모멸감이 원인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같은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검찰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어떤 조직에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란 겁니다.

    다만,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상명하복의 분위기가 그 어떤 조직보다 강한 검찰 조직의 특성이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들 가능성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채정호 교수/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대개 직장 스트레스를 많이 힘들어하시는 분들은 내가 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을 때 그럴 때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검찰 조직 자체가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는 조직의 힘으로 돌아가는 것들이 많고, 그런 조직에서의 견딤이 어렵다고 하는 것들이 이 사건의 한 맥락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상관과의 갈등이 고통스러워도 평검사가 직접 문제제기 하긴 어렵습니다.

    [전직 검사]
    "(이의 제기권이라는 게 있던데 그게 뭐예요?) 검사 동일체 원칙에 대한 비판이 많으니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단 규정이 있는데 실제로는 거의 한 번도 사용했다고 들어 본 적이 없죠."

    이 부장검사는 김 검사 외에 다른 직원들에게도 심한 욕설과 폭언을 일삼아 이를 못 견딘 한 직원이 지검장에게 직접 보고했지만 이렇다 할 조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2달 뒤 김 검사가 숨진 겁니다.

    [검찰 관계자 B]
    "그냥 네가 참고 있어라 안 그러면 너만 손해 보고 너만 다치는 거지. 그렇게 해봐야 아무 실익이 없다라고 주변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그러니까 도움을 받지 못하니까 그렇게 하셨던 것 같고요."

    차라리 사표를 내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는 건 어땠을까, 숱한 경쟁을 돌파해온 자존심 강한 검사들에겐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라고 법조인들은 말합니다.

    [양재규 변호사/사법연수원 동기 회장]
    "특히 법조계 사람들은 자기에 대해서 엄격하고 모든 걸 완벽주의적으로 처리하려고 하고, 특히 자기 평판을 중시하니까. 김 검사 같은 경우는 만약 사표를 쓰고 나오게 되면 자기가 낙오자로 낙인 찍히지 않을까. 이런 사회적 평판을 굉장히 두려워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직원들의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마음 톡톡 프로그램'이란 게 검찰에도 있지만, 이 또한 이용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검찰 관계자 B]
    "잘 이용하지 않죠. (가면 뭐해요?) 가면 뭐 하는지 제가 안 가봐서 모르겠습니다. (한 번도 안 가보셨어요?) 한 번도 안 가봤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사람 가 본 사람 한 명도 없었습니다."

    김 검사가 남긴 유서의 맨 마지막 문장은 "행복하고 싶다. 살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김 검사의 원룸 방에 걸려 있던 표어들.

    김 검사는 이겨내려 다짐했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못했던 겁니다.

    [양재규 변호사/사법연수원 동기 회장]
    "그걸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이게 내 잘못이 아니다. 다른 외부 요인으로 인한 것이다는 이런 것을 스스로 주입시켜야 되는데 김 검사의 자취방에 남겨져 있는 not my fault 이런 것들이 사실 필요한 거죠. 그런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건데 상당히 김 검사도 스스로 그런 의식을 가지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직장 상사와의 갈등은 어디나 있을 수 있고, 이번 김 검사의 안타까운 죽음도 검찰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겁니다.

    다만, 이번 비극을 계기로 경직된 검찰 내부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한번 되짚어봐야 한다는 법조계 스스로 자성의 목소리는 귀 기울여 볼 일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조사를 통해 고인과 유족에게 한 점 의혹을 남기지 않는 것이 우선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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