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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조의명 기자

범죄조직 잡은 주부, 입 닦은 경찰

범죄조직 잡은 주부, 입 닦은 경찰
입력 2016-07-25 10:18 | 수정 2016-07-25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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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자녀를 키우며 세탁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40대 여성이 우연히 중국에 본거지를 둔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을 검거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손에 쥐게 됐습니다.

    웬만해선 우두머리를 검거하기 힘든 게 국제 보이스피싱 조직,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기지를 발휘한 신고자의 노력으로 경찰은 검거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최대 1억 원의 포상금을 약속하던 경찰은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언론에 돌린 검거 보도 자료에도 신고자에 대한 언급은 한 줄도 없이, 자신들이 조직원을 회유해 정보를 얻은 것처럼 자랑했습니다.

    정작 신고자는 포상은 커녕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협박 전화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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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화성에서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는 김성자 씨.

    김 씨는 올해 초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해 3,200만 원이란 큰돈을 뜯겼습니다.

    세 아이를 키우며, 세탁소 일에 틈틈이 부업으로 재봉틀까지 돌려가며 모아 온 알토란 같은 돈이었습니다.

    [김성자/보이스피싱 피해자]
    "너무 억울해가지고 거의 일주일을 누워만 있었어요. 가게도 거의 문 닫다시피 하고 이랬는데..."

    애써 마음을 추스르기 시작할 무렵,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자신을 속였던 바로 그 보이스피싱 사기범의 번호였습니다.

    [김성자]
    "'또 뭘 사기 치려고 이런 미친 X들' 처음엔 그랬어요. '야 이 XX야. 너희한테 줄 돈, 바칠 돈도 없어 이제, 끊어' 하고 끊었는데."

    다시 전화가 걸려왔고, 수화기 너머의 남성은 뜻밖에 놀라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이00/보이스피싱 조직원(통화녹취)]
    "진짜 믿고 김성자 씨한테 전화한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 할 수 없어요. 이거 비밀보장 해줘야 합니다. 메모하세요."

    이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김 씨 집에 또 전화를 한 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김 씨에게 모든 범행을 지시한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의 정체를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또 다른 사기 수법인가 의심했다는 김 씨, 하지만 조직원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급히 메모지를 찾아 받아적기 시작했습니다.

    [이00/보이스피싱 조직원(통화녹취)]
    "그 사람이 사장이고, 그 사람이 우리 여기에서 일 시키고 협박하고, 지금 술 먹으러 나가 있는 상태여서 전화한 거거든요. 여기서 내가 전화하기 전에 먼저 전화하지 말아요 절대..."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정보는 구체적이었습니다.

    가명을 쓰며 중국에서 활동하는 총책의 실명과 나이, 그리고 며칠 뒤 항공편으로 귀국할 예정이라는 정보까지.

    [이00/보이스피싱 조직원(통화녹취)]
    "...본명이에요?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금 본명을 얘기해주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생년월일이랑 이름만 알고 있으니까 몇 시 비행기까지만 어떻게 해서든 한번 알아볼게요.)"

    하나하나가 수사에 큰 도움이 될만한 단서들이었기에, 김 씨는 이 메모를 들고 곧바로 경찰서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담당 경찰관들은 시큰둥했다고 합니다.

    [김성자]
    "정신 나간 여자 취급처럼 '또 당했어요?' '그게 아니고요. 중국에서 전화가 왔는데 총책이 한국에 온단다. 한국에 오는 데 어떤 자료가 필요한지 달란다'... 비웃더라고요."

    총책이 타는 비행기 시간까지 알려줬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준 정보를 어떻게 믿고 수사를 시작하냐며 김 씨를 타박하는가 하면.

    [김성자]
    "우리가 거기 가서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는 거예요. 아시아나항공 같으면 그 사람이 탔는지 안 탔는지 탑승자 명단을 쉽게 아는데."

    국제항공은 협조가 안 돼갖고.. '하, 참 머리가 아픕니다.' 그러니까 저는 못 잡을까 봐 불안해 죽겠고, 또 얘네는 안 잡으면 자기들이 죽는다고 나한테 계속 하소연을 하고, 경찰은 항공사 몰라서 안 된다고 그러고 주소 몰라서 안 된다고 그러고.

    설사 범인을 잡아도 돈을 돌려받긴 힘들다며 헛수고 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했다는 겁니다.

    [김성자]
    "왜 신고를 하냬요. '잡으면 내 돈 찾고, 나같이 멍청한 사람. 난 멍청해서 당했는데 더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내가 이랬어요. 그랬더니 알았다고 조서를 막 쓰더라고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줌마 명절 쇠러 안 가요?"

    하지만, 빼앗긴 돈을 찾을 기회를 이대로 허망하게 놓칠 순 없었다는 김 씨.

    [김성자]
    "나는 나 혼자라도 잡습니다. 내가 공항 가서 노숙을 하더라도 잡는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경찰이 못 잡는다, 막 이러길래..."

    김 씨는 단서가 더 필요하면 직접 통화해 보라며 조직원과 담당 경찰관을 연결시켜 줬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조직원에게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이00/보이스피싱 조직원(통화녹취)]
    "도대체 어디에다가 신고하신 거예요? (화성동부경찰서)... 경찰이 하는 말은 지금 그거에요. 증인을 서달라고. 누가 머리에 총 맞았다고 누가 거기서 증언 서줍니까?"

    경찰이 잡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은 채 거꾸로 제보자에게 자수해서 증인이 되라는 말만 했다는 것.

    [김성자]
    "새벽 1시인가 전화가 왔는데 '진짜 아줌마 가만히 안 둔다.' 왜요? 그 형사 XX 어느 경찰서냐... 나보고 자수하라는데 어떤 놈이 자폭하냐고. 이제 더 이상 신고 안 하겠다."

    다짜고짜 자수하라는 경찰의 말에 위협을 느껴 연락을 끊겠다고 하는 조직원, 김 씨는 어르고 달래며 설득했습니다.

    [김성자]
    "(뭐 하는 겁니까 이게요.) 뭐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해 봐요. 삼촌들이 한 번만 더 이왕 용기를 냈으니까 한 번만 더 삼촌의 신원을 밝히고 (협조)하면 안 되겠나.."

    경찰에게만 맡겨두지 말고 직접 나서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는 김 씨.

    조직원이 불러주는 총책의 인상착의를 하나하나 받아적었습니다.

    [김성자]
    "그 사람이요 키가 몇이에요? (한 넉넉잡아서 160 정도 돼요.) 몸무게는 대략? (몸무게는 말랐어요.) 머리는 있어요. 없어요? (머리는 단정해요. 그냥) 머리는 단정하고..."

    며칠 동안 잠도 안 자고 수시로 걸려오는 조직원의 전화만 기다렸다는 김 씨는, 수십 통의 전화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각종 단서를 입수해 경찰에 제출했습니다.

    총책의 최근 모습이 담긴 사진과 은신처 정보, 중국 산둥성의 사무실 주소, 보이스피싱의 표적이 된 800명의 개인 정보와 실제 돈을 뜯어낸 피해자들의 명부까지.

    여기에 조직원이 자필로 쓴 범행 진술서도 김성자 씨가 설득해서 받아냈습니다.

    하지만, 담당 형사는 이게 부족하다, 저게 부족하다, 이걸 더 알아봐라. 저걸 더 알아봐라, 문자메시지로 여러 차례 김 씨를 다그치기만 했다고 김 씨는 말합니다.

    [김성자]
    "이거는 뭐가 부족하다 사진도 흐리다 이런 얘기 하면 참고하고 있다가... 전화 오면 꾀어서 삼촌 삼촌 하면서 꾀어서 메일로 (단서)넣어 달라..."

    이미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가 범죄 조직에 노출된 상황, 경찰 수사를 돕다가 나중에라도 해코지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없던 건 아니었습니다.

    [김성자]
    "무서웠죠. 근데 눈에 뵈는 게 없더라고요. 너무 화가 나서 눈에 뵈는 게 없고 경찰이 자꾸 그렇게 말하니까 오기가 더 생긴 건 사실이에요."

    평범한 아주머니가 범죄 조직의 두목을 붙잡으러 동분서주하는 영화 같은 이야기.

    사실상 수사관 못지않았던 김 씨의 활약으로 보이스피싱 총책은 닷새 만에 붙잡혔습니다.

    하지만, 그 후 벌어진 일들은 영화 속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총책이 구속된 뒤에도 김 씨는 이 사실을 모르고 계속 불안에 떨었습니다.

    범인을 잡으면 경찰이 당연히 연락해 줄 텐데, 뭔가 문제가 생겨서 자신에게 보복하러 오는 게 아닐까 일주일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합니다.

    [김성자]
    "누가 가게 앞에 이유 없이 전화 들고 왔다갔다하면 혹시 날 보러 온 건가 그런 생각도 들고... (낯선 손님이) 애기가 몇이에요 이러면 그냥 등짝이 섬뜩해요. 그 사람들은 그냥 물어보는 건데..."

    수사 자료를 모두 건네받은 뒤, 경찰은 김 씨와 연락을 뚝 끊었습니다.

    수고했다, 고맙다는 말은 몰라도 혹시 협박이나 해코지를 당하지는 않았는지 안부조차 물어온 적 없었습니다.

    조직 총책이 잡혔다는 사실조차 이웃 주민이 뉴스를 보고 알려줘 뒤늦게 알았습니다.

    [이웃 주민]
    "너 겁도 없어 그러다가 큰일 나잖아요. 여자가. 그 사람들은 보복하고 그러잖아. 아니라고 막 미친 듯이 그러고 다니더니...뉴스에 나왔는데 인천에 보이스피싱 뭐 그런 사람 잡았다고 그래서 그거 성자가 잡은 사람 아니야? 막 그랬더니 맞다고.."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특성상 우두머리인 총책을 붙잡는 건 드문 성과라 많은 언론에 보도됐지만, 김 씨의 활약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언론사에 배포한 보도자료엔 김 씨에 대한 언급이 단 한 글자도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첩보를 입수해 검거했다', '조직원의 배신을 이용했다'는 식으로만 홍보했습니다.

    [김성자]
    "중간책이든지 누구라도 한 명이라도 더 잡았으면 내가 이해를 하겠다. 그랬어요. 달랑 하나 잡았잖아. 내가 준 정보로..."

    검찰과 지방경찰청에 올린 수사 관련 기록에도 김 씨의 활약은 단순한 '피해자의 신고' 수준으로 간략하게만 보고됐습니다.

    [이기동 소장/금융피해예방연구센터]
    "누군가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신고한 것과, 불특정 다수의 모르는 사람을 신고한 것은 차원이 다른 거예요. 경찰도 하기 힘든 것을 피해자 입장에서 손수 뛰어가면서 경찰에 며칠 몇 시 비행기로 내려온다는 것까지 다 이야기를 했는데 경찰서에서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경찰은 작년부터 보이스피싱 범죄를 신고하거나 사건 해결에 기여한 시민에게 최대 1억의 신고 보상금을 주겠다고 홍보해 왔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보상금은커녕 수고했다는 격려의 인사 한 번 받지 못했습니다.

    화성 동부경찰서에서 김 씨에 대한 포상 심의를 아예 누락시켰기 때문입니다.

    [화성동부경찰서 관계자]
    "제가 그 부분은 제가 잠깐, 뭐라고 해야 하나 챙기지 못했던 것 같고요. 확인에서 누락이 된 것 같고요."

    김 씨가 항의하자, 경찰은 사건 종결된 지 다섯 달이나 지난 이달 14일에야 뒤늦게 김 씨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찰서에 예산이 얼마 없으니 100만 원 정도만 받아가라고 했습니다.

    [화성동부경찰서 관계자]
    "다른 데는 20만 원 정도, 10만 원 20만 원 30만 원 나오는데...경찰은 행자부에서 예산을 따와 가지고 (집행)하는데 일반 행정직 공무원하고 예산 양 차이가 많이 나요. 그래서 우리한테는 예산 많이 안 줘요."

    2580은 화성 동부경찰서를 찾아가봤습니다.

    경찰 측은 김 씨가 그동안 포상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단순한 행정 착오로 누락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화성동부경찰서 관계자]
    "김성자 씨도 그 부분에 대해 요청을 안 했고 저희들도 소홀하게 생각했고. 그때 즉시 지급을 했으면 좋았겠죠. 좋았을 텐데 그때 당시엔 구정 끝나고 사건 송치하고, 구정 쇨 때 나와서 추가 조사하고.. 그러는 바람에 시간이 좀 지연된 것 뿐이지..."

    이제라도 포상금을 주기로 했으니 큰 문제 될 건 없지 않겠냐는 겁니다.

    [화성동부경찰서 관계자]
    "(김 씨가) 화가 나겠죠. 그런데 이제 보상금을 즉시 줘야 한다는 그런 규정은 없습니다. 그런데 좀 너무 늦게 줘가 지고 섭섭해서 그러는지 적게 줘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또 최대 1억 원이라고는 해도 사실 줄 수 있는 보상금이 최대 100만 원이라 나름대로 최선의 예우를 한 거라고 해명했습니다.

    경찰 내부규칙에 따르면, 범죄 금액 규모가 수십억 이상이거나, 언론에 이슈가 된 사건이 아닌 이상 100만 원이 최대 포상이라는 겁니다.

    얼마나 용감하게 도왔는지, 검거에 기여한 정도는 참고 사항일 뿐이기 때문에, 김 씨의 고군분투는 경찰 심의기준에서 가장 낮은 4등급, '기타 사건'으로 평가 절하됐습니다.

    신고보상금 상한을 1억 원으로 늘린 뒤에도 실제 지급한 최고 보상금 액수는 500만 원, 신고 1건당 평균 보상금도 전년보다 평균 5만 원 정도밖에 늘지 않았습니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최소한의 정중함도, 진심도 찾아볼 수 없는 경찰의 태도에 큰 상처를 받았다는 김 씨.

    적선하듯 주는 보상금은 안 받겠다며 거절했습니다.

    범인 잡겠다는 생각 하나에 경찰이 시시콜콜 요구하는 대로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이런 취급을 당하고 나니 오히려 경찰에게 사기를 당한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김성자]
    "그 다음 날 통장 갖고 와라. 보통 아무리 무식해도 감사장하고 표창장하고 같이 나와야 정상이잖아요 포상금이... 경찰한테 당했다고 생각하니까 이 보이스피싱 당했을 때보다 더 열 받는 거예요."

    범인을 잡는 대신 단서를 가져 오라고 신고자를 채근하는 경찰.

    용감한 시민에게 진심 어린 감사와 예우 대신, 속았다는 배신감만 들게 만드는 신고 보상.

    '괜히 나서면 손해 본다', '가만히 있는 게 이득'이라는 우리 사회의 냉소적인 이야기는 김 씨 같은 사람들이 겪은 씁쓸한 경험 때문에 만들어진 말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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