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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민병호 기자

살인 청부, 맷값 폭행 그 후… 정의는 지켜졌을까?

살인 청부, 맷값 폭행 그 후… 정의는 지켜졌을까?
입력 2016-08-01 08:05 | 수정 2016-08-0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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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발생한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

    살인을 교사한 영남제분 전 회장 부인 윤씨는 형 집행정지로 VIP 병실에서 지내고 있는 것이 드러나 공분을 자아내 기도 했는데요.

    영화 '베테랑'의 모티브가 된 맷값 폭행 사건입니다.

    사건의 주동자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고, 피해자와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돈과 권력 앞에 죄의 대가는 공평한가? 정의는 실현된 걸까요?

    2580이 특종 보도한 사건 이후를 추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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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3월.

    경기도 하남의 검단산에서 22살 여대생 하지혜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머리에만 모두 여섯 발의 공기총을 맞은 상태였습니다.

    [최규명/담당 형사]
    "다리가 밑에 있고 이 나뭇가지 사이에 있잖아요. 교묘하게 시체가 놓여있더라고요."

    아파트 CCTV에 하지혜씨와 그녀를 미행하던 남자 2명이 찍혔지만 화질 때문에 신원을 밝혀내긴 어려운 상황.

    미궁에 빠질 뻔했던 사건은 2580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실마리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황영풍/담당 형사]
    "2580에 나가니까 박00인가 하는 사람이 자수했어요. 2580을 보고 충격을 받아가지고."

    조사 결과 현직 경찰관을 포함한 27명이 지혜 씨를 미행, 감시해왔고 이 중 두 명은 직접 지혜 씨를 살해한 걸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사주한 사람은 당시 영남제분 회장의 부인, 윤길자 씨로 밝혀졌습니다.

    자기 사위의 내연관계를 추적하던 중 엉뚱하게도 사위의 사촌 동생인 하지혜씨를 불륜상대로 의심하고 살인을 교사한 겁니다.

    [하승균/담당 형사]
    "그동안 여러 번 미행과 납치 등에 실패를 하자 나중에는 '죽여버리는 게 낫겠다. 적당한 사람을 찾아달라'라고 해서..."

    윤길자 씨는 구속되기 전 2580과의 인터뷰에서 범행 사실을 태연히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윤길자]
    "저는 거기에 관계가 없으니까 저는 아무런 할 말이 없습니다...생각을 해보십시오. 그런 일까지 일어날 수 있는 건지.."

    결국, 윤길자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방송 1,000회를 맞는 동안 2580은 제대로 된 정의를 지켜달라는 낮은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여 왔습니다.

    때로는 진실에 다가가기도 했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가려진 진실을 밝혀달라며 용기를 내 2580의 문을 두드렸던 많은 사람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경기도 남양주의 한 공원묘지.

    숨진 하지혜씨의 아버지가 오랜만에 딸을 찾았습니다.

    [하00/故하지혜 씨아버지]
    "정말 한없이 사랑하고 그 마음은 변하지 않고 ..평안히 쉬도록 해라. 그런 심정으로 보고 가는 거죠."

    입에 담기조차 싫은 청부 살인이란 이름으로 억울하게 딸을 떠나보낸 지도 어느덧 14년.

    이후 가족들은 일부러 떨어져 살았습니다.

    [하00/故하지혜 씨아버지]
    "제 엄마를 쳐다봐도 딸이 생각나고 제 오빠를 봐도 그 애하고 연상이 되고.. 네가 좀 더 잘했으면 네가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그게 공격이 되고 서로 아픈 데를 건드리게 되고 그래서..."

    올해 초에는 부인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몇 년 전 딸을 청부살해한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있다는 걸 알면서부터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했습니다.

    [하00/故하지혜 씨아버지]
    "그동안 누적된 것도 있었지만 최근에 절망감을 더 느끼고 심화된 겁니다...본인 스스로가 살고 싶은 의욕을 잃은 거죠."

    마지막을 예감한 듯 올해 초, 어머니는 14년이나 미뤄왔던 딸의 사망신고를 마친 지 며칠 뒤 홀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하00/故하지혜 씨아버지]
    "회한이 너무 크고 너무 불쌍하고 아픕니다. 내가 아비로서 남편으로서 정말 못한 것 같아서 저 역시 진짜 죽고 싶은 마음밖에 없어요."

    가해자들이 처벌을 받으면서 마무리된 것 같았던 여대생 살인사건.

    그런데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13년.

    2580으로 한 통의 제보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윤길자씨가 교도소가 아닌 병원 특실 병동에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00교도소 관계자]
    "전국에 지금 윤길자라는 수형자는 조회가 안 되거든요. 출소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몸이 안 좋으니까 징역을 살 수 없다."

    건강상의 문제로 형집행정지를 받아 교도소를 나왔다는 겁니다.

    하지만 2580의 추적 취재 결과 파킨슨병 증상 악화로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던 윤씨는 화장실도 혼자서 다니고 식사도 잘했습니다.

    그런데 취재진임을 밝히자! 멀쩡하던 손을 갑자기 떨기 시작했습니다.

    [윤길자]
    "(몸이 많이 안 좋으세요?) 네, 보호자 도움 없이는 잘 일어나지도 못해요. 함부로 언론에 내지 마세요. 확인되지 않은 거 가지고..."

    이렇게 윤씨는 2007년부터 6년 동안 38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자유롭게 외출까지 하면서 교도소가 아닌 VIP 병실에서 생활했습니다.

    윤씨 주치의가 작성한 진단서에 대해 의사협회조차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송형곤/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꼭 입원해서 치료를 하거나 수감생활을 전혀 못할 상황이거나 이렇게 판단되지는 않습니다."

    사실상 법을 교묘히 이용한 탈옥에 10여 년 전 담당 수사관도 허탈해했습니다.

    [하승균/당시 담당 형사]
    "무기징역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을 적에 그래도 사회 정의가 존재하고 있구나! 해서 나름대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뿌듯하게 생각했거든요. 지금 들어보니까 허탈하네."

    결국, 윤씨는 재수감됐고 허위진단서를 발급한 주치의와 회삿돈을 호화병실 이용료로 쓴 윤씨의 남편, 즉 전 영남제분 회장은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또 2580보도 이후 법무부가 형 집행정지 허가 시 주거지역을 제한하거나 외출과 외박을 금지할 수 있게 관련 법을 강화하는 등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8달 뒤 항소심에서 전 영남제분 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주치의도 벌금 500만 원으로 감형됐습니다.

    윤길자 씨 역시 주로 모범수들이 수감되는 최신 시설의 직업훈련 교도소로 옮겨졌고, 비난을 받아오던 영남제분은 지난해 회사명을 주식회사 한탑으로 바꿨습니다.

    [하00/故하지혜 씨아버지]
    "그 사람들의 진정한 반성, 사과 그리고 저지른 것에 대해서 달게 벌을 받는 모습, 그것이 그나마 최소한의 위로거든요. 근데 오히려 '봤지? 우리 돈 많으니까 암만 너네가 해도 우리가 무슨 벌을 받냐' 가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의 모습으로 변신하고 있는 그런 걸 봤을 때는 그 분노와 절망감은 엄청 큽니다."

    2010년 11월, 한 50대 남성이 서울의 한 회사 사무실에서 폭행을 당했습니다.

    [유홍준]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어요. 무릎 꿇고. 누구 하나 말 한마디 않고 말려주는 사람도 없었고요. 어떻게 사람한테 이럴 수가 있나."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차량시위를 벌인 유홍준 씨를 회사 측이 협상을 하자며 부른 자리였습니다.

    [유홍준]
    "최 사장이 엎드리라고 했습니다. 엎드려서 한 대에 100만 원씩이다. 지금부터. 그러면서 야구방망이로 힘차게 내려쳤어요. 맞는 순간에 너무 고통스러웠죠."

    가해자는 재벌 2세인 최철원 전 M&M 사장.

    야구방망이로 13대를 내리친 뒤 뺨을 때렸고 두루마리 휴지를 말아 입에 밀어넣고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습니다.

    그리고 매 맞은 값이라며 천만 원짜리 수표 2장을 건넸습니다.

    최 전 사장 측은 때린 건 인정하지만 돈을 줬으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000 M&M임원]
    "돈을 안 받아갔으면 모르는데 돈을 받아갔잖아요. 제가 볼 때는 사실 2천만 원어치 안 맞았어요."

    사과를 원한다는 유홍준 씨의 말에는 오히려 험한 욕을 쏟아냈습니다.

    [000 M&M임원]
    "왜 하는데 인마 너한테. 정신없는 놈 아니야 이게. 형편없는 **. 그러니까 너를 ***라고 그러는 거야. 세상 사람들이. 너 얻을 거 하나도 못 얻고 바보 멍청아."

    돈이면 폭력도 해결된다는 인식에 여론은 분노로 들끓었지만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는 없었습니다.

    [최철원/M&M 사장]
    "(2천만 원 주셨으면 때려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그거보다도요. 저 때문에 이렇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져서 사회적으로 시끄럽게 돼서 굉장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최철원 전 사장은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2달 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6년 만에 유홍준 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 일 이후 3년여를 소송에 끌려다니느라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해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는 유홍준 씨.

    곧바로 풀려난 최철원 전 사장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난다고 했습니다.

    [유홍준]
    "이게 법치주의인가. 법에 회의를 느끼는 거죠. 아무리 합의를 봤다 해도 일반인 같으면 나올 수 있겠는가...그 당사자보다 풀어준 쪽이 더 나쁜 범죄자죠. 그게 국민들이 봤을 때는 얼마나 분통 터지고 절망감에 빠지겠는가.."

    지난해 개봉돼 화제를 모았던 영화 베테랑은 유씨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유씨는 당시 기억이 떠올라 힘들긴 했지만 일부러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유홍준]
    "가족들이 이제 그 저하고 관련된 거 의식 안 하고 보자고 해서 가족들하고 같이 가서 봤어요..당연히 많이 힘들었는데요. 그게 말로 표현하기는 진짜 힘들 정도거든요. 진짜 오만 생각이 다 드는 거죠."

    자신의 억울함이 2580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지 6년.

    지금도 돈을 앞세운 사람들의 횡포와 일탈은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삶이 더 힘들어진 거 아니냐는 주위 시선도 있지만 유홍준 씨는 2580 취재에 응한 데 후회는 없다고 했습니다.

    [유홍준]
    "개인이 혼자 정부나 대기업을 상대로 이기기가 상당히 힘든 거거든요. 그 약점을 노리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할 때까지 하다가 지치면 넘어지겠지. 그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그래서 진짜 힘들어도 이를 꽉 물고 했던 거고요."

    2007년 11월.

    2580은 한 공장을 주목했습니다.

    [故권00씨 누나]
    "5시에 출근하려고 씻고..그대로 화장실에서 그 자리에서 죽은 거예요."

    [故박00 부인]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소리가 나더라고요. 이렇게 숨 넘어가는 소리가..."

    한국타이어 공장 근로자들이 1년 반 사이 14명이나 죽었다는 제보.

    나이도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했습니다.

    작업장에 있던 분진과 솔벤트를 수거해 실험용 쥐에게 노출시켰더니.

    1시간 만에 경련을 일으키고 뇌와 심장, 근육에 이상이 발생했습니다.

    [유종원/한국타이어 19년 근무]
    "다리를 한참 눌렀다가 떼면 푹 들어가서 안 나오죠....이게 지금 전부 유기농제 중독에 대해서 주는 약이에요."

    회사 측의 무재해 인센티브 정책 때문에 피해는 더 컸다고 했습니다.

    [한국타이어 직원]
    "조회시간에 관리자가 이야기해요. 누구누구 때문에 우리 조가 무재해 달성 목표를 할 수 있었는데 못했다. 그걸 듣는 사람들은 ' 아, 웬만큼 아픈 거는 참아야겠다' 스스로 그렇게 통제하는 거죠."

    방송 이후 불매운동까지 벌어지는 등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근로자 집단사망사건.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에 따르면 1992년부터 현재까지 암이나 뇌,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한국타이어 공장 근로자만 131명입니다.

    하지만, 한국타이어 측은 지금까지도 '화학물질에 의한 심장 돌연사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대다수 피해자들에 대한 산재 처리나 특별 조사 요구를 회피하고 있습니다.

    2580의 이같은 보도는 언제나 끝까지 진실을 밝히려는 용기있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됐습니다.

    [하00/故하지혜 씨아버지]
    "이렇게 될지언정 자주 되풀이, 그리고 목소리를 높여서 뜻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공감하고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의 심판과 죄의 대가를 누구나 납득할 수 있고, 결국에는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

    이를 위해 2580은 앞으로 일회성 고발에 그치지 않고 고발 그 이후도 끝까지 추적하고 감시하면서 높고 단단한 벽에 가로막힌 억울한 시민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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