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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조의명 기자

제주 바다의 말 못할 비밀

제주 바다의 말 못할 비밀
입력 2016-09-05 10:23 | 수정 2016-09-0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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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앞바다 80미터 지점.

    수심 20미터 바닷속에서 날마다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마치 석유라도 시추된 듯 시커먼 액체가 하루 종일 용솟음칩니다.

    바다 밑바닥은 침전물로 모두 검게 덮여 버렸고 바닷물은 누렇게 물듭니다.

    이상한 일은 뭍에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주를 찾은 여행객들이 펜션 주위에서 나는 악취로 고통을 호소하고 어업을 하는 주민들은 고기가 안 잡힌다며 아우성입니다.

    청정 제주 바다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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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북쪽 해안의 한 작은 포구.

    푸른 바다에 선을 그은 듯 물빛이 희뿌연 곳이 눈에 띕니다.

    [고 OO/제주시 OO동 주민]
    "저 흰 거 보이지 않습니까? 저쪽에 있지 않습니까? 저기 저거 (허연 포말이요?) 예 저 쪽에..."

    파도를 따라 해안으로 밀려오는 바닷물에선 하수구 냄새 같은 퀴퀴한 악취가 풍깁니다.

    [고 OO / 제주시 OO동 주민]
    "(원래 물 색깔이 이런 게 아니에요?) 아녜요. 얼마나 깨끗한 물이었는데... 여기만 물 색깔 이거 보십시오. 다 똥물이지 않습니까."

    보트를 타고 접근해봤습니다.

    바다 한가운데, 반경 20여 미터 주변만 유독 확연히 구분될 만큼 빛깔이 다릅니다.

    어떤 곳은 물빛이 아예 황토색입니다.

    바다 밑 어디선가 더러운 물이 솟아나오고 있을 거라는 게 이곳 주민의 얘기.

    원래는 물이 맑아 스쿠버다이버들이 많이 찾고 씨알 굵은 고기도 제법 많은 어장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낚싯배들도 피해가는 불길한 바다로 변해버렸다는 겁니다.

    [김귀홍/제주 OO동 주민]
    "(물이)올라올 때는 물이 이렇게, 이렇게 올라와요. 밤엔 이 물보다 더 지저분하지.. 고기도 잡아 보면 우럭 같은 것 속에는 창자가 틀려요. 저쪽(바다)하고."

    아름다운 푸른빛을 자랑하던 바다 한복판이 이렇게 싯누런 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악취까지 심하게 풍깁니다.

    한때 다이버들의 성지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웠던 바다라는데,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문제의 바다는 해변에서 불과 800미터 떨어진 지점.

    2580은 스쿠버다이빙 전문가들과 함께 변색된 바닷물의 근원지를 찾아 바다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혼탁한 물을 헤치고 내려가자.

    바다 깊은 곳에서 구름 같은 물기둥이 맹렬한 기세로 솟아 올라오고 있습니다.

    더 아래로 잠수해 봤습니다.

    수심 20미터 아래로 내려가자, 지름 1미터의 녹슨 대형 파이프관에서 시커먼 물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마치 석유라도 시추된 듯, 회오리치며 해수면까지 치솟아 오르는 거대한 물기둥.

    파이프 주변 바닥엔 정체 모를 회색 침전물이 두껍게 쌓여 있고, 주변엔 죽은 소라 껍데기 말고는 해초 한 포기조차 찾아보기 힘듭니다.

    [김윤석/스쿠버다이버]
    "저희가 이 일대 주변 2,3km 정도는 다 다이빙을 하는데 여기만 빼놓고는, 다른 쪽에는 산호도 있고 다양한 어종도 볼 수 있는데 특이하게 이 지역만은."

    이곳에서 불과 1km 떨어진 바닷속.

    화려한 빛의 연산호 군락이 손짓하는 바다 풍경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뿜어져 나오는 물을 채취해 살펴보니, 악취가 심하게 풍기고, 검은색 침전물이 가라앉습니다.

    대체 무슨 물이고, 누가 바다에 흘려보내고 있는 걸까.

    하수였습니다.

    해안에서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엔 제주도 최대 규모의 하수종말처리장이 있습니다.

    제주 도심의 화장실 오수와 생활 하수, 그리고 인근 쓰레기매립장의 침출수까지 모여드는 이곳.

    원래대로라면 침전물을 걸러내고, 미생물을 통한 생분해 등 각종 처리를 거쳐 담수에 가까운 깨끗한 상태로 물을 정화한 뒤, 바다에 내보내도록 돼 있습니다.

    2580은 이 하수처리장의 방류수 수질측정 자료를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올해 1월부터 7월 말까지 202일간의 계측 결과, 법정 기준에 맞게 충분히 정화해서 방류한 날은 불과 닷새뿐, 나머지 197일은 기준치를 넘어선 하수를 방류해 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실상 매일같이 정화되지 않은 더러운 물이 바다로 그냥 흘러나갔다는 겁니다.

    왜 그랬을까.

    하수가 너무 많이 몰려들어 이곳의 처리 능력을 넘었기 때문입니다.

    [제주하수처리장 관계자]
    "유량이 많을 때는 체류 시간이 모자라 갖고, 용량이 달려 가지고 그러는 거죠. 개발이라든가 인구가 이렇게 극적으로 불어날 줄은 몰랐죠."

    제주도 인구가 폭증하고, 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하수 발생량도 계속해서 늘어나 올해 들어서는 하루 평균 11만 9천 톤 씩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시설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정 처리량은 이미 2년 전부터 넘어버린 상황.

    결국, 모이면 모이는 대로, 정화가 채 끝나지도 않은 물을 그냥 바다로 내보내고 있는 겁니다.

    [제주하수처리장 관계자]
    "요 며칠 사이에 더 심해지고 있다고 주민들이 그러시니까... (아니요. 좋아지고 있어요.)"

    관광객이 가장 많은 여름 휴가철이 지나면 최악의 상황은 벗어날 거라고 하지만, 취재진이 정말 방류수 수질이 좋아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최근 수질 계측 결과를 공개해 달라고 요구하자,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제주하수처리장 관계자]
    "아니 뭐 달라고 한다고 다 줍니까? (공개하도록 돼 있는데...) 아니 7월 말까지는 공개된 거니까 그거 사용하시면 되잖아요."

    유일한 해결책은 설비를 증설해 처리 용량을 늘리는 방법뿐.

    하지만, 지금 당장 공사를 시작해도 완공되려면 3년 넘게 걸린다고 합니다.

    결국, 그 3년 동안 뾰족한 대책 없이 바다에 오염된 물을 하루 수만 톤씩 매일같이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바다 환경이 얼마나 파괴될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김정도 정책팀장/제주환경운동연합]
    "녹조가 발생할 것이다. 부유물 때문에 인근 바다가 황폐해 질 것이다 이런 얘기는 이미 많이 나온 부분이고요. 특히, 그 일대 같은 경우에는 사막화 현상이 굉장히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바다만 문제가 아닙니다.

    주민 100여 명이 모여 사는 처리장 근처의 포구 마을.

    가는 곳마다 악취 얘깁니다.

    [이경희/제주시 OO동 주민]
    "전에는 그냥 썩은 냄새만 조금 났는데 요즘에는 생 (똥) 냄새가 많이 나요. 여기 놀러 온 사람들도 이거 냄새가 어디서 나느냐고..."

    [고 OO/제주시 OO동 주민]
    "여기는 버스나 택시 기사들이요. 창문 열고 여기는 다닐 수가 없습니다. 창문을 닫아야 돼 냄새 때문에."

    냄새를 따라가 보니 빗물을 흘려보내는 배수구 구멍에서 탁한 물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수면에 거품이 일자, 물속을 노닐던 치어들이 요동칩니다.

    [고 OO/제주시 OO동 주민]
    "그냥 그냥 보내버리는 거예요, 정화 안 시키고 그냥...(냄새가 많이 나는데) 이게 인분 냄새입니다. 똥 냄새.."

    2580은 이 물을 채취해 검사를 의뢰해 봤습니다.

    보통 물이 아니라, 질소와 인 성분이 방류수 기준치를 초과해, 하수 성분에 가깝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제주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
    "이제 원래 하수 자체가 나갈 수도 있고, 처리가 덜 돼 가지고 나갈 수도 있고, 그래서 방류하는 것엔 부적합하단 얘깁니다."

    처리장에서 바다로 내보내는 하수가 도중에 마을 지하 곳곳으로 새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주민들은 아우성입니다.

    마을 전체에 참을 수 없는 악취가 풍겨 여름에도 창문을 열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하소연합니다.

    [고 OO/제주시 OO동 주민]
    "(악취가) 너무나 나니까 방에 창문 닫고 선풍기로 냄새 내보내고... 문 열고 나오면 마루에 또 그렇게 (냄새가) 배어서..."

    "집에 너무 화장실 냄새가 나니까 아들 친구들이 오해해요. 친구들이 오면 '화장실 청소도 안 하네. 이렇게 지저분하게 사냐'고. 저번에 우리 아들 저녁 먹으러 왔다가 저녁 먹지도 못하고 그냥 갔어요."

    더 큰 문제는 어업과 관광업으로 먹고사는 주민들에게 바다 오염은 곧바로 생계의 위협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이경희/제주시 OO동 주민]
    "해녀들도 이렇게 (새어)나오는 줄 몰랐어요. 지금 이 물이 이렇게 나오는 건 몰랐어요. 냄새 나는 건 알아도.. 물 이렇게 더럽힐 줄은.. 당장 시위해 해녀들 알면."

    하수처리장 측은 관로가 낡아 방류수가 지하로 새어나가는 중이라고 시인했습니다.

    하지만, 보수도 못합니다.

    공사를 하려면 일단 방류를 멈춰야 되는데, 한 시간만 멈춰도 처리장이 넘쳐버릴 정도로 오수가 밀려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제주하수처리장 관계자]
    "(보수공사) 하려면 바다로 나가는 걸 차단해야 됩니다. 차단하려면 지금 유량이 제일 많을 때 아니에요. 여름 이어가 지고. 많으면 차단하면 여기가 넘치잖아요. 그래서 좀 가을, 겨울 들면 하려고 그래요."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지만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기 힘든 속사정도 있습니다.

    방류수가 흘러나오는 바다를 취재하는 도중 갑자기 어선 한 척이 다가와, 촬영을 하지 말라고 다그칩니다.

    "이거 방송 나가면 안 된다니까. 왜 어민들을 다 죽이려고 그래요? (어민을 죽이겠다는 게 아니고요. 선생님) (관광객들이) 고기도 안 사먹고 안 오면 당신들이 책임질 거예요? 안 그래도 정부에서 비브리오(콜레라) 발표해가지고 어민들 다 죽이고 있는데 말이야 지금."

    오염된 바다로 소문이 나면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질까 걱정돼, 대놓고 항의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는 분위기.

    제주도에 설치된 하수처리장은 총 여덟 곳, 이중 다섯 곳이 처리 한계점에 육박해 3년 내로 설비를 확충하지 않으면 안 될 형편입니다.

    제주시 도심 인근에 새로 하수처리장을 신설하는 방안도 추진 중입니다.

    하지만, 이미 해안가마다 식당과 펜션, 관광지가 빼곡히 들어찬 제주도 어디에도 하수처리장을 지을 자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김태석 의원/제주도의회]
    "하수처리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4,5년 전부터 계속 문제가 제기돼 왔던 겁니다.. (문제 해결을) 차일피일 미룸으로 인해서 이러한 사태가 지금 오게 된 겁니다."

    매년 1,300만 명의 관광객이 제주도를 방문하고, 이사를 오는 사람도 매년 급증하고 있습니다.

    가고 싶고, 살고 싶은 곳으로 인식되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문제는 늘어나는 사람과, 그에 따른 골칫거리를 감당하기가 점점 버거워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곳은 제주 주민과 관광객이 버린 쓰레기가 모이는 매립장.

    지난 2002년 조성된 이곳은 10만 세제곱미터 가까운 매립 용량이 거의 가득 차, 내년 말이면 더 이상 쓰레기를 묻을 곳이 없어지게 됩니다.

    도내 다른 매립장도 수년 내로 포화 초읽기에 들어간 곳이 대부분입니다.

    하수뿐 아니라 쓰레기까지 넘쳐나는 겁니다.

    [이학상 계장/제주도청 생활환경과]
    "지금 만적이 제일 빨리 될 게 서부매립장이고요. 색달은 2019년, 남원은 2020년, 성산은 2021년..."

    최근 10년 사이 제주도의 하루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640톤에서 970톤으로 50% 이상 늘어났습니다.

    전국 평균보다 17배 높은 증가셉니다.

    [이학상 계장/제주도청 생활환경과]
    "(원인이) 관광객 증가, 인구 증가, 그리고 건축 증가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건축 증가도요?) 예 거기서 발생하는 폐기물이 많이 나옵니다."

    너무 빠른 성장세 때문에 대비할 여유도 없이 대도시에서 일어날 법한 각종 문제들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매자/제주시 OO동 주민]
    "관광객이나 이주민들이 오시는 건 감사한데요. 그분들이 와 가지고 많이 난개발이나 이런 훼손 같은 것도 많이 시키고 또 부동산 경기를 엄청 올려가지고..."

    하지만, 여전히 대형 리조트, 숙박단지 등 각종 대규모 개발 사업이 줄지어 진행 중이고 공항도, 항만도 새로 지어 관광객도 더 유치하겠다는 제주도.

    현재 64만의 인구가 사는 섬이 10년 뒤에는 100만 명이 북적대는 인구 포화 상태에 접어들 거란 예측이 나옵니다.

    [김태석 의원/제주도의회]
    "섬이라는 것은 자원의 한계를 가지고 있고 수자원이라든지 환경, 쓰레기 문제에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주도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려고 하면 과연 제주 자원이 지탱 가능한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이걸 우리가 먼저 염두에 두고 그다음에 개발을 해야 되는데..."

    지금이라도 성장의 완급을 조절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윱니다.

    [김정도 정책팀장/제주환경운동연합]
    "제주 최대의 가치는 자연이라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이런 부분들이 결국 개발과 관련돼 있다면 당연히 개발에 대해서 좀 늦추거나 아니면 형태의 개발을 지향한다거나 이런 형태로 가야 되는데..."

    더러운 하수에 빛이 바래가는 제주 바다가 더욱 안타까운 까닭은, 제주가 많은 이들에게 그저 흔한 관광지 중 하나가 아니라, 깨끗한 자연과 삶의 여유로움을 상징하는 곳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속탈을 앓기 시작한 제주도, 멀리 내다보는 처방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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