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최 훈 기자
치명적인 '보톡스 균', 어디서 구했나?
치명적인 '보톡스 균', 어디서 구했나?
입력
2016-12-05 10:56
|
수정 2016-12-0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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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주사로 널리 사용되는 보톡스의 주성분은 알고 보면 매우 위험한 독성 생물인 ‘보툴리눔’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독소’라는 표현에 걸맞게 고위험 병원체로 지정되어 있고, 국제적으로는 생물무기금지 협약상 국가 간 이동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 이 보툴리눔 균주를 확보했다는 업체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보톡스 세계 시장이 4조 원대로 성장하자 너도나도 보톡스 시장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업체들이 보툴리눔 균주를 도대체 어떻게 구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업체들이 서로 균주 도난 의혹까지 제기하고 나서며 논란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대량 살상 무기로 쓸 수 있는 보툴리눔 세균이 정부의 통제 하에서 벗어난 건 아닌지, 그래서 범죄 집단이나 테러 단체까지 균주 확보에 나서는 게 아닌지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
1995년 일본 도쿄 지하철에서 벌어진 옴진리교 신도들의 가스 테러.
13명이 숨지고, 6천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당시 테러에는 사린 가스와 함께 보툴리눔이라 불리는 독소도 사용됐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맹독성 물질.
보툴리눔 독소는 1그램으로 100만 명을 동시에 살상할 수 있습니다.
극미량이라도 흡입하면 폐 근육이 마비돼 숨을 못 쉬고 죽는 겁니다.
[신행섭 보건연구관/질병관리본부]
"기본적으로는 신경 마비 질환으로, 뇌신경 마비, 이완성 신경 마비 그런 게 특징적이라고 합니다."
1930년대 일본 731부대가 치사량을 알아보기 위해 죄수들에게 먹였다는 기록이 있고, 미국과 독일도 1940년대부터 보툴리눔으로 생물 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도 보툴리눔 무기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보톨리눔이 있을까.
지난 5월, 부산에서 생물 무기 훈련장 반대 집회가 열렸습니다.
주한 미군이 올해 말까지 부산의 한 부두에 훈련 실험장을 만들기로 했고, 여기서 진행되는 실험에 보툴리눔이 포함됩니다.
[김영규/공보관 주한미군사령부 ]
"군사항으로 쓸 수도 있고 부산의 인구밀집 지역에 가깝고, 그래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본 거죠."
주한 미군은 실제 세균 시료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주민들과 시민단체는 믿을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최광섭/대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350만 명이 살고 있는 도시 중심에 8부두가 있는데 이 8부두에 생화학 무기 실험실이 있다는 건 부산시민들에게는 치명적입니다."
보툴리눔 세균은 이처럼 생물 무기와 고 위험성 병원체로 분류가 돼 있어 국가 간 이동이 엄격히 제한되고, 그래서 아무나 구할 수도 없는 무서운 물질입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이 보툴리눔 균을 확보했다는 업체들이 여기저기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보툴리눔 균을 정제하면 미용 시술용 약품인 보톡스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위험한 물질을 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석연치 않다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보톡스를 생산하는 한 업체 공장입니다.
직원이 아니면 건물에 접근이 불가능하고, 직원들도 각자 허용된 구역이 아니면 아무 데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창지/본부장 휴젤]
"(본부장님도 못 들어가요?) 네 저도 못 들어가죠. 여긴 생산 구역이라서요."
외부인은 행동 교육을 받은 뒤 옷을 모두 갈아입어야 공장 출입이 가능하고, 모든 출입자는 각 구역을 드나들 때마다 분 단위로 출입 사실을 기록해야 합니다.
핵심 시설은 보툴리눔 균주를 보관하고 있는 초저온 냉동고.
여기까지 오려면 모두 여섯 번의 통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그나마도 균주에 접근 가능한 직원은 단 2명뿐이고, 이 2명이 동시에 있어야 냉동고를 열 수 있습니다.
모든 시설은 CCTV로 24시간 감시하고, 영상은 영구 보존되기 때문에 균주가 유출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게 업체 설명입니다.
[권순우 부사장/휴젤]
"왜냐면 접근 권한이나 열 수 있는 키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열쇠 들고 와서 열면 되잖아요?) 열쇠가 또 별도로 보관되고 있습니다. 별도의 책임자가 (다 공모하면요?) 다 공모를 할 경우에도 내부 시스템에 언제 오픈을 했고 열렸다는 로그가 남게 돼 있고."
이렇게까지 보안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균주는 보톡스의 원재료라 핵심 자산이고, 외부로 유출되면 생물 무기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권순우 부사장/휴젤]
"균주 관리는 가장 중요한 바이오 회사의 기술이라고 봐야 될 것 같습니다. 법적으로 질병관리본부 심지어 핵심 국가 기술이기 때문에 국정원에서도 관리를 받고 있고요."
그렇다면, 이 업체는 보툴리눔 균을 어디서 구했을까.
업체 측은 지난 2002년, 콩 통조림에서 균주를 채취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 경쟁 회사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수십 년 전이면 몰라도 멸균 처리를 철저히 하는 요즘엔 통조림에서 보툴리눔 균이 발견되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더구나 이게 사실이라면 같은 날 같은 곳에서 생산된 다른 통조림에서도 균이 나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현호 대표/메디톡스]
"같은 원재료를 가지고 수백 개 수천 개를 만드는 프로세스가 있을 텐데, 그중에 한두 개만 오염돼 있진 않을 겁니다. 그 오염된 통조림이 전국의 푸드 체인을 통해서 뿌려졌다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거고요."
이에 대해 휴젤 측은 통조림에서 균주를 얻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며, 경쟁사에 대한 음해라고 반박합니다.
[김도현 이사/휴젤]
"타 경쟁사들이 자기보다 앞서 가거나 아니면 자기의 시장을 빼앗는 것을 방해하기 위한 음해 목적이 강하다는 것이 저희의 생각입니다."
업계 3위 업체 대웅제약도 비슷한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대웅제약은 공장 주변에 있는 축사 근처의 토양에서 보툴리눔 균주를 발견했다고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했습니다.
[이봉용 부사장/대웅제약]
"저희는 토양에서 분리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노력을 거쳐서 저희가 제품으로써 개발을 했고요."
하지만, 경쟁사인 메디톡스는 이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대웅제약이 자신들의 균주를 훔쳐간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대웅제약이 공개한 보툴리눔 균주 독소의 DNA 염기 서열이 메디톡스 균주 독소의 염기 서열과 완벽히 일치한다는 겁니다.
[정현호 대표/메디톡스]
"마구간(토양)에서 찾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건 제가 학자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이건 정말 벼락을 몇 번 맞을 확률이라는 거죠."
보툴리눔 권위자인 미국 위스콘신 대학 에릭 존슨 교수도 의심스럽다고 말합니다.
메디톡스의 균주는 미국 위스콘신 대학 연구팀이 1908년에 미국에서 채취한 균주인데,
100년 후에 수천km 떨어진 한국의 토양에서 DNA 구조가 같은 세균이 발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겁니다.
[에릭 존슨 교수/미국 위스콘신 대학]
"A형 균주(메디톡스 균주)가 1908년에 분리됐는데, 그 균주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보존됐는지는 알 수가 없네요.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보툴리눔 독소증이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에 한두 번밖에 없는 걸로 아는데. 그래서 한국 토양에는 많이 퍼져있지 않은 겁니다."
하지만, 대웅제약은 자신들이 공개한 염기서열은 독소 부분의 만 2천 개뿐이고, 균주의 전체 DNA는 380만 개에 달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동일한 균주라고 단정할 순 없다고 반박합니다.
그러면서도 전체 380만 개 염기 서열은 훗날 공개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봉용 부사장/대웅제약]
"글로벌 (시장) 진출 때문에 많은 리소스(재원)가 들어가고 그러는 상황에서 지금은 사실 이것(DNA 공개)에 집중할 생각이 없고요. 일단 적절한 시점에 그것(미국 FDA 승인)이 완료되는 시점쯤에 법정에서 한번 다퉈볼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문제 제기에 나선 메디톡스는 보툴리눔 균주를 어떻게 구했을까?
메디톡스는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수학 중이던 양규환 박사가 1979년 귀국하면서 균주를 들여왔고, 양 박사의 제자였던 메디톡스 현 사장이 이 균주를 받아 보톡스 생산에 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휴젤과 대웅제약은 양 박사가 과거 한 방송에 출연해 균주를 가방에 넣어 들여왔다고 말한 내용을 지적하며, 메디톡스야말로 미국에서 훔쳐온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김도현 이사/휴젤]
"본인들 주장에 따르면 법제가 완비되기 전에 미국의 한 대학으로부터 자기네의 균주를 그냥 가져왔다 이렇게만 주장하고 있는 어떤 회사가..."
[이봉용 부사장/대웅제약]
"본인(양 박사)이 가서 훔쳐온 균주를 가지고 본인이 식약청장으로 있을 때 허가를 진행한 거는 모양이 매우 안 좋죠. 여러 가지 의혹의 소지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메디톡스는 1979년 당시엔 미국에도 국가 간 이동을 금지하는 법률이 없었기 때문에 위법이 아니며
위스콘신 대학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에릭 존슨 교수/미국 위스콘신 대학]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엔 균주를 보내거나 한국이나 다른 타국으로 가져가는 것에 대한 이런 규제가 없었거든요."
결국, 국내에서 보톡스를 생산하는 3개 업체 모두 균주의 출처가 의심스럽다며 서로 싸우는 상황입니다.
이들의 다툼을 업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분쟁쯤으로 외면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만일 보툴리눔 균주가 비정상적인 경로로도 쉽게 구해질 수 있다면 범죄 집단이나 테러 단체에게 흘러들어 가는 상황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프랑스, 독일의 글로벌생산업체 3곳이 4조 원대 세계시장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우리나라와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의 업체 등이 후발주자로 보톡스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업체들이 손에 꼽을 만큼 적은 건 균주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보툴리눔 균주를 확보했다는 업체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2580이 확인한 것만 9곳, 업체들을 찾아가서 균주를 어떻게 확보했는지 물어봤지만, 출처를 밝히는 곳은 없었습니다.
[H 업체]
"그동안의 입장은 저희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게. 저희는 상용화 전이니까 아예 내용 자체 언급 안 하는 걸로 좀 부탁을 드리는 거예요."
[A 업체]
"큰 문제가 없다고 보시면 되고요. 자세한 사항은 제가 말씀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서요."
2580은 이 업체들이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한 내역을 확보했습니다.
한 업체는 국내 인공호수 주변의 토양에서 채취했다고 신고했고, 2개 업체는 강원도에 있는 B 업체로부터 이전받았다고 신고했습니다.
균주를 제공했다는 B 업체를 찾아가 봤습니다.
[B 업체]
"(균주를 어떻게 구하셨는지?)그건 잘 모르겠고요. 질병관리 본부에 신고한 내역이 있으니까 그거 보시면 되고요. 저희들은 이제 폐기를 할 거고요. 저희는 사업 안 해요."
큰 규모의 공장들은 보안 프로그램에 따라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적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상대적으로 보안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균의 특성상 옷에 묻혀 나올 수도 있고, 공항이나 항만에서도 극미량이라 탐지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현호 사장/메디톡스]
"이게 아웃브레이크(발생)가 나야 알 수 있는 거지. 지금 기자님 단추 끝에다 살짝만 묻혀 오는 거 그런 건 어떻게 잡아내겠습니까? 탐지견이 잡아낼 정도도 안 되죠."
실제로 보톡스 사업을 하기 위해 보툴리눔 균주를 찾고 있다는 한 피부과 전문의는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김 OO/피부과 전문의]
"1990년대까지는 국내에서 A 타입 균주 나오지도 않았거든요. 근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죠. 하필 우리나라에서만. 희한하죠."
이상한 건 우리 보건당국의 태도입니다.
질병관리본부는 업체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했더라도 현재로선 이를 검증할 방법도 없고, 확인해야 할 법적 근거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업체들이 뭐라고 신고하든 그대로 믿고 허가만 내주고 있는 겁니다.
[신행섭/보건연구관 질병관리본부]
"(균주 출처의) 진위 여부를 아는 사항은 저희의 소관 사항도 아니지만 그것은 거의 수사에 대한 사항 정도까지 해야 되지 않느냐."
미국에선 보툴리눔을 보유하려면 질병관리본부와 보건사회복지부 등 4개 정부부처의 엄격한 관리 심사를 거쳐야 하고, 혹시 테러 단체와 연관이 있는 건 아닌지 법무부의 심사까지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보유하기 힘들지만, 우리나라에선, 범죄 전력을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도 없고, 균주를 보유하거나 관리하는 사람에 대한 자격 요건도 미비한 수준입니다.
[신행섭/보건연구관 질병관리본부]
"현재 지금 관리자에 대한 자격 기준이 없습니다. 또 국민들이 걱정하는 사안들이 여러 가지가 있으니 그런 부분에서 좀 더 강화할 수 있는 부분을 모색하려고 합니다."
미용 재료이면서 대량 살상무기가 될 수 있는 극과 극의 두 얼굴을 가진 보툴리눔 균.
[서구일 외래교수/서울대 의대 피부과]
"균주가 지금 마구 돌아다니고 있다는 거죠. 그것이 누구 손에 갈지 모르니까 그게 걱정이 되는 것이지."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엄청난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제도의 정비와 철저한 사후 관리가 동시에 필요해 보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독소’라는 표현에 걸맞게 고위험 병원체로 지정되어 있고, 국제적으로는 생물무기금지 협약상 국가 간 이동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 이 보툴리눔 균주를 확보했다는 업체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보톡스 세계 시장이 4조 원대로 성장하자 너도나도 보톡스 시장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업체들이 보툴리눔 균주를 도대체 어떻게 구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업체들이 서로 균주 도난 의혹까지 제기하고 나서며 논란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대량 살상 무기로 쓸 수 있는 보툴리눔 세균이 정부의 통제 하에서 벗어난 건 아닌지, 그래서 범죄 집단이나 테러 단체까지 균주 확보에 나서는 게 아닌지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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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일본 도쿄 지하철에서 벌어진 옴진리교 신도들의 가스 테러.
13명이 숨지고, 6천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당시 테러에는 사린 가스와 함께 보툴리눔이라 불리는 독소도 사용됐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맹독성 물질.
보툴리눔 독소는 1그램으로 100만 명을 동시에 살상할 수 있습니다.
극미량이라도 흡입하면 폐 근육이 마비돼 숨을 못 쉬고 죽는 겁니다.
[신행섭 보건연구관/질병관리본부]
"기본적으로는 신경 마비 질환으로, 뇌신경 마비, 이완성 신경 마비 그런 게 특징적이라고 합니다."
1930년대 일본 731부대가 치사량을 알아보기 위해 죄수들에게 먹였다는 기록이 있고, 미국과 독일도 1940년대부터 보툴리눔으로 생물 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도 보툴리눔 무기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보톨리눔이 있을까.
지난 5월, 부산에서 생물 무기 훈련장 반대 집회가 열렸습니다.
주한 미군이 올해 말까지 부산의 한 부두에 훈련 실험장을 만들기로 했고, 여기서 진행되는 실험에 보툴리눔이 포함됩니다.
[김영규/공보관 주한미군사령부 ]
"군사항으로 쓸 수도 있고 부산의 인구밀집 지역에 가깝고, 그래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본 거죠."
주한 미군은 실제 세균 시료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주민들과 시민단체는 믿을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최광섭/대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350만 명이 살고 있는 도시 중심에 8부두가 있는데 이 8부두에 생화학 무기 실험실이 있다는 건 부산시민들에게는 치명적입니다."
보툴리눔 세균은 이처럼 생물 무기와 고 위험성 병원체로 분류가 돼 있어 국가 간 이동이 엄격히 제한되고, 그래서 아무나 구할 수도 없는 무서운 물질입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이 보툴리눔 균을 확보했다는 업체들이 여기저기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보툴리눔 균을 정제하면 미용 시술용 약품인 보톡스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위험한 물질을 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석연치 않다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보톡스를 생산하는 한 업체 공장입니다.
직원이 아니면 건물에 접근이 불가능하고, 직원들도 각자 허용된 구역이 아니면 아무 데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창지/본부장 휴젤]
"(본부장님도 못 들어가요?) 네 저도 못 들어가죠. 여긴 생산 구역이라서요."
외부인은 행동 교육을 받은 뒤 옷을 모두 갈아입어야 공장 출입이 가능하고, 모든 출입자는 각 구역을 드나들 때마다 분 단위로 출입 사실을 기록해야 합니다.
핵심 시설은 보툴리눔 균주를 보관하고 있는 초저온 냉동고.
여기까지 오려면 모두 여섯 번의 통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그나마도 균주에 접근 가능한 직원은 단 2명뿐이고, 이 2명이 동시에 있어야 냉동고를 열 수 있습니다.
모든 시설은 CCTV로 24시간 감시하고, 영상은 영구 보존되기 때문에 균주가 유출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게 업체 설명입니다.
[권순우 부사장/휴젤]
"왜냐면 접근 권한이나 열 수 있는 키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열쇠 들고 와서 열면 되잖아요?) 열쇠가 또 별도로 보관되고 있습니다. 별도의 책임자가 (다 공모하면요?) 다 공모를 할 경우에도 내부 시스템에 언제 오픈을 했고 열렸다는 로그가 남게 돼 있고."
이렇게까지 보안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균주는 보톡스의 원재료라 핵심 자산이고, 외부로 유출되면 생물 무기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권순우 부사장/휴젤]
"균주 관리는 가장 중요한 바이오 회사의 기술이라고 봐야 될 것 같습니다. 법적으로 질병관리본부 심지어 핵심 국가 기술이기 때문에 국정원에서도 관리를 받고 있고요."
그렇다면, 이 업체는 보툴리눔 균을 어디서 구했을까.
업체 측은 지난 2002년, 콩 통조림에서 균주를 채취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 경쟁 회사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수십 년 전이면 몰라도 멸균 처리를 철저히 하는 요즘엔 통조림에서 보툴리눔 균이 발견되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더구나 이게 사실이라면 같은 날 같은 곳에서 생산된 다른 통조림에서도 균이 나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현호 대표/메디톡스]
"같은 원재료를 가지고 수백 개 수천 개를 만드는 프로세스가 있을 텐데, 그중에 한두 개만 오염돼 있진 않을 겁니다. 그 오염된 통조림이 전국의 푸드 체인을 통해서 뿌려졌다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거고요."
이에 대해 휴젤 측은 통조림에서 균주를 얻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며, 경쟁사에 대한 음해라고 반박합니다.
[김도현 이사/휴젤]
"타 경쟁사들이 자기보다 앞서 가거나 아니면 자기의 시장을 빼앗는 것을 방해하기 위한 음해 목적이 강하다는 것이 저희의 생각입니다."
업계 3위 업체 대웅제약도 비슷한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대웅제약은 공장 주변에 있는 축사 근처의 토양에서 보툴리눔 균주를 발견했다고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했습니다.
[이봉용 부사장/대웅제약]
"저희는 토양에서 분리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노력을 거쳐서 저희가 제품으로써 개발을 했고요."
하지만, 경쟁사인 메디톡스는 이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대웅제약이 자신들의 균주를 훔쳐간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대웅제약이 공개한 보툴리눔 균주 독소의 DNA 염기 서열이 메디톡스 균주 독소의 염기 서열과 완벽히 일치한다는 겁니다.
[정현호 대표/메디톡스]
"마구간(토양)에서 찾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건 제가 학자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이건 정말 벼락을 몇 번 맞을 확률이라는 거죠."
보툴리눔 권위자인 미국 위스콘신 대학 에릭 존슨 교수도 의심스럽다고 말합니다.
메디톡스의 균주는 미국 위스콘신 대학 연구팀이 1908년에 미국에서 채취한 균주인데,
100년 후에 수천km 떨어진 한국의 토양에서 DNA 구조가 같은 세균이 발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겁니다.
[에릭 존슨 교수/미국 위스콘신 대학]
"A형 균주(메디톡스 균주)가 1908년에 분리됐는데, 그 균주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보존됐는지는 알 수가 없네요.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보툴리눔 독소증이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에 한두 번밖에 없는 걸로 아는데. 그래서 한국 토양에는 많이 퍼져있지 않은 겁니다."
하지만, 대웅제약은 자신들이 공개한 염기서열은 독소 부분의 만 2천 개뿐이고, 균주의 전체 DNA는 380만 개에 달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동일한 균주라고 단정할 순 없다고 반박합니다.
그러면서도 전체 380만 개 염기 서열은 훗날 공개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봉용 부사장/대웅제약]
"글로벌 (시장) 진출 때문에 많은 리소스(재원)가 들어가고 그러는 상황에서 지금은 사실 이것(DNA 공개)에 집중할 생각이 없고요. 일단 적절한 시점에 그것(미국 FDA 승인)이 완료되는 시점쯤에 법정에서 한번 다퉈볼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문제 제기에 나선 메디톡스는 보툴리눔 균주를 어떻게 구했을까?
메디톡스는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수학 중이던 양규환 박사가 1979년 귀국하면서 균주를 들여왔고, 양 박사의 제자였던 메디톡스 현 사장이 이 균주를 받아 보톡스 생산에 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휴젤과 대웅제약은 양 박사가 과거 한 방송에 출연해 균주를 가방에 넣어 들여왔다고 말한 내용을 지적하며, 메디톡스야말로 미국에서 훔쳐온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김도현 이사/휴젤]
"본인들 주장에 따르면 법제가 완비되기 전에 미국의 한 대학으로부터 자기네의 균주를 그냥 가져왔다 이렇게만 주장하고 있는 어떤 회사가..."
[이봉용 부사장/대웅제약]
"본인(양 박사)이 가서 훔쳐온 균주를 가지고 본인이 식약청장으로 있을 때 허가를 진행한 거는 모양이 매우 안 좋죠. 여러 가지 의혹의 소지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메디톡스는 1979년 당시엔 미국에도 국가 간 이동을 금지하는 법률이 없었기 때문에 위법이 아니며
위스콘신 대학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에릭 존슨 교수/미국 위스콘신 대학]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엔 균주를 보내거나 한국이나 다른 타국으로 가져가는 것에 대한 이런 규제가 없었거든요."
결국, 국내에서 보톡스를 생산하는 3개 업체 모두 균주의 출처가 의심스럽다며 서로 싸우는 상황입니다.
이들의 다툼을 업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분쟁쯤으로 외면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만일 보툴리눔 균주가 비정상적인 경로로도 쉽게 구해질 수 있다면 범죄 집단이나 테러 단체에게 흘러들어 가는 상황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프랑스, 독일의 글로벌생산업체 3곳이 4조 원대 세계시장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우리나라와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의 업체 등이 후발주자로 보톡스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업체들이 손에 꼽을 만큼 적은 건 균주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보툴리눔 균주를 확보했다는 업체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2580이 확인한 것만 9곳, 업체들을 찾아가서 균주를 어떻게 확보했는지 물어봤지만, 출처를 밝히는 곳은 없었습니다.
[H 업체]
"그동안의 입장은 저희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게. 저희는 상용화 전이니까 아예 내용 자체 언급 안 하는 걸로 좀 부탁을 드리는 거예요."
[A 업체]
"큰 문제가 없다고 보시면 되고요. 자세한 사항은 제가 말씀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서요."
2580은 이 업체들이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한 내역을 확보했습니다.
한 업체는 국내 인공호수 주변의 토양에서 채취했다고 신고했고, 2개 업체는 강원도에 있는 B 업체로부터 이전받았다고 신고했습니다.
균주를 제공했다는 B 업체를 찾아가 봤습니다.
[B 업체]
"(균주를 어떻게 구하셨는지?)그건 잘 모르겠고요. 질병관리 본부에 신고한 내역이 있으니까 그거 보시면 되고요. 저희들은 이제 폐기를 할 거고요. 저희는 사업 안 해요."
큰 규모의 공장들은 보안 프로그램에 따라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적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상대적으로 보안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균의 특성상 옷에 묻혀 나올 수도 있고, 공항이나 항만에서도 극미량이라 탐지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현호 사장/메디톡스]
"이게 아웃브레이크(발생)가 나야 알 수 있는 거지. 지금 기자님 단추 끝에다 살짝만 묻혀 오는 거 그런 건 어떻게 잡아내겠습니까? 탐지견이 잡아낼 정도도 안 되죠."
실제로 보톡스 사업을 하기 위해 보툴리눔 균주를 찾고 있다는 한 피부과 전문의는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김 OO/피부과 전문의]
"1990년대까지는 국내에서 A 타입 균주 나오지도 않았거든요. 근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죠. 하필 우리나라에서만. 희한하죠."
이상한 건 우리 보건당국의 태도입니다.
질병관리본부는 업체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했더라도 현재로선 이를 검증할 방법도 없고, 확인해야 할 법적 근거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업체들이 뭐라고 신고하든 그대로 믿고 허가만 내주고 있는 겁니다.
[신행섭/보건연구관 질병관리본부]
"(균주 출처의) 진위 여부를 아는 사항은 저희의 소관 사항도 아니지만 그것은 거의 수사에 대한 사항 정도까지 해야 되지 않느냐."
미국에선 보툴리눔을 보유하려면 질병관리본부와 보건사회복지부 등 4개 정부부처의 엄격한 관리 심사를 거쳐야 하고, 혹시 테러 단체와 연관이 있는 건 아닌지 법무부의 심사까지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보유하기 힘들지만, 우리나라에선, 범죄 전력을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도 없고, 균주를 보유하거나 관리하는 사람에 대한 자격 요건도 미비한 수준입니다.
[신행섭/보건연구관 질병관리본부]
"현재 지금 관리자에 대한 자격 기준이 없습니다. 또 국민들이 걱정하는 사안들이 여러 가지가 있으니 그런 부분에서 좀 더 강화할 수 있는 부분을 모색하려고 합니다."
미용 재료이면서 대량 살상무기가 될 수 있는 극과 극의 두 얼굴을 가진 보툴리눔 균.
[서구일 외래교수/서울대 의대 피부과]
"균주가 지금 마구 돌아다니고 있다는 거죠. 그것이 누구 손에 갈지 모르니까 그게 걱정이 되는 것이지."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엄청난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제도의 정비와 철저한 사후 관리가 동시에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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