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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정성기 기자

제동 걸린 '수리온'

제동 걸린 '수리온'
입력 2016-12-05 11:19 | 수정 2016-12-0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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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의 개발 기간, 1조 3천억 원이 투입된 국산 헬기 ‘수리온’입니다.

    2013년부터 전력화에 착수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1번째로 독자 헬기 보유국이 됐습니다.

    정부는 당초 이 헬기가 군과 관용헬기 등으로 납품되면 12조 원의 경제 파급 효과와 5만여 명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내다봤지만 그 야심 찬 계획은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소방 등 헬기를 써야 하는 부처에서 수리온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시 소방본부는 특혜 입찰 의혹에 휘말리면서까지 비싼 이태리 헬기를 선호하고 있고, 육군에서조차 도입 계획이 일부 중단되는 등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수리온의 성능 문제인가, 국산 헬기에 대한 불신인가, 국산헬기 수리온이 기로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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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전날개를 힘차게 돌리며 이륙 준비를 하는 헬리콥터.

    서서히 떠올라 저공비행을 하면서 가볍게 몸을 풉니다.

    이내 하늘로 솟구쳐 올라 산악지역과 도심 상공을 가로지릅니다.

    국산 헬기 '수리온'.

    이 헬기는 군 환자후송용으로 개조됐는데, 이처럼 목적에 맞게 기체구조와 장비를 바꿀 수 있는 헬기를 '파생형 헬기'라고 합니다.

    [오상철 상무/한국항공우주산업 회전익개발본부]
    "보통 헬기 개발국에서는 다 그렇지만 민수에서 군수로 만들든지 아니면 군수에서 다양한 임무가 가능한 파생 헬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수리온이 탄생한 건 2012년 6월.

    공기업인 한국항공우주산업, KAI가 프랑스 기술을 도입해 개발에 착수한 지 6년 만에 만들었습니다.

    수리온의 첫 실전배치를 기념하는 행사.

    대통령은 창조경제의 신성장동력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수리온 전력화 행사 2013.05.22]
    "수리온 전력화는 우리 국방과학기술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입증한 쾌거이고 앞으로 우리 군의 항공전력 강화와 방위산업 수출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1조 3천억 원을 들여 개발한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

    이 헬기를 개발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 11번째 헬기 개발국이 됐습니다.

    정부는 당초 이 헬기를 군과 관용 헬기 등으로 납품하면 12조 원의 경제 파급효과, 5만여 명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걸로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이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난 8월 열린 서울시의회 시정질문.

    서울시의 소방헬기 도입을 놓고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김희걸 서울시의원 서울특별시의회 시정질문/8.29]
    "국산 헬기 수리온의 입찰을 배제하기 위한 입찰 규격이고, 이는 특정 헬기를 내정하면서 도입 추진하기 위한 방법이 아닌지 의심이 드는데요."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특별시의회 시정질문/8.29]
    "의원님 말씀처럼 가능하면 국산 헬기 쓰는 게 좋겠죠. 그런데 이제 소방헬기는 정말 비상시기에 시민의 생명을 구하는 아주 굉장히 중요한..."

    서울소방재난본부 119특수구조단이 보유한 헬기는 석 대.

    이 중 도입한 지 26년이 지난 노후 헬기 한 대를 바꾸려고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수리온은 입찰에 끼지도 못했습니다.

    이유는 수리온이 가장 중요한 안전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

    서울소방본부가 제시한 입찰 핵심조건은 두 가지.

    첫째, 설계부터 운항단계까지 국토교통부가 안전성을 인정했다는 증명서가 있어야 하고,

    둘째, 헬기에 달린 2개의 엔진 중에 한 개가 고장 났을 때 남은 엔진만으로도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지를 따지는 국제민간항공기구의 안전기준, 이른바 '카테고리 A'를 통과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수리온은 이런 입찰조건을 아무것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권태미 과장/서울소방재난본부 행정지원과]
    "일반적으로 물건을 팔 때 '자 우리 이런 제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모든 자격 증명이 됩니다'. 증명서를 다 제출해 놓고 '사주십시오' 하는게 일반적인 관례지 않습니까? 저희들은 수리온이 납품한다고 하는 소방헬기가 어떤 구조인지, 어떻게 안전성이 확보되는 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왜 그럴까?

    수리온이 그때그때 용도에 맞춰 개조할 수 있는 파생형 헬기라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그에 필요한 인증절차를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2006년 수리온 개발 당시, 군용으로 개발된 수리온을 별도의 인증 없이도 민간용으로 팔 수 있을 것으로 너무 쉽게 생각한 겁니다.

    [안영수 선임연구위원 산업연구원 방위산업팀]
    "(수리온은) 말은 민군 겸용으로 쓸 수 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개발에 대한 자금이 투입된 목표나 내용 자체가 민수용은 배제된 상태에서 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 거고요. 민군 겸용 동시 개발을 해야 된다고 계속 우리 정책 연구자들은 주장을 했는데 정부에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죠."

    하지만 카이측은 서울소방본부가 처음부터 국산헬기를 배제하려고 과도한 조건을 내걸었다고 주장합니다.

    엔진이 고장 났을 때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는 성능은 수리온도 검증을 받았는데, 단지 검증기관이 국토부가 아니라 방위사업청이라는 이유로 입찰자격도 주지 않아 억울하다는 겁니다.

    [김동곤 조종사/한국항공우주산업 개발시험]
    "캣A(카테고리A)는 엔진이 두 개인 항공기가 한쪽 엔진이 고장 났을 때 그 상황에서 계속 증속해서 이륙을 하든지 아니면 이륙을 포기하고 착륙을 하든지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게 캣A 등급에 대한 인증이거든요. 성능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 게 아니에요. 시험하는 절차예요."

    제주소방본부와 경찰청, 산림청 등도 이런 안전성을 인정해 수리온을 구매했거나 계약을 맺었는데, 서울소방본부만 유독 안전성 문제를 꼬투리 잡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김동곤 조종사/한국항공우주산업 개발시험]
    "만약에 이 배행기가 안전하지 않다면 그런 군이나 기관에서 운용하는 사람들은 뭐가 되는 겁니까? 그건 논리가 안 맞아요. 안전성 때문에 우리 비행기가 안 된다? 다른 이유라면 모르겠지만 우리 비행기는 안전성이나 편의성 측면에서는 어디에 내놔도 떨어지는 비행기는 아닙니다."

    이 때문에 서울소방본부가 너무 외국산 헬기만 고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옵니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업체는 견적서 제출 기한을 석 달 가까이 넘겼고, 입찰 필수 서류인 '한글 제안서'를 평가 과정에서 누락했는데도 서울소방측은 이 업체와 최종 계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장정숙 의원/국회안전행정위원회]
    "입학 원서를 내는 날짜도 안 지켰어요, 거기는. 그죠? 그 다음에 원서의 내용에 맞추지도 않았어. 그런데도 뭐라 그럴까요. 거기에 맞춰서 서울소방 측에서는 (이탈리아 업체에) 모든 혜택을 줍니다."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탈리아산 AW-189 기종의 가격은 340억 원, 수리온과 비교하면 90억 원이 더 비쌉니다.

    [장정숙 의원/국회안전행정위원회]
    "지금 서울시가 이자를 하루에 얼마 물고 있는지 아십니까? 25억 입니다. 그런데 340억짜리 헬기를 구입을 하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하면 서울시에서 굉장히 신중을 기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서울소방본부는, 일부러 수리온에게 불리한 조건을 내건 게 아니라고 반박합니다.

    작전완수를 우선시하는 군용 헬기와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민간 헬기는 애초에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최정환 기장/서울119특수구조단 소방항공대]
    "미국 같은 경우에도 군에서 사용했던 항공기, 즉 비행기나 헬기들이 민수용으로 전환하고자 했을 때 이럴 때는 기본조건이 있는 것이 헬기가 군용으로써 최소 10년 이상 안정적으로 운용한 후에 민수용으로 전환할 수 있다."

    또, 소방대원은 물론 시민들의 생명까지 걸려있는 만큼 안전을 강조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최정환 기장/서울119특수구조단 소방항공대]
    "천만 대도심과 금지공영 내에서 임무수행을 하는 저희 항공대 입장에서는 현장이 곧 전쟁터이고 이런 전장 상황에서 저희가 안전하게 임무 수행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성능과 안전성은 기본입니다."

    지난해 강원소방도 비슷한 이유로 수리온 대신이탈리아 헬기를 도입했고, 부산소방 역시 외국산 헬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수출도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제 와서 민간 헬기용 안전성 검증을 추가로 받으려면 막대한 돈과 시간이 드는데다, 자국에서도 판매가 부진할 경우 외국에 수리온을 사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김대영 연구위원/한국국방안보포럼]
    "수리온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파생형을 만들 수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좀 시장성이 있는 부분만 선택을 해서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아무래도 수리온의 수출이라든가 국내 개발에 있어서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수리온이 외면 받고 있는 건 민간 헬기 분야만은 아닙니다.

    최근엔 친정이라 할 수 있는 군용 헬기 분야에서도 암초를 만나고 있습니다.

    수리온은 애초 육군 병력수송용 헬기로 개발됐습니다.

    이 헬기를 과연 다양한 용도에 맞게 개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개발 초기부터 기술적인 한계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수리온 개발이 시작된 지난 2006년.

    당시 기술이전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프랑스의 유로콥터와 손을 잡고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기술이전 모델은 1970년대에 개발된 구형 헬기였습니다.

    [안승범/편집장 군사전문잡지]
    "(유로콥터는) 자사의 단종된 쿠거 헬기 초기 모델 설계도를 한국에 넘겨줍니다. 국내 업체는 그것을 가지고 개조, 개발을 하게 되는데 기존의 9톤짜리 헬기를 8.7톤으로 줄여서 재설계를 하고 탑승인원은 13명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재설계를 하면서,한국의 설계팀은 원래 모델보다 높이가 낮고 폭이 넓은 모양을, 프랑스 측은 높고 좁은 기존 모양을 고집했습니다.

    결국 설계 변경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프랑스측 의견이 받아들여져 지금의 수리온 모습이 됐는데, 동체가 높은 편이다보니 해군이 활용하기엔 제약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조진수 교수/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
    "해상작전헬기 같은 경우는 독도함처럼 크 배가 아니고 KDX 같은 구축함급 뒤에 갑판을 내리고 격납하고 뜨고 해야 되고 원래 바다라는 게 롤링(흔들림)도 많고 그렇지 않습니까?"

    카이 측은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함정 이착륙에 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헬기를 선상 격납고에 집어넣기 위해 회전날개와 꼬리날개를 자동으로 접는 등의 고난도 기술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안승범/편집장 군사전문잡지]
    "기존의 (해상작전헬기) 개발국들의 사례를 비춰보면 보통 10년, 평균 10년이 소요됐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되고 거기에 관련된 비용도 상당 부분 들어가는 걸로 있습니다."

    기술적인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육군은 10년간 200대 넘는 수리온을 도입하기로 계약을 맺었지만 50여대를 들여온 현재, 납품을 일시 중단했습니다.

    올초 미국에서 진행된 겨울철 비행 안전성 시험에서 수리온이 불합격 판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험은 이른바 체계결빙 시험.

    영상 5도~영하 30도의 저온 다습한 환경에서 비행할 때, 엔진 등 주요 부품에 얼음이 얼마나 끼는지를 평가하는 건데 목표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한 겁니다.

    [조진수 교수/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
    "공학적으로 설계를 해서 테스트 해가면서 충분히 기간하고 돈만 있으면 고칠 수 있는 문제니까 제 생각엔 앞으로 1년 내지 1년 반 정도 지나가게 되면 그 능력은 갖출 거라고 봅니다."

    세계 헬기 시장 매출은 향후 10년간 255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수리온 개발로 헬기 핵심기술을 확보한 우리나라는 앞으로 이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합니다.

    [안영수 선임연구위원 산업연구원 방위산업팀]
    "1차적인 목표는 수입 대체지만 2차적인 목표는 수출 시장으로 나가야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항공기는 대규모 자본 집약적인 산업이고 장치산업에다가 대규모 개발비용을 우리 국민의 세금을 투입해서 한 겁니다."

    성능과 안전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상태에서 그래도 애국심으로 타라고 밀어붙일 수는 없는 일,

    그렇다고 수조 원을 들여 우리 손으로 만든 헬기가 이대로 고사하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습니다.

    [조진수 교수/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
    "우리나라 국산 헬기가 외국하고 경쟁해서 뭐 떨어질 수도 있겠죠. 기술력이 떨어질 수 있고. 좀 그러한 결전의 장을 좀 보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가 박탈되니까. 국산 제품이 외국 제품하고 견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자꾸 없어지는 게 좀 아쉽지 않나."

    독수리의 '수리', 숫자 100을 뜻하는 순우리말 '온'을 합쳐 '100% 국산화를 이룬 하늘의 제왕'이라는 뜻의 수리온.

    그 이름처럼 높이 비상할 수 있을지, 기로에 서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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