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최 훈 기자

김정남 미스터리

김정남 미스터리
입력 2017-02-20 09:55 | 수정 2017-02-20 15:24
재생목록
    외국 공항 한복판에서 신원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여성들에 의해 살해된 북한의 로열 패밀리! 김정남 살해 사건은 국제적으로 큰 충격을 안겼지만 정작 사건의 전말과 배후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용의선상에 오른 6명은 대체 누구이며, 왜 김정남을 그토록 대담한 방법으로 살해했을까요.

    고도로 훈련된 암살단이라면 과연 똑같은 옷을 입고 다시 범행 현장에 나타나 경찰에 체포되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또, 북한은 이번 사건과 얼마나 관련돼 있을까요.

    살해된 피해자가 김정남이라는 것 외엔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

    김정남 살해 사건을 추적합니다.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 출국장.

    젊은 여성 2명이 건장한 체격의 남성에게 접근합니다.

    한 여성이 앞에서 시선을 끌고, 다른 여성은 남성의 뒤에서 목을 제압합니다.

    여성들은 5초도 안 돼 곧바로 달아났고, 남성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30미터 떨어진 안내데스크로 향해 도움을 청했습니다.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고, 입엔 거품을 물고 있었습니다.

    독극물에 중독된 겁니다.

    [라힘/쿠알라룸푸르 공항 관계자]
    "다른 아픈 승객들을 대응할 때와 똑같이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하지만, 이 남성은 병원에 도착도 하기 전, 습격 30여 분만에 숨졌습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었습니다.

    사람이 많고 보안이 철저한 국제공항에서, 그것도 이른 아침에,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젊은 여성 2명에게 암살을 당했는데, 그 피해자는 북한 최고 권력자의 이복형이다.

    첩보영화 같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현지 경찰은 북한을 암살 배후로 지목했지만, 암살 방법과 그 이유 등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점들이 많습니다.

    북한으로부터 늘 암살 위협을 받았던 김정남은 평소 몸조심에 각별했습니다.

    한국 식당에 자주 나타났는데, 그때마다 이상하게 CCTV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CCTV 작동을 막는 장비를 들고 다닌 것으로 추정됩니다.

    [OOO 말레이시아 한인 식당주인]
    "김정남이 딱 있는 동안만 CCTV가 작동 안 되는 거예요. 건물 것도 식당 입구에 바로 하나가 있는데 그것도 작동이 안 돼 가지고 사진을 확보할 수가 없었죠. 그 차단이 되는 시스템을 가방을 항상 들고 다녔는데."

    경호원도 늘 함께 했지만, 공교롭게 이 날은 혼자였습니다.

    사건 발생 직후 말레이시아 경찰은 젊은 여성 2명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그 중 한 명의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하얀색 셔츠에 짧은 치마를 입고, 핸드백을 메고 있었습니다.

    고도로 훈련받은 북한 공작원일 거라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유동열/자유민주연구원장]
    "여성 공작원은 신체적 특성 때문에 나약함 이런 모습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경계감이 약합니다. 그래서 북한뿐만 아니라 국가별 정부기관에서 여성 공작원을 많이 양성합니다."

    그런데 이 여성의 행적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자결도, 잠적도 하지 않고 묵고 있던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호텔 직원]
    "짧은 바지랑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테디베어(곰 인형)를 들고 있었어요. (긴장해 보였나요?) 그냥 괜찮아 보였어요."

    심지어 범행 이틀 뒤 공항에 다시 나타납니다.

    고도로 훈련된 공작원이라고 하기엔 허술하기 짝이 없는 행동, 결국 공항에 있던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더구나 말레이시아엔 북한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잠적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고영환 부원장/국가안보전략 연구소 前 북한 외교관]
    "광부들도 한 3백 명 나가 있고 사이버 전사들도 나가 있고 공작 요원들도 나가 있고 대사관도 나가 있고 숨어 있을 수도 있었는데 왜 그렇게 당당하게 공항에 이틀 만에 나타났다가."

    이 여성은 29살의 베트남 국적이었고, 여권상 이름은 도안 티 흐엉.

    이 여성은 누군가 장난이라고 시켜서 했을 뿐이라고 진술했고, 범행 뒤 호텔에서도 천진난만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현지 경찰은 5초 만에 능숙하게 범행을 완수한데다, 호텔에서 머리를 잘라 변장을 시도한 점 등으로 미뤄 전문 암살범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또 다른 여성 용의자가 체포됐습니다.

    여권상 이름은 시티 아이샤, 25살로 인도네시아 국적이었습니다.

    [말레이시아 경찰]
    "(어디서 체포됐나요?) 마카마 샤할람시요."

    이 여성도 자신은 100달러를 받고 리얼리티 TV 쇼를 촬영하는 걸로 알았을 뿐이라고 진술했습니다.

    범행 당시 공항 식당에는 이 여성들을 지켜보던 남성들이 있었는데,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미 붙잡힌 46살 북한 국적의 리정철을 포함해 최소 5명의 남성이 이번 사건과 관련된 용의자이고, 모두 북한 국적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노르 라시드/말레이시아 경찰 기자회견(오늘)]
    "아까도 말씀드린 대로 (도주한) 4명의 용의자는 북한 사람들입니다."

    현재로선 북한의 암살 조가 배후를 숨기기 위해 외국인 여성을 고용해 청부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지만, 이 여성들 역시 국적만 외국인일 뿐 북한 사람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북한 외교관 출신의 한 전문가는 실제로 외국인처럼 생긴 사람을 공작원으로 뽑는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고영환 부원장/국가안보전략 연구소 前 북한 외교관]
    "(전두환 암살팀을) 15일 동안 가이드 하면서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을 쫓아다녔는데 실제로 행동을 하는 행동대원들은 명령이 취소된 다음에 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입니다. 이렇게 조선말을 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거든요. 제가 보름 동안 데리고 다니면서 일본 사람인 줄 알았고 가지고 있는 여권도 일본 여권이었고."

    심지어 외국인을 납치해서 북한 사람과 결혼시키고, 그 자녀를 공작원으로 키우기도 한다고 합니다.

    [고영환 부원장/국가안보전략 연구소 前 북한 외교관]
    "어린 시절에 북한에 납치됐거나 아니면 성인 여성을 납치해서 들어가서 북한 남자하고 결혼을 해서 낳은 자녀들을 키우는 방법. 그러니까 제가 이번 사건을 보면서 역시 북한의 고전적인 수법이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남의 사인은 여전히 의문에 싸여 있습니다.

    오늘 경찰 발표에서도 독극물 때문이라고만 언급됐을 뿐, 어떤 물질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현재로선 스프레이로 독성 물질을 뿌렸거나 헝겊에 독극물을 묻혀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복어 독인 '테트로도톡신'이나 피마자 식물 독인 '리신', 보톡스의 원재료인 보툴리눔 세균, 또는 'VX 가스' 같은 신경가스라는 각종 추측이 나오지만 전문가들조차 뭐라고 단정하기 힘든 미심쩍은 점이 많다고 말합니다.

    [이덕환 교수/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VX나 사린 가스는 기체물질이고요. 그거를 천에다 묻혀가지고 있기도 힘들고 테트로도톡신(복어 독) 같은 것도 천에 묻혀서 호흡을 통해서 체내로 흡입을 시키기는 쉽지 않아요."

    5초 동안 뿌린 스프레이 때문에 그렇게 빨리 죽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덕환 교수/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밀폐된 방에서) 적어도 수십 초에서 수 분에 이르는 정도 상당 시간 동안 상당한 양을 흡입했을 때 사망에 이르게 되죠. 그렇게 한 두 번 흡입해서 치명적인 손상이 일어날 가능성은 드물고요."

    그 정도로 맹독성 물질이라면 스프레이를 뿌린 사람도, 주변에서 냄새를 맡았다는 사람도 함께 죽을 수밖에 없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도 의문으로 남습니다.

    그렇다면, 그를 암살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 간담회에 참석해 김정은이 권력을 잡은 2012년, 김정남 암살 지시가 내려졌다고 밝혔습니다.

    명령을 취소하기 전엔 계속 유효한 명령인, 이른바 '스탠딩 오더'가 마침내 실행된 거라는 겁니다.

    [김병기 간사/국회 정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2012년 본격적인 시도가 한 번 있었으며 암살 기회를 엿보면서 준비하고 있었고 결국 오랜 노력의 결과로."

    김정남은 김일성의 장손이자 김정일의 장남으로 북한이 중시하는 이른바 백두혈통이고, 어머니는 북한에서 최고 인기를 누렸던 배우 성혜림입니다.

    [후지모토 겐지/前 김정일 요리사(2011)]
    "(성혜림은)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김정일)의 여자로 만든 겁니다."

    반면 김정은의 어머니는 북한에서 2등 국민으로 취급받는 재일교포 출신의 고영희.

    이 때문에 김정은은 출신 콤플렉스가 컸고, 그래서 잠재적인 경쟁자인 김정남을 그냥 두는 게 불안했을 거란 관측입니다.

    [강명도 교수/경기대 북한학과]
    "김정은 정권이 안정됐더라면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김정은의 공포스러운 정치가 북한 고위층들에게 불만이 됐다면 그 대안으로 김정남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마 그 씨를 자르기 위해서."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김정남을 대부분 모르고, 김정남을 보살펴주던 고모부 장성택이 처형된 이후엔 북한에 김정남의 정치 세력도 없는데다 동남아를 떠도는 야인일 뿐이어서 특별히 제거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김정남 2009년 1월 28일 베이징 공항]
    "나는 정치와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그럼 당신 나라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대답하지 않을 겁니다."

    특히 6년 차에 접어든 김정은 정권은 장성택을 비롯해 이미 숙청할 사람들은 거의 제거했고, 경제적으로도 자본주의 요소를 일부 받아들여 거의 매년 1%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김정은 체제가 생각보다 견고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최근 김정남이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린 또 다른 사건이 있었을 거란 주장이 나옵니다.

    [김창수 원장/코리아연구원]
    "밖으로 떠돌아다니면서 뭔가 북한 체제 김정은 체제에 대해서 어떤 비판을 하거나 그래서 북한이 가장 꺼려하는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발언을 했다거나."

    김정남의 망명시도 가능성도 이 대목에서 등장합니다.

    [양무진 교수/북한대학원대학교]
    "지난해 태영호 공사가 탈북해서 한국 들어왔을 때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보면 태영호 공사보다도 더한 것도 있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있었어요. 그렇다면, 상상컨대 김정남 (망명)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잖아요."

    김정일의 마카오 비자금 때문이란 얘기도 흘러나옵니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남이 관리한 이 비자금 규모는 40억 달러, 우리 돈 4조 6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최근 이 비자금을 반납하고 귀국하라고 김정남에게 지시했는데, 김정남이 거부했다는 추측입니다.

    [대북소식통]
    "계속해서 공갈하고 압박하고 오면 다 시켜준다. 설득했는데 지금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까 마지막 소환 명령까지 불응했으니까."

    로열패밀리의 장손이면서도 권력에선 동생에게 철저히 밀려난 뒤 해외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김정남.

    최고급 호텔들을 자주 드나들고 호화 요트를 즐기며,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등 자유분방하고 사치를 즐긴 방탕아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김정남/2007년 2월 12일 베이징]
    "(인기가 많으십니다.) 아 그러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만 혹시 김정남 씨?)"

    한때 아버지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지만 2001년에 도미니카 위조 여권으로 일본 공항에 입국했다 적발된 사건이 김정일의 눈 밖에 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걸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당시 김정남은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어 입국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만큼 한량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는 러시아와 스위스 등에서 정치학 등을 공부하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눈을 떴고.

    [김정남/ 2007년 2월 12일 베이징]
    "아시다시피 유럽에서 공부해서 (영어와 불어도) 좀 합니다."

    [김정남/ 2007년 11월 13일 파리]
    "(어떻게 불어를 잘합니까?) 내가 유럽에서 공부한 것은 다 알고 있지 않나요."

    일본 기자와 주고받은 150통의 이메일엔 3대 세습을 비판하거나, 경제 개혁 개방을 강조하고, 북한 주민들이 윤택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이 곳곳에서 묻어나고,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해선 남북 관계를 걱정하는 등 북한 사회를 비교적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드러나 있습니다.

    [고미요지 기자/김정남과 이메일 교류(2012년 1월 24일]
    "이미로써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고 노는 거 좋아하는 이미지를 일부러 구축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양무진 교수/북한대학원대학교]
    "뚱뚱하고 둔하고 그렇게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머리가 비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6개국어를 능숙하게 하고 판단 능력이라든지 또는 지식수준을 어느 정도 가진 인물이 아닌가."

    김정은은 이번 사건 이후 첫 공식행사인 아버지 생일 기념 추모식에서 어두운 표정을 드러내 그 배경에 갖가지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암살 사건에 대한 북한의 공식 반응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강철 주 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는 부검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며 즉각 시신을 인도하라고 거세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망명했다 권총에 맞아 숨진 김정은의 사촌 고 이한영 씨와 김정은의 고모부 고 장성택, 그리고 불운의 황태자 김정남까지.

    권력을 위해선 가족도 예외 없이 숙청하는 로열패밀리의 잔혹사가 언제까지 계속 될는지, 나아가 이같은 권력욕이 북한 내부 체제와, 남북 관계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일입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