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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54회 하이라이트] 백선엽은 누구인가?

[스트레이트 54회 하이라이트] 백선엽은 누구인가?
입력 2019-07-03 14:32 | 수정 2019-07-0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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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무장투쟁을 이끌었던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까지 통합된 광복군이
    국군의 모태가 됐다는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

    ◀ S Y N ▶ 문재인 대통령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습니다 /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

    나흘 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백선엽 씨를 전격 방문했습니다.

    ◀ S Y N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 6월 10일
    김원봉이라고 하는 이런 잘못된 사람들이 군의 뿌리가 된 것처럼 얘기하는 이런 것들 참 안타깝게 생각하고 //

    정작 백선엽 씨는 직접적인 반응을 자제했지만,

    ◀ S Y N ▶백선엽 군사편찬연구 자문위원장(예비역 대장)
    자세히 모릅니다만, 이전에 우리 대통령께서 그런 말씀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보도를 통해서 알고 있는 정도입니다 //

    황 대표는 '김원봉의 실체를 알리겠다'며
    백 씨를 국군의 상징적 존재로 부각시킵니다.

    ◀ S Y N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백 장군님께서 우리 군을 세우셨고, 지켜주셨고 / 장군님의 업적이 흔들리지 않도록 우리나라가 굳건하게 지켜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황 대표는 이날 국회의장 주최
    여야 5당대표 오찬 회동과
    6.10 항쟁 기념식에 모두 불참했습니다.

    대신 백선엽 씨를 찾아가
    이른바 '국군의 뿌리' 논쟁을 가열시킨 겁니다.

    ◀ S Y N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백선엽 씨는) 우리나라의 안보를 지켜 오신 분입니다. 다른 부분(친일 행적)에 관해서 그것을 폄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당 차원에서는 이념 대결로 몰아갔습니다.

    ◀ S Y N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 / 6월 13일
    일제 강점기 때 군인이었다는 이유로 친일로 몰아가는 전형적인 좌파 프레임입니다 /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뿌리를 흠집 내기 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

    하지만 독립군을 잡았던 일제의 특수부대, ‘간도특설대' 경력은
    백선엽 씨가 자신의 회고록에서 직접 언급하는 등 명백히 확인된 사실.

    백 씨는 다만 자신이 복무하던 3년간은
    조선인 독립군과 교전한 일이 없다고 선을 그어왔습니다.

    그런데 백 씨의 이런 주장은 어이없게도
    그의 자서전을 통해 뒤집힙니다.

    ◀ S Y N ▶음성대독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조선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조선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 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

    '조선인을 토벌했다'는 고백,
    그러면서도 별다른 책임 의식은 없습니다.

    ◀ S Y N ▶음성대독
    그러나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진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게릴라가 되어 싸웠다면 독립이 빨라졌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이런 내용이 담긴 백 씨의 자서전 두 권은
    1993년과 2000년 각각 출간됐습니다.

    두 차례 모두 일본에서만 출판됐습니다.

    ◀ S Y N ▶이용창 박사 / 민족문제연구소
    만주에서 일본군으로 (복무)했었던 것을 오히려 일본인들에게 자랑스럽게, 나는 충실한 일본 천황의 신민이었다. 그 역할을 다했다(고 쓴 겁니다) //

    일제의 최전선을 누비던 그는
    해방이 되자 활동 무대를 옮깁니다.

    서울로 돌아온 그가 선택한 곳은
    미군정의 영어학교.

    여기서 쌓은 영어 실력을 무기로
    백 씨는 미군 인맥을 넓혔고,

    한국전쟁 중 휴전회담 대표로 나서는 등
    국군의 주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S Y N ▶한홍구 교수 / 성공회대학교
    만주에서부터 축적됐던 이 토벌의 경험이 전수가 돼서. (간도특설대는) 유격전 경험이 풍부하니까 (미군 입장에서는) 그 점을 또 높이 샀던 겁니다 //

    특히 낙동강 방어선을 지킨
    '다부동 전투'의 야전 지휘관으로
    전쟁 영웅의 반열에 오른 끝에

    32살 나이에 육군참모총장,
    우리나라의 첫 4성 장군이 됐습니다.

    ◀ S Y N ▶김성호 명예교수 / 중국 옌볜대학교
    (한국전쟁 당시 정부 입장에서는) 지나간 역사의 친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눈앞의 반공이 더 급하거든요 / 반공을 잘하면 일체의 친일 역사는 문제가 안 되는 겁니다 //

    군복을 벗은 뒤엔 주중대사와 주프랑스 대사,
    교통부 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고,

    그 사이 받은 훈장만 10개에 이릅니다.

    2003년부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 자문위원장으로
    월 2백만 원의 자문료에 사무실과 차량,
    수행비서까지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습니다.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간도특설대'의 조선인 장교에서
    국군의 영웅으로 추앙 받게 된 백선엽 씨.

    하지만 스스로도 인정한 친일 행적에 대해선
    단 한 차례도 수치심이나 죄의식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 S Y N ▶백선엽 예비역 대장 / 1986년 MBC 인터뷰
    나라의 독립을 지키지 않아 가지고는 노예밖에 되지 않습니다 / 자유와 독립을 갖다가 유지해 준, 우리가 그 유지를 갖다가 우리가 계승을 해서 이 나라를 잘 지켜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그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

    지금도 마찬가지일까.

    <스트레이트>는 여러 차례 찾아가고
    서면 질문지까지 전달했지만,
    백 씨는 끝내 답하지 않았습니다.

    ◀ S Y N ▶백선엽 예비역 대장
    지금은 (인터뷰를) 안 하는 게 좋을 듯해요, 지금은. 감사하지만, 익스큐즈(양해)해 주세요.

    일본어판 자서전에서
    "간도특설대는 정예 그 자체였다"며
    "유일한 한국인 무장집단에 근무했다는
    자부심"마저 드러냈던 백선엽 씨.

    교통부장관으로 재임하던 1969년 백 씨는
    일본을 방문해 기념사진 한 장을 남겼습니다.

    그의 옆에 앉은 사람은 이타오 슈지,
    바로 간도특설대 시절 중대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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