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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화장실 갈 때도 보고하고 가라…쿠팡 노동자의 '의무'

[스트레이트] 화장실 갈 때도 보고하고 가라…쿠팡 노동자의 '의무'
입력 2021-02-21 20:51 | 수정 2021-02-2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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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일후 ▶

    하아. 장덕준씨..체중이 15킬로그램이 빠졌다는데..참 안타깝습니다.

    ◀ 성장경 ▶

    그나마 장덕준씨는 산재로 인정받았습니다만 다른 분들 역시 열악한 근무환경,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 게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 허일후 ▶

    그런데 쿠팡이 대응하는 방식.

    혁신 IT 기업이라는 쿠팡 그런데 대응하는 방식은 여느 기업들과 다를 바 없네요.

    일단 '업무하고는 관련이 없는 거다.' 철저하게 부인하고 보네요.

    ◀ 성장경 ▶

    코로나 19로 온라인 쇼핑이 크게 늘면서 쿠팡의 작년 매출도 91%나 증가했다는데.

    두배 가까이 늘어난 거죠.

    그 얘기는 그만큼 물류센터 일도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 이동경 ▶

    네, 제가 만나 본 쿠팡 근로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게 노동 강도가 너무 세다는 거였습니다.

    얼마나 힘들길래 그런 말이 나오는 건지, 제가 직접 물류센터에 일하러 가봤습니다.

    쿠팡 업무관리 앱에 접속해 경기도 부천신선식품센터,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하는 오후조로 일을 신청했습니다.

    쿠팡 셔틀버스로 부천 물류센터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 20분.

    "한 줄로! 뛰지 마시고요. 한 줄로, 한 줄로!"

    똑같은 옷을 입은 채, 관리자들의 고함 소리에 맞춰 작업장 안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안전교육을 받습니다.

    안전교육이 끝나자 포장 공정에 배정됐습니다.

    고객의 주문에 맞춰 분류돼 있는 식품을 선반에서 가져온 뒤, 포장백에 넣고 레일에 실어 보내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포장한 상자들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갑니다.

    늦었으니 조금이라도 서둘러야 합니다.

    저녁 6시 반.

    저녁 식사 한 시간은 쿠팡에서 유일하게 주어지는 휴식 시간입니다.

    그런데, 저녁 시간이 다 끝나기도 전에 물류센터 근로자들이 하나둘 작업장으로 가더니 일을 시작합니다.

    왜 그러는지 물어봤습니다.

    [노동자 A]
    (컨베이어벨트 안 돌아가도 미리미리 (일을) 해놔야 해요?)
    "그냥 서 있으면 (관리자들이) 뭐라 해요. 뭐라고 하고, 느리면 느리다고 방송하잖아요."

    작업 속도 때문이었습니다.

    쿠팡은 노동자들의 작업 성과를 관리하기 위해 UPH라는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UNIT PER HOUR, 즉 시간당 물량 처리 갯수.

    쿠팡에선 개별 노동자의 UPH가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이 수치는 중앙 관리자에게 보고됩니다.

    이 UPH가 낮으면, 현장에서 호출을 당하거나 이후에 일용직 신청이 거부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속도를 끌어 올리려고 쉬는 시간에도 미리 일을 해두는 겁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작업 속도를 중시하는 이유는 '마감' 때문입니다.

    마감은 포장이 완료된 상자가 배송차량에 실려야 하는 시한인데, 오후 조 근무 8시간 동안 마감은 5번, 그러니까 거의 1시간 반마다 찾아옵니다.

    관리자들은 마감을 맞추기 위해 수시로 노동자들의 속도를 채근합니다.

    [관리자 A]
    "조금만 더 빠르게 욕심내서, 속도 좀 빠르게 가보실게요. 사원님들 저희 지금 물량 굉장히 많이 남았습니다."

    한참 일을 하다가 소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일을 다시 시작하자마자 관리자가 다가옵니다.

    저의 작업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상담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관리자 B]
    (앞으로 나오라니 뭔 얘기예요?)
    "앞으로 나오실게요."
    (앞으로 왜 나가야 해요?)
    "저랑 얘기 좀 하시게 앞으로 나오실게요."

    화장실에 다녀왔을 뿐이라며 이의를 제기했더니 더 높은 관리자에게 넘겨졌습니다.

    [관리자 C]
    (아니 노동자가 일하는데, 화장실 간다고 얘기도 드려야 돼요?)
    "보고는 해야죠. 현장을 이탈하실 때는."
    (아니 노동자가 일하다가‥.)
    "노동자 노동자 하시는데, 그게 노동자가 지켜야 할 의무예요."

    남들보다 속도가 얼마나 뒤쳐졌길래 이러는 걸까?

    [관리자 D]
    (성과가 얼마나 떨어졌어요. 지금?)
    "엄청 잘하신 분의 절반인 거고. 사원님이 한 60 나오는 것 같았거든요. 여기는 보통 한 (평균) 90쯤 나와요. 그런 기준으로 말씀드린 거니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고."

    객관적으로 정해진 기준이 아니라 가장 잘하는 사람과 비교해 작업 속도가 늦다는 지적입니다.

    결국, 공정 이동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여러가지 물건을 담는 멀티 포장 대신, 한 가지 종류의 상품만 담는 싱글 포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작업 중에 몇차례 실수가 반복되자 관리자에게서 경고를 받았습니다.

    [관리자 E]
    "사원님! 비검증 하시면 안 돼요!"
    (네, 네.)
    "지금 사원님 한 번만 더 하시면 사관서(사실관계확인서) 쓸 거예요. 진짜!"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냉동식품엔 드라이아이스, 냉장식품엔 아이스팩을 넣어야 하는데 제가 전부 아이스팩만 넣었다는 겁니다.

    [노동자 B]
    "냉동이죠? 드라이아이스가 들어가야 되는데?"
    (아니 근데 전 그런 내용은 따로 못 받았어요. 뭐일 때는 드라이아이스 넣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실수가 반복됐다며 다른 업무를 줬습니다.

    이번엔 포장 박스 접기.

    [관리자 E]
    "사원님은 여기서 백 접어서 팩커한테 공급해주세요."

    속도 측정을 받지 않는 단순 작업입니다.

    잠시 뒤, 또 다른 일거리가 떨어졌습니다.

    빈 상자를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근무 첫날 물류센터 업무 중 4가지나 경험했습니다.

    어느덧 일을 시작한 지 9시간이 지나 종료시간인 새벽 2시가 다가옵니다.

    마지막 마감을 앞두고 관리자들의 목소리도 점점 높아집니다.

    [관리자 F]
    "작업대 해제하세요. 뒤에 있는 사람 전부 다. 작업대 해제하세요. 멀티로 가. 멀티!"

    속도가 나지 않는 라인을 직접 부르며 물품 처리를 재촉하기도 했습니다.

    [관리자 E]
    "이거(바코드) 찍어, 찍어, 찍어. 여기, 여기, 여기. 찍어, 찍어, 찍어, 찍어, 찍어. 2라인, 2라인, 2라인!"

    안전교육 시간엔 작업장 안에서 절대로 뛰지 말라고 강조 했지만, 마감을 앞두고는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2시 정각에 일이 끝났습니다.

    집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4시.

    다음 날 통장엔 9만770원이 들어왔습니다.

    딱 최저임급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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