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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경찰은 왜 소녀의 시체를 몰래 묻었나?

[스트레이트] 경찰은 왜 소녀의 시체를 몰래 묻었나?
입력 2021-06-27 20:48 | 수정 2021-06-27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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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일후 ▶

    네, 영원히 미제로 남을 뻔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을 결국 밝혀냈으니까 경기남부경찰청 미제사건팀 박수를 받을만 합니다.

    아니 그런데! 억울하게 누명 쓰고 20년이나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 이 분의 인생은 도대체 누가 보상해 줍니까?

    ◀ 성장경 ▶

    윤 씨 뿐이 아니죠.

    여러 사람들이 수사를 빌미로 경찰서에 끌려가서 구타를 당하고 가혹행위를 당한 경우가 많았는데요.

    어떻게 보면 당시 불법으로 수사한 그 책임자까지 처벌해야 이 사건이 진짜 끝나는 거 아닐까요?

    ◀ 이지수 ▶

    네, 진범이 밝혀지면서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은 화성연쇄살인사건 전반에 대한 강도 높은 재수사를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그 재수사에서 도저히 믿기 힘든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앞서 보신 김현정양 사건을 둘러싸고 당시 경찰이 어떤 짓을 벌였는지 보시겠습니다.

    김현정 양 실종 5개월만인 지난 1989년 12월 21일 경기 화성경찰서.

    산속에서 김 양 유류품을 발견했다는 주민들이 찾아왔습니다.

    전날 엄모 씨 등 주민 4명은 참새 사냥을 하러 화성시 태안읍 한 야산에 올라갔습니다.

    소나무숲 근처에서 공기총을 메고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사냥꾼들 눈에 빨간색 어린이용 책가방이 보였습니다.

    빨간색 신발주머니와 아동용 슬리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 나뭇가지에 뭔가 걸려있었습니다.

    [당시 유류품 발견 주민]
    "어린이용 속옷이 나뭇가지에 걸려있었습니다. 시커멓게 물이 들은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그 장소에 방치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희 지역에서 살인사건이 자주 일어나 이상한 생각이 들어 신고하였습니다."

    사냥꾼들은 현장을 보자마자 살인 사건을 직감했습니다.

    가방엔 책과 공책이 있었고, 병점국민학교 2학년 김현정이라고 똑똑히 적혀있었습니다.

    흰색 블라우스와 청색 치마, 노란색 줄무늬 티셔츠 등 옷가지도 함께 발견됐고, 속옷엔 혈흔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경찰의 사건처리는 이상하게 흘러갔습니다.

    먼저 유류품 발견 당일, 화성경찰서의 박 모 경사와 최 모 순경이 작성한 수사보고서.

    '김현정 양 소지품이 발견된 야산 현장에 임하여 단서를 찾았으나 특이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적혀있습니다.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속옷, 혈흔 등은 아예 언급이 없습니다.

    다음날 만들어진 종합수사보고서는 한술 더 떠, 터무니없는 추정으로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합니다.

    '가출인의 옷이 신발주머니속에 정리해 넣어져 있는 상태로 보아, 불상자가 가출인의 옷을 새로 구입 내지 사전 준비한 옷을 갈아입힌 후 근처 야산에 버린 것으로 보며, 단순 가출로 사료됨'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
    "단순 가출이라는 거예요. 수사 보고서 누가 이런 이야기를 씁니까? 누군가가 옷을 새로 구입해서 갈아입힌 후에 버린 것으로 보인다는 거잖아요. 이거는 소설이잖아요. 아니 수사를 해야지 왜 소설을 써요."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범죄 피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특이사항 없다고 결론을 낼 수밖에 없는 그런 내부적인 어떤 의사결정이 있었던 건 아닌지 그런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는 문서다."

    그런데 당시 경찰이 숨긴 건 유류품만이 아니었습니다.

    [전 태안읍 방범대장 <2019년 10월 12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진술녹화실>]
    "아마도 겨울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제가 파출소에 있었는데 그 당시 형사계장 이00이 저에게 "현정이 유류품 나온 현장을 같이 가보자"라는 식으로 얘기를 해서..정상에서부터 밑으로 슬슬 걸어가면서 살펴보며 수색을 했습니다."

    그날 방범대장과 형사계장은 뜻밖에도 유류품이 발견된 근처 숲에서 사람의 뼈를 발견했습니다.

    [전 태안읍 방범대장 <2019년 10월 12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진술녹화실>]
    "손목에서부터 팔꿈치까지의 뼈라고 생각이 되었고, 손가락 뼈는 없었습니다. 그 뼈가 2개 나란히 있었는데 아주 가느다란 뼈였기에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 아이의 뼈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그것이 김현정의 뼈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발견된 시신은 무언가로 묶여있었습니다.

    [전 태안읍 방범대장 <2019년 10월 12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진술녹화실>]
    "아이용 줄넘기라고 그렇게 길지 않았는데 그 줄넘기로 양 손목을 8자 형태로 묶여서 손목 사이에 매듭을 지었는데 줄넘기 손잡이는 손목 사이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방범대장과 어렵게 연락이 닿아 당시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봤습니다.

    [전 태안읍 방범대장]
    "약간 핏기가 있었지. 바짝 마른 게 아니고. 핏기가 있었지. 그리고 줄넘기가 있었으니까. 제가 거기 현장에서 살인사건 때 근무했을 때는 당연히 내 입장에서는 현정이라고 생각한 거죠. 뭐 덮여있거나 그런 거 없었고 소나무 밑에 그냥 (있었죠.)"

    진범 이춘재의 자백, 그러니까 피해자 손을 줄넘기로 묶었다는 묘사와 일치합니다.

    [이춘재 <2019년 10월 16일 부산교도소 보안과 조사실>]
    경찰: 결박을 무엇으로 했는지 기억 안 나나요.
    이춘재: 줄넘기였나. 노끈은 아닐겁니다. 아마 줄넘기 종류이지 않았나 기억합니다.

    당시 경찰도 김현정 양의 아버지와 사촌 언니를 대상으로, 김양이 실종 당시 줄넘기를 갖고 있었느냐며 색깔과 모양을 묻습니다.

    [이정도 변호사 / 故 김현정 양 유족 법률대리인]
    "질문을 한 거 자체만으로도 당시 수사관들이 결박되어 있는, 양 손뼈에 결박되어 있는 이런 줄넘기를 발견했다는 사실 자체는 기본적으로는 분명한 사실인 걸로 보입니다."

    그러나 김 양의 시신은 그 후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경기남부청의 재수사 기록에는 믿기 힘든 얘기가 담겨 있습니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형사가 "형사계장 이 씨 주도하에 사체를 묻었고, 소문이 나지않도록 입막음 하기 위해 사체 발견자에게 500만원을 줬다"는 겁니다.

    또다른 형사들은 "당시 형사계장 이씨가 김 양 사건에 대해 기자들이 알면 큰일난다면서 보안을 당부했다"며 "쉬쉬했던 분위기"라고 털어놨습니다.

    김현정 양의 시신과 유류품이 발견된 1989년 겨울은, 8차 여중생 살해 사건의 범인으로 죄 없는 윤성여씨가 붙잡혔던 때입니다.

    강력사건을 해결했다는 이유로 화성경찰서 형사들 5명이 일계급 특진까지 한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윤 씨를 검거하면서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끝났다’라는 결론을 이미 냈고 그래서 그것으로 사실 특진할 사람들 다 특진하고 결론이 그냥 난 사건이었던 거예요. 아마도 그렇게 공적을 나눠 먹은 데에 대한 어떤 책임도 져야 하는 일종의 책임, 제대로 수사의 그 성과를 내지 못한 사람들이 오히려 공적을 반납하고 징벌을 받아야 하는 이런 상황이 아마도 전개될 것을 예상을 했겠죠."

    김현정 양의 시신과 유류품을 발견하고도, 수사는 커녕 유족들에게까지 숨긴 당시 경찰들.

    김 양의 시신은 어떻게 된 걸까?

    [당시 수사진B <경기남부청 재수사기록>]
    "사체가 발견되었는데 묻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수사진C <경기남부청 재수사기록>]
    "사체 또한 발견되었으나 '스윽'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경찰들이 피해자 김 양의 시신을 암매장했다는 겁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해 이 진술들을 토대로 유류품이 발견된 장소 주변 약 7천제곱미터에 대해 경찰 1천2백여명을 투입해 수색을 벌였지만,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김 양의 시신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당시 경찰들을 빼곤 아무도 모릅니다.

    딸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한맺힌 삶을 살았던 김양의 어머니는 지난해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용복 / 故 김현정 양 아버지]
    "사건이 일어난 후부터는 계속 우울증으로 해서 살아온 것 아니오. 아프다는 소리도 없었어요."

    재수사가 마무리된 지난해, 경기남부경찰청은 이 증거와 진술을 토대로 형사계장 이 씨 등 2명을 사체 은닉과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형사계장 이 모 씨 <2020년 11월 16일 수원지방검찰청 조사>]

    검사: 김현정양 유류품이 발견된 현장에 직접 갔었나요.
    이 씨: 기억이 안납니다.
    검사: 이 종합수사보고를 결재하지 않았나요.
    이 씨: 수사본부에 있던 제 도장을 누군가가 찍은 것 같습니다.
    검사: 줄넘기로 결박된 양팔 뼈를 발견되지 않도록 숨기거나, 부하직원에게 숨기도록 지시하지 않았나요.
    이 씨: 아니요, 저는 줄넘기로 결박된 양팔 뼈가 발견되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스트레이트>는 김 양의 시신을 암매장한 의혹을 받고 있는, 당시 형사계장 이씨를, 수소문 끝에 경기도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마주쳤습니다.

    [이 모 씨 / 전 화성경찰서 형사계장]

    내 인격이 있어요. 신고할 거야.
    <지시하신 적도 없으신 거예요? 전혀? 그리고 김현정 양 사건은 전혀 모르셨어요?>
    얘기 하지 마. 나 괴롭히지 마시고, 나 신고한다니까.
    <그때 사체 발견하신 거 맞으세요? 줄넘기 묶인 뼈 발견한 거 맞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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