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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오징어게임 '성기훈' 실제 모델,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란만장 인생사

[스트레이트] 오징어게임 '성기훈' 실제 모델,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란만장 인생사
입력 2021-11-14 20:48 | 수정 2021-11-1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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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일후 ▶

    67년 동안 주인이 다섯 번이나 바뀐 쌍용차…

    참 파란만장하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 김효엽 ▶

    네, 한국경제가 위기를 맞을 때 마다 쌍용차도 휘청였고, 결국 주인도 바뀌었습니다.

    쌍용차를 가져갔던 재벌 두 곳은 그룹이 아예 해체됐고 외국인 주인들은 발을 담갔다가 결국 뺐고요…

    ◀ 허일후 ▶

    무엇보다 이렇게 회사 주인이 자꾸 바뀌면, 노동자들의 삶도 크게 출렁인다는 게 가장 큰 문제 아니겠습니까?

    ◀ 이동경 ▶

    네, 특히 쌍용차 노동자들은 2009년 정리해고 사태로 큰 고통을 겪었는데요.

    이들의 삶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드라마를 통해 다시금 조명을 받았습니다.

    정리 해고 이후 12년 간, 이들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들어봤습니다.

    ◀ 리포트 ▶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생의 막다른 길에 내몰린 사람들이 1등 상금, 456억 원을 타기 위해 목숨을 건 게임에 참가한다는 내용입니다.

    주인공 '성기훈'은 16년 차 해고 노동자.

    자동차 회사에 다니며 구조조정 반대 투쟁에 참여했다 동료를 잃고, 해고된 뒤에는 삶의 밑바닥을 전전합니다.

    연출자 황동혁 감독은 "평범한 중산층이 해고와 뒤이은 실패로 가장 밑바닥에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기훈의 캐릭터를 쌍용차 해고 노동자로부터 따 왔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현실 속 '성기훈'인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삶은 어땠을까.

    2009년 쌍용차에서 해고됐던 김성국, 이민영 씨.

    77일 간의 해고 반대 투쟁이 끝난 뒤, 이들은 실직자가 돼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았습니다.

    '쌍용차 해고자'라는 딱지가 붙은 탓에 일자리 구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김성국/쌍용차 노동자]
    "지인이 ‘중소기업 들어가서 일 좀 해라, 연봉이 어느 정도 나오니까'(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한 3일 일하니까 인사과에서 저를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불러서 하는 얘기가 ‘아저씨 쌍용차 다니셨죠?’ ‘그렇다’고.(했더니) ‘아저씨 여기 왜 왔냐고’ ‘아저씨 쌍용차 있었으면 여기 안 와야지’"

    [이민영/쌍용차 노동자]
    "이력서를 넣었는데 그 전날 저한테 연락이 오더라고요. 밤에. ‘내일 한 번 만나봅시다’ 그래서 ‘면접 한 번 봅시다’ 이렇게 얘기를 했었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바로 저한테 연락이 오더라고요. ‘안 오셔도 된다’고. 이유를 갖다가 물어보니까 ‘특별한 이유는 아니고요’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일용직과 기간제 일자리를 전전하며 전국을 돌았습니다.

    [이민영/쌍용차 노동자]
    "평택에서는 일이 잘 안 잡히니까. 점점 외지 쪽으로 가서. 구미 가서 처음에 일을 하다가 각지를 돌았죠. 창원 뭐 대구 그 다음에 전주··· 숙소 생활을 했죠. 그러다보니까 가족들하고 만나는 시간이 이제 거의 없었죠."

    그렇게 6년이 흘렀습니다.

    2015년.

    쌍용차 노·사가 해고자들을 단계적으로 복직시키기로 합의했습니다.

    복직 순서는 회사 여건을 봐가며 노사합의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하나둘 일터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이들도 희망을 품었습니다.

    [김성국/쌍용차 노동자]
    "저 같은 경우는 여기 안성 홈플러스에서 근무를 몇 달 했거든요. 여러 명이 우리 (쌍용차)직원들이 있더라고요. '그래도 쟤는 사무실 들어가는 구나' '나도 언젠가는 들어갈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당장이라도 올 것 같았던 복직의 순간은 하지만, 한 해 두 해 계속 미뤄졌습니다.

    돌아간 이와 남겨진 이 사이에 놓인 시간이 갈수록 길어졌습니다.

    끈끈했던 동료들은 어느새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민영/쌍용차 노동자]
    "서로서로 비난했어요. '너는 들어가서 뭐했냐' 늦게 들어간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먼저 들어간 사람들은 이제 '왜 우리를 늦게 들어오게끔 만들었냐' '더 협의를 잘해서 그냥 빨리 들어올 수 있게끔 왜 더 안 했냐' '왜 줄을 세웠냐'(비난을 한 거죠.)"

    단계적 복직 합의 이후 다시 3년이 흐른 2018년 9월.

    정부와 노사가 '사회적대타협'이란 이름으로 쌍용차 해고 노동자 119명 전원을 복직시키기로 합의하면서 다시 희망이 솟았습니다.

    [김성국/쌍용차 노동자]
    "그 전에는 절망이었지만 희망이 보이더라고요. 희망이. 이제는 진짜 들어갔으니. '순차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겠구나' 그 전에 회사에서 회사 들어올 사람들 서류를 내라고 그랬어요. 그거를 받으니 '이제는 거의 한 50%를 넘었구나' '이제 조금만 있으면 회사를 들어갈 수 있겠구나'(생각했어요.)"

    대량해고 사태 9년 3개월 만에 이뤄진 전원 복직 합의.

    그러나 그 긴 시간을 버텨내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동료들도 있었습니다.

    지난 2018년 6월 생활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 김주중 씨.

    김 씨 역시 해고 뒤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가며 집안에 돈을 보탰습니다.

    [故김주중 씨 생전 마지막 인터뷰/2018년 3월]
    "생활고는 둘째치고 일단 가족간의 사이가 좀 멀어지더라고요.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거의 이혼 직전까지 몇 번 갔었고. 애들한테 너무 아예 신경 쓸 여력도 없었고. 이사도 조그만 집, 아주 오래된 집 이런 데만 전전긍긍 옮겨다니다보니까··· 하루벌어 하루 먹고 이런 삶의 연속이었죠."

    이제는 홀로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아내는 남편이 단 한번도 복직의 꿈을 버린 적이 없었다고 기억합니다.

    [신상진/故김주중 씨 아내]
    "가장으로서 이제 막노동도 가기도 하고, 친구네 벽돌공장 다니다가 사고도 당하고. 벽돌공장에 다닐 때에는 진짜 일 갔다오면 시멘트, 먼지 더미를 다 써서··· 본인도 많이 기다렸을 거예요. 빨리 어떻게든 거기 (쌍용차) 들어가고 싶은 생각을 아마 하루에도 몇 십 번씩 했을 거예요."

    하루아침에 직장이 없어진 김 씨는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었습니다.

    대부업체에서 빌린 돈은 다시 김 씨의 숨통을 조여왔습니다.

    [신상진/故김주중 씨 아내]
    "신랑이 자기도 노력하려고 하는데 안 되니까 대부업체에서 돈도 좀 빌려서 생활하는데 이자가 세잖아요, 대부업체 같은 경우는… 갚아도, 갚아도 끝도 없고…"

    김 씨가 삶을 등지기 전 아내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

    '빚만 남기고 가 미안하다'는 말부터 쓸 만큼, 생활고는 김 씨의 삶을 내내 짓눌렀습니다.

    [故김주중 씨 마지막 인터뷰/2018년 3월]
    "다들 아마 해고된 분들 다 똑같은 생각일 거에요, 아마. '이렇게 꼭 살아야 되나' 이런 생각도 가끔 들고 하죠."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숨진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은 모두 서른 명에 달합니다.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또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연락이 뜸해질 때 즈음, 느닷없이 전해지는 비보에 쌍용차 동료들의 마음도 미어집니다.

    [이민영/쌍용차 노동자]
    "주중이형(2018년 6월 사망)한테는 미안하죠. 관심을 좀 갖고 했어야 되는데, 솔직히 저도 외지에 있다 보니까··· 진짜 그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주중이형한테는 좀··· 아직까지 그거는... ‘거의 다 끝났다’ ‘조금만 참자’라고 하는 그 시기에 또 그렇게 하다가 보니까 그게 더 기억이 나는 거죠."

    김성국, 이민영 씨를 포함한 마지막 해고자 46명의 복직은 2018년 사회적합의 이후로도 2년이 흐른 2020년 5월에야 이뤄졌습니다.

    해고 11년 만에 다시 돌아온 일터.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복직 직후 모든 직원의 임금은 20% 삭감됐고, 직원들 절반은 무급휴직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회사는 지난해 12월부터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회사가 이대로 문을 닫을 수도 있다…진위를 알 수 없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며 또 한번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김성국/쌍용차 노동자]
    "회사가 안 좋으니까 들어가자마자 또 집에 가라고 하는 거 아닌가. 해고밖에 안 떠오르는 거예요, 머리에서. (복직한 지) 1년도 안됐는데. 또 '집에 가라'고 하는 거 아닌가. 심신부담이... 겉으로는 웃지만, 그게 또..."

    [이민영/쌍용차 노동자]
    "솔직히 우리가 회생절차를 또 밟고 하니까... 참, 안 떠올려야 되는 상황을 또. 자꾸 사람들이 그렇잖아요. 예전에 이거 겪었었는데 겪고 나서 나는 들어온 지 얼마 안됐는데 되게 황당하더라고요. 황당하고..."

    법정관리 1년 만인 지난 달.

    쌍용차의 최종 인수 후보로 국내 업체인 에디슨모터스가 선정됐습니다.

    쌍용차의 부침을 온몸으로 맞아 온 해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겪어야 했던 불행이 반복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민영/쌍용차 노동자]
    "해외에 있던 외국 자본들은 바지사장을 앉혀서 여러 가지 경영을 하다보니까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한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국내에 있는 업체가 와서 경영을 하다보면 자기네들도 어느 정도 우리 국내 사정을 아니까 거기에 맞춰서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기대심은 많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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