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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복붙'기사 전성시대

[스트레이트] '복붙'기사 전성시대
입력 2021-11-21 20:49 | 수정 2021-11-2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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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일후 ▶

    연합뉴스의 '포털 퇴출' 결정까지 나오는 상황에서도 기사형 광고 영업이 계속되고 있다는 게 참 놀라우면서도 안타깝습니다.

    ◀ 김효엽 ▶

    보도자료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쓰는 이런 기사형 광고.

    '복사 후 붙여넣기'의 줄임말인 '복붙' 기사로 불리기도 하죠.

    그런데 이런 행태가 '기사형 광고'에서만 문제가 되고 있는 게 아니죠?

    ◀ 손병산 ▶

    그렇습니다.

    자극적인 내용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물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복붙 기사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 허일후 ▶

    맞습니다. 요즘 보면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이 말이 들어간 기사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 손병산 ▶

    네, 그래서 포털에 매일같이 쏟아지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복붙' 기사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건지, 현장에 나가서 확인해 봤습니다.

    ◀ 리포트 ▶

    최근 화제가 된 '요즘 변화하는 고깃집 근황'이라는 게시물입니다.

    메뉴 화면에 불판교체는 990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수십 곳의 언론사가 이 게시물을 앞다퉈 기사화했고, 심지어 비용을 받는 것이 적절한지 논쟁까지 벌어졌습니다.
    서울의 한 쇼핑몰에 입점한 이 고깃집을 찾아가 봤습니다.

    메뉴판을 살펴보니 불판교체가 990원이라는 말은 있는데, 그 위에 '솔드 아웃', 즉 '다 팔렸다'는 안내 문구가 보입니다.

    [고깃집 직원]
    "<불판 교체 990원, 그건 없어졌나요?>"
    "네, 그건 취소…"
    "<아, 무료로 됐어요? 불판 바꾸는 게?>"
    "안 받거든요. (교체 비용을) 원래 안 받아요."

    불판교체 비용을 메뉴판에 넣긴 했지만 실제 받지도 않고 있고, 받은 적도 없다는 겁니다.

    [고깃집 직원]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기사가 올라갔어요. 저희는 인터뷰한 적도 없고 했는데…"

    이렇게 기본적인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기사들은 매일 포털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 대학도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발 기사로 곤란을 겪었습니다.

    '비대면 온라인 수업 중 성관계 음성이 20분 동안 생중계됐다'는 기사가 쏟아진 겁니다.

    출처는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이었습니다.

    취재진은 기사를 쓴 기자들 가운데 한 명에게 연락해, 논란이 된 수업의 교수나 학생들과 접촉한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다른 기사를 따라썼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온라인 기자 A]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거는 저도 따라쓴 거예요. 제가 먼저 쓴 기사는 아니고요. 궁금하시면 먼저 쓰신 기자분 한 번 찾아서 여쭤보세요."

    그런데 며칠이 지나서야 수업 당시 상황이 밝혀졌습니다.

    한 기자가 비대면 수업 중 들린 소리가 실제로는 학생이 실수로 재생한 '성인물 동영상'의 소리였다고 확인한 겁니다.

    [온라인 기자 B]
    "논란이 됐던 수업을 당시 진행했던 교수님께서 직접 메일로 입장을 전해주셨고, 그 내용을 반영해서 작성했습니다."

    사실을 확인한 새 기사가 화제가 되자, 이번에는 이 달라진 내용을 반영한 비슷한 기사들이 줄줄이 올라오는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권 모 씨/해당 대학교 학생]
    "진실은 그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만 알겠죠. 그러니까 진위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고 막 퍼온다는 건 저도 약간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포털 사이트 네이트의 '판'과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 그리고 최근엔 '에브리타임' 등이 온라인 커뮤니티발 기사의 단골 출처입니다.

    '복붙' 기사의 또 다른 출처는 '유튜브'입니다.

    논란이 될 만한 유튜버의 방송을 찾은 뒤 댓글 반응을 붙이는 형식입니다.

    유튜버 '록시'가 지난 8월 초 올린 '의사, 남친으로 최악인 이유'라는 동영상.

    [유튜버/'록시']
    "의대생들은 1학년 때부터 완전 딱 의대에 갇혀서 그냥 전국에서 온 자기랑 똑같은 애들, 의대생들끼리만 자기들만의 커뮤니티처럼 형성이 되어서.."

    방송 두 달 반이 지나 갑자기 한 언론사가 이 내용을 기사화했고,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이 반복 생산됐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유튜버는 기자의 연락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록시/유튜버]
    "댓글이나 그런 곳에서라도 기자분께서 관련된 언급을 했다거나, 저한테 문의하셨다거나 한 거는 본 적이 없습니다."

    또 정말 영상을 본 건지, 아니면 먼저 나온 기사를 베낀 건지 의문이 가는 기사가 많아 더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록시/유튜버]
    "처음에 보신 기자님은 제 걸 보신 것 같아요, 영상을. 근데 그 후에 쓰신 기자님들은 솔직히 저의 영상을 보고 쓰셨는지 굉장히 의문이 들고. 처음 기자님이 쓰신 거에 거의 이거는 통째로 베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냥 갖다가 쓰셨더라고요."

    사실 확인이나 추가 취재 없는 '복붙 기사'는 어떻게 나오는 걸까.

    '뉴스타파'의 홍주환 기자는 과거 한 경제지의 온라인팀 인턴기자로 근무했습니다.

    [홍주환/뉴스타파 기자]
    "‘이렇게 검증 없이 기사를 쓰는 게 과연 맞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지금의 길을 택했다고 생각합니다. ‘검증의 시간을 많이 주는 곳에 난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고."

    그는 인턴 근무 석 달 동안 현장에 나간 건 3번 뿐이었다고 기억했습니다.

    통신사 기사를 정치, 경제, 사회 분야별로 거의 그대로 복사하는 게 기본 업무였는데,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는 건 그나마 적극적인 취재였다고 합니다.

    [홍주환/뉴스타파 기자]
    "언론인이 되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럼 제가 발제를 해서 쓸 수 있는 건 없나요?’ 그런데 현장은 못 나가요. 아는 취재원이 있어서 전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결국에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면서 ‘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이런 문제가 제기됐다’라는 식의 발제를 할 수밖에 없는 거죠."

    팀의 실적을 판단하는 기준은 조회수였습니다.

    클릭을 유발하는 자극적인 기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홍주환/뉴스타파 기자]
    "조회 수 압박, PV라고 하죠. 페이지 뷰 압박이 있기 때문에, 사실 그런 거를 싫어해도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노골적으로 ‘남녀 갈등이라든가 아니면 연예인 관련 기사, 아니면 자극적인 거 써’ 이런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런 걸로 압박이 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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