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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복붙'과 돈줄

[스트레이트] '복붙'과 돈줄
입력 2021-11-21 20:57 | 수정 2021-11-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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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일후 ▶

    아니,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다 사실은 아니죠.

    '게시판 문예', '판춘문예' 같은 비꼬는 말이 나올 정도로 꾸며낸 사연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 손병산 ▶

    그래서 '이런 글이 올라와서 논란이다'라고 전달만 하는 방식을 취하는 거죠.

    '사실 확인'에 대한 책임을 피해가기 위해서입니다.

    ◀ 김효엽 ▶

    물론 온라인 게시물이 기사 가치가 있는 중요한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검증 없이 옮겨 사회적인 비용과 갈등을 키운다면, 그걸 과연 기사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 허일후 ▶

    이런 기사에 본인의 이름올리는 기자는 자괴감을 느낄 것 같은데요.

    그런데도 이렇게 복붙 기사가 양산되는 거.. 앞서도 나왔지만 결국 돈 때문이죠?

    ◀ 손병산 ▶

    네, 한국 언론사, 특히 신문사나 인터넷 매체의 경우 대형 포털에 거의 종속된 상황입니다.

    그런데 포털에서 돈을 많이 받아내려면 클릭수가 많아야 하고, '남들도 하니 나도 한다'는 식의 경쟁이 악순환을 낳고 있습니다.

    ◀ 리포트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도 많은 기자들이 기사거리를 찾아 주시하는 곳입니다.

    지난해 3월 "25개월 된 딸이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심각한 피해 내용은 곧바로 기사화되며 퍼져나갔고, 53만명의 국민이 청원에 공감했습니다.

    경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는데, 이 청원 내용은 가짜였습니다.

    25개월 된 딸이 있다는 것 말고는 대부분 다 지어낸 얘기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강정수/전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 (2020년 5월 19일)]
    "수사 결과 해당 청원은 허위사실임을 확인했습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가해 아동이 실존하지 않고, 피해 아동의 병원 진료 내역이 사실과 다른 점을 확인했습니다."

    이처럼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복붙 기사가 포털을 거치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면 사회가 들썩거릴 정도로 파급력을 갖게 됩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도 비슷하게 전개됐습니다.

    [구본환/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2020년 6월 22일)]
    "인천공항은 정규직 전환 1호 사업장이면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최대 규모의 단일 사업장입니다."

    곧바로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글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오며 여론의 관심이 커지던 터에, 언론 기사 하나가 불을 질렀습니다.

    '알바하다 연봉 5천, 소리질러. 공항 정규직 전환, 힘 빠지는 취준생'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곧바로 종편방송들도 이런 내용들을 화면에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TV조선 보도(권용민, 지난해 6월 23일)]
    "인천공항공사에 비정규직으로 들어와 이번에 정규직으로 들어간다며 명문대를 졸업하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합니다."

    [MBN 보도(박유영)]
    "열심히 준비해도 떨어진 입장에선 너무 불공평하다"는 반발이 나왔습니다.

    근거는 작성자 신원도 불분명한 카카오톡 오픈 대화방이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정직원이 됐다는 것도, 연봉 5천만원도 거짓 정보였습니다.

    하지만 오보를 땔감 삼은 청년층 분노는 거세게 타올랐고, 언론은 이를 되받아 쓰며 갈등을 더 부추겼습니다.

    [조선일보 (지난해 6월 24일)]
    "운 좋으면 정규직, 이게 K직고용"
    '노력하는 이들의 자리를 뺏도록 해주는 게 평등입니까?'

    그 사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이 나온 배경, 그 방향과 속도, 과정의 공정성 같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이렇게 온라인에서 이목을 끈 소재가 기사로 확대 재생산 되기 시작한 건 10여년 전부터였습니다.

    [공훈의/방송통신대 겸임교수 (위키트리 창립자)]
    "기성 미디어들이 그걸 커버하지 않고 있었어요, 온라인 사회를. 그래서 온라인 사회 자체를 사회로 인식하고 온라인 사회를 커버해 주는 미디어, 그게 한마디로 말하면 ‘온라인 소싱을 해주자’ 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죠."

    그때만 해도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기사용 이슈를 발굴은 하되, 검증 과정을 거친 다음 기사화하는 게 원칙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온라인 화제가 조회수 장사가 된다는 걸 체감한 언론사들이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원칙은 결국 무의미해졌습니다.

    [공훈의/방송통신대 겸임교수 (위키트리 창립자)]
    "뉴스에는 품질이 있는데 트래픽에는 품질이 없어요. 자극적이고 저속한 내용의 뉴스를 던지더라도 거기서 오는 트래픽은 똑같아요. 트래픽은 많기만 하면 돼요. 좋은 뉴스든지, 소위 좋은 뉴스든지, 저속한 자극적인 뉴스든지 만들어내는 트래픽은 똑같은데 트래픽을 많이 만들어내는 건 후자죠. 그러니까 자꾸 그쪽으로 쏠리는 거예요."

    지난해 네이버가 수익 배분 정책을 바꾸면서 이런 흐름이 더 심해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언론사에 일정 액수를 주는 방식 대신 기사 조회수에 비례해 광고 수익을 나누기로 하면서, 클릭 수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입니다.

    [신미희/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이전에는 언론사가 포털에 뉴스를 전재할 경우 전재료를 언론사의 영향력을 기준으로 해서 책정이 되던 게, 이게 그 해당 기사의 클릭 수에 비례하는 구조로 바뀌면서 더욱 이 문제가 심각해진 것 같아요."

    사용자 반응이 언론사에 직접 수익으로 연결되는 투명한 대가 제공"을 의도했다지만 현실에선 역효과가 나고 있는 겁니다.

    포털 기사 점유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중앙일보는 'EYE'라는 온라인 이슈 대응팀을 운영하고, 조선일보는 아예 '조선NS'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실시간으로 온라인 기사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신미희/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특히 큰 언론사들이 앞다퉈서 경쟁하듯이 보도하고 있는 행태는 이건 한국 저널리즘의 앞으로의 존재 가치에도 영향을 미치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유수 언론이 황색 저널리즘으로 취급받을 수 는 없잖아요."

    기사형 광고든 클릭 경쟁이든, 결국 광고 매출과 구독료 등 기존 수익구조가 무너지자, 이를 메우기 위한 언론사들의 생존 전략인 겁니다.

    [유현재/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게 뭔가 진짜 나쁜 마음을 먹어서 그런 게 아니라, 지금 성선설만 믿고 자체 정화를 믿기에는 미디어 환경이 너무나 경쟁적이에요. 그러니까 지금은 어찌 보면 죽고 사는 문제잖아요. 돈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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