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5시 뉴스
기자이미지 곽승규

[스트레이트] 보복 폭행 불러오는 '반의사불벌' 조항

[스트레이트] 보복 폭행 불러오는 '반의사불벌' 조항
입력 2021-12-19 20:47 | 수정 2021-12-20 16:28
재생목록
    ◀ 허일후 ▶

    한때는 가장 가까웠던 연인이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거 만큼 악몽같은 일이 또 있을까요?

    ◀ 김효엽 ▶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대처하기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죠.

    ◀ 곽승규 ▶

    맞습니다.

    '연인 간 폭력'을 다른 일반 폭력 사건과 달리 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허일후 ▶

    특히나 연인간의 폭력을 단순한 사랑싸움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 이것도 이제는 바뀌어야 겠습니다.

    ◀ 곽승규 ▶

    그렇습니다.

    살인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때만 주목할 뿐 '연인 간 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낮은 게 현실인데요.

    최근 한 유명 배구선수가 가해자로 지목된 연인간 폭력 사건에서도 이같은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 리포트 ▶

    지난 시즌 소속팀 대한항공을 정상으로 이끌며 정규시즌과 챔피언 결정전 MVP를 거머쥔 남자배구 간판스타 정지석 씨.

    승승장구하던 정 씨는 지난 9월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고소를 당하자 잠시 코트를 떠났습니다.

    정 씨가 자신을 폭행하고 불법 촬영했다는 게 여자친구의 폭로 내용이었습니다.

    이후 소속팀 대한항공은 "수사결과에 따라 엄정하고 투명하게 후속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석 달이 지난 지난 4일.

    정 씨는 코트에 복귀했습니다.

    복귀전에서 16득점을 올리며 맹활약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지석(12월 4일 복귀 후 인터뷰)]
    "죄송하다는 말 밖에 계속 드릴 수 없을 것 같고요.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배구에만 열심히 매진할 생각입니다."


    정 씨가 코트에 조기에 복귀할 수 있었던 건 피해자와 합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현행법상 폭행사건은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없으면 법적 처벌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걸 반의사불벌죄라고 부릅니다.

    [곽대경/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라고 하는 것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 처벌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범죄 행위가 있었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하기를 원치 않는다라고 의사를 표명을 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처벌을 하지 못하는 그런 법이라고 할 수가 있죠."

    그나마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처벌할 수 있는 불법촬영 혐의는, 정씨가 자신의 아이폰 비밀번호를 잊어버렸다고 주장하면서 수사가 종결됐습니다.

    그러자 한국배구연맹과 대한한공은 각각 정 씨에게 벌금 500만원과 3경기 출전정지 조치만 내린 뒤 곧장 코트복귀를 허락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상벌위원회를 주관한 한국배구연맹의 총재는 정지석의 소속팀, 대한항공 구단주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입니다.

    이 때문에 정 씨가 복귀 과정에서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배구연맹은 "상벌위원회는 연맹과 별개의 조직으로 대다수 외부인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한 대한항공은 스트레이트에 보낸 서면 답변서를 통해

    "사건 발생 즉시 정씨를 경기에서 배제했다"면서 "수사결과를 바탕으로 구단에 부여된 합리적인 재량 안에서 이루어진 조치"라고 주장했습니다.

    복귀한 정 씨의 맹활약에 힘입어 지난 8일 1위에 오른 대한항공 배구단.

    그러나 배구팬들의 시선은 싸늘했습니다.

    "정지석 써서 1위돼서 좋을까? 진심 창피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여자 때린 선수와 함께한 승리 축하드려요."라는 댓글이 구단 SNS에 달렸습니다.

    정씨의 복귀 당일엔 트럭시위도 열렸습니다.

    [정지석 복귀 반대 시위 참가자]
    "제가 KOVO(한국배구연맹)에도 전화를 해봤어요. '데이트 폭행 선수는 왜 이렇게 이렇게 죄가 가볍냐' 제가 물어봤는데 피해자와 합의를 한 부분을 반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데이트 폭행은 그냥 연인과의 사소한 다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전문가들은 연인 간 폭력이 반복되는 걸 막는데 가장 큰 걸림돌로 반의사불벌죄를 꼽습니다.

    고소를 해야 처벌받기 때문에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고소취하를 종용하고, 심지어 협박에 보복폭행까지 가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작년 8월에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한 20대 여성이 갑자기 찾아온 전 남자친구에게 일방적인 폭행을 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피해여성의 고소로 수사를 받은 가해자가 이 일로 대학원 진학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복 폭행까지 저지른 겁니다.

    [허민숙/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가해자는 자기가 처벌받잖아요. 그러면 누구를 원망하겠어요. 복수심이 누구를 향하겠어요. 처벌불원해주지 않은 피해자가 계속 타겟인 거예요. '피해자 가만두지 않겠다, 너 때문에 내 인생 망쳤어' 이런 복수심을 자아내게 하는 게 바로 반의사불벌죄예요. 이게 처벌불원이에요. 근데 이것을 그대로 두고 있다는 거죠."

    연인간 폭력 사건에서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기 위한 법안은 이미 여러번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지난 2017년 표창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이른바 '데이트폭력방지 및 처벌법'이 대표적입니다.

    표 의원의 발의한 법안에는 반의사불벌죄 조항 폐지, 일반 폭력 사건보다 3분의 2이상 가중 처벌, 경찰의 피해자 신변보호와 현장조사 강화 가해자에 대한 치료명령 조치까지 담겨있었습니다.

    여론의 관심도 높았습니다.

    술취한 20대 남성이 여자 친구를 무차별 폭행한 뒤, 트럭을 몰고 피해여성에게 돌진한 사건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내 관심은 사그라들었고 법안은 20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습니다.

    [표창원/전 국회의원 (2017년 데이트폭력방지법 발의)]
    "데이트 폭력을 특수 강력 범죄로 봐야 합니다, 우리 국가는. 그래서 일반적인 데이트나 관계, 여기에 초점을 맞춰버리면 해결책이 안 나와요. 서로 아는 사람, 사랑했던 사람, 그러니까 그들에 대해서는 존중해 줘야 한다 이런 식의 태도를 가지게 된다면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됩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