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5시 뉴스
기자이미지 박진준

[스트레이트] 이름이 법이 될 때

[스트레이트] 이름이 법이 될 때
입력 2021-12-26 21:00 | 수정 2021-12-26 21:01
재생목록
    ◀ 허일후 ▶

    "현장이 안전해졌으면 좋겠다." 고 김용균 씨 어머니의 마지막 말은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말이죠‥

    ◀ 김효엽 ▶

    네, 김용균법도 그렇고 윤창호법, 민식이법까지‥현실은 아직 갈 길이 멀어보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이름을 딴 법안들이 제출되고 실제 제정까지 이뤄진 건 2천년대 들어서죠?

    ◀ 박진준 ▶

    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해결책이 필요한 사안이 이름을 통해 뚜렷하게 각인되는 효과가 크니, 앞다퉈 쓰기 시작한 거죠

    ◀ 허일후 ▶

    법 만드는 국회의원이나 정부입장에서는 이런 부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죠.

    ◀ 박진준 ▶

    네, 실제로 법제화로 수월하게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 있습니다.

    ◀ 리포트 ▶

    2016년 5월 서울에서도 김용균 씨 사고와 비슷한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하철 구의역에서 혼자 승강장 안전문을 수리하던 10대 용역업체 직원이 참변을 당했습니다.

    [2016년 5월 29일 뉴스데스크]
    "지하철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직원이 열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또 발생했습니다. 이번에도 안전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김용균 법', 즉 산업안전법 개정안의 시작은 '구의역 김군' 사건이었던 겁니다.

    사고 발생 1년 9개월 뒤인 2018년 2월 마침내 정부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잊혀진 '김군'과 함께 이 개정안은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김용균 씨의 사고가 터졌습니다.

    여론 압박에 정부여당은 갑자기 관련법안 논의를 서둘렀습니다.

    그런데 재계 반발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임우택/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2018년 12월 21일 산안법 개정안 공청회)]
    "원청 사업주 책임 및 기타책임까지 지게 된다면 범법자 양산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우선 합의 통과가 급해지다보니, 재계 요구가 대폭 수용됐습니다.

    원청업체 사업주 처벌 조항이 빠지고 도급 금지 업종도 축소된 겁니다.

    그래서 노동계는 이 법을 차마 김용균법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최명선/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산업안전보건법의 도급금지 범위에 김용균 노동자가 일했던 그런 발전소 이런 것도 안 들어갔고, '구의역 김 군'이 일했던 철도 지하철도 안 들어갔고 조선업의 다단계 재하청이 굉장히 심각한 문제였잖아요. 그것도 다 빠졌습니다."

    이걸로 안된다, 새법이 필요하다는 노동계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결국 김용균법이 시행된지 1년 만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새로 추진돼 제정까지 됐지만, 그 과정에서 김용균 법 논의 때 했던 것과 같은 논쟁이 고스란히 반복됐습니다.

    [김남근/변호사 (참여연대 정책위원)]
    "급히 만들다 보니까 굉장히 부실한 입법을 만든 거죠. 그래서 막상 또 그걸 해놨는데 또 많은 사망 사고들이 계속 발생을 하는데 '이거 갖고는 못 막는구나'라는 반성이 되다 보니까 다시 이제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법을 또다시 만들게 됐던 것입니다."

    민식이법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린이보호구역 안전시설 확보 등 민식이법의 내용이 일부 포함된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이미 7건이 발의됐습니다.

    그렇지만, 민식이가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었습니다.

    [박명재/전 국회의원 (2017년 도로교통법 개정안 발의)]
    "반짝 관심들이 이제 부각되니까 초기에 관심을 보였다가도 그냥 다른 우선순위에 밀려서 머뭇거린 것이죠."

    그러다 민식이법 처리 여론이 높아지자 국회는 교통사고 약 2개월 뒤인 2019년 11월 29일 법사위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단 8분 만에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법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해관계자 의견도 반영하고 법안도 정교하게 가다듬는 법안심사소위 논의도 생략됐습니다.

    [정혜진/변호사 ('이름이 법이 될 때' 저자)]
    "8분 만에 한다는 것은 이게 도저히 상식적으로 말이 좀 안 되잖아요. 서로 토론을 통해서 어떤 안을 만들어가서 그 갈등을 줄여줘야 하는 게 국회인데 번갯불에 콩 볶듯이 해서는 딱 던져놓고 '우리는 통과시켰다'"

    당시 여야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법 등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상황이었습니다.

    [나경원/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민식이법 등에 대해서 먼저 상정해서 이 부분에 대해서 통과시켜줄 것을 제안합니다."

    [이인영/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아이들의 안전과 관련된 이 법들을 정치적인 볼모로 삼는 이 패악질에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결국 본회의장에서도 토론은 실종됐고, 정기국회 문을 닫는 12월 10일 허겁지겁 민식이법이 통과됐습니다.

    [김남근/변호사 (참여연대 정책위원)]
    "정쟁으로 다 흐르다가 정기국회 말에 한 15일 정도에 입법 논의들을 다 해야 하다 보니까 시간이 부족해서 이런 문제가 자꾸 발생을 하다 보니까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이미 제출된 법안은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안타까운 죽음이 조명받고 여론이 들끓으면 일단 만들고 보자는 식으로 법이 만들어지는 일이 반복된 겁니다.

    [서복경/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
    "의회가 전반적으로 사회 반응성이 높아지는 거는 좋은 현상이거든요. 근데 이 반응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의회가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데 이제 준비가 덜 돼 있는 거죠. 시민들의 요구나 반응은 폭발적이고 빨리 내놔야 하고 준비는 안 돼 있고 그러다 보니까 이제 만들어진 법들이 다시 국회로 다시 들어간다든가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죠."

    양부모의 아동 학대 사건을 계기로 마련된 정인이법.

    살인죄 공소시효를 없앤 태완이법.

    그리고 자식을 외면한 부모가 자식의 재산을 가져가지 못하게 하는 구하라법.

    시민들의 적극적인 요구로 이름이 법이 되는 사례는 부쩍 늘고 있습니다.

    [윤기현/故 윤창호 씨 아버지]
    "이렇게 누군가의 희생이 꼭 따르고 그 희생에 따라서 이런 법안이 마련이 되고 입법이 되고 이렇게 하는 것은 정말 굉장히 어떻게 보면 좀 후진적인 그런 법안의 어떤 방법이거든요. 먼저 선행적으로 이제 이런 국민의 안녕을 위한 법안들이 시대 상황을 반영해서 그때그때 이렇게 입법이 돼야 하고‥"

    ◀ 허일후 ▶

    어쩌면 우리는 피해자의 이름이 담긴 법안을 만드는 것이 그들을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는지 모릅니다.

    ◀ 김효엽 ▶

    그러나 여기에 더해 또다른 이름이 법이 되는 안타까운 순간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 곳곳을 꼼꼼히 살피는 것도 우리가 김민식, 윤창호, 김용균을 기억하는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끈질긴 추적 저널리즘,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저희는 새해 1월 9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