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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꼼수와 법 적용의 회색지대

[스트레이트] 꼼수와 법 적용의 회색지대
입력 2022-03-06 20:50 | 수정 2022-03-2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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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효엽 ▶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과거와 달리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원청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 박진준 ▶

    원칙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실제로 여천NCC 공장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고요,

    그런데 현대엘리베이터 사고의 경우는 적용여부가 불확실합니다.

    ◀ 허일후 ▶

    아니 그건 왜 그런거죠?

    ◀ 박진준 ▶

    계약서 상으로는 현대엘리베이터와 설치업체가 도급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하기 위한 꼼수와 법 적용의 회색지대를 취재했습니다.

    3. 꼼수와 법 적용

    수도권의 한 빌딩 공사 현장.

    승강기 설치 작업이 이뤄지는 천장 위로 올라가 봤습니다.

    사방이 콘크리트 벽으로 막힌 답답한 공간에서 직원 혼자 작업을 진행합니다.

    [00승강기 설치업체 직원]
    "이런 로프 걸 때. 혼자 작업을 하니까 아무래도 그게 불편하죠. 레일 채울 때도 그렇고. 저런 걸 다 혼자 작업하는 거예요."

    두 명이 일하는 게 원칙이지만, 혼자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승강기 회사에서 받는 공사비가 빠듯해 설치 업체는 인건비라도 줄이려 들기 때문입니다.

    [00승강기 설치업체 직원]
    "두 명이서 작업하면 좀 수월하게 작업할 텐데, 혼자 작업하다 보니까 힘도 들고 위험하긴 하죠. 그러다 보니까 저희도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혹시라도 안전사고 발생되면 누가 금방 구호를 못하잖아요."

    승강기 업계도 여느 공정과 마찬가지로 다단계 구조입니다.

    브랜드를 앞세운 유명 승강기 업체가 건설사에서 공사를 따낸 뒤, 승강기를 제조합니다.

    그 뒤 실제 건물에 설치하는 건 외주업체에 맡깁니다.

    [ㅁㅁ승강기 설치업체 대표]
    "현실은 이 계약 주체가 현대가 돼 있고요. 저희는 이렇게 현대에서 주는 계약서에 도장만 찍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거예요. 모든 메이저(승강기 업체)가 다 그렇습니다."

    설치 업체는 공사 일정을 비롯한 실질적인 업무 지시도 모두 승강기 회사로부터 받습니다.

    [ㅁㅁ승강기 설치업체 대표]
    "말이 안되는 게, 인력 관리도 다 메이저(승강기 업체) 회사에서 해요. 출석 인원도 관리를 하고···"

    [○○승강기 설치업체 대표]
    "매일 여기서 (승강기 회사에) 출근보고 합니다."

    사실상 승강기 회사가 원청, 설치업체가 하청인 셈입니다.

    그래서 중대재해법대로라면 승강기 설치중에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승강기 회사는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꼼수가 등장합니다.

    바로 '공동도급 계약서'입니다.

    승강기 회사와 설치 업체가 동등한 자격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처럼 건설사와 계약서를 작성하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되면 설치 업체는 승강기 회사로부터 도급을 받은 것이 아니라 건설사와 계약을 한 게 됩니다.

    승강기 회사 입장에서는 사고발생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겁니다.

    [ㅁㅁ승강기 설치업체 대표]
    "공동 수급이라는 말장난을 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법을 피해가기 위해서 만든 계약서인 거죠."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이런 꼼수 계약은 확산되고 있습니다.

    [00승강기 설치업체 대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한다고 예고되고 이후부터 이런 문항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대요. 왜냐하면 자기들은 이제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되니까‥"

    이미 공사에 투입돼 한참을 일하다가 계약서를 받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이번에 사고를 당한 현대 엘리베이터 설치 업체도 계약서 없이 일을 했고, 사고가 나자 현대엘리베이터가 '공동도급계약서'를 쓰려고 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나중에 계약서를 쓴거냐고 물었지만, 현대엘리베이터 측은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 직원]
    "지금 아시다시피 경찰하고 고용노동부 조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서, 그부분에 대해서 이건 이렇습니다, 저건 저렇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드리는 게 조심스러워서‥"

    사주나 대표이사는 중대재해법 처벌을 피해가게 끔 대비하는 기업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법을 만들 때 재계 요구에 따라 애당초 모호하게 작성된 법조문을 이용한 겁니다.

    중대재해법에, 위반시 처벌을 받는 사람은 경영 책임자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아래 조문을 보면, 경영책임자는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뿐 아니라,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도 포함됩니다.

    이 문구 만으로는 경영책임자가 사주인지, 최고경영자인지, 안전담당임원인지 모호합니다.

    대표이사가 아닌 안전 담당 임원을 '경영 책임자'로 내세워 방패막이로 쓸 수도 있는 겁니다.

    [☎00건설 직원]
    "대표이사 처벌을 면피하려고 만든거죠. 대표이사가 당장 책임을 지기 싫으니까 일단 그런 거 만들어 놓고 그쪽으로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다툼에 들어가겠다는 태세인 거죠."

    현대, 삼성, 한화 등 대기업 건설사들은 최근 앞서거니 뒷서거니, 안전관리 조직을 확대하거나 담당임원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중대 재해처벌법에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 하도록 돼 있어 조직을 강화한다는 게 명분입니다.

    하지만 노동계는 이른바 '총알받이'를 세워놓고 사주는 피해 가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권영국 변호사 중대재해전문가넷 대표]
    "핵심은 그거에요. '어떻게 하면 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가' '법망을 어떻게 하면 피해 나갈 수 있는 가'에 대한 그런 법적인 투자, 그 비용을 엄청나게 쏟아 붓는 걸로 보여요."

    (사람은 숨졌는데 날짜 따지는 노동부)

    법 적용 시점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국내 최대의 유통 플랫폼 기업 쿠팡.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동탄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50대 여성 노 모씨가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노은숙 / 쿠팡 동탄센터 사고 유가족]
    "덕평이 불이 나면서 동탄으로 옮겨와서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얘기를 했어요. 항상 '내가 죽을 것 같다'는 얘기를 입에다 달고 살았고, '내가 여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죽어서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했고···"

    노 씨가 숨지기 전 관리자와 메신저로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관리자가 날짜별로 물건을 쌓으라고 지시하자, 노 씨는 '자키'를 가지러 간다고 답합니다.

    '자키'는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 쓰는 철제 수레입니다.

    원래 노씨가 맡은 일은 전산업무였지만, 사실상 상하차같은 물류 업무까지 온갖 일을 다 했다고 합니다.

    [한은혜 / 쿠팡 동탄센터 직원]
    "서포터 분들은 공간이 비거나, 인원이 비거나, 갑자기 응급하게 필요하거나, 물량이 이렇게 증폭되거나, 그런 상황에 즉시 투입되는 분들이라고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서포터 분들이 본인들을 잡부라고 표현합니다."

    노 씨의 휴대전화 만보기 앱에는, 보통 하루에 3만보가 넘게 걸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20km가 넘는 거리입니다.

    쓰러진 당일에도 출근 후 불과 3시간 만에 10km를 걸었습니다.

    [노은숙 / 쿠팡 동탄센터 사고 유가족]
    "동탄에 와서 여름 내내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체력 고갈이 어마어마하게 됐어요, 동생이. 그래도 한 48kg은 나갔던 애가 마지막에는 한 42-3kg도 안 나갔어요. 그 정도까지 말랐어요."

    쓰러진지 50여 일 만인 지난 달 11일, 노씨는 결국 숨졌습니다.

    유족측은 쿠팡이 사고초기 안일하게 대응해 노씨가 목숨까지 잃게 됐다고 주장합니다.

    [노은숙 / 쿠망 동탄센터 사고 유가족]
    "(동생을 보고) 그 사람들이 바로 '신고를 해달라' 얘기를 했는데, 그 보건 담당에게 보고를 하고, 보건 담당이 와서 상태를 확인한 후에 119에 신고를 해야된다, 그때까지는 절대 안 된다고 얘기를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하지만 쿠팡은 “119에 바로 신고했다”며 "고인이 가벼운 물건을 수레로 옮기는 부수적인 업무에 자발적으로 지원했으며, 업무 강도는 높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유족과 회사측의 주장이 엇갈리는데도 관할 노동청의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쿠팡 사고 담당 근로감독관]
    "그게 어떤 사망인지는 이제 조사를 해봐야 되니까 일단 사업장에서는 저희 쪽에 보고를 하게끔 (되어 있어요)"

    게다가 사망사고인데도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숨진 시점은 법 시행 이후지만 쓰러진 건 법 시행 이전이고, 지금 와서 쓰러진 원인을 밝히기도 어렵다는 논리입니다.

    [☎고용노동부 중대재해감독관]
    "법 시행 전에 일단 있었던 일이고요. 개인 지병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중대재해법도 적용이 안 될뿐더러 설령 적용이 된다고 해도 이분이 부검을 안 한 상태에서 어떤 사유로 사망을 했는지 저희가 어떻게 입증을 하겠어요."

    그런데 고용노동부 스스로 내놓은 법 해설서에는 정반대로 설명돼 있습니다.

    해설서에서는 사망은 부상 또는 질병이 발생한 날부터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이후에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중대산업재해는 종사자의 사망시에 발생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사망시점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전주희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강도 높은 노동강도 등 업무상의 이유로 사망한 경우라고 하면 과로사가 맞고 중대재해에 해당합니다.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로 지정하고, 특별근로감독 등을 통해서 이 사고 조사를 시작해야 되는 게 맞습니다."

    더구나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비슷한 사망사고가 이미 수차례 발생했습니다.

    재작년 10월 칠곡센터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근육이 녹아내릴 정도의 노동 강도를 견디지 못하고 숨졌고, 지난해 1월에도 50대 여성이 물류센터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2020년부터 쿠팡에서 일하다 죽은 노동자는 모두 10명입니다.

    당시에도 쿠팡은 "과도한 업무가 아니었고 근무 시간을 준수했다"며 이번 사고와 비슷한 입장을 내놨습니다.

    [류현철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
    "이미 누적돼 왔던 이런 문제가 있다고 그러면 어떤 식으로든 간에 이 문제에 대해서 원인을 좀 밝히고, 그걸 조사하고, 그것들을 해결할 수 있고 예방할 수 있는 방법들을 논의해야 되는데 (고용노동부가) 그런 활동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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