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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욕설·비난 감수하고 장애인들이 시위 나선 이유

[스트레이트] 욕설·비난 감수하고 장애인들이 시위 나선 이유
입력 2022-03-13 20:43 | 수정 2022-03-13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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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일후 ▶

    일부 후보들이 점자 공보물을 제공하지 않은 건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당장 6월 지방선거부터 개선돼야겠습니다.

    ◀ 이동경 ▶

    점자공보물도 물론이고요, 기표란을 키우거나 정당 로고가 박힌 투표용지는 비장애인에게도 좋은 거니까요. 정치권에서 합의만 된다면 곧바로 시행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 김효엽 ▶

    그리고, 저는 발달장애인이 이번 대선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저렇게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거쳤는지 몰랐습니다. 어찌됐든 이분들이 투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허일후 ▶

    그렇죠, 장애인들은 저렇게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계속 호소해왔지만, 어떤 일이 생기면 잠시 여론의 관심을 받다가 곧 다른 이슈들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 이동경 ▶

    네, 대표적인 게 장애인 이동권 문제입니다.

    얼마 전 출퇴근길 지하철 시위로 논란이 일다가 이내 사람들 관심에서 사라졌는데요.

    이들이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뭔지 취재했습니다.

    ----------

    40대 직장인 홍윤희 씨는 남들이 쉬는 날 더 바빠집니다.

    장애인들이 지하철에서 더 쉽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장애인 이동지도 제작자'. 홍 씨의 또 다른 직업입니다.

    [홍윤희 /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지금 혜화역 주변에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곳들을 좀 점검하려고 하는데 그 지역들을 미리 이제 지도로 뽑아서 어느 정도 표기를 해놓고 가죠. 그러면 이제 좀 덜 헤매고…"

    비장애인인 홍 씨가 장애인들의 이동권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딸 때문입니다.

    딸 지민이는 태어나자마자 암으로 투병해야 했습니다.

    힘든 수술을 잘 견뎠고 암은 완치됐지만 하반신이 마비되는 후유증이 남았습니다.

    평생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딸과 함께 외출하면서, 홍씨도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장애인들의 세상과 마주하게 됐습니다.

    [홍윤희 /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저희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이제 척추에 암이 있어서 그 이후에 항암 치료하고 후유증으로 하반신 마비가 되면서 휠체어를 아주 어릴 때부터 탔거든요. 네 살 때부터 탔는데 그러다 보니까 휠체어를 타고 밖에 나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저도 전혀 아무런 감이 없다가 아이 때문에 알게 된 거예요."

    아이와 함께 외출을 할 때마다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다져야 했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오는 저상버스는 장애인 혼자선 탑승이 어려웠습니다.

    "이거 고장 났어… 원래 이거 이러면 안 되는데…"

    지하철에선 엘리베이터 찾는 게 일.

    엘리베이터도, 휠체어 리프트도 없을 땐,

    "여기는 저기(리프트)가 없다 지민아"

    아이를 둘러메고 계단을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동차보다는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타는 걸 좋아한 딸.

    홍윤희 씨는 아예 딸과 같은 장애인들을 위해 지하철 환승 지도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협동조합을 설립해 자원봉사자 200명과 함께 지하철 곳곳을 파악하며 다닌 지 3년.

    2017년 유동인구가 많은 18개 역을 대상으로 시작된 지도 제작은 2020년 서울 시내 53개 역 256개 구간의 환승 지도를 만드는 것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홍윤희 /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지하철역에 그 아이돌 스타들 생일 광고 많이 하잖아요. (아이가) 그걸 보러 다닌다고 오늘 나 여기 다 돌고 올 거야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혼자 나갔다가) 잘못해서는 뭐 (휠체어) 바퀴가 끼면 어떡하니 뭐 굉장히 걱정을 하고 이랬거든요. 그런데 이제 저희 아이가 걱정하지 마 엄마. 엄마가 만든 지도가 있잖아.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 얘기 듣고 굉장히 좀 뿌듯했고요."

    홍윤희 씨는 이제 장애인들의 편의시설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장애인 역세권 지도' 제작에 착수했습니다.


    [홍윤희 /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저희의 목표는 지하철 역 주변에 갈 수 있는 식당, 카페, 편의점, 화장실 이런 데들을 찾아보려고 하는 거예요. 서울 지하철 역 50개 역 주변에 휠체어로 갈 수 있는 정보들을 모으고 그리고 휠체어로 갈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을 어떤 것을 뜻하는지를 정의를 내리고 그거를 이제 데이터를 모으는 활동을 하고요."

    그러나 장애인들이 마주한 현실은 여전히 험난합니다.

    전신마비 장애인 고경호 씨.

    활동지원사가 없인 잠자리에서 일어날수도 물 한 잔도 제대로 마실 수 없습니다.

    현재 사회복지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 중인 고 씨는 용인시 자택에서 서울 송파구의 교육시설까지 수업을 들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수업 시작 시각은 오후 1시.

    고 씨는 오전 10시 반부터 출발 채비를 마쳤습니다.

    지하철역으로 가기 위해 장애인 콜택시를 부릅니다.

    [고경호 / 신체장애인]
    "(감사합니다. 이동지원센터 김나영입니다.)
    여기 집에서요. 오리역 6번 출구 가려고 하거든요. 지금 좀 대기자 많으신가요? (지금 현재는 많이 있으세요.) 그래요. 네 알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오늘 콜택시를 찾는 사람이 많다는 말에 마음이 급해진 고경호 씨.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집 밖을 나섭니다.

    택시를 기다리려는 게 아닙니다.

    [고경호 / 신체장애인]
    "(기자 : 전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왜 이렇게 바로 밖으로 지금 나가시는 거예요.) - 이게 어떤 날은 일찍 도착할 때도 있고 택시가 부르면, 어떤 날은 한참 기다려도 안 올 때가 있어요. 그게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조금 안 온다 싶으면 일단 제가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요. (어디 가시는데요. 지금) 그래서 저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경전철 역으로 가고 있거든요."

    아파트 바로 앞엔 버스정류장이 있지만, 그대로 지나쳐 갑니다.

    용인시에 도입된 저상시내버스는 20여 대 남짓.

    차라리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합니다.

    [고경호 / 신체장애인]
    "저상버스가 별로 없어서요. 제가 원할 때 탈 수가 없고 일단 제일 확실한 교통수단을 선택하다 보니까…"

    다행히 10분 만에 택시가 잡혀가던 길을 멈추고 곧장 택시에 탔습니다.

    콜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분당선 오리역 6번 출구 앞.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입니다.

    낯선 역에 가면 엘리베이터를 찾는 데만 꽤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고 합니다.

    [고경호 / 신체장애인]
    "환승할 때 엘리베이터랑 다른 엘리베이터랑 거리가 너무 멀어서 환승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돼서 그래서 최대한 미리 학습을 하고 가는데 그래도 이제 가면은 잘 모르죠. 그러면 헤매고…"

    지하철에 탑승했습니다.

    열 정거장을 타고 복정역까지 가야 합니다.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목적지까지 가지 않고, 지하철로 갈아탄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고경호 / 신체장애인]
    "(택시를 잡았으면 송파 쪽까지 가시지 왜 내려서 지하철을 타실까. 그게 궁금하더라고요.) 대부분 (장애인)콜택시들이 지역 외에 시외로 나가면 좀 잘 안 걸려요. 불확실성이 있으면 또 지각의 확률이 커지고 그러니까 확실한 수단으로 이제 선택하다 보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복정역에서 내려 8호선으로 환승하러 가는 길.

    휠체어 리프트도 있지만, 고경호 씨는 무조건 엘리베이터만 이용합니다.

    [고경호 / 신체장애인]
    "(전동 휠체어는) 최대 중량이 한 150kg 이 정도 되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쭉 내려갈 때 좀 뒤뚱뒤뚱 흔들리고 내려가니까 아무래도 불안하죠. 리프트는 이렇게 물살 센 강에 뗏목 위에 있는 느낌이고 (그 정도예요?) 네 아무래도 다 뚫려 있고 옆에 사방 다 뚫려 있고 제가 운전을 직접 해서 올라가야 되는데 그게 운전이 미숙하면 앞으로 치고 나가면은 떨어지잖아요."

    한 정거장을 더 타고 장지역에 도착했습니다.

    목적지로 가려면 버스를 한 번 더 타야 합니다.

    그런데 버스를 탈 때면 주변 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여 늘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합니다.

    [고경호 / 신체장애인]
    "제가 차를 타려고 그러면 버스가 정차를 좀 해서 운전기사분이 오셔서 그런 거 다 작동하고 저를 앉혀줘야 되니까 이 좀 대기 시간이 걸리잖아요. 아무래도 이제 좀 다들 낯선 광경이니까 쳐다보기도 하고 그리고 자기가 이제 시간이 급한 사람들은 당황하는 표정도 있고"

    두 정류장을 지나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신호등 하나 건너서 수업 장소에 도착합니다.

    도착 시각은 12시 50분.

    10시 반에 출발했는데 교통수단 세 개를 갈아타며 2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비장애인에게는 버스 한 번 갈아타고 1시간 20분이면 올 수 있는 길입니다.

    장애인들은 20년 넘게 이동권을 보장해 달라며 애타게 호소해 왔습니다.

    지난달 22일, 지하철 3호선 충무로역.

    [지하철 안내방송]
    "휠체어 탑승객이 승차하고 있습니다. 조금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문이 열리자, 목에 피켓을 단 장애인들이 줄지어 안으로 들어섭니다.

    출근 시간, 비좁아진 객실 여기저기선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지하철 승객]
    "야, 너네 뭘 잘 하는데 출근시간에 왜 자꾸 그래? 왜 계속 몇 달째 XX인데 이 XX… 출근시간 늦게…"

    [지하철 승객]
    "이거 막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뭘 가만히 있어요. 아저씨들 때문에 내가 출근 시간이 한 시간 반씩이나 늦어졌는데"

    급기야 욕설까지 날아듭니다.

    [지하철 승객]
    "어디다 대고 XX이야. 얼른 꺼져. <욕하지 마세요.>"

    출퇴근길 승객들의 반발을 불러온 지하철 승하차 시위는 지난해 말부터 석 달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때마다 시민들의 불편을 전하는 기사들이 줄을 이었지만, 정작 장애인들이 왜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시위에 나섰는지, 그 이유에 주목하는 보도는 많지 않았습니다.

    장애인들은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가 자신들이 내건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바꿔보려고 시위에 나섰다고 했습니다.

    2001년 오이도역, 2017년 신길역에서 벌어진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망 사고.

    이명박·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은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2022년 현재, 서울지하철 283개 역 중 22개 역에는 아직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았습니다.

    [이형숙 /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90% 설치됐다는 것이 물론 많이 됐지만 그 나머지 10% 설치 안 된 곳은 장애인은 접근도 못하는 거예요. 사실은 그래서 이게 완전히 바뀌어야 되는 거지 뭐 몇 퍼센트가 중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버스는 어떨까.

    휠체어를 타고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 도입률은 27.8%에 불과합니다.

    2020년 목표치 42%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저상버스가 가장 많은 서울조차도 도입률이 57.8%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형숙 /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탈 때는 저상버스가 있지만 환승되는 공간에 가면 저상버스가 없고 그러다 보니까 이걸 매번 기억하기도 힘들고 그때그때 하기 힘드니까 사실 저상버스가 저는 제가 볼 때는 완전히 100% 도입하지 않으면 사실 장애인들이 저상버스 이용하기 힘들어요."

    시위에 나섰던 장애인들은 자신들을 향한 비난 여론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장애인의 이동권이 보장된다면 장애인뿐만 아니라 더 많은 시민들이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형숙 /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지금은 엘리베이터 타면 뭐라고 하냐면요. 대부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노약자들 특히나 어른들이 '야 우리나라 국가 이런 걸 만들어서 이렇게 편리하게 있는데, 야 이거 있으니까 너무 좋은데 이거 누가 이렇게 생각하는지 몰라’ 그러면서 저를 가리키면서 ‘야 장애인들도 이렇게 휠체어 타고 옛날 같으면 생각지도 못하는데 진짜 우리나라 살기 좋아졌다’고 얘기를 해요. 좀 마음이 아프죠. 이거 하느라고 얼마나 욕을 얻어먹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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