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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최훈

[스트레이트] 잇따르는 죽음‥벼랑 끝에 선 '발달장애'

[스트레이트] 잇따르는 죽음‥벼랑 끝에 선 '발달장애'
입력 2022-06-12 21:08 | 수정 2022-06-12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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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방영 중인 한 드라마.

    다운증후군을 가진 실제 발달장애인이 출연해, 삶과 연기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영희 발달장애인/tvN <우리들의 블루스>]
    "너 나 버렸지? 7년 전에. 엄마, 아빠가 잘해주랬지? 언니한테. 그런데 왜 나 버렸어! 왜 왜 왜!"

    가슴 깊이 눌러뒀지만, 끝내 터져버린 울분.

    쌍둥이 동생은, 미안함에 앞서 무기력함에 더 고통스럽습니다.

    [영옥 영희 동생/tvN <우리들의 블루스>]
    "한 때 나도 같이 살고 싶었어. 근데 같이 살 집을 얻으려고 해도 안 되고, 일도 할 수 없고, 일반 학교에서는 쟤(영희)를 거부하고, 특수학교는 멀고…"

    '영희' 역의 배우 정은혜 씨.

    화면 속 영희와 현실의 은혜, 둘은 한 몸입니다.

    [장차현실/배우 정은혜 씨 어머니]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또 그 발달장애인 가족을 돌봐야 하는 형제의 어려움, 그 무게감 그걸 또 떨쳐버릴 수 없는 (삶의) 슬픔, 영희가 갖고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런 것들이 이제 그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거죠."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서른 살을 훌쩍 넘겼지만, 딸은 여전히 하루 24시간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장차현실/배우 정은혜 씨 어머니]
    "청년이 되었을 때 이 세상에, 이 한국 땅에 발 디딜 데가 없는 거죠. 은혜가 집에 혼자 있으면서 퇴행이 거듭되고 여러 가지 틱(장애)이 생기고, 그리고 시선 강박증이 생기면서 조현병의 증상을 보였을 때 굉장히 절망하게 되더라고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 없는 막다른 길, 기어이 절망의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장차현실/배우 정은혜 씨 어머니]
    "저도 은혜의 그런 상태를 보면서 가벼운 뇌졸중이 왔어요. '아 나의 인생이 바닥을 친다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은혜, 우리 이제 그만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살았으니…'"

    '좀 쉬고 싶다'는 넋두리..

    이런 하소연이 그 냥 빈말이 아니라는 걸 가혹한 현실은 일깨우고 있습니다.

    [MBC <뉴스데스크>/2020년 6월 4일]
    "중증 발달장애인 아들을 돌보던 50대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MBC <뉴스데스크>/올해 3월 3일]
    "초등학교 입학식 날 반지하 주택에 살던 40대 엄마가 8살 장애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긴급체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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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의 목숨을 거둔 엄마가 체포됐다는 그날, 경기도 시흥에서도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갑상선 암 수술을 받고 힘겹게 살아가던 50대 엄마가, 20대 발달장애인 딸을 살해한 겁니다.

    범행 후 이 엄마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하고, 112에 전화를 걸었는데요.

    딸에게 눈물로 남겼던 유서가 발견됐습니다.

    [☎ 경찰 관계자]
    "딸 일기장 같은 데다가, '나중에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아라' 이런 내용이었어요."

    엄마가 처음부터 독한 마음을 먹었던 건 아닙니다.

    병든 몸으로 꽃가게를 꾸리며 희망을 키웠지만 코로나 한파까지, 엎친 데 덮쳤습니다.

    [이웃 상인]
    "(엄마가) 갑상선암을 수술했어요. 내가 그랬지 '과로하면 안 된다고' 근데 열의가 있어서 그렇게 일을 매일같이 하더라고. '쟤를 두고 내가 죽으면 어떡하겠나, 쟤를 죽이고 나도 죽어야지' 이 마음을 먹은 것 같아…〈장사도 잘 안 되셨다고 하더라고요.〉안 되죠. 여기 조그맣게 동네 앞에 차려놓으니까, '작은 매장 찾아서 들어왔다' 하더라고, 월세 적게 나가고…"

    발달장애인 가족의 살인 사건은 지난 3년간 23건 발생했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속출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만 무려 네 건.

    지적 장애인이 조카에게 맞아 숨지더니, 어느 엄마는 6살 발달장애 아들을 안고 함께 투신했습니다.

    발달장애아를 기르던 부모가 함께 몸을 던져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이달 초에도 20대 발달장애 형제를 홀로 키우던 아빠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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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이 도처에서 잇따르자,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은 거리로 나왔습니다.

    이들은 서울 용산의 대통령 집무실 주변과 국회, 서울시의회 등에서 모이고 있습니다.

    '국가가 나서 죽음의 사슬을 끊어 달라'는 절규입니다.

    [조경윤/발달장애인 (지난 7일)]
    "엄마 아빠랑 행복하게 오래오래 같이 살고 싶습니다. 저의 장애로 인해서 엄마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엄마한테 매일 미안합니다. 저는 우리 엄마가 앞으로 저 때문에 슬프지 않고 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달 10일까지 '집중 투쟁'을 선포했습니다.

    지난달 23일 하루에 벌어진 두 사건 사망자들의 49재가 끝나는 날입니다.

    지난주 국회 앞 집회에선, 한 어머니의 애끓는 호소에 분위기가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김현미/발달장애인 가족 (지난 7일)]
    "이제 태어난 지 20년밖에 안 된 아이를 20년만 살게 하고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행복하게 살다가 자기 생을 다하고 갈 수 있도록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죽어가는 발달장애인의 가정을 두고 국가가 두 발을 뻗고 잔다면 그게 국가입니까."

    극단적 선택을 떠올렸을 만큼 무거웠던 엄마의 자리.

    김현미 씨는 어떻게 이 운명을 감당해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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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저는 19살 자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최유식 군의 엄마 김현미입니다.

    -(발언하시던 날) 주변에 다른 집회들도 있어서 되게 소란스러웠다고 하는데 어머님 나오시고 나서 분위기가 확 정리됐다고…

    그래요?

    -준비를 미리 하신 건 아니죠?

    20년 준비를 한 거죠. 따지고 보면. 진짜 제 가슴에 있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게 49재 투쟁이잖아요. 그런 소식들을 접하실 때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그분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에 진짜 절실히 공감됐어요. 정신적으로도 병이 나고 육체적으로도 병이 나고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2주간 계속 악몽을 꿨어요. 뭐 심지어 그 악몽 속에는 내가 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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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두 돌 무렵이었습니다.

    갓 태어난 둘째는 배가 고프거나 졸리면 울었는데, 첫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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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아이가 너무 틀린 게 이상하기도 했었는지 불현듯 그런 생각에 병원을 찾아가 봤어요. 의사 선생님이 검사 결과를 이야기하는데 '자폐 장애는요' 이러면서 첫마디를 그렇게 여세요. 그 얘기를 듣자마자 그날 그 시간에 바로 기절했어요. 그날 이후로 저는 심각한 상황까지 갔었어요. 계속 점점 다운되고 그래서 너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했을 때가 우리 아이 다섯, 만으로 4세도 안 됐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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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의 응원과 격려 덕에 일어섰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장애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이의 장애는 언젠가 사라질거라 믿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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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사이에 1억 원을 쓰셨다고..

    모든 단어 뒤에 치료만 붙이면 다 갔어요. 이렇게 하면 아이가 치료된대요. 그 말이 얼마나 힘이 되던지. 그 얘기를 제일 좋아했어요. 제가 제일 좋아했어요. 그때 그 시기에는 그리고 그렇게 얘기해주시는 분이 하자는 대로 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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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세월이 지나 유식이는 벌써 고등학교 3학년이 됐습니다.

    여전히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학교를 오고가는 것, 옷을 입는 것, 짜증날때 스스로를 때리지 못 하게 하는 것...

    20년째 엄마의 시선은 24시간 유식이 주변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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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졸업 후가 걱정이라고 하셨는데 당장 내년이 되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내년도 아니고요. 11월이에요. 11월까지만 (학교 수업을)하면 우리 아이는 이제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죠. 그래서 더 절실하게 와 닿아요. 이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주변에 언니들이 창업하셔서 아이하고 같이 창업하셔서 같이 고생하고 계시던데 나도 그렇게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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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4월 19일.

    발달장애인 부모 555명이 청와대 앞에서 삭발했습니다.

    더 이상 눈물도 흐르지 않습니다.

    덤덤한 얼굴 위로 머리카락만 쉴새 없이 떨어집니다.

    이 삭발식에 김미숙 씨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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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주호 엄마입니다.

    저희 아이는 23살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김미숙입니다.

    -삭발식 참여하셨잖아요. 그때 참여했을 때의 심정 이런 거 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머리 삭발은 아무것도 아니고요. 부모연대에서 정책 제안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책 제안을 실현할 수 있는 분들이 들어주지 않으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모여서 다 같이 이제 머리를 깎은 거고 저는 그냥 그중에 한 사람이었고 끊임없이 제안하죠. 끊임없이

    -언제부터 하신거죠?

    16년도에 시청에서 아이들이 끌려 나가는 영상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거를 보고

    - 왜 끌려 나갔죠?

    엄마들이 그때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를 설치해 달라고 농성했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끌려 나가는 그 영상을 보면서 제가 정신이 번쩍 든 거예요. 엄마가 옆에 있는데 어떻게 애를 끌어내지, 아 우리 애가 엄마가 없으면 이 사회에서 이런 대접을 받겠구나. 엄마가 없어도 이 사회에서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있으려면 어떤 움직임들을 지금 우리가 계속해야 하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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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호는 3남매 중 막내입니다.

    김미숙씨의 직업은 언어치료사.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늘 만나 왔지만 엄마로서 만난 장애는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직업상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들을 보고 있고 그렇지만 저희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고 진단이 되었을 때는 이게 '그 사람 검사가 틀렸을 거야' 이런 일이 나한테 생길 거라는 생각은 아무도 못 하는 거죠.

    -아까 일상이 주호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셨는데…

    저희뿐만이 아니에요.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는 가정은 모든 것들이 다 그 아이에게 맞춰져 있어요. 그 아이가 약하고 그 아이에게 돌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다른 형제들의 경우에는 그냥 정말 자기가 알아서 자기 것들을 챙겨가면서 자랄 수밖에 없어요. 엄마가 거기까지 도저히 돌아봐 줄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다행히 참 잘 자라줘서 너무 감사한데 어느 비장애 형제들에게나 다 그럴 거고 엄마들은 그 형제들한테 참 미안해요.

    주호 밥 먹을 걸 챙겨야 하고 먹여줘야 하고 그다음에 씻겨야 하고 입혀줘야 하고 이것을 아기 때부터 쭉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어요.

    자라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기니까 그렇지만 어느 거 하나도 혼자서 완전하게 다 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늘 제 시선이나 관심은 주호에게 가 있어요.

    우리나라의 발달장애인은 작년 기준으로 25만 5천여 명입니다.

    처음엔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 잡고 온 가족이 가혹한 운명에 맞서보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좌절하는 게 현실입니다.

    발달장애가 한 가정을 어떻게 궁지로 몰아 넣는지..

    저희는 세월의 흔적을 따라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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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안녕하세요. 은유 너 진짜 많이 컸다."
    "안녕하세요."
    "은총아 안녕 오랜만이다. 은총이 기억 나? 쑥스러워하는 거예요?"

    박은총.

    발달장애에, 6가지 희귀 난치병까지 앓고 있습니다.

    3살 때 의사가 1년을 못 넘길 거라고 했는데 올해로 스무살이 됐습니다.

    제가 은총이를 처음 만난 건 12년 전입니다.

    [시사매거진2580 은총이 아빠의 도전]
    "하지만 은총이 부모는 끝까지 치료에 매달렸고 세 살 때 오른쪽 뇌를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은총이는 어릴 때부터 늘 따가운 시선에 시달렸는데요.

    말도 못 하고, 잘 걷지도 못 하는 데다 혈관 기형으로 얼굴이 남들과 조금 다르기 때문입니다.

    [김여은/은총이 엄마(시사매거진 2580/2010년 10월 17일 방송)]
    "혀 차고 막…(혀 차는 거 진짜 싫어요.) 지나가는데 '쯧쯧쯧쯧' 계속 그러는 거예요."
    [박지훈/은총이 아빠(시사매거진 2580/2010년 10월 17일 방송)]
    "저기서 아이가 한 명이 쭉 달려오더라고요. 그래도 우리 은총이가 좀 어렸을 때였어요. 유모차에 타고 있었는데 딱 오더니 정지하더니 '괴물이다' 하고 다시 도망가더라고요. 자기 엄마 아빠한테. 한 두세 달 전에 아빠랑 아이 2명이랑 같이 지나가더라고요. 마트에서, 아이가 그래요. 아빠한테 '아빠, 쟤 사람 맞아?' 그러더라고요."

    은총이 가족은 늘 죄인인 양 숨어지냈습니다.

    그러던 2010년, 아빠는 큰 맘 먹고 세상 밖으로 나옵니다.

    여덟 살 은총이와 함께 철인3종 경기에 도전한 겁니다.

    [박지훈/은총이 아빠(시사매거진 2580/2010년 10월 17일 방송)]
    "많은 아이들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그냥 저희 보고 이렇게 이상하게 생긴 부자도 한다는 걸 (보고) 힘도 얻고, 용기도 가지고 삶도 포기하지 말고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희 모습을 보고요."

    야심찬 포부였지만, 철인은 그냥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빠는 수영도 이때 처음 배웠고, 중학생 이후 자전거도 타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준비하며 기다리던 대회날.

    은총이가 탄 보트를 1.5km 끌고 가야하는 수영.

    경기도 미사리부터 서울 여의도까지 40km 사이클.

    가장 힘겨웠던 마지막 10km 달리기까지‥

    총 51.5km 철인 3종경기 올림픽 코스를 4시간 반 만에 완주했습니다.

    "(박수, 음악 소리) 와 수고했어."

    이 도전이 <시사매거진 2580>을 통해 알려진 뒤, 삶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혀를 차던 사람들이 손가락을 치켜세웠고, 평창겨울패럴림픽 개회식 땐 은총이와 함께 마지막 성화 봉송자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개막식 중계영상]
    "박은총 박지훈 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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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만난 스무살의 은총이.

    아침엔 엄마·아빠가 번갈아 가며 몇 번을 깨워야 겨우 눈을 뜨는데요.

    몸 상태는 더 나빠졌습니다.

    여전히 말은 못 하고, 얼굴은 어릴 때보다 훨씬 더 부었습니다.

    오른쪽 눈이 녹내장으로 실명됐었는데, 같은 병으로 왼쪽 눈도 시력을 잃고 있습니다.

    [박지훈/은총이 아빠]
    "녹내장이 시야가 좁아지면서 실명되는 병인데 손이 이렇게 가도 몰라요. 은총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26번 수술했는데 대부분이 왼쪽 눈 수술을 한 거예요."

    키는 180cm 가까이 컸지만 소변도 혼자 보기 힘들고 양치질도 못 합니다.

    자다가 옷에 실례를 할 때도 있고, 삼시세끼 밥도 늘 챙겨줘야 합니다.

    [박지훈/은총이 아빠]
    "근데 안 씹어요. (잘 안 씹으려고 그래요.) 말도 마세요. 과일 하나 주면 군산에서 서울까지, 갈 때까지 씹지도 않고 그냥…"

    은총이가 혼자 할 수 있는 건 어릴 때나 지금이나 가장 좋아하는 뽀로로 만화를 보는 겁니다.

    오전엔 TV로, 오후엔 컴퓨터로 하루 서너 시간씩 스스로 찾아봅니다.

    "히히히 <은총아 재밌어?> 히히히"

    [박지훈/은총이 아빠]
    "이게 참 지금도 그렇지만 저희한테는 슬픈 뽀로로예요. (왜?) 은총이가 20살인데 40살 먹어도, 50살 먹어도, 60살 먹어도 저거 보고 이러고 좋아할 것 같아요. (난 좋은데) 좋아? 은유가 좋으면 됐어. <좋아하는 게 있다는 게 어디야>"

    은총이는 자라면서, 직장에 다니는 엄마보단 아빠의 보살핌에 더 의존하게 됐습니다.

    [김여은/은총이 엄마]
    "어릴 때는 은총이가 제 말도 잘 듣고 제가 은총이를 (감당) 할 수가 있었어요. 근데 (은총이가) 크면서 제가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샤워 씻길 때도 너무 힘든 거예요. 제가 막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은총이) 아빠가 봐주고. 이제 저는 사회생활하고."

    아빠도 힘들긴 마찬가지인데요.

    은총이가 특수학교를 졸업하자 이젠 갈 곳이 없어진 겁니다.

    코로나까지 겹쳐 2년 넘게 외출도 거의 못 했습니다.

    [박지훈/은총이 아빠]
    "우리 은총이가 코로나 걸리면 정말 죽을 것만 같았어요. (외출 못 하니까) 좀 솔직히 많이 미치겠어요. 많이"

    여동생까지 생겨 돈 들어갈 곳은 많지만 은총이 보느라 아빠는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박지훈/은총이 아빠]
    "제가 원래 은행 직원이었는데 은총이 안 아팠으면 아마 최소 지금쯤 지점장 정도는 돼 있지 않을까 연봉도 꽤나 많이 받고요. 그런 거(직업) 없어지고 뭐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죠) 그냥 (15년간) 신용불량자 돼서."

    이제 가장 큰 걱정은 초등학교 2학년인 은총이 여동생 은유입니다.

    [김여은/은총이 엄마]
    "신랑이 요즘에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그거 보라고 해서 제가 봤거든요. 아픈 아이를 둔 형제자매들 얘기가 나오는데 은유 생각이 너무 많이 나는 거예요. 죄송해요. 은유 생각이 좀 많이 나더라고요. 지금은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 다 되는데 만약에 없으면 우리 은유가 다 감당해야 할 것이…"

    은유도 벌써 그런 생각을 하나봅니다.

    [박은유/은총이 동생 (초등학교 2학년)]
    "<'엄마 아빠 없으면 오빠랑 어떻게 살아야 돼?'라고 물어봤다고 하던데 기억나? 왜 물어봤어?> 오빠가 장애인이니까 바지에 대변 싸고 그러니까 '그걸 내가 나중에 다 커서 어떻게 치우냐'고 그런 말을 한 거예요. <그게 걱정됐어?> 네. <오빠 좋아하잖아>그래도 그건 좀. 내 대변도 못 치우는데."

    보증금 1억 원도 안 되는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아빠는 예전 철인경기 이후 은총이 이름을 딴 대회 수익금 7억 원을 흔쾌히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정성을 모아 나라에서 지원책을 잘 마련해 달라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빠는 우리나라 발달장애인 정책에 낙제점을 줬습니다.

    [박지훈/은총이 아빠]
    "2003년에 은총이 태어나서 봤을 때는 그냥 0점이었으면 지금 한 25점 정도. 아주 천천히 느리지만 변화는 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이렇게 표현하면 맞는지 모르겠어요. 항상 목이 마르죠. 갈증이 나죠. 미치겠죠. 이제 그러면서 이 갈증 못 견디는 사람은 스스로 목숨 마감을 하는가 봐요. 자기 아이 데리고…"

    은총이 아빠가 '25점 짜리'라고 한 정책, 뭐가 문젠지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발달장애인들도 어릴 땐 학교나 어린이집처럼 갈 곳이 제법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 늘고 있고요.

    이거 다 부모들이 삭발하고, 삼보일배하고, 무릎 꿇어가며 어렵게 얻어낸 겁니다.

    문제는 성인이 된 이후입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갈 데가 없습니다.

    성인이 이용할 수 있는 제도는 크게 3가지,

    평생교육센터와 주간보호센터, 그리고 주간활동서비스가 있습니다.

    주간보호센터는 1996년에 처음 생겼고, 다른 건 문재인 정부 들어 만들어졌습니다.

    다 좋은 제도인 건 맞는데 실제 이용하기가 쉽지 않아 '그림의 떡'이라는데요.

    먼저 평생교육센터.

    서울은 중구를 제외한 모든 구에 설치돼 있고, 지방엔 도별로 1~2곳씩 있습니다.

    언어 치료와 미술 치료뿐만 아니라 바리스타 같은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방송댄스 같은 취미활동도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인기가 많겠죠.

    그런데 정원이 한 곳당 보통 30명 정도로 제한돼 들어가는 것도 힘들고, 운 좋게 들어가도 딱 5년만 다닐 수 있습니다.

    말로만 '평생'교육센터인 겁니다.

    [김미숙/발달장애인 가족]
    "그냥 바우처(상품권)처럼 5년을 준 거예요. 어떤 통기관을 다 이쪽으로 옮겨 다녀도 전체로는 5년 밖에 이용하지 못해요. (평생교육센터) 졸업하고 나면 주호가 28살인데요. 28살이 되어서 주호가 다시 집으로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집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퇴행의 시작이에요."

    그다음, 정부가 운영하는 장애인주간보호센터도 비슷합니다.

    간단한 프로그램들을 준비해, 낮시간 장애인들을 맡아주는 시설인데요.

    발달장애인 말고 다른 장애인들도 함께 이용하다보니 경쟁률이 너무 높고, 중증 장애인은 안 받아주는 곳도 많습니다.

    [발달장애인 가족]
    "(제 아이가) 자해를 해요. 막 턱을 박아버리는 거예요. 그러고 막 울부짖어요. 큰 소리로 쾅쾅 차버리고 엄청 음성이 커요. 저도 정말 시설 보내려고 했는데 한군데도 받아주는 데가 없고…"

    마지막으로 주간활동서비스는 부모가 급한 일이 생겼을 때 활동지원사가 대신 돌봐주는 제도인데, 한 달 기준으로 최중증은 165시간, 경증은 85시간까지만 가능한데요.

    그렇다고 원하는 만큼 쓸 순 없습니다.

    중증환자들은 시간이 남아 있어도 활동지원사들이 외면하기 일쑤입니다.

    더욱이 지난 2018년 기획재정부는 당시 처음 도입된 주간활동서비스 관련 예산안을 대폭 삭감해 비난을 받았는데요.

    편성된 예산은 116억 원, 전체 발달장애인의 채 1%도 혜택을 받지 못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처럼 이런저런 제도나 사업들이 운영은 되지만, 실효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입니다.

    2년 전 광주광역시엔 발달 장애인 24시간 돌봄센터가 생기기도 했는데요.

    따로 마련된 집에서 24시간 동안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지낼 수 있다니, 부모들의 기대가 컸겠죠.

    하지만 경조사같은 특별한 일이 생겨야 이용 가능하고, 정원은 고작 4명, 그것도 최장 5일간만 머무를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지원 정책을 설계하는 원칙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익중/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분들에게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그럴 때 '레스트 케어'(보호자 휴가)라고 해서 일시 휴가 같은 것들을 줄 수 있도록 한다든지 장기 안심 휴가를 줄 수도 있고요. 그분들이 나를 돌아볼 수 있고, 내 상황을 뭔가 다시 한번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가져야지 이런 극단적 선택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지 않을까."

    이처럼 한 발짝 떼기도 어려운 정부 정책이 지지부진한 사이, 아이들은 커가고 부모는 나이가 듭니다.

    '안 되겠다, 내가 먼저 나서야겠다' 이런 마음을 먹고 아이의 교육과 일터를 직접 만드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

    저는 18살 아들이랑 16살 딸을 키우고 있는 수원에서 온 임신화라고 합니다.

    저희 아이들은 두 살 터울의 남매인데 둘 다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현재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고요. 아이들 때문에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일을 하고 있는 일하는 엄마이기도 합니다.

    -좀 더 많이 힘드셨을거 같아요. 치료비도 엄청 드셨다고…

    두 명이다 보니까 한 아이당 뭐 200만 원씩 하면 400만 원이니까 남편 수입의 대부분을 지출했죠. 남편 몰래 현금 서비스도 받고 그렇게 하기도 했었어요.

    '매달 내는 이 400만 원이라는 치료비가 다시 우리 아이들한테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우리가 만들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해서 협동조합을 한번 만들어보자 한 건데 좀 애를 먹었다가 이제 소문들이 많이 나서 현재는 190명 정도의 조합원이 함께하고 있고요.

    치료 서비스에서 시작했는데 저희가 내년에 시행하려고 하는 건 주간활동서비스와 일자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희가 반려동물 간식 사업을 7월에 새로운 브랜드를 오픈해요.

    -정부에서 지원을 지금 받고 계세요? 지원이 있나요?

    이런 질문을 되게 많이 하세요. 근데 정말 하나도 없어요. 다 이제 공모사업인 거예요. 다 저희가 제안서를 써야 하고요. 이런 행정작업이 되게 어려우시잖아요. 특히 저보다 선배님들 같은 경우에는 그런 피티를 준비하거나 다 행정인데 그런 것들을 하기가 힘들어서 포기하시는 분들도 많으시죠.

    그래서 저도 선뜻 부모님들에게 (협동조합을) 쉽게 만들라고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라 꼭 만드시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그냥 지자체나 아니면 정부에 계속 이런 부분들을 요구하는 이런 정책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많이 말씀을 드리죠.

    -'우리 애들은 그래도 미래가 걱정 없겠다' 이런 생각은 드세요?

    전혀 안 들어요. 이제 고2이고 내년이면 고3이고 학교를 졸업하는데 똑같은 거죠. 우리 기관에서 주간활동서비스를 이제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그거를 '우리 아들이니까 1순위로 무조건 입소해야 된다' 그렇지 않잖아요. 숫자가 딱 이제 정해져 있거든요. 거기를 초과해버리면 저희 아들이라고 해도 다닐 수가 없는 상황인 거고…

    조금씩은 발전하고 있어요. 근데 내가 사후, 죽었을 때 우리 아이들한테 완벽하게 내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을 만큼 그 과정 그 속도로는 발전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 조합을 만든 이유는 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게 목표여서는 안 된다. 내 아이가 나보다 당연히 오래 살아야 하고 그냥 살았던 곳에서 계속 살게끔 그거를 우리의 힘으로 우리가 먼저 준비하자고 해서 만들었지만 그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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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의 제도적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데 그렇다고, 협동조합같은 자구책을 마련한다고 사정이 나아지는 건 아닙니다.

    그럼 뭘 할 수 있을까요.

    "아이가 커서 성년이 됐을 때 인간으로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살 수 있을 지 걱정이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이 정말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짐짝 대우를 받는다"

    장애인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들인데요.

    요즘은 '한국을 떠나는 게 답'이란 말까지 나옵니다.

    [김현미/발달장애인 가족]
    "대한민국을 저버리고 외국으로 이민 가셨다는 분들 저는 그 심정 이해가 돼요. 장애인만큼 있어서는 대한민국은 선진국 그런 거 아니에요. 국가도 아니에요."

    국내총생산 GDP의 2.3%를 장애인 복지 예산에 쏟아 붓는 독일.

    반면 한국은 GDP의 0.6%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입니다.

    예산도 예산이지만 독일의 강점은 촘촘한 맞춤 설계인데요.

    독일 말로'Tagesstruktur(타게스슈트르투어)' 바로 '일상생활을 조직'해 준다는 뜻입니다.

    적십자사 등 독일 전역의 6대 비영리 민간 복지 단체가 실무를 담당합니다.

    각 지자체가 이들 단체에 예산을 주고, 발달장애인들에게 개별 프로그램을 짜서 지원하는 건데요.

    대표적인 게 기독교 봉사회가 운영하는 '디아코니'입니다.

    [잉에 블룸/독일 디아코니 책임자]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이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또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장애인 작업장 공장에 갈 수도 있고, 출근할 수 있는 사람은 작업장으로 보내 주고 나갈 능력이 없는 사람은 집에서 돌봐주고, 그 다음에 주간보호센터라는 게 또 있어요. 주간보호센터로 보내주고,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하루 생활을 다 조직해주는 거죠."

    우리처럼 고등학교 졸업하면 갈 곳이 없다거나, 시설에 가면 5년 뒤 쫓겨날 일이 없는 거죠.

    독일 전역에 이런 디아코니가 5천여 곳, 일하는 사람만 무려 60만 명입니다.

    연결시킬 수 있는 병원과 요양원, 주거시설, 복지시설, 직업시설은 3만 개가 넘는데요.

    먹고 자는 기초적 일상부터, 운동을 하고 음악을 배우는 취미 활동, 돈을 벌 수 있는 공장까지 모두 이 곳에서 맞춤 설계를 해줍니다.

    [정재훈/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재활 훈련, 훈련을 받을 수 있는 데도 있고 어쨌든 집을 나서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럼 그 이동 서비스, 이동도 시켜주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 딱 도착해서 직업 교육사 무슨 재활복지사, 사회복지사 전문가들이 다 해주고 그 다음에 끝나면은요. 또 이동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럼 그 이동도 해주죠. 그러니까 장애인 작업장 끝나면은요. 우리 봉고차 같은 게 수십 대가 쫙 와 있어요."

    부모의 소득이나 재산 수준도 상관 없습니다.

    지자체에 발달장애인으로 등록되면 누구나 평생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원 정책을 설계하는 관점부터가, 우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잉에 블룸/독일 디아코니 책임자]
    "예전에는 사람들이 제도에 맞췄어야 했지만 지금은 제도가 사람들의 욕구에 맞춰서 설계됩니다. 장애를 국가가 포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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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는 발달장애인 가족의 삶까지 책임져 주는 곳도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주인데요,

    이미 1969년에 주정부 차원의 발달장애인 지원법이 만들어졌습니다.

    비영리 민간단체인 지역센터 21곳이 예산을 받아, 이 일을 담당합니다.

    세 살이 지나 이 단체에서 발달장애 진단을 받으면 특수교육은 물론, 주간 보호, 이동 서비스를 지원하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직장과 주거 시설도 마련해 주는데요.

    [에비 정/미국 캘리포니아 리저널센터]
    "발달장애인 1명당 담당 코디네이터가 있어요. 그 가족들과 소통하면서 서비스 신청도 받고, 같이 만나서 계획도 세우고, 서비스는 죽을 때까지 저희 고객인 건… 주간학습센터라든지, 직업 교육이라든지, 취미생활이라든지, 사회성 증진 프로그램이라든지 그걸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3년에 한 번씩 계획을 세워줘요. 좀 더 독립적인 삶 그리고 좀 더 사회 일원으로서 삶을 지향하도록 해요."

    특히 가족을 지원하는 서비스가 우리로서는 부러운 대목입니다.

    돌봄에 지친 가족들 대신 발달장애 자녀를 정기적으로 돌봐주며, 휴식 기간을 갖도록 해주는데요.

    [미국 '지역센터' 이용 어머니]
    "정말 너무 여러 분야에서 너무 많은 전문가가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주시니까 아이는 아이대로 굉장히 많이 바빠지잖아요. 치료실도 다니고 학교도 다니고… 엄마가 혼자서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그런 심리적 부담감에서 자유로워지니까 그게 제일 중요했어요."

    1년 예산은 13조 원.

    캘리포니아주에서만 쓰이는 돈인데, 한국 전체 장애인 복지 예산보다도 3배가 많습니다.

    놀라운 건, 장애아에 대한 부모들의 뒷바라지를 '노동'으로 인정하는 겁니다.

    '활동보조사' 자격증을 따서 자녀를 돌보면, 주정부에서 '임금'을 줍니다.

    우리에겐 아직 남의 일입니다.

    [김여은/은총이 엄마]
    "부모가 보면은 (우리는) 활동지원사로 인정을 안 해주더라고요. 청원을 몇 번 넣었다고 하는데도 그게 잘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만약에 그런 서비스가 있다면 내가 내 자식 보면서 경제적인 건 생각 안 하고 봐 볼 수 있지 않나…"

    -이른바 선진국들의 이런 지원 사례들과 우리나라를 비교해 봤을 때 어떤 점이 제일 차이가 클까요?

    선진국에서는 장애 진단을 받게 되면 지원 팀들이 작동해요.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주면 이 아이가 가지고 있는 기능들을 최대한 살릴 수 있을까 엄마가 그렇게까지 고생 안 해도 돼요.

    내 아이가 장애 판정을 받았어. 그럼 이걸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물어봐야 하지부터 아무도 나한테 얘기해 줄 수 있는 곳들을 떠올리지 못해요. 그러니까 네이버에 초록 창에 물어보는 거예요.

    그리고 선진국 같은 경우에는 그러한 비용 부담에 대한 것들이 우리만큼 심각하지 않아요. 우리 같은 경우 의사가 진단하면 처방이라고 주시는 것이 뭐 몇 시간, 뭐 몇 시간

    -언어치료 몇 시간

    그렇게 주면 총비용이 한 달에 300만 원을 넘어요. 300만 원, 500만 원을 넘어요. 그러면 그 진단을 받는 연령대의 아이들의 엄마들은 30대예요. 그 비용들을 감당하면서 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그것을 못 했을 때 엄마한테 마음속에 남는 죄책감이 얼마나 크겠어요.

    -선배 엄마들 계실 거 아니에요. 그분들은 어떻게 지내세요?

    선배님 중에 30대 후반의 자녀를 키우는 분들도 자주 볼 수 있는 상황들이 있어서 자주 봬요. 그러면 아직은 내가 할 수 있으니까 같이 있는다고 얘기하시지만 '곧 내가 이제 80이 되고 하면 시설을 알아봐야 하지 않겠나'라는 얘기들을 많이들 하시죠.

    우리들은 아이가 장애가 진단이 된 그 순간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과 에너지와 모든 것들을 이 아이에게 쏟아부으면서 같이 자랐어요. 그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이 아이가 이 사회에서 같이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했어요. 그렇게 자라라, 그렇게 했죠.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시설에 보낼 수가 없어요.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만나야 해요. 만나려면 학교를 다녀야 하고 지역사회로 나와야 하거든요. 그렇게 하기 위한 것들을 로드맵으로 그려주시는 것 자체가 그렇게 어려운 작업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지난달 한국을 찾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윤석열 대통령은 집무실에 걸린 발달장애인 화가 김현우 씨의 작품을 자랑스럽게 소개했습니다.

    후보 시절이었던 지난 1월, 한국 발달장애 아티스트 특별초대전을 관람하며 작품 엽서를 구입하기도 했는데, 이건 집무실 탁자에 놓여있습니다.

    [윤석열/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지난 1월]
    "세상과 남과 소통할 기회를 좀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행복추구권'에서 출발하는 그런 권리입니다. 우리가 권리를 잘 지켜드려야 되겠다."

    그 집무실에서 멀지 않은 삼각지역엔 최근 세상을 떠난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분향소가 차려져 있습니다.

    [김현미/발달장애인 어머니]
    "한 번쯤은 오셔서 얘기를 직접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분향소를 지하철역에 해서 그럴까요. 차를 타고 출퇴근하셔서 그걸 모르시나요. 시민과 소통하고 국민과 소통하고 편하게 지내신다고 하는데…"

    5백 명이 넘게 삭발을 해도, 매주 집회로 목소리를 드높여도 아직 엄마들은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수정/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
    "이런 나라에 아이를 낳은 제가 죄인입니다. 이런 나라에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을 낳은 제가 죄인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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