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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이재민

[스트레이트] 지금도 실습 나가는 '다음 소희'들

[스트레이트] 지금도 실습 나가는 '다음 소희'들
입력 2023-03-26 21:17 | 수정 2023-03-26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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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CR ▶

    영화관으로 관객들이 하나 둘 입장합니다.

    다른 극장처럼 표 검사도 없습니다.

    영사기가 돌아가자 관객들은 불편한 듯 눈살을 찌푸리고, 새어나오는 탄식을 손으로 막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영화가 끝났는데도 훌쩍거리는 소리만 여기저기서 들릴 뿐, 객석에는 침묵이 감돕니다.

    관객들은 대부분 이 지역 교사들입니다.

    좋은 영화를 보겠다며 60여 명이 상영관을 통째로 빌렸습니다.

    [이선진/영화 관객]
    "우리 사회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엄지영/영화 관객]
    "일단 영화 딱 끝나기 전부터 고구마 한 1백 개 먹은 느낌이었고요."

    SNS에서는 함께 보기 운동에 속속 동참하며 영화의 메시지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엄지영/영화 관람객]
    "학교는 꿈을 꾸는 곳이지, 감정 노동자를 길러낸다거나, 사회적 기득권 세력의 배터리를 키우는 곳이 아니다."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개봉 5주 만에 누적 관객 1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전국 다 해봐야 현재 개봉관이 20개도 안 되는 걸 감안하면 기록적인 수치입니다.

    [전찬일/영화평론가]
    "여전히 '헬조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그런 크고 작은 사회·문화적 문제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이것을 현실에서 풀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라는 거죠. 그렇죠? 그런 고민을 안 하면 무슨 그게 단체 관람으로 이어지겠어요."

    세계 무대 반응도 뜨겁습니다.

    우리나라 영화 최초로 칸 국제 영화제 비평가 주간 폐막작에 선정됐고, 각종 해외영화제 수상 소식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 기자 ▶

    영화 제목은 '다음 소희'.

    제작비 10억 원 짜리 독립 영화입니다.

    개봉관도 적고, 상영 횟수도 적어서 보고 싶어도 못 보신 분들도 많을 텐데요.

    오늘 스트레이트는 이 영화 얘기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영화이기에 이렇게 뜨겁게 공감하는 걸까요?

    영화는 그동안 우리가 소홀했던 노동과 인권 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열 여덟 살, 평범한 한 고등학생 이야기입니다.

    ◀ VCR ▶

    #1. 연습실
    (춤 연습하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소희)

    영화는 열정적인 춤 연습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춤 추는 걸 좋아하는 소희는 활기 넘치는 고등학생입니다.

    친구를 괴롭히던 성인 남성들에게 대들 정도로 당돌한 구석도 있습니다.

    그런 소희가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 부러움을 사며 대기업 통신사 콜센터에서 일하게 됩니다.

    #2. 학교
    "교사: 드디어 우리도 대기업 보낸다 이거야. 우리 소희, 기다리고 고생한 보람이 있다."
    "소희: 하청 아니고?"
    "교사: 하청도 다 같은 하청이 아니에요. 이름만 다른 직영 회사, 뭐 그런 거지."
    "교사: 자, 여기다가 사인하시고. 집에 가서 아버지 사인도 받아 놓고."
    (소희, 현장 실습 서약서에 서명)

    #3. 화물차 안
    "소희: 그래도 이제 나 사무직 여직원이다."

    헤드셋을 착용한 직원들이 줄줄이 앉은 낯선 콜센터.

    인터넷 상품을 해지하려는 고객들의 마음을 돌리는 게 소희의 일입니다.

    이른바 '욕받이' 업무입니다.

    고객의 분노를 받아내는 일은 소희가 견뎌낼만한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소희는 이 일을 시작하면서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해 갑니다.

    자존감은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 내렸고, 몸도 피폐해져 갔습니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건 목표치, 도달률, 성과급 액수까지 큼지막하게 붙여놓은 실적표였고 팀장은 실적, 실적을 외쳐댔습니다.

    #4. 콜센터
    "팀장: 전체 콜센터 통틀어, 우리 팀이 꼴찌죠. 특히 여기 김소희 씨. 며칠만 더 지켜보고 다시 판단할 거야."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들 수도 없었습니다.

    선생님에게 말하면 '사회 생활은 원래 그렇다', '후배들 생각해서 버티라'고 했습니다.

    중간에 그만두면 회사가 다음부터 후배들을 받아주겠냐는 겁니다.

    선생님에게는 취업률이 첫째였습니다.

    #5. 차 안
    "교사: 공장 나갔던 것들이 다 처 돌아와. 몇 달만 더 버티라니까. 일 괜찮지, 사고 안 쳤지?
    "소희: (끄덕끄덕)"
    "교사: 너밖에 없다. (보고서에 체크하며) 소희야, 버텨야 된다."

    소희는 끝내 혼자서 저수지로 향합니다.

    [정주리/영화 '다음 소희' 감독]
    "'어린 소녀가 성인도 하기 힘든 일을 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것이 있었고요. 그런데 그 친구가 사실은 학교에서 시킨 말하자면 '현장 실습이라는 교육 제도하에서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이게 사실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됐어요."

    ◀ 기자 ▶

    감독이 너무 기가 막혀서 스크린에 옮기게 됐다는 이야기.

    '다음 소희'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전주의 한 직업계고 3학년생이던 고 홍수연 양의 이야기를 극화한 건데요.

    수연 양은 영화 속 소희처럼 대기업 콜센터에서 근무하다 지난 2017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연 양은 '현장 실습생'이었습니다.

    과거에 실업계라고 불렸던 직업계고 학생들이 고3 때 업체에 나가 학생 신분으로 일하는 '현장 교육'을 말하는데요.

    현장 교육이 어쩌다 수연 양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걸까요?

    ◀ VCR ▶

    영화에서 소희가 마지막으로 향한 저수지.

    지난 2017년 콜센터 현장 실습생 故 홍수연 양이 세상을 등진 바로 그곳입니다.

    수연 양 아버지는 딸을 보낸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매달 저수지를 찾는데요.

    수연 양이 회사에서 들었을 모진 말들이 저수지 아래 가라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홍순성/故 홍수연 양 아버지]
    "휴대폰은 여기에 떨어진 거지."
    <그럼 지금도 가라앉아 있어요?>
    "지금도 가라앉아 있고. 못 찾았으니까."

    수연 양 아버지는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7년 넘게 운영하던 우유 대리점도 접고 섬으로 들어가 육지와 인연을 끊었습니다.

    딸 잃은 충격에 아내까지 시름시름 앓다 1년도 안 돼 세상을 떠났습니다.

    [홍순성/故 홍수연 양 아버지]
    "(아내가) 많이 힘들고, 집에서만 있고 나가지도 않고 그냥 울기만 하고 그러더라고. (뇌출혈로) 의자에 앉히면 넘어지고, 그래서 안 돼서 119에 바로 신고하고 실려 갔지."

    지금도 수연이가 다녔던 콜센터 건물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아버지는 딸이 보냈던 문자메시지를 보여줬습니다.

    저녁 6시를 넘겼는데 '콜 수를 못 채웠다'는 문자입니다.

    그날 할당된 고객 응대 횟수를 못 채워 제 때 퇴근하지 못한 겁니다.

    이런 일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실습을 나가기 전에 수연 양과 학교, 회사가 함께 쓴 협약서는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됐습니다.

    협약서는 현장 실습 시간이 하루 7시간, 회사가 실습생 동의를 얻더라도 1시간만 연장할 수 있다고 못박았습니다.

    그러나 일단 실습이 시작되자 회사가 새 근로계약서를 요구했습니다.

    수연 양은 하루 8시간 근무는 물론이고 연장에, 야간에, 휴일 근로까지 동의했습니다.

    실제로 수연 양은 점심 시간을 빼도 하루 10시간 넘게 일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달 내내 일해도 1백만원도 못 받았습니다.

    최저 시급보다 20% 적습니다.

    실습생이라 그렇게 줘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홍순성/故 홍수연 양 아버지]
    "적정선에서 대우를 해 주고 그것도 해야지. [학생이라고 무조건 갖다 부려먹으면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기업에서 달려드는 그 자체가 저는 싫다 이거예요. 법을, 왜 그러냐면 강화를 해야 쓰는 기업도 쓰는 학생도 일회용으로 안 쓸 거 아니에요."

    수연 양이 숨진 뒤 콜센터 측은 영화에서처럼 "실적을 강요하거나 압박한 적이 없다", "정서적으로 의심이 된다"며 수연 양 책임으로 몰아갔습니다.

    하지만 당시 동료 얘기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수연 양이 숨지기 전 같은 팀에서 일했던 30대 직원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는데요.

    실적 압박과 업무 스트레스가 누구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통신사 콜센터 직원 (2017년)]
    "소리 지르면서 화내는 것도 있고. 그냥 불만 사항을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고. '너 같으면 이런 X 같은 제품 쓰겠냐', 아니면 저희 보고 'XX 너네 다 똑같다'면서 그런 얘기를 계속 해요."

    폭언과 실적 압박, 장시간 근무에 저임금, 이런 열악한 환경을 담임 교사는 몰랐을까요?

    교사들은 현장 실습을 꼭 점검해야 합니다.

    담당 교사는 두 번 나가긴 나갔는데 영화에서처럼 밖에서 수연 양을 만났을 뿐 현장을 직접 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수정/노무사]
    "(교사들은) 그냥 학생한테 ‘너 여기다 서명해. 현장 실습 협약서 서명해’ 이런 얘기만 하고 오지, 직접 들어가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과정에서 교육을 받는지는 전혀 들여다보지 않거든요."

    영화를 본 교사들은 내용을 곱씹으며 자신을 돌이켜봤다는데요.

    [교사 (음성 대독)]
    "담임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다. 학생들을 취업시키고는 그 아이들이 힘들다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고 그만두고 오기라도 하면 소리치면서 혼내고 야박하게 굴던 내 모습."

    [교사 (음성 대독)]
    "카메라가 소희가 다녔던 회사, 학교, 교육청 칠판을 똑같이 비췄을 때 그 똑같음에 저는 교사로서 무너지고 말았어요.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은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는지 모릅니다."

    수연 양은 감정 노동자라는 이유로 산업 재해 신청도 못 했습니다.

    수연 양이 세상을 떠난 다음 해인 2018년에서야 감정 노동자의 산재가 인정됐습니다.

    콜센터 측은 수연 양이 떠난 다섯달 뒤에야 대표이사 명의로 사과했는데요.

    지금도 콜센터에는 실적이 우수한 직원들 사진이 현수막으로 붙어있습니다.

    통신사는 취재진에게 수연 양 사건 이후부터 현장 실습생을 받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 기자 ▶

    홍수연 양처럼 현장 실습을 나갔다가 숨지거나 다친 고등학생들은 한두 명이 아닙니다.

    감독은 "다음 소희는 없어야 한다"고 영화를 만들었지만, 바람과 달리 제2, 제3의 소희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 건데요.

    현실은 어쩌면 영화보다 참혹할지도 모릅니다.

    스트레이트가 다음 소희들을 만났습니다.

    ◀ VCR ▶

    오돌토돌 빨갛게 올라온 발진, 심할 때는 진물까지 나왔습니다.

    지난 2020년, 공업고등학교 3학년이던 때 도금 공장에 실습을 나간 최 모양의 팔입니다.

    황산같은 화학 약품에 노출된 건데, 발진은 석 달이나 이어졌습니다.

    [최OO/직업계고 졸업생]
    "도금 용액 분석을 시작을 했고, 그거에 따라서 피부가 조금 많이 안 좋아지기도 했었고, 진물이 난다든가. 피부과도 조금 다니고. 제가 눈에 질산이 튀어서 눈 살이 조금 녹고 했었거든요."

    발진이 다 낫기도 전에 화상도 입었습니다.

    이번에는 섭씨 50도가 넘는 니켈 도금 용액이 손에 닿았습니다.

    장갑이나 마스크 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최OO/직업계고 졸업생]
    "'저희 장갑이 없나요?'하고 입사한 당일에 물어봤는데 '없다'. 코로나 시즌이니까 '그냥 KF94 끼고 다니니까, 그걸로 만족해라' 하고서 마스크 지급은 따로 없었고요."

    할 일도 많았습니다.

    매뉴얼 만들기, 불량품 정리 등 업무 목록을 쪽지에 적어 컴퓨터에 하나하나 붙이다보니 14장이나 됐습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일하고 받은 월급은 150만 원 정도였습니다.

    한 달 뒤 실습이 끝나고, 정식 채용이 되면서 월급이 조금 늘긴 했지만 연장 근무가 반복됐습니다.

    아직 고3 학생인데도 길게는 하루 15시간까지 일했습니다.

    최 양은 업무 수첩에 자신을 '회사 내 약품'이라고 적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약품이 된 듯한 씁쓸함에 실습 나간지 1년만에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최OO/직업계고 졸업생]
    "사람으로서 대우가 딱히 없었다고 생각이 들어서, 심적으로도 좀 많이 힘들어서 '여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퇴사한 게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강원도 원주의 한 직업계고 3학년 서 모 양은 재작년 11월 현장 실습을 나갔다가 손을 크게 다쳤습니다.

    의료 기기 업체에서 주사기를 조립하다 프레스 기계에 손이 끼었습니다.

    벌써 6번째 수술을 받았는데 손을 쥐었다 펴는 정도도 안 됩니다.

    처음에 사무직이라고 해서 간 건데, 불과 일주일만에 조립 공정에 투입돼 혼자 일을 하게 됐습니다.

    해 본 적도 없는 일이지만, 제대로 된 안전 교육도 없었다고 합니다.

    사고 난 프레스 기계에는 끼임 사고를 막는 장치도 없었습니다.

    [서OO/직업계고 학생 (MBC 뉴스데스크, 작년 1월)]
    "안전 교육은 안 받았고, (작업 방법은) 팀장님이 바빠서 막 자세하게 알려준 건 아니고 그냥 어느 정도 하는 법 알려주고, 하는 거 보고 가셨어요."

    올해 직업계고를 졸업한 조문수 양도 팔에 화상을 입어 피부가 벗겨졌습니다.

    식품 업체에 실습 나갔다 자외선 조명에 너무 오래 노출된 겁니다.

    문수 양도 안전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고 합니다.

    [조문수/직업계고 졸업생]
    "팔에 살이, 껍질이 까지고 해서…교육을 하면서 딱 한 번밖에 못 봐서 그랬던 것 같아요."

    동생 2명 대학 학비를 벌려고 이 악물고 버텼지만 돌아온 건 해고 통보였습니다.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3주만에 해고됐습니다.

    [조문수/직업계고 졸업생]
    "'네가 우리 못 따라오면 너도 이제 해고할 수 있다' 맨날 그런 말 듣고 다니니까 '더 노력해야지' 하면서 맨날 밤새 공부하고…"

    사무직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작년까지 문구 업체 사무 보조로 일했던 김미성 양.

    [김미성/직업계고 졸업생]
    "모욕적인 말을 많이 듣기도 하고, 뭔가 제가 실수를 했을 때 (저한테) 통장을 던졌던 적도 있고. '상고 회계학과 나온 거 맞냐'"

    너무 힘들어 연차를 쓰겠다고 하면 막말이 돌아왔습니다.

    [김미성/직업계고 졸업생]
    "'일이나 잘하지 연차는 왜 쓰냐' 이렇게 조금 심한 말들을 많이 들으면서 다녔어요."

    회사 분위기 좋고, 장기 근속자는 채용 예정, 근무 환경도 좋은 회사임.

    채용 의뢰서에 적어줬던 학교 선생님 설명과 딴판이었습니다.

    '내가 나약해서 그런 건가'하는 생각에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버텼습니다.

    [김미성/직업계고 졸업생]
    "주말에 회사 갈 생각을 하는데 뭔가 아침에 눈 뜨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근데 돈을 벌려면 여길 다녀야 되는데 그냥 그 생각이 조금…"
    <특성화고 가지 말 걸, 이런 생각이 드세요?>
    "(끄덕끄덕)"

    그러다 넉 달만에 해고를 당했습니다.

    실습생이 위험에 내몰리는 건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코로나 공포가 극심했던 지난 2020년, 직업계고 2학년생이던 조 모 군은 병상 60개 규모 종합 병원에 실습을 나갔습니다.

    조 군 같은 간호학과 학생들은 실습 780시간을 채워야 간호 조무사 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는데요.

    다른 의료진들과 달리 실습생들은 방호복도 없이 코로나 의심 환자를 옮겨야 했습니다.

    [직업계고 실습생 어머니]
    "(코로나 의심) 환자가 왔을 때. 1층에서부터 5층까지 올리는 거를, 사실 남자다 보니까 얘를 시키더라고요."

    의심 환자가 확진되면 실습생은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격리됐는데요.

    창고에 갇히다시피 했습니다.

    [직업계고 실습생 어머니]
    "있을 데가 없으니까, 창고에 들어가 있으라는 거죠. 몇 시간 동안 계속 전화가 오는 거예요. '나 너무 힘들어. 여기 계속 있어야 돼?'"

    학부모들이 실습을 중단하라고 요청했는데도, 소용없었습니다.

    교육부는 관할이 아니라며 나몰라라 했고 보건복지부는 규정대로 실습 시간을 다 채워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 기자 ▶

    열악한 환경은 사망 사고로도 이어졌습니다.

    콜센터에서 일하던 홍수연 양이 숨진 뒤 정부가 현장 실습을 개선하겠다고 대책을 내놓았는데도 아무 소용이 없었던 건데요.

    대책이 나온지 석 달만에 또 사고가 났습니다.

    ◀ VCR ▶

    2017년 제주도의 한 생수 공장.

    여기서 현장 실습을 하던 고등학교 3학년 이민호 군이 포장 기계에 끼어 숨졌습니다.

    원예학과 학생이던 이민호 군은 전공과 상관 없는 생수 공장에서 일했는데요.

    2인 1조 기본 근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사고 석달 전 정부는 전공과 맞는 실습을 유도하고, 현장 점검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이상영/故 이민호 군 아버지]
    "표준 협약서를 보면 주 35시간을 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야간 근로를 시켜서도 안 된다 그리고 근로 시 '2인 1조'로 근로를 시켜야 된다, 이게 박혀 있어요. 근데 이걸 하나도 안 지켜요."

    이민호 군은 숨지기 전에도 넉 달 동안 3번이나 사고를 당했습니다.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했습니다.

    당국은 민호 군이 숨지고 나서야 감독에 나섰습니다.

    이 회사는 노동청 특별 감독에서 안전 규정 위반 사항이 무더기로 적발됐습니다.

    680건입니다.

    민호 군에게 야간에, 휴일에 근로를 시켜놓고 수당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랬던 회사는 장례식장에서 합의금을 제시했습니다.

    [이상영/故 이민호 군 아버지]
    "(회사) 대표가 그러더래요. '5천만 원 드릴 테니까, 합의서에 도장 찍어 달라 그러더라' 거기서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회사에 전화를 했어요. 대표 휴대폰 번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5천만 원 줄 테니까, 당신 자식새끼 그 기계 밑에 데려다 놔'"

    아버지는 이후 시민단체를 만들어 현장 실습 폐지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상영/故 이민호 군 아버지]
    "'죽을 때까지 아빠가 끝까지 싸우다 갈게. 나중에 거기서 만나자' 그러면서 관 뚜껑을 닫았죠. 그래서 훌훌 털고 가고 싶어도 다시 마음 다잡고 다시 뛰고 그러는 거예요."

    국회의원실 15곳에 연락해 실습생들을 보호할 제도를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이상영/故 이민호 군 아버지]
    "'아버님, 그런 법 만들면 대한민국에 기업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이게 국회에 계신 법사위 위원들한테서 들은 답변이었어요."

    그러는 사이 지난 2021년, 전남 여수 요트 선착장에서 현장 실습생 사망 사고가 또 발생했습니다.

    직업계고 3학년이던 홍정운 군이 요트 밑에 붙어있던 따개비를 떼어내다 바다에 빠져 숨졌습니다.

    홍 군은 평소 물이 무서워 수영도 못 했습니다.

    맡은 일도 선체 파손 대처나 해양 장비 운용으로 잠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10킬로그램짜리 납 벨트를 차고 물 속에 들어갔다 변을 당한 겁니다.

    선착장에는 배를 육지로 올릴 수 있는 기계도 있었지만, 냄새가 난다는 주민 민원 때문에 바닷속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홍성기/故 홍정운 군 아버지]
    "조개류이기 때문에 냄새가 좀 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주민들이 또 반대를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선주는 학교와 약속했던 안전 보건 교육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실습생을 맡긴 학교 역시 무책임했습니다.

    학교와 요트업체가 맺은 협약서에는 곳곳이 빈칸인데도, 학교는 문제 없다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홍성기/故 홍정운 군 아버지]
    "시급 같은 경우도 정리가 안 된 상태였고 공란으로 비어 있는 상태였고. '아빠가 가서 확인하고 도장을 찍어야 되지 않냐' 이렇게 얘기하니까 '아니에요, 아버님. 선생님하고 얘기해서 찍으면 돼요' 그러더라고요.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국회에서는 실습생 안전을 보완하자는 법안 9개가 잇달아 발의됐습니다.

    하지만 반짝 관심에 그쳤습니다.

    법안들은 1년 반이 다 되도록 제대로 논의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달 9일 잠자던 발의안이 다시 소환됐습니다.

    영화 '다음 소희' 덕분이었습니다.

    [(좌) 이은주/정의당 의원 - (우) 이정식/고용노동부 장관]
    (좌) <영화 다음 소희가 개봉했는데 혹시 들어보셨나요?>
    (우) "못 들어…"
    (좌) <못 들어보셨죠? 근로기준법의 일부 조항을 준용하도록, 현장실습생에게도 이런 부분들에 대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관련해서도 장관님께서 좀 신경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우) "알겠습니다."

    지난달 27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선 이른바 '다음 소희 방지 법안'까지 통과됐습니다.

    개정안 내용을 살펴봤는데요.

    학생 신분이라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 실습생에 대해서도 근로기준법 적용 조항을 일부 확대한다는 겁니다.

    기존에는 위험한 업무 금지나 생리 휴가같은 조항만 있었는데, 이번에 강제 근로 금지·폭행 금지·직장 내 괴롭힘 금지도 추가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현장 실습생들은 지금까지 괴롭힘이나 착취, 폭행을 당해도 근로기준법에 하소연할 수 없었던 겁니다.

    [강문식/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현장 실습생도)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한다' 이렇게 제도가 접근이 돼야 되는 거지 이게 그냥 일부 몇 개 조항 이렇게 갖다가. 개선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그렇게 손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매번 현장실습 제도에 관련해서는 이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관심이 한 번 일어나면 이렇게 뭐 하나 덧대고, 뭐 하나 덧대고.

    ◀ 기자 ▶

    학생들은 이렇게 다치고, 죽어나가는데도 법은 여전히 허술합니다.

    기업들은 그 틈을 노려 어린 학생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합니다.

    그런데도 학교는 '현장 실습'이라며 학생들을 계속해서 위험한 노동 시장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런 이상하고, 비교육적인 제도는 도대체 누가, 왜 만들었을까요?

    ◀ VCR ▶

    현장 실습 제도는 박정희 정권 때인 1963년에 처음 도입됐습니다.

    [대한뉴스 (1965년)]
    "정부에서는 고등학교 직업 교육 진흥 정책의 하나로써, [산업 연계 교육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데…"

    일할 사람이 늘 모자랐던 경제 성장기였습니다.

    [강문식/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산업체에서의 인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 '[어쨌든 빨리 인력을 가져다 쓰자]'라는 취지에서 도입이 됐다는…결국에 현장 실습 제도가 약간 더 들어가 보자면 결국 [제조업 중심의 제도]였던 거거든요."

    전두환 정권은 공업계 실습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농업계는 2개월에서 3개월로 늘렸습니다.

    김영삼 정부 때에는 실습 기간을 1년으로 더 늘려 2년만 학교에 다니고, 고3 때는 아예 취업을 하도록 했습니다.

    [김영삼/당시 대통령 (1995년)]
    "대기업·중소기업 할 것 없이 여러분들의 기술, 여러분들의 자랑스러운 교육의 과정을 거친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던 1997년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이 생기면서 지금과 같은 현장 실습 제도가 마련됩니다.

    학생들을 값싼 노동력쯤으로 여기는 건 2000년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2002년, 충남 아산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노사 양측의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는데요.

    앳된 얼굴도 보이죠.

    현장 실습생들이 사측의 방패막이, 이른바 '구사대'에 동원된 겁니다.

    노동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다보니 보이지 않던 사망 사고도 언론을 통해 하나 둘 드러났습니다.

    지난 2005년 전남 여수에서 실습생이 안전 장비도 없이 건물 엘리베이터를 점검하다 추락사합니다.

    이듬해 노무현 정부는 2년 수업받고 1년은 실습나가는 이른바 2+1 제도를 없애면서 실습 시기를 11월쯤으로 늦췄습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들어 규제는 다시 풀렸습니다.

    무리한 취업률 목표치를 제시하며 학교를 압박했고, 목표치 미달 학교는 통폐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곳곳에서 사고가 이어졌습니다.

    2011년 기아차 광주 공장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도색을 하던 실습생 김민재 군이 뇌출혈로 쓰러졌고, 2012년 울산, 2014년 진천과 울산, 2016년 성남, 2017년 전주와 제주에서 고등학생들이 일하다 숨지거나 스스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놀란 문재인 정부는 실습 기간을 최장 3개월로 제한하고 기업 선정 절차도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취업률이 떨어진다며 업체 점검 횟수도 줄이고 실습 기간도 사실상 6개월로 늘렸습니다.

    [하인호/전 특성화고 교사]
    "비난 여론이 형성되면 이제 시기를 좀 뒤로 늦추고 각종 방안을 내놨다가 그러면 취업률이 좀 떨어질 거 아니야. 그러면 취업률 떨어진다는 이유로 해서 다시 또 완화를 시키고 완화시켰다가 또 사고가 나면 또 규제하고 또 풀고 그게 이제 반복되는 거죠. 도돌이표죠."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 인재 양성을 국정 과제로 내세우고 있죠.

    고졸 인재 양성을 위해 직업계고에 반도체 학과를 늘리려는 움직임도 많은데요.

    반도체 설비 부품 공장에서 실습했던 졸업생은 걱정부터 했습니다.

    우리나라 핵심 산업인 반도체 부품 공장에서조차 안전 교육은 거의 없었고, 보안경이나 마스크도 없이 발암 물질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문영재/직업계고 졸업생]
    "PCB(회로 기판) 세척할 당시에 처음에는 TCE(유독 화학물질)를 사용을 했어요. 근데 그게 제가 한번 실수로 눈에 들어간 적이 있어서. 그게 좀 많이 걱정이 됐었죠."

    지금 우리는 학생들이 현장에서 이런 피해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 장치를 갖고 있을까요?

    안전 규정을 제대로 지키는지, 점검만 꼬박꼬박 해도 피해를 줄일 수가 있을텐데요.

    스트레이트는 이런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현장 실습생을 받는 업체는 작년 기준으로 약 8천4백 곳입니다.

    교육부는 업체들이 아니라 전국 17개 교육청별로 2곳씩 무작위로 뽑아 학교 34곳만 점검합니다.

    업체 점검은 학교 교사들이나 교육청이 위탁한 전국 720여 명의 노무사들에게 맡겨뒀는데요.

    실제 점검은 어떤지 노무사들이 작성한 확인서를 찾아봤습니다.

    협약서를 썼는지, 근무 시간을 잘 지키는지, 안전 교육을 했는지 업체에 물어보고 잘 하고 있다는 표시만 하면 그만입니다.

    불시 점검도 아닙니다.

    간다고 미리 알려줍니다.

    노무사들은 공무원이 아니라 강제 조사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꼼꼼히 점검해 시정을 요청해도 기업이 거부하면 딱히 방법도 없습니다.

    [이경석/한국공인노무사회 이사]
    "'노무사 너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느냐'라는 기업도 있고요."

    정부의 현장 실습 산재 통계도 엉망이었습니다.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이 국회에 낸 자료를 보면, 최근 10년 동안 현장 실습생 중 산재 사망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언론에 나온 사건도 많은데, 어떻게 된 걸까요?

    공단에 자료를 다시 요청했습니다. 이번에는 3명이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2014년 충북 진천에서 장시간 노동과 폭력으로 숨진 김동준 군과, 2017년 제주 생수 공장에서 숨진 이민호 군 등 언론에서 크게 보도한 사건은 여전히 통계에 없었습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
    "사업주가 신고를 할 때 체크를 안 하고 근로자로 그냥 넣어버리면 이제 안 되는 거죠. 알고 봤더니 이분이 실습생, 그럼 이제 소급이 돼서 또 수정이 돼야죠."

    주무 부처인 교육부도 제대로 실태 파악을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연구 용역을 맡은 연구원들이 학생들의 현장 실습 일지와 상담 결과, 만족도 조사 결과 등을 교육부에 요청했는데요.

    이런 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강문식/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현장실습 관련) 자료를 제공해 주십시오'라고 했을 때 교육부에서 가장 난색을 표했던 게 그게 '신뢰성을 담보하기가 어렵다'라는 이야기였어요. 본인들 스스로는 '그게 신뢰성이 좀 부족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너무 모순적인 거죠."

    ◀ 기자 ▶

    자기들이 봐도 믿을 만한 자료가 아니라는 교육부의 답변이 참 부끄럽습니다.

    이렇게 정부가 눈을 감은 사이, 학교는 취업률을 높이려고 저임금 인력 파견소로 전락했고, 기업은 학생들을 값싼 부품쯤으로 여겼습니다.

    사회에 첫발을 뗀 소희와 다음 소희들이 느꼈을 절망은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다음 소희'를 끊어낼 방법은 없는 걸까요?

    ◀ VCR ▶

    실습생 유족들과 전현직 교사 등 90여명은 오는 5월 현장 실습 사고를 막을 단체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런 저런 해법을 고민하고 있는데요‥

    [권기승/직업계고 교사]
    "'현장 실습'을 계속 유지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이 제도가 과연 우리 학생들이 취업하는 데 좋은 걸로 작용을 하고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좀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들이 많아지고 있죠."

    문제는 목숨 걸고 일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노동현장은 비단 현장 실습생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겁니다.

    [뉴스데스크 (작년 11월 14일)]
    "노동자가 11미터 아래로 추락해서…"

    [뉴스데스크 (작년 10월 8일)]
    "50대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습니다."

    [뉴스데스크 (작년 11월 7일)]
    "20대 직원이 기계에 끼어서 중상을 입는…"

    사망 사고를 줄이자고 지난해 초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한 이후에도 매일 2명 꼴로 일하다 숨집니다.

    지난해에만 모두 644명이 퇴근하지 못했습니다.

    [최서현/전국특성화고 노조위원장]
    "현장 실습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우리 사회 노동 현장 전체가 위험]하고, 안전하지 않거나, 정말 너무 노동자를 막 대우하는 이게 실습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어렵게 만든 중대재해처벌법을 후퇴시키려는 시도는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작업을 준비 중입니다.

    주당 최대 69시간이냐, 60시간이냐 정부 내에서도 오락가락하지만 장시간 노동의 길을 터주려고도 하고 있습니다.

    기업을 강조하는 언급도 부쩍 많아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지난 1월 11일)]
    "정부라고 생각하기보다 우리도 기업의 한 전략 부서라는 그런 마음으로, 이게 그냥 한 몸이라는 뜻이 바로 그런 겁니다."

    영화에서 소희가 세상을 등진 이유를 추적하던 형사가 탐문 수사로 밝힌 현실은 이렇습니다.

    #6. 하이라이트
    "유진: 힘든 일을 하면, 존중받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이나 한다고 더 무시해. 아무도 신경을 안 써. 그러면 완전히 혼자가 돼."

    스스로 생존 방법을 찾아야 하는 각자 도생의 시대.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첫발을 뗀 청년들은 출발부터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영화 '다음 소희'는 지금 우리가 신경 쓰지 않는다면 '다음 소희'와 '그 다음 소희', '또다른 소희'까지 계속 나올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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