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한국의 고급 위스키 시장.
코로나 시기 자리잡은 홈술 문화로, MZ 세대까지 소비층이 커졌습니다.
올해 상반기 수입량은 1만 6천톤, 작년보다 50% 늘었습니다.
사상 최대입니다.
초고가 위스키도 불티나게 팔립니다.
한 병에 2천만 원 하는 '발렌타인 40년' 한정판 6병은 나오자마자 다 팔렸습니다.
발렌타인을 파는 회사는 페르노리카.
프랑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입니다.
발렌타인, 시바스리갈, 로얄살루트, 글렌리벳을 팝니다.
미국 포춘이 꼽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글로벌 기업' 1500개에도 선정됐습니다.
본토 프랑스에서는 최고 고용주 상위 15%에 들었습니다.
[페르노리카 본사 직원 (유튜브 'Pernod Ricard')]
"우리 모두가 좋은 분위기에서, 유쾌하게 일하고 즐길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딴판입니다.
2011년 탈세로 100억원대 추징세를 부과받았습니다.
작년에는 유흥업소에 10년 동안 6백억원이 넘는 불법 리베이트를 줬다가 공정위에 적발됐습니다.
최근에는 노동조합이 고소해 각종 부당노동행위 의혹으로 수사받고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의 두 얼굴입니다.
◀ 이휘준 ▶
안녕하십니까, 이휘준 입니다.
오늘 스트레이트는 유독 한국에서 악덕 기업 논란을 빚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의 두 얼굴 그리고 한국의 노동정책 문제를 다룹니다.
이지수 기자 나와 있습니다.
이 기자 페르노리카라는 회사, 사실 이름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어떤 회사입니까?
◀ 이지수 ▶
세계적인 주류 기업입니다. 발렌타인, 시바스리갈, 로얄살루트 같은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위스키와 와인 분야 전세계 2위 업체입니다.
◀ 이휘준 ▶
해외에서는 평판이 굉장히 좋아 보입니다.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아 보이고요.
◀ 이지수 ▶
네, 하지만 한국에서는 노동자들을 탄압한다는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이 회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취재했습니다.
◀ VCR ▶
지난해 새로 이사한 페르노리카 코리아입니다.
양주 회사답게 고급스런 바가 있습니다.
직원들이 퇴근 뒤 이용하거나 회사 행사가 열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창가 쪽에 피켓과 현수막으로 공간을 나눠놨습니다.
노동조합 임시 사무실입니다.
이렇게 1년 가까이 지냈습니다.
[이강호/페르노리카 코리아 노조위원장]
"노동조합 사무실을 회사가 폐쇄 조치해서 여기에 임시 사무실로 만들어 놓고 저희의 목소리들을 내고 있죠."
회사는 사옥을 옮기면서 노조 사무실을 없애버렸습니다.
노동위원회는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회사는 재심을 신청하고 지난달에야 사무실을 내줬습니다.
10제곱미터, 3평짜리 크기입니다.
[페르노리카 코리아 노조 조합원]
"창문도 없고 진짜 환기도 제대로 되는지는 모르겠고 그래서 과연 여기가 사무실인가 싶기도 하고요. 좀 너무 좁고."
노사 단체협약도 해지됐습니다.
지난 9월 노조원들이 교섭을 요구하며 사장을 찾아갔습니다.
"노동조합 사수하자, 투쟁!"
사장이 집무실 책상에 다리를 꼬아올린 채 노조원들을 내다봅니다.
손짓도 합니다.
[이강호/페르노리카 코리아 노조위원장]
"왜 제가 이렇게 외치고 있는 이 순간에 대표이사님은 손으로 이렇게 더하라는 제스처를 하고 있고 웃으면서 조롱하듯 저희를 대하십니까."
회사 측은 사장이 발을 올린 건 '의료적 이유'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장의 집무실 태도는 국회에서도 논란이 됐습니다.
[이수진/더불어민주당 의원 (국정감사, 10월 17일)]
"<프랑스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런 행위는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모욕감을 주는 행위입니다. 이거 잘못된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프란츠 호튼/페르노리카 코리아 대표]
"우리는 프랑스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 법을 준수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5년 전에도 페르노리카 사장은 국회에 불려나왔습니다.
그때 사장은, 욕설과 성희롱 발언을 한 임원을 두둔했다는 논란을 빚었습니다.
이 임원은 회식 때 고기를 먹으라며 던지거나, 씹던 껌을 주며 씹으라고도 했습니다.
'부부관계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성희롱 발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장은 욕설은 불법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임이자/당시 자유한국당 의원(국정감사, 2018년 10월 19일)]
"'욕을 한다는 것은 불법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했나요? 안 했나요?"
[장 끌로드 투불/당시 페르노리카 코리아 대표]
"네. 제가 회의 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가 검토한 바에 따르면 영업 전무를 해임할 근거가 없다는 걸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장의 노조 와해성 발언도 문제가 됐습니다.
[임이자/당시 자유한국당 의원 (국정감사, 2018년 10월 19일)]
"노조 적대적 발언, 노조위원장을 포함한 집행부를 해고하겠다라고, 노조는 방해되는 존재다 이 얘기한 적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장은 즉답을 피했습니다.
하지만 추궁이 이어지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장 끌로드 투불/당시 페르노리카 코리아 대표]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과거 어떤 회의에서 했을 수도 있지만, 했는지 안 했는지 확실치 않습니다."
사장은 정말 노조에 적대적인 걸까요?
2019년 회사는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직원 221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27명을 내보내겠다고 했습니다.
희망퇴직 대상 직원 78%가 노조원이었습니다.
결국 노조원 98명 등 모두 127명이 회사를 나갔습니다.
위원장이 끝까지 버티자, 회사는 대기발령을 내고 1년 동안 업무에서 배제했습니다.
이후에는 혼자 교육을 받도록 했습니다.
국회는 또 사장을 불렀습니다.
[임이자/국민의힘 의원 (고용노동부 장관 인사청문회, 2021년 5월 4일)]
"독방 사무실을 빌려서 온라인 교육을 무기한 시킨 적 있습니까?"
[장끌로드 투불/당시 페르노리카 코리아 대표]
"새로운 업무를 맡기기 위해서 교육을 시켰던 겁니다. 그가 오랫동안 영업 업무를 안 했기 때문입니다."
[이강호/페르노리카 코리아 노조위원장]
"인권 강국이라고 불리고 노동권 강국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에서 오신 프랑스인 대표이사가 이 나라에서 한국인 노동자한테 이런 조롱과 멸시와 무시의 행태를 보이는 것이 마땅한가. 저는 그 상황 상황마다 너무 충격에 빠져서 이걸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될지 저는 난감하기만 합니다. 노동조합을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한국인을 비하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2016년 사측이 법무법인 변호사를 만난 자리.
변호사는 회사 입장이 뭔지 물어봅니다.
[법무법인 변호사 - 페르노리카 코리아 당시 임직원]
"극단적으로 볼 때는 아무래도 없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스타일일 수도 있고. <네.>아니면 어떤 경우에는 관리를 잘하고 현재 노조위원장 체제가 제일 낫기 때문에 관리를 하자. 이런 쪽이 한 쪽이 있고. <네.> 양쪽 다 있는데. <네.> 저희는 어느 쪽인가요?"
없애는 방안과 노조위원장 체제를 관리하는 방안.
사측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사장 뜻이라고 했습니다.
[페르노리카 코리아 당시 임직원]
"현재 장 사장님의 입장은 '없었으면 좋겠다'예요. 기본적으로."
변호사는 그럴 경우 부작용이 너무 크다며 징계가 낫다고 말합니다.
[법무법인 변호사]
"징계나 이런 문제, 그런 걸 할 때는 그러니까 걸렸다 싶으면 그때 쉽게 얘기해서 이게 본때를 보여줘야 돼요. 모든 증거를 다 가지고 와서 이걸 실행한다는 걸 보여줘야지. 그다음부터는 노사관계가 정상적으로 해결이 되는 거거든요."
해고 얘기도 꺼냈습니다.
지금도 다른 회사 해고 사건을 맡고 있다고 했습니다.
[법무법인 변호사]
"절대로 밉보이면 안 된다고 해서 절대 약해지면 안 된다고 해서 강하게 원칙대로 해고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해고 사건을 계속 하고 있고."
법무법인은 "해당 대화는 노동조합 활동과 무관한, 개인 비리가 문제 된 직원 징계와 관련된 법률 자문"으로 "노동조합 해체나 부당노동행위와 전혀 무관하다"고 했습니다.
페르노리카측도 "법무법인과 노조 파괴 방안을 논의한 적 없"고 "노동조합과 조합활동을 존중하며 단체교섭에 성실하게 임하고 있고, 노조탄압이 인정된 사례가 한 건도 없다"고 했습니다.
◀ 이휘준 ▶
사측이 노조를 없애려고 하면 불법 아닌가요?
◀ 이지수 ▶
불법입니다.
노동조합 탈퇴를 종용하거나,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해고 같은 불이익을 주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처벌받습니다.
한국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이런 행태는 이미 여러 차례 논란을 빚어 왔습니다.
또다른 글로벌 기업, 코스트코에서는 20대 청년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 VCR ▶
지난 6월 코스트코 하남점 주차장.
형광 조끼를 입은 직원이 카트를 쉴새 없이 옮깁니다.
1층부터 5층 주차장을 오르내리며 낮 12시부터 일했습니다.
저녁 7시쯤, 구석에서 팔을 뻗어 스트레칭을 하더니 잠시 쭈그려 앉습니다.
다시 일어났다 차량 뒤로 몸을 숙입니다.
그러곤 일어나지 못 했습니다.
사람들이 뛰어가 심폐소생술을 하고, 119 구급대가 출동했지만 숨졌습니다.
29살 고 김동호 씨입니다.
[김길성/고 김동호 씨 아버지]
"너무 참담했죠. 저희 아들이 정말 건강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직장에서 굉장히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일하면서 인정을 받았던 그 주변 동료들한테도 인정을 받았던 상태였는데."
사망 원인은 폐 혈관이 막힌 폐색전증.
온열로 인한 과도한 탈수 때문이었습니다.
무더위에 땀을 너무 많이 흘린 겁니다.
그날 낮 최고 기온은 33도, 폭염 특보가 발령됐습니다.
하지만 냉풍기는 가동되지 않았습니다.
휴식 시간은 3시간마다 15분.
휴게실이 5층 한 곳이라 갔다 올 틈도 없었습니다.
[김동준/고 김동호 씨 형 (국정감사, 10월 12일)]
"동호가 사망하고 제가 직접 코스트코를 방문하면서 며칠 동안 온도를 재봤는데 방문 차량이 많은 1층과 2층의 온도는 40도가 넘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김동호 씨는 이렇게 얼마나 일한 걸까요?
토요일에 10시간 동안 4만 3천 보, 26km를 걸었습니다.
일요일에는 22km, 월요일에는 17km를 걷다 쓰러졌습니다.
사망 전날 가족들에게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잘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날도 가슴이 답답해 조퇴하려 했지만 대신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못했습니다.
[김길성/고 김동호 씨 아버지]
"엄마한테 ‘엄마 나 오늘 4만 3천 보 걸었어’ 하면서 거실 바닥에 이렇게 대자로 누웠다 그러더라고요."
사망 이후 코스트코는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지병을 숨긴 거 아니냐고 했습니다.
[☎장례식 참석자]
"장례식장에 왔어요, 사장이. 저희끼리 앉아있는데 와서 오자마자 악수하고 앉으면서 "원래 지병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이 마디가 첫마디였어요."
사장은 그런 적 없다고 했습니다.
[이학영/더불어민주당 의원 (국정감사, 10월 12일)]
"'노동자 빈소에 가셔서 '원래 병이 있었던 것 아니야? 지병 때문인 것 아니야?' 이런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까?"
[조민수/코스트코 코리아 대표]
"그런 적 없습니다."
코스트코는 CCTV를 공개해달라는 유족 요구를 50일만에 들어줬습니다.
유족들은 제대로 된 사과 한번 못들었다고 했습니다.
[김길성/고 김동호 씨 아버지]
"그때 입사하고 나서 너무 좋아했던 그런 표정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좀 기억이 납니다. 근데 지내다 보니까 전혀 저희가 생각했던 그런 기업 이미지하고는 반대였죠."
코스트코에는 26년 동안 노동조합도 없었습니다.
3년 전 노조가 처음 생겼지만, 아직 단체협약도 맺지 못했습니다.
휴게시간도 들쭉날쭉입니다.
[이소율/코스트코 코리아 노동조합 총무부장]
"바쁘다고 하면 출근하자마자 쉬게 하고 쭉 일을 시키고, 그리고 바쁘면 8시간 일하고 ‘너 쉬고 퇴근해’ 이런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중간에 어떻게 화장실은 어떻게 가세요?>화장실 못 가요."
직원들이 퇴근할 때는 가방 검사도 합니다.
물건 훔치는 걸 막겠다는 겁니다.
국내 마트들은 인권침해 논란으로 오래 전에 없앴습니다.
미국에서는 어떨까요?
코스트코는 지난해 미국 포브스가 뽑은 우수 고용주 7위에 올랐습니다.
월마트가 저임금 노동착취의 대명사라면, 반대편에는 코스트코가 있습니다.
최저 시급은 18달러, 2만 3천 원이 넘습니다.
월마트보다 20~30% 높습니다.
일요일에는 1.5배의 휴일 수당도 줍니다.
한국에 처음 매장을 열 때만 해도 코스트코는 노동 친화적이었습니다.
유니폼 대신 운동화에 편한 청바지를 입게 하고 계산대도 2인1조로 운영했습니다.
왜 이렇게 달라진 걸까요?
고 김동호 씨 부친이 코스트코 직원에게 받은 편지입니다.
"회사가 비용을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끼고 줄였다"면서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는 얘기가 파다했다"고 했습니다.
[김성희/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
"미국 본사의 풍토와는 전혀 상반된 한국의 풍토에만 맞게끔 현지화된 것인데 나쁘게 현지화된 것이다라고 볼 수 있겠죠."
부당해고와 임금체불 논란 끝에 2006년 한국에서 철수한 프랑스계 까르푸.
까르푸를 소재로 그린 웹툰 송곳에서 주인공은 묻습니다.
'저희 회사는 프랑스 회사고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 이휘준 ▶
코스트코도 그렇고 앞에서 본 위스키 회사도 그렇고 다 한국에서 큰 돈을 벌고 있는 기업들 아닙니까?
◀ 이지수 ▶
그렇습니다.
두 회사 모두 매년 수백억 원을 벌고 있지만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 이휘준 ▶
외국 기업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정부가 혜택을 많이 주잖아요?
◀ 이지수 ▶
그렇습니다.
외국인투자촉진법인데요, 막대한 혜택을 주는 대신, 한국에서 고용을 창출해 달라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정작 혜택에 따른 사회적 책임은 지지 않고 있습니다.
◀ VCR ▶
2019년 구조조정으로 직원들을 대거 내보냈던 페르노리카 코리아.
정말 회사가 어려웠을까요?
아닙니다.
2019년 한 해만 반짝 적자였고, 그 뒤로는 내내 흑자입니다.
페르노리카는 위스키 열풍을 타고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2020년 74억원, 2021년 191억원, 2022년 333억원을 당기순이익으로 벌었습니다.
이렇게 번 돈을 어디에 썼을까요?
번 돈의 전부를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본사에 배당금으로 보냈습니다.
한국 법인에는 거의 남기지 않았습니다.
올해 기부금은 영업이익의 0.2%였습니다.
[이강호/페르노리카 코리아 노조위원장]
"대한민국의 세제 혜택이라든가 투자 관련된 혜택을 보고 큰 수익을 창출해서 본국으로 배당하지만, 대한민국 노동자를 이렇게 소모성으로 바라보는 인식, 대한민국 노동조합을 노동권에 대한 무시를 일관하는 어떤 상황, 이런 부분은 저희 회사의 사례로 비추어 보면 저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코스트코 한국법인도 비슷합니다.
지난해 매출 5조5천억원, 영업이익은 1,941억원입니다.
영업이익률 3.5%.
경쟁기업인 이마트의 영업이익률 1.67%보다 훨씬 높습니다.
그런데 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상시 근로자 5백명, 여성 상시 근로자 3백명 이상 사업장은 법으로 직장 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합니다.
한국 기업들의 의무 이행률은 90%가 넘습니다.
하지만 코스트코는 5년 동안 이행강제금 8억원을 내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왜 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는지 정부가 소명을 요구했지만, 코스트코는 아예 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27개 미이행 사업장 가운데 소명조차 안 한 기업은 코스트코가 유일합니다.
[정민정/마트산업노동조합 위원장 (6월 23일)]
"코스트코는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면서도 한국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과 그리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에는 해태하고 있습니다."
외국 기업들의 이런 행태는 한 두 개가 아닙니다.
경북 구미에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대주주는 일본의 니토덴코라는 세계적인 화학 기업입니다.
LG디스플레이에 LCD 핵심 부품인 편광판을 납품했습니다.
지난해 10월 공장에 불이 났습니다.
회사는 곧바로 폐업을 결정했습니다.
직원 150명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박정혜/한국옵티칼하이테크 전 직원]
"적자 기업은 아니었거든요. 그러니까 흑자를 내는 기업이지 그러다 보니까 ‘그래도 어떻게든 살리지 않을까’라는 생각했었는데 청산을 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좀 머리가 하얘졌죠."
경기도 평택에 있는 한국니토옵티칼.
화재로 폐업한 한국옵티칼하이테크와 이름만 다를 뿐, 쌍둥이 회사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주주는 둘 다 일본 기업 니토덴코이고, 최근까지 대표도 하기와라 미치히로, 똑같은 사람입니다.
구미 회사가 폐업한 뒤에는, 평택 회사가 구미 회사 일도 일부 넘겨받았습니다.
하지만 평택 회사는 불이 난 구미 공장 직원들을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20명을 새로 뽑았습니다.
150명이 일자리를 잃은 구미 공장에서, 지금은 12명만 남아 회사에서 먹고 자며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박정혜/한국옵티칼하이테크 전 직원]
"여기 재건이 안 된다면 고용 승계도 가능하다고 충분히 생각하는데 회사 입장에서는 절대로 고용 승계는 없다고 하니까."
옵티칼하이테크 측은 "두 법인은 별개의 회사"라며 "고용 승계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노동위원회도 부당해고가 아니라며 회사 측 손을 들어줬습니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철거를 방해하고 있다며, 4억 원의 가압류를 걸었습니다.
[박재정/한국옵티칼하이테크 전 직원]
"전세 보증금도 가압류가 된다는 사실을 이번에 저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4천만 원이 남들은 모르겠는데 저희한테는 좀 큰돈입니다."
옵티칼하이테크는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한국에서 엄청난 혜택을 받은 기업입니다.
공장 부지를 50년 동안 무상으로 빌려줬고, 세금 혜택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이 회사는 지난해까지 18년 동안 매출 7조7천억원, 1970억원 넘게 벌었습니다.
번 돈 대부분은 일본 본사에 배당금으로 보냈습니다.
[나원준/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이익이 생기면 그거를 계속 배당합니다. 이게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회사에서 이익이 남으면 그걸 어떻게 하냐면 본국에 주주들한테 계속 송금하는 거예요."
정부는 지금도 외국 기업들에 큰 혜택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S-OIL 샤힌 프로젝트 기공식, 3월 10일)]
"외국인 투자 기업들이 한국에서 마음껏 경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세계 최고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하지만 특혜를 받은 외국 기업들은 정작 큰 돈을 벌고 나면, 폐업하고 노동자들을 내팽개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세은/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이렇게 세금 안 내도 된다. 노동자들을 마구 부려도 된다. 원하면 아무 때나 그냥 다 싸 들고 나갈 수 있다. 이러한 전략으로 이건 완전히 저개발국에서 하는 묻지마 투자 유치인데 이런 식의 투자 전략은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이 좀 들어요."
◀ 이휘준 ▶
앞서 보신 기업들이 다 ESG 경영을 내걸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글로벌 기업들이잖아요.
아까 소개된 웹툰에 나오는 그 대사가 잊히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 이지수 ▶
누울 자리를 보고 뻗는다고 하잖아요.
글로벌 기업들이 저렇게 하는 건, 그 기업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 이휘준 ▶
결국 노동자들을 존중하지 않고, 노동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한국의 현실이 문제라는 뜻이군요.
◀ 이지수 ▶
그렇습니다. 이런 환경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없는 건 아닙니다.
대표적인 게 중대재해처벌법입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 VCR ▶
아파트 브랜드 e편한세상을 갖고 있는 DL이앤씨 .
지난해 재계순위 18위 DL그룹 계열 대형 건설사입니다.
이 회사 앞에서 일흔여섯 노모가 매일 피켓을 들고 있습니다.
영정 사진이 옆에 있습니다.
29살 고 강보경 씨입니다.
[고 강보경 씨 어머니]
"항상 대문만 바라보고 애가 전화가 오려나 애가 들어오려나. 이제는 그 이름만 바라보면 이름 석 자만 남기고 우리 애가 갔구나 싶은 생각에 아무것도 생각이 안 들어요."
아들은 지난 8월 부산의 아파트 공사장에서 추락해 숨졌습니다.
하청업체 일용직으로 출근한 첫 날.
6층에서 창호를 교체하던 중이었습니다.
추락 방지용 안전고리도, 안전 그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원청인 DL이엔씨도, 하청인 KCC도 모두 책임을 미루고만 있습니다.
[고 강보경 씨 누나]
"사람이 죽었는데 두 달이 넘게 한 사람도 '죄송하다'라고 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그게 제일 화나고 어머니가 다시 어떤 회복하고 일어서시려면 누군가의 사과는 들어야 돼요."
DL이앤씨 공사장에서는 최근 2년 새 8명이 숨졌습니다.
지난해 3월 서울 종로, 4월 과천, 8월 안양, 10월 경기도 광주, 올해 7월과 8월에도 죽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 1월 이후 사망자가 가장 많은 곳이 바로 DL이앤씨입니다.
하지만 DL이앤씨 임직원 가운데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습니다.
마창민 대표만 단 1건에 대해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마창민 DL이앤씨 대표 -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국정감사, 10월 12일)]
<"창호교체 내지 청소 등을 대림(DL이앤씨) 쪽에서 요청했다는데 이 부분에 대해 확인이 됐습니까?>지금 조사 중인 사항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론이 잘못 보도한 겁니까?> 사실관계를 제가 말씀드리는 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네, 그럴 줄 알았습니다.>"
국내 제빵업계의 선두주자 SPC그룹.
지난해 10월 계열사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끼여 숨졌습니다.
회사는 사고가 난 기계만 천으로 덮고 바로 다음날 동료들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영국에 파리바게뜨 1호점을 열었다고 홍보자료를 뿌렸습니다.
소비자들은 SPC그룹 브랜드 28개 목록을 SNS에 올리며, 불매 운동에 나섰습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결국 고개를 숙이고 재발방지책을 내놨습니다.
사망 사고 엿새 뒤였습니다.
[허영인/SPC그룹 회장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2022년 10월 21일)]
"모두 제가 부족한 탓이며, 평소 직원들에게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전하지 못한 저의 불찰입니다."
그런데, 사과 이틀 뒤 또 사고가 났습니다.
또다른 계열사인 샤니 제빵공장에서 노동자의 손가락이 잘렸습니다.
올해 7월에도 이 공장에서 사고가 난 데 이어 올해 8월에는 5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졌습니다.
SPC그룹은 민주노총 소속 제빵사들에 대해 탈퇴공작을 한 혐의로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잇따른 노동자 사망에 노조 탈퇴공작까지, 하지만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건재합니다.
[오빛나라/SPC그룹 사망 노동자 변호사]
"안전 예산이라든지 이런 방식에 대한 결정을 허영인 회장이 해야 되기 때문에 허영인 회장이 실질적인 책임자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국회는 다음 달 1일 허영인 SPC 회장과 이해욱 DL그룹 회장을 불러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 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지난 월요일 DL이앤씨 대표는 하청업체 KCC 대표와 함께 고 강보경 씨 유족들을 찾아 사과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에 합의했습니다.
사고가 난지 103일 만입니다.
[정혜선/가톨릭대 보건의료경영대학원 교수]
"DL이앤씨도 그렇고 SPC도 그렇고 동일한 사고가 계속 발생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고 하는 노력들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것이 바로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의 중요성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 측면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 이휘준 ▶
아…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이고, OECD 회원인 선진국이잖아요.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글로벌 기업들만 탓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 이지수 ▶
그렇습니다. 노동자들의 권리 문제로만 보자면, 후진국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 이휘준 ▶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이제 2년이 다 돼 가는데, 어떻습니까?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 이지수 ▶
더디지만 효과는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또 이 법을 후퇴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 VCR ▶
지난 11일 양대 노총 조합원 10만 명이 서울 도심으로 나왔습니다.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노란봉투법 시행을 촉구했습니다.
노란봉투법.
2009년 있었던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47억원 손해배상 판결이 계기가 됐습니다.
1989년 이후 파업 등을 이유로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액은 3,160억원.
그 중 95%가 노동자 개인을 대상으로 한 소송입니다.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씨, 한진중공업 김주익 씨, 2012년 한진중공업 최강서 씨.
모두 손배 가압류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아마 자기들 급여로 계산하면 3백 년인가, 모든 돈을 다 그 손배 가압류되는 거를 풀기 위해서 갚아야 될 돈으로 댄다고 한다면 그들의 생계는 말 그대로 다 손배 가압류로 그냥 다 망가지는 거죠."
이런 죽음을 막기 위해 제안된 법안이 8년만에 간신히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사용자 범위를 원청까지 확대했지만, 손해배상 총액 제한 같은 노동계가 요구한 내용들이 빠졌습니다.
민주당이 "대통령 거부권 명분을 최소화"하자며 후퇴안을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장석우/금속노조법률원 변호사]
"처음에 민주노총이나 아니면 노동 시민사회단체가 제시했던 안에서 정말 대폭 후퇴한 거거든요. 실질적으로는 현재 대법원이 제시하고 있는 판례 법리를 그대로 입법화하는 거에 지나지 않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부, 여당, 재계가 한 목소리로 거부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기현/국민의힘 대표(최고위원회의, 11월 13일)]
"국민과 나라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께서 위 법률안에 대한 재의요구권을 행사해 주실 것을 건의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2년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적용되는데, 정부가 더 유예하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 (국무회의, 10월 30일)]
"내년부터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두려워하는 목소리, 현장의 절규에 신속하게 응답하는 것보다 더 우선적인 일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1심 판결문 10건을 분석했더니, 한 건을 제외하고는 경영책임자가 모두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법원은 "유족과 합의"했다거나, "재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며 형량을 깎아줬습니다.
실형은 한국제강 대표이사만 유일했습니다.
형량은 법정형 하한선인 징역 1년형이었습니다.
이 법이 효과는 있었을까요?
올해 들어 3분기까지 산업재해 사망자는 459명.
여전히 많지만 작년보다는 51명 줄었습니다.
효과는 분명히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혜선/가톨릭대 보건의료경영대학원 교수]
"3년 동안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는데 준비하지 못하다가 지금 생각해 보니까 괜히 불안하고 두렵고 이런 마음이 드니까 이제부터 준비할 시간을 2년을 더 달라 이런 얘기인데, 사업주가 얼마나 예방하느냐 중대재해를 감축하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하느냐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그런 마음을 안 가지면 2년 유예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돼요."
정부는 현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아가고 있는 주52시간 근로도 손을 대려고 합니다.
일주일에 최장 69시간까지 허용하는 정책은 반대에 부딪혀 철회했지만, 이번에 또 업종에 따라 장시간 몰아서 일하는 안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성희/고용노동부 차관 (11월 13일)]
"주 52시간제를 유지하면서 일부 업종, 직종에 한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려고 합니다."
국제노동조합총연맹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노동권 지수.
한국은 10년째 최하위권인 5등급입니다.
중국, 캄보디아, 인도, 필리핀과 함께 '노동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나라'로 분류됐습니다.
한국보다 낮은 5+ 등급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소말리아 처럼 최근 전쟁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11개 나라밖에 없습니다.
최하등급인 6등급은 없습니다.
노동자 10만 명당 산업재해 사망자 4.3명, 세계 5위.
노동조합 조직률은 14.2%로 OECD 평균 이하.
단체협약을 적용받는 노동자는 13.3%, OECD 평균 절반도 안 됩니다.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현재 돌아보면 너무 많이 다치고 죽고 그리고 너무 많은 시간을 아직도 요구하고 있고 그리고 벌어서 수입도 그들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지기에는 너무 팍팍한 그런 일이 있고요. 그리고 법이나 아니면 우리 행정적으로 그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가."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 존중받으며 일할 권리는 헌법이 정한 기본권입니다.
외국 기업들 탓하기 전에, 우리가 만든 후진적 노동환경부터 바꾸면 좋겠습니다.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5시 뉴스
이지수
[스트레이트] 글로벌 기업의 두얼굴
[스트레이트] 글로벌 기업의 두얼굴
입력 2023-11-26 21:13 |
수정 2024-02-0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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