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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흔들리는 총선 판도 - 한국 정치는 '썩은 불판'을 벗어났나?

[스트레이트] 흔들리는 총선 판도 - 한국 정치는 '썩은 불판'을 벗어났나?
입력 2024-03-03 21:12 | 수정 2024-03-03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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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휘준 ▶

    안녕하십니까, 이휘준입니다.

    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이제 38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늘 스트레이트는 요동치고 있는 총선 판세를 짚어 보고, 우리 국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고민해보겠습니다.

    구민지 기자 나와있습니다.

    대통령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총선은 보통 중간평가 성격이 강하잖아요.

    이번 선거는 어떻습니까?

    ◀ 구민지 ▶

    이번 총선 역시 꾸준히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판세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 이휘준 ▶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국민의힘에 역전당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더라고요.

    ◀ 구민지 ▶

    네, 그렇습니다.

    민주당 공천 과정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면서, 지지율 변화가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 VCR ▶

    총선 압승을 자신했던 더불어민주당에서 공천 파열음이 크게 터져 나왔습니다.

    비이재명계 의원들이 줄줄이 이재명 대표를 공개 저격하고 탈당했습니다.

    [김영주/국회부의장 (2월 19일)]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당으로 전락했다고 볼 수 있는 가장 적나라하고 상징적인 사례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설훈/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 (2월 28일)]
    "이재명 대표는 연산군처럼 모든 의사 결정을 자신과 측근과만 결정하고 의사 결정에 반하는 인물들을 모두 쳐내며 이재명 대표에게 아부하는 사람들만 곁에 두고 있습니다."

    두 의원 모두 의정활동 하위평가자로 통보받았습니다.

    역시 비이재명계인 박용진, 윤영찬 의원도 하위 평가를 받았습니다.

    [윤영찬/더불어민주당 의원 (2월 20일)]
    "더불어민주당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입니까, 아니면 이재명 대표 개인 사당화의 완성입니까?"

    '비명 학살', '비명 횡사'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친문재인계 핵심인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역시 친문재인계 좌장격인 홍영표 의원도 공천을 받지 못했습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의원총회에서는 험악한 말들이 오갔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혁신 공천은 가죽을 벗기는 고통을 의미한다"고 말한 데 대해, 홍영표 의원은 "손에 피를 묻히면서 남의 가죽만 벗기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홍영표/더불어민주당 의원 (2월 27일)]
    "명문정당이 아니라 멸문정당이 되고 있고 이것은 총선 승리와는 멀어지는 길을 가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비명 학살 주장은 왜곡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탈당을 비난했습니다.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표 (2월 28일)]
    "입당도 자유고 탈당도 자유입니다. 그런데 경기를 하다가 질 것 같으니까 경기 안 하겠다 이런 건 별로 국민들 보시기에 아름답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당이 자랑했던 시스템 공천의 공정성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중도 사퇴한 당 선거관리위원장은 경선여론조사 업체 선정 과정에 외부 개입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작년 말 체포동의안 국면에서 이재명 구하기에 나서지 않은 의원들을 솎아낸다는 말도 공공연하게 나옵니다.

    [김성환/더불어민주당 의원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2월 23일)]
    "누가 도대체 가결표를 던졌냐, 이 논쟁이 한참 있던 시기에 의원들이 다면평가를 하고 당직자들도 다면평가를 하고."

    국민의힘은 상대적으로 잡음이 덜합니다.

    국민의힘은 시스템 공천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한동훈/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2월 26일)]
    "이런 조용한 공천은 역대 유례가 잘 없습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죠. 우리 당은 끝까지 룰을 지키는 시스템 공천을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탈락하는 현역 의원이 별로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친윤석열계인 권성동, 윤한홍, 이철규 의원이 모두 경쟁 없이 단수 공천을 받았습니다.

    불출마를 선언한 장제원 의원만 빼고 다 살아남았습니다.

    김은혜, 강승규, 주진우, 이원모 등 대통령실 참모 출신들도 본선행을 확정지었습니다.

    탈락한 현역 지역구 의원은 지금까지 7명, 대부분 비주류 초선 의원들입니다.

    총선 판세는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기관들의 공동 조사에서, 1월 넷째 주에 오차범위 안이긴 하지만,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 지지율에 역전당했습니다.

    그리고 2월 넷째 주 조사에서는 국민의힘 39%, 민주당 31%로 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그제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두 당의 격차는 7%포인트까지 벌어졌습니다.

    작년 10월 이후 가장 큰 격차입니다.

    [윤희웅/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공천 과정에서 잡음이 주요한 요인이기도 하고 또 그것이 촉발시킨 측면도 있지만 야당이 총선을 앞두고 정부 여당에 대한 심판, 견제의 도구로서 회초리로서 신뢰를 그동안 충분하게 높여오지 못하고 상당 부분 오랫동안 당 내부의 상황이라든가 이런 문제로 인해서 제약되어 왔던 것도 영향을 주면서 같이 이번에 터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총선 판세가 크게 흔들리면서, 제3세력은 그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준석/개혁신당 대표 (2월 26일)]
    "아무리 지켜봐도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으로 정권 심판이 불가능할 것이 명확해 보입니다."

    [이낙연/새로운미래 공동대표 (2월 28일)]
    "민주당의 총선 목표는 정권 심판이 아니라 방탄 철옹성 구축입니다. 민주당은 죽고 그 자리에 이재명당만이 남았습니다."

    4년 전 총선에서 꼼수라는 비판을 받은 위성정당은 이번에도 또 등장했습니다.

    국민의힘이 먼저 위성정당, 국민의미래를 출범시켰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대놓고 위성정당 선거 운동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한동훈/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2월 23일)]
    "앞으로 국민의미래의 선거 운동을 제일 앞장서서 하게 될 한동훈입니다."

    더불어민주당도 진보당, 새진보연합 등과 함께 위성정당을 만들었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대선 때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공약했지만, 이를 뒤집었습니다.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표 (2월 5일)]
    "칼을 들 수 없게 규칙을 만들자고 했는데 상대방이 끝까지 거부해서 칼 들고나오면 저희가 똑같이 칼을 들 순 없어도 최소한 냄비 뚜껑이라도 들어서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민주당 역시 개혁 의지 없이, 결국 기득권에 갇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찬휘/녹색정의당 공동대표 (2월 20일)]
    "이번 2024년 총선에서도 또 그 두 거대 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이런 식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말살하는 행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 이휘준 ▶

    총선 판세가 요동치는 게 심상치 않네요.

    ◀ 구민지 ▶

    거대 양당의 공천 과정을 지켜보면서 실망하는 유권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휘준 ▶

    총선 때는 각 당이 신선한 인재들을 발굴하기도 하고, 이게 국회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 구민지 ▶

    언제부터인가 우리 정치가 차세대 정치인들을 키우지 못하고, 계속 정체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 청년들은 정치에서 더 소외되고 있습니다.

    ◀ VCR ▶

    거제 출신 대학생이 사는 서울 신촌의 고시원.

    누우면 꽉 찹니다.

    생수는 둘 데가 없어 문밖에 두고 마십니다.

    왜 고시원에 살까요?

    웬만한 원룸은 물론 반지하도, 월세가 너무 올랐기 때문입니다.

    [조OO/대학생]
    "반지하도 50만 원부터 시작이었습니다. 반지하라서 나쁜 건 아닌데 내가 좀 부족한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학교에 기숙사가 있습니다.

    한 학기 80~90만 원밖에 안 합니다.

    하지만 들어갈 수 없습니다.

    너무 부족해 경쟁이 치열합니다.

    이 학교에서만 작년에 지원했다 떨어진 학생이 1천 명이 넘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청년공약 1호로 기숙사 대폭 확대를 내걸었습니다.

    '월 20만 원대 기숙사 5만 호 공급'입니다.

    그런데 이런 공약, 처음이 아닙니다.

    2012년 새누리당의 행복기숙사 20만 호 공급,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의 공공기숙사 도입.

    선거 때만 되면 항상 나오던 단골 공약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습니다.

    여전히 수도권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10%대에 불과합니다.

    [조OO/대학생]
    "그런 공약이 학생들 입장에서는 달콤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을 계속 던지시지만 지켜주지 않는 모습 보면서 실망을 많이 했고."

    국민의힘 총선 1호 공약은 저출생 대책입니다.

    엄마든 아빠든 육아휴직을 신청만 하면 회사 눈치 보지 않고 자동으로 쓸 수 있도록 법을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국회에는 이미 비슷한 법안이 9건이나 나와있습니다.

    제대로 논의도 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또 공약으로 등장한 겁니다.

    여야 모두 청년 공약에 공을 들이지만, 재탕 삼탕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허민숙/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소요 예산이 얼마인가 이런 것들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그냥 대단히 뭐라 그럴까요.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또는 이목을 순간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그런 공약들이 사실은 남발되는 경우도 없다고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21대 국회에서 취업, 신혼부부, 병역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청년층 대상 법안은 전반기에만 460건.

    이 가운데 가결된 건 2.4%에 불과합니다.

    전체 법안의 통과율 5%의 절반 정도입니다.

    왜 청년 법안이 푸대접을 받는 걸까요?

    군 복무중 재해 보상을 크게 확대하는 법안을 냈던 청년 국회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용기/더불어민주당 의원]
    "국방위원회는 4, 5선 중진 의원님들이 대개 많이 가시는 상임위거든요. 거기에서 크게 공감을 얻지 못해서 올라가자마자 바로 미뤄졌습니다. '아, 이래서 우리가 공감이 중요하구나'라고 새로 느낀 거죠."

    21대 국회 20~30대 국회의원은 15명.

    전체 300명 가운데 5%에 불과합니다.

    2~30대 유권자가 30% 정도니까, 너무 적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요?

    국제의원연맹 회원국 125개 나라의 2~30대 국회의원 비율은 평균 20%.

    한국은 121위로 거의 꼴찌입니다.

    [김형철/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교수]
    "각 정당들이 청년 정책들을 보면 굉장히 뭐라고 할까요. 쉽게 수박 겉핥기식이라고 할까요. 선심성? 그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잖아요. 그러한 문제를 떠안고 있는 청년들이 직접적으로 정치권에 진입해서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하는 것들이 필요하지 않은가라는 그런 생각을 갖습니다."

    여야 모두 이번 총선에서도 청년 인재를 영입하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에서는 청년들이 대부분 당선 가능성이 낮은 험지로 내몰렸거나, 비례대표 후 순위를 받았습니다.

    [강사빈/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
    "지난번 미래통합당 공천 같은 경우에는 많은 정치인분들, 특히 많은 우리 당의 선배분들도 실패한 공천이다라고 많이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까? 그때 실패한 공천의 항상 특징은 청년들이 죄다 험지로 나가 있습니다. 그때 이제 우리는 청년 벨트라는 말을 붙였지만 저는 사실상 데스 밸리라는 말로 이렇게 읽고 싶거든요."

    [전용기/더불어민주당 의원]
    "민주당에는 청년 정치인들을 10% 이상 공천해야 한다는 룰이 있는데요.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하면요.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 때문입니다. 청년 정치인들을 키워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 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는 오히려 경쟁자가 되는 삶이 됩니다. 그런 상황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 키우기보다는 당장 이슈가 될 수 있는 청년들 몇 명 데리고 와서 공천하기에 바쁜 거예요."

    이번 총선에서 지금까지 단수 공천을 받은 청년은 국민의힘과 민주당 각각 4명에 불과합니다.

    이마저도 상당수는 험지에서 출마합니다.

    지금은 기득권이라고 비판받는 5~60대 정치인들.

    그들도 20년 전에는 청년 정치인들이었습니다.

    지난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여당 총재이던 김대중 대통령은 '젊은 피 수혈론'을 내세웠습니다.

    우상호, 임종석, 송영길, 이인영.

    19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86세대'가 대거 국회에 진출했습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도 '신진 엘리트 영입'을 내걸고 원희룡, 오세훈을 영입했습니다.

    국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던 30대들.

    20년이 지난 지금, 그들 대부분은 여전히 정치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정병국/전 미래통합당 국회의원·5선]
    "그 사람들이 기득권자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저희 세대가 결국은 처음 그걸 끝까지 그 생각을 가지고 이제 그 구조 지금 현재의 권력 구조 이 시스템 속에서는 그러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는 거죠. 패거리를 만들지 않으면 각자가 패거리를 또 만드는 거예요."

    청년들은 정치에 관심을 잃은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강사빈/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
    "대구 지역 편의점 같은 경우에는 최저시급이 지켜지는 편의점이 드물 정도예요. 근데 그런 상황을 기존 정치권들은 몰라요. 생활 밀착형 청년 정치인이 많아져야 된다. 다른 청년처럼 힘들게 학자금 대출도 내보고."

    하지만 현실의 벽이 너무 높습니다.

    거대 양당이 장악한 국회, 50대 부자 남자들이 장악한 국회에서, 청년들은 소외감을 느낍니다.

    [양소영/새로운미래 책임위원]
    "박근혜 탄핵 정부 이후에 2030이 정치를 참여하고 촛불 집회에 참여하고 실제로 그걸 통해서 정치적 효능감을 느꼈던 세대이기 때문에 참여가 저조하다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고요. 그러니까 자꾸 이게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게 되는 이 거대 양당의 구조가 가장 큰 본질의 문제라고 생각이 들고."

    ◀ 이휘준 ▶

    20~30대 유권자가 30%나 되는데, 국회의원은 5%밖에 안 된다니, 우리 국회 모습이 좀 기형적인 것 같습니다.

    ◀ 구민지 ▶

    정치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청년만 있는 건 아닙니다.

    21대 국회가 누구를 대표하는지 봤더니, 오부남 국회였습니다.

    ◀ 이휘준 ▶

    50대, 부자, 남자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뜻이군요?

    ◀ 구민지 ▶

    평균 나이 55세, 재산은 평균 35억 원입니다.

    여성 국회의원은 19%로 세계 121위 수준입니다.

    오부남 국회라는 얘기는 결국, 젊은 사람들, 부자가 아닌 서민들, 그리고 여성들이 정치에서 소외됐다는 뜻입니다.

    ◀ VCR ▶

    인천 계양구의 빌라촌.

    반지하 내려가는 계단에 물이 흥건합니다.

    23살 허민우 씨의 집.

    배관이 파손돼 물난리가 났습니다.

    허 씨는 전세사기 피해자입니다.

    집주인은 빌라 3백 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보증금 8천만 원을 날리게 생겼습니다.

    [허민우/전세사기 피해자]
    "진짜 이를 갈면서 치웠거든요. 초창기에는 저 펌프가 없었거든요. 계속 손으로 삽으로 퍼서 밖으로 물 빼고 한겨울에 발 시려가면서 이거를 내가 왜 해야 돼?"

    어떻게 한 사람이 집을 3백 채나 가질 수 있었을까?

    민간임대사업자 제도 덕분입니다.

    역대 정부와 정치권은 전 월세 공급을 늘리겠다며 세금을 깎아줬습니다.

    집 부자들에게 집을 더 사라고 길을 터준 겁니다.

    [이철빈/전세사기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
    "정책이 시너지가 나면서 범죄 일당들에게 굉장히 좋은, 갭 투자를 하거나 혹은 범죄를 저지르기에 굉장히 좋은 환경이 조성이 됐고 그거에 대해서 정부는 전혀 제재하지 않았거든요."

    반면 세입자 보호는 뒷전이었습니다.

    세입자가 집주인의 밀린 세금을 미리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은 19대, 20대에서 13건이나 발의됐지만, 모두 폐기됐습니다.

    전세사기가 대거 터지자, 그제서야 통과됐습니다.

    [이철빈/전세사기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
    "냉정하게는 세입자들이 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정치적으로 이렇게 조직화가 되어 있거나 결집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세입자를 위한 정책을 펼치는 게 돈이, 그냥 이분들의 어떤 업적이나 아니면 표심을 얻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도 좀 있는 것 같고."

    전세사기 피해액을 국가가 먼저 배상해주고, 나중에 가해자에게 받아내는 특별법 개정안은, 정부와 국민의힘 반대로 막혀 있습니다.

    [허민우/전세사기 피해자]
    "제가 국회의원 몇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전세를 한 번도 살아보지 않으셨고 집은 많으신데 이게 왜 피해가 입어야 되는지 이거를 왜 개정해야 되는지 이해를 전혀 하지 못하고 계신 분들이 더 많으세요. '이거를 왜 해줘야 돼?'라고 얘기를 직접적으로 하셨던 분들이 몇 분 계시고요."

    국회의원들 가운데 세입자 처지에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주택 정책을 담당하는 국회 국토위 소속 의원은 29명.

    이 가운데 무주택자는 강대식, 김민기 의원 딱 2명뿐입니다.

    21대 의원 중 무주택자는 29명, 전체의 10%도 안 됩니다.

    우리나라 무주택자 비율은 44%나 되는데, 이들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너무 적은 겁니다.

    국회의원의 평균 재산은 35억 원, 상위 1%입니다.

    평균 나이 쉰다섯, 5명 중 4명은 남자입니다.

    [허민숙/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압도적으로 특정 성별이 지금 많은 국회거든요. 근데 그렇다면 여성의 고용이라든가 여성들의 출산이나 임신이나 육아 경험 같은 거를 과연 가까이서 체감하면서 '맞아 나도 그랬었어, 그런 어려움이 있었어' 누군가에게는 너무 먼 얘기거나 또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그런 이야기일 수 있어요."

    이른바 스카이 대학 출신은 103명.

    좋은 대학 나온 50대 부자 남자.

    이게 우리 국회의 모습입니다.

    [서복경/더가능연구소 대표]
    "여성의 관점일 수도 있고 장애인의 관점일 수도 있고 또는 청년의 관점일 수도 있고 이런 관점들로 바라보게 만드는 이게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분들의 시선에 안 보이는 부분들이 너무 많은 겁니다."

    ◀ 이휘준 ▶

    우리 국회가 얼마나 기형적인지 보니까, 왜 법을 만들 때 세입자들 얘기가 반영이 잘 안 되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 구민지 ▶

    한 나라의 국회는 그 나라 유권자들을 대표해야 하는 거잖아요.

    벌써 수십 년째 지적된 문제지만, 정말 잘 안 바뀌는 것 같습니다.

    ◀ 이휘준 ▶

    비례대표를 뽑는 게 바로 그 문제를 풀어보자는 취지 아닙니까?

    여성 의원들이 이 정도 되는 것도 비례대표 덕분이잖아요.

    비례대표는 절반을 여성으로 공천하니까요.

    ◀ 구민지 ▶

    맞습니다.

    결국 기형적인 국회의 모습을 바꾸려면, 제도를 바꿔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거대한 기득권에 번번이 막히기 때문입니다.

    ◀ VCR ▶

    꼭 20년 전에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이 총선에서 가장 뜨거웠던 변화는 민주노동당의 약진이었습니다.

    국회의원 1명도 없던 원외 정당,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차지했습니다.

    [노회찬/당시 민주노동당 의원 (17대 국회 등원 첫날, 2004년 5월 31일)]
    "노동자, 농민이 서민들의 대표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사실 50년이 걸렸습니다. 걸어서 5분이면 올 거리를."

    제도의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지역구 1표에 더해, 정당에도 별도로 한 표씩 투표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이 총선에서 처음으로 도입되면서 비례로만 8명이 당선됐습니다.

    [노회찬/당시 민주노동당 선거대책본부장 (KBS '심야토론', 2004년 3월 20일)]
    "50년 동안 썩은 판을 이제 갈아야 합니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새까매집니다."

    제3세력의 국회 진출은 정치와 정부 정책을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무상교육, 무상급식.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민주노동당의 정책은 파격이었습니다.

    [심상정/17대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녹색정의당 원내대표)]
    "무상 시리즈는 그동안 정치 문법에는 없었던 거예요. 왜 국가 돈을 갖다가 버리냐, 뿌려버리냐, 이런 정도로 생각을 했는데 복지는 시혜가 아니고 권리다 하는 개념을 저희가 적극적으로 국정 철학으로 반영하기로."

    상가임대차보호법, 이자제한법, 아동수당.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정착된 이 제도들도, 민주노동당이 가장 먼저 들고나왔습니다.

    [정병국/17대 당시 한나라당 의원]
    "다른 정당들 쭉 정강 정책을 보면 거의 차이를 못 느끼거든요. 그런데 유독 민주노동당은 확실히 노동 계층을 대변하고 그러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겠다고 분명히 차이가 있어요."

    우리 국회는 그만큼의 변화를 또 기대할 수 있을까요?

    민주노동당에서 시작된 변화는 이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됐습니다.

    [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진보정당이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너희들도 도덕적으로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하는 국민들에게 실망감 이런 것들을 줬고 결국 더군다나 양당이 워낙 첨예하게 부딪히니까 사표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것들도 더 생기고 등등 하면서 결국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 희망 이런 것들을 좀 잃어버려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비례대표 선거는 4년 전처럼 준연동형으로 치러집니다.

    거대 양당은 또 위성정당을 만들었습니다.

    더 다양한 생각들, 소수 정당들이 국회에 들어오게 하자는 취지로 만든 제도가 사실상 무력화됐습니다.

    양당 체제가 굳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 태풍 침수로 인한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7명 사망, 작년 오송 지하차도 14명 사망.

    기후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지만, 거대 양당이 탈원전 문제로 대립하면서 정작 기후위기 이슈는 실종됐습니다.

    2022년 말 국회는 여야 합의로 기후위기특별위원회를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민간자문위가 처리가 시급하다고 요구한 20여 건 중 통과된 건,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이유진/녹색전환연구소장]
    "탄소 중립이라는 장기적으로 이 목표를 보게 되면 둘 중의 하나를 택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에너지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거거든요. 할 일들이 정말 많은데 우리는 이거냐 저거냐 둘 중의 하나들 사이에서 이렇게 계속 정쟁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4년 대한민국에서 우리 정치의 가장 심각한 문제들이 어떤 문제들이냐, 이걸 저한테 만약에 물어보신다면 저는 정치적 양극화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양극에 어떤 정당, 거대 정당들이 있는 거죠. 이 양당을 거치지 않으면 실제로 유의미한 정치적 의제로 구성될 수조차 없는 거예요. 한마디로 말하면 토론의 주제 자체가 되질 않는다는 거예요."

    ◀ 이휘준 ▶

    벌써 20년 전에 치러진 총선이지만, 지금도 고 노회찬 의원의 '썩은 불판' 얘기가 나오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뀐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좀 답답합니다.

    ◀ 구민지 ▶

    당시에도 거대 양당이 제도를 그냥 바꾼 건 아니었습니다.

    비례성을 높여야 한다는 시민단체들의 요구가 계속됐고, 결국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법이 바뀌었습니다.

    ◀ 이휘준 ▶

    그만큼 제도가 중요하고, 거대 양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게 하려면 유권자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뜻이겠군요.

    ◀ 구민지 ▶

    맞습니다.

    특히 국회가 유권자들을 제대로 대표하도록 바꿀 수 있는 핵심 제도가 바로 비례대표입니다.

    하지만 거대 양당은 비례대표를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이번 총선에서 한 석 없애버렸습니다.

    ◀ VCR ▶

    작년 12월 뉴질랜드 의회에서 강렬한 외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전통 의식 하카입니다.

    하카를 선보인 건 마오리족 출신 마이피 클라크 의원.

    신임 총리가 공공 분야에서 마오리 언어 사용을 줄인데 항의하는 외침이었습니다.

    [하나 라휘티 마이피 클라크/뉴질랜드 마오리당 의원]
    "쿠마라(고구마)를 기르고 마라마타카(전통 달력)를 배우는 삶도 제게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의회는 건드려선 안 되는 것들을 계속 간섭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인, 중년, 남성 중심이던 뉴질랜드 의회가 바뀌기 시작한 건 1996년부터입니다.

    제도를 바꿨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비슷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고, 위성정당은 없었습니다.

    국민당과 노동당 양대 정당이 지배하던 뉴질랜드 의회에, 녹색당 같은 소수 정당들이 대거 진출했습니다.

    마오리족 의원이 9명 더 늘어났고, 아시아계도 처음으로 당선됐습니다.

    여성 의원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알렉스 탄/뉴질랜드 캔터베리대 정치외교학 교수]
    "인종적 다양성뿐만 아니라 생각의 다양성도 중요합니다. 생각의 다양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목소리가 다양해지면 민주주의의 질이 확실히 풍부해집니다."

    정치인들은 제도 변화를 반대했지만, 시민단체들의 줄기찬 요구로 결국 국민투표가 실시됐습니다.

    [알렉스 탄/뉴질랜드 캔터베리대 정치외교학 교수]
    "당시 정부 여당도 '여론의 압력이 있으니 우리도 뭔가를 할 필요가 있다'고 결정한 거죠."

    선거제도를 바꾸는 건, 한국 정치의 오랜 숙제였습니다.

    국회정치개혁특위는 전국 유권자들을 대표해 500명을 무작위로 뽑아, 선거제도를 토론하게 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유권자들의 질문에 다양한 정보도 제시했습니다.

    [이관후/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소선거구제의 단점은 승자 독식 구도라는 겁니다. 1등만 당선이 되기 때문에 1등을 찍지 못한 나머지 표는 의미가 없어지죠."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회의원들을 아예 그냥 발에 차일 정도로 흔하게 만드는 게 어떻겠느냐. 그렇게 만약에 한다면 국회의 오히려 권한이 더 약화하고 또 반대로 국민들의 접근권이 더 많아질 거다."

    시민들은 2주 동안 온라인으로 자료를 제공 받으며 혼자 공부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처음에는 국회의원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하지만 토론하고 오랜 시간 고민한 뒤에는, 국회의원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정치 혐오를 벗어나, 대안을 찾아가는 겁니다.

    비례대표 의원을 더 늘리자는 답은 70%로 확 늘어난 반면 지역구를 늘리자는 의견은 10%로 크게 줄었습니다.

    [차재원/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
    "숙의를 통해서 현실을 보니까 이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까 사실은 국민들이 이 복잡한 선거제도 잘 모르거든요. 모르기 때문에 이런 논의를 통해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까 이렇다고 한다면 그럼 비례대표를 늘려야지 생각을 하는 거죠."

    하지만 국회는 11억 원을 들인 이 역사적인 '공론조사'의 결과물을 그냥 내버렸습니다.

    [김형철/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교수]
    "지금의 현행 제도가 오히려 자신들의 당선에 있어서, 차기 선거에서의 당선에 있어서 유리하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다른 나라의 의회는 어떨까요?

    OECD 국가 가운데 지역구 의원만 뽑는 나라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5개.

    우리처럼 지역구와 비례를 함께 뽑는 나라는 8개 나라입니다.

    노르웨이, 스웨덴 등 나머지 25개 나라는 100% 비례로만 국회의원을 뽑습니다.

    비례대표만 뽑으면 정치는 어떤 모습일까요?

    의회가 사회를 닮아가고, 정치의 갈등 조정 능력은 커집니다.

    [어세 크리스틴 아스크 박케/노르웨이 노동당 의원 (간호사 출신·27세)]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 간호사, 전기 기사, 선생님, 교수, 학력이 없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요. 범위가 아주 넓어요."

    한국의 비례대표 의원들도 정치를 바꾸고 있습니다.

    늘 안내견 조이와 함께 하는 김예지 의원.

    지난 4년의 임기 동안 장애인들이 키오스크를 쉽게 쓸 수 있도록 하는 법안 등 장애인 관련 법안을 29개 통과시켰습니다.

    이주민 출신 국회의원 1호 이자스민 씨.

    250만 명이나 되는 이주민들의 권익을 그가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자스민/녹색정의당 의원]
    "비례대표 제도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사실상 우리 사회의 여러 목소리, 다양한 목소리를 정책적으로 국회에 담아낼 수 있도록 만들었던 제도란 말이에요. 사실 인구 자체로 따지자면 이주민들은 우리 사회에서 250만 이주민인데 대표하는 사람이 더 많아야 하는 것이거든요."

    하지만 여야는 비례대표를 늘리기는 커녕, 오히려 한 석 더 줄여버렸습니다.

    지난주 선거구를 확정하면서, 자기들끼리 유불리를 따지다, 비례대표를 더 늘리라는 공론조사 결과도 내팽개쳤습니다.

    [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라고 비례대표를 만들어 놓은 건데 그건 점점 없어지고 완전히 거대 양당들의 독점, 자기들의 이기주의만 지키는 그런 정치가 돼버리겠죠. 결국 선거제도 개혁이나 이런 문제들을 기본적으로 정당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뿌리깊은 거대 양당의 독식 구조.

    기득권 정치를 바꾼 건, 늘 유권자들의 행동이었습니다.

    우리는 정치를 바꿀 수 있을까요?

    [박명호/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들은 그 선거 결과에 자신들의 생사가 걸려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과연 우리들이 뭘 요구하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국민들이 과연 앞으로 21세기를 넘어 22세기로 가는 대한민국의, 이 공동체의 정치 체제가 어떤 것이어야 되느냐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 이휘준 ▶

    토론을 통해 서로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현실을 바꿔나가는 것, 그게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다시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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