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수석은 "MBC는 잘 들어"라고 한 뒤 "내가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에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칼 두 방 찔렸다"고 했습니다.
황 수석이 말한 사건은 1988년 정보사 회칼 테러 사건.
피해자는 오홍근 당시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이었습니다.
집 앞에서 괴한들의 회칼 습격을 받아 허벅지가 30cm 이상 찢겼습니다.
"청산해야할 군사 문화".
군사 정권 비판 칼럼을 썼다 표적이 됐습니다.
[고 오홍근 기자 (1988년 8월 30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데에는 언론이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괴한들 정체는 육군 정보사령부 군인들이었습니다.
준장이 지시하고, 소령이 구한 회칼로, 대위가 부하들과 함께 테러에 가담했습니다.
하지만 군사법원은 이들을 선고유예로 풀어줬습니다.
"군을 아끼는 단순한 충정"이었다고 했습니다.
신군부 전두환 뒤를 이은, 노태우 집권 첫 해였습니다.
언론 자유를 테러한 36년 전 사건을 대통령실 수석이 농담이라며 꺼내든 겁니다.
[오형근/고 오홍근 기자 동생]
"깜짝 놀란 겁니다. 언론인들이 분개해야 할 그런 상황을 다시 끄집어내서 MBC를 향해서 협박을 해요? 이건 있을 수 없는 겁니다."
황 수석은 "국민께 심려를 끼쳤다"며 사과문을 공개했고, 대통령실은 "언론사에 강압 내지 압력도 행사해 본 적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호주행과 함께 여론이 악화하자,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황 수석의 사의를 수용했습니다.
[오형근/고 오홍근 기자 동생]
"과연 이 정권이 민주주의 국가인지 민주 정부인지 되묻고 싶은 거죠. 이게 다시 되돌아가는 거예요. 오히려 군사정권 못지않아요. 이런 사회가 어디가 있습니까?"
◀ 이휘준 ▶
안녕하십니까. 이휘준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언론 자유가 위축되고 있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스트레이트는 언론 자유의 현주소를 짚어보겠습니다.
정동훈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먼저 공영방송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KBS 사장이 작년 말에 바뀌었는데, 그 뒤로 계속 시끄러운 것 같습니다.
◀ 정동훈 ▶
지난 2월에는 윤석열 대통령 신년 대담 프로그램이 홍보 방송이라는 비판을 받았죠.
이번에는 세월호 다큐멘터리가 또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 이휘준 ▶
세월호 참사가 2014년에 발생했으니까, 올해가 10주기겠네요.
◀ 정동훈 ▶
4월 16일입니다. 세월호 10주기에 맞춰서 제작되던 다큐멘터리 방송을, KBS 사측이 미루라고 지시했습니다.
◀ 이휘준 ▶
왜죠?
◀ 정동훈 ▶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댔습니다.
정작 이 다큐멘터리는 총선 뒤에 나갈 예정이었습니다.
◀ VCR ▶
스물일곱살 유가영 씨.
10년 전 단원고 2학년이었습니다.
수학여행 갔던 325명 가운데 살아남은 학생은 75명.
유 씨는 지독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었습니다.
지금은 트라우마를 경험한 아이들을 인형극으로 돕고 있습니다.
[유가영/세월호 생존 학생]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경우도 많고 힘든 일을 겪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런데도 그런 걸 겪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주저앉지 않고 무언가를 해나가려고 하는 모습도 많고 저는 그런 모습을 믿었거든요."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참사 이후 성장기를 책으로도 펴냈습니다.
[유가영/세월호 생존 학생]
"태풍 후의 바다는 물이 한 번 뒤집혀 깨끗해진다고 들었어요. 저는 제게 있었던 일을 소용돌이가 아닌 태풍으로 변화시키고 싶어요. 그날이 올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을 거예요."
책을 본 KBS 제작진이 유 씨에게 출연을 요청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였습니다.
방송 날짜는 4월 18일, 10주기 이틀 뒤로 잡혔습니다.
[이재연/KBS 세월호 10주기 다큐 담당 작가]
"세월호 참사라는 사건이 유가영 씨에게도 굉장히 큰 사건이었지만 그것을 마주한 우리 모두에게 굉장히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각자의 10년을 보냈나를 좀 담담하게 보고 싶었거든요.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스스로 상처들을 치유해 나갔나."
그런데 방송을 두 달 남긴 2월 3일, KBS 신임 제작본부장이 제작담당 간부들을 회사로 불렀습니다.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천안함 등 다른 참사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극복 사례와 묶어 방송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시기도 "6월로 미루라"고 했습니다.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인건/KBS 세월호 10주기 다큐 담당 PD (2월 21일)]
"총선은 4월 10일이고 방송은 8일 뒤인 4월 18일이니 무슨 영향을 줄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본부장은 총선 전후로 한두 달은 영향권이라고 본다'라고 답했습니다. 결국 이 방송을 정치적, 정파적으로 이용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대한민국의 4월을 선거에 연결 지어 그때 하지도 않을 방송을 영향권이라고 말한 뒤 KBS 시사교양국 PD들을 모멸감 속으로 집어넣은 사람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KBS PD 221명이 4월 방송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보수 성향 KBS공영노동조합은 맞대응 성명을 냈습니다.
"그날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것은 단순 해난사건"이었는데 "좌익세력들이 엉터리 음모론으로 정부와 대통령을 공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방송 연기를 지시한 제작본부장은 1월까지 이 공영노조의 위원장이었습니다.
KBS 사측은 TV편성위원회, 공정방송위원회 개최 도 모두 거부했습니다.
[조애진/KBS 시사교양 PD]
"박민 사장님 취임 이후에는 이 TV 편성위원회는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고 세월호 10주기 관련해서는 그보다 상위 대화체인 공정방송위원회도 한 번도 열리지 않았어요. 그러면 우리 방송법에서 규정을 하고 있는 방송법의 정신, 대화를 해가면서 이것들을 풀어라라는 이 지침까지 어겨가면서 도대체 지켜야 할 이익이 무엇이냐, 누구의 이익이냐, 그것이."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은 박민 씨를 새 KBS 사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공영방송 사장에 방송 경험이 없는 신문기자 출신을 앉혔습니다.
박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곧바로 9시 뉴스 앵커와 주요 프로그램 진행자들, 간부 72명을 전격 교체했습니다.
KBS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지난달 7일 방송된 윤석열 대통령 신념 대담.
대담은 이례적으로 3일 전에 녹화한 걸 편집해 방송했습니다.
전체 95분 가운데 20분은 집무실과 사진을 소개하는 데 썼습니다.
제작 과정을 지켜본 한 KBS PD는 "제작진이 큐시트를 만들었는데, 대통령실이 '이 사진을 넣자', '이 이야기를 넣자'고 자꾸 제안해 원안이 여러 번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실이 설 명절용으로 제작한 노래 영상도 넣자고 해 제작진 한 명이 '현타가 왔다'며 도중에 그만두었다"고도 했습니다.
이런 논란은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벌어졌습니다.
작년 12월 방송한 KBS 시사기획 창의 <원팀 대한민국> 편.
방송은 윤석열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의 세일즈 외교를 다뤘습니다.
방송에 8차례 등장한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방송 이틀 뒤, 대통령실 정책실장에 임명됐습니다.
방송은 일선 기자가 아니라, 이례적으로 담당 부장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부서원들은 예고가 나갈 때까지도 이런 방송이 나가는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실은 전용기 안에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인터뷰를 촬영해, KBS에 전달했습니다.
담당 부장은 "일방적인 홍보와 찬양을 위해 제작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손관수/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전 KBS 보도본부장)]
대통령에 대한 헌정 용비어천가라고 해도 뭐라고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정도인데 최고 권력에 대한 어떤 심기를 위해서, 그 양반의 어떤 고군분투하는 어떤 모습을 국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정말 포장을 했다는 건 매우 위험한 징조죠. 이건 어떤 숭배의 분위기가 나는 거예요. 거기에서 어떤 언론의 사명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권력 비판, 어떤 지적, 정책적인 어떤 비판 나올 수가 없는 거죠."
◀ 이휘준 ▶
"단순 해난 사고를 좌익세력이 음모론으로 공격했다."
그런 주장이 공영방송 KBS 안에서 공공연히 나온다는 게 놀랍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럼 4월에 볼 수 없는 겁니까?
◀ 정동훈 ▶
담당 PD가 다른 프로그램을 맡게 됐습니다. 방송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 이휘준 ▶
안 그래도 KBS가 대통령 홍보 방송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어쩌다 저렇게 된 겁니까?
◀ 정동훈 ▶
논란의 중심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박민 신임 KBS 사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KBS의 이런 변화 시나리오가 담긴 대외비 문건을 저희가 입수했습니다.
우파 중심 인사로 조직을 장악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 VCR ▶
<위기는 곧 기회다!!!>
문건 제목입니다.
박민 신임 사장이 KBS를 '파괴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돼 있습니다.
모두 18페이지 분량.
대외비라고 돼있습니다.
박 사장이 내정된 지난해 10월쯤 박 사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기별로 해야할 일도 제시했습니다.
먼저 대국민 사과를 하고, 인사를 통해 조직을 장악하고,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에 나서라고 했습니다.
문건을 제보한 KBS 직원은 "고위급 간부 일부가 업무 참고용으로 공유하고 있는 문건"이라고 했습니다.
문건 내용은 착착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먼저 대국민 사과.
[박민/KBS 사장(대국민 기자회견, 2023년 11월 14일)]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국민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우파 중심 인사를 통한 조직 장악.
취임 당일 전격 단행된 인사에서 부사장, 본부장급, 핵심 국장급 간부가 대거 교체됐습니다.
문건은 또 임명동의 대상인 보도, 시사 관련 국장 5명을 사장 의지대로 임명하라면서, 이번 단체교섭이 이런 독소조항들을 폐지할 절호의 기회라고 했습니다.
임명동의제란 제작 독립성을 위해 많은 언론사들이 시행 중인 제도로, 소속 직원 과반의 동의를 거쳐야 국장을 임명할 수 있습니다.
[김성순/변호사·민변 언론미디어위원장]
"정권이 변경되고 이럴 때 사장이 바뀌어지고 이사가 바뀌고 그것까지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그 사장과 이사가 바뀌어지고는 방송의 내용이라든가 편성에 관여하는 형태가 되어버리면 이건 독립성이 침해되는 거거든요. 대표적으로 지금 세월호 다큐였나요? 불방 사태 같은 것들은 방송법 전형적인 방송 독립성이 침해되는 상황이지 않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때 MBC에서도 비슷한 문건이 있었습니다.
국정원이 만든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이번에 나온 KBS 대외비 문건과 비슷합니다.
정상화라는 말이 똑같이 등장하고, 노영방송 단절과 척결, 우파 중심 인선과 좌편향 인물 퇴출, 단체협약 해지, 그리고 공영방송의 민영화까지.
2017년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이끈 국정원 수사팀은, 국정원의 MBC 장악 문건이 "모두 체계적, 순차적으로 이행됐다"고 결론냈습니다.
검찰 조사를 받은 국정원 직원들은 문건의 배후로 청와대 홍보수석실을 지목했습니다.
당시 홍보수석은 이동관 씨였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참고인 조사도 받은 적 없다며 무관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13년 뒤, 이동관 씨는 윤석열 정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다시 등장했습니다.
KBS 문건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KBS 사측에 작성자가 누군지, 업무에 참고하는지 물었지만 답하지 않았습니다.
[강성원/언론노조 KBS본부장]
"지금 보면 이거는 완전히 KBS 하나하나를 다 컨트롤하겠다는 내용들을 담고 있지 않습니까? 인사에서부터 노사 관계, 그다음에 회계 문제, 예산의 문제 이런 것들 하나하나를 다 지금 컨트롤하겠다는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거는 완전히 공영방송 자체를 누군가가 접수해버리겠다, 장악하겠다는 그 문건에 다름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 이휘준 ▶
방송통신위원회는 원래 5명 위원으로 구성되는 합의제 기구잖아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에 파행이 계속되고 있는 거죠?
◀ 정동훈 ▶
방통위는 원래 대통령과 여당 추천 3명, 야당 추천 2명으로 구성됩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 추천 위원을 임명하지 않았습니다.
합의제 취지가 사실상 무력화된 겁니다.
◀ 이휘준 ▶
현 정부 들어서 선거방송심의위원회 같은 심의기구들도 여러 논란에 휩싸인 것 같습니다.
◀ 정동훈 ▶
그렇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위원회 구성부터 말이 많았습니다.
최근 이 기구들이 방송 보도에 대해 중징계성 제재를 잇따라 내놓고 있습니다.
◀ VCR ▶
지난 1월 방송된 SBS 뉴스 프로그램.
한 출연자의 이 발언이 문제가 됐습니다.
[김영배/더불어민주당 의원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 1월 15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먼저 답해야 될 것은 본인이 호위무사가 아니라면 김건희 특검에 대해서 명확한 자기 입장을 밝히시기 바랍니다."
'김건희 특검'.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영부인을 '김건희'라고 호칭하고, '윤석열 정부의 폭정'이라고 표현해 일방적으로 비판했다는 민원을 접수해, 심의에 착수했습니다.
한 심의위원은 “영부인에게 '씨'나 '여사도 안 붙이고 그냥 이름 석자만 호칭하고 이런 것은 진행자가 사려 깊게 잡아줘야 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또 다른 심의위원도 "용어를 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국민 교육이나 정서에 영향을 끼치는 측면이 있다"고 했습니다.
위원회는 5대 2로, 행정지도인 '권고'를 의결했습니다.
위원들이 문제삼은 법안의 정식 이름은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
'여사'라는 단어가 원래 없습니다.
[박주민/더불어민주당 의원 (원내대책회의, 2월 27일)]
"국회도 제재를 받아야 됩니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럼 김영란법은 앞으로 김영란 씨법, 김영란 님법, 김영란 전 대법관님법 이렇게 불러야 되는 겁니까?"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지도 이후 방송은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김준일/시사 평론가 (CBS '김현정의 뉴스쇼', 2월 26일)]
"그러면 이제 김건희 특검법 안 된다." <김건희 '여사' 특검.> "예, 김건희 '여사' 특검. <'여사'자를 꼭 붙여야 된다는 지침이 있죠.> "아 그래요?"
[김병민/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CBS '박재홍의 한판승부', 3월 1일)]
"짧게 하나만 딱 반론하면요. 김건희 '여사' 특검 때문에. <방금 '여사' 안 붙이려고 그랬죠? 지도받으셔야겠네.>
1986년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했던 원로 기자는 이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김주언/전 한국일보 기자 (1986년 보도지침 폭로)]
"앞으로도 김건희 여사 특별법이라고 안 쓰면 제재 대상이 되니까 '앞으로는 김건희 여사 특별법으로 써라'라는 보도 지침과 다를 바가 없다라는 생각이고요. 그건 이제 사후 보도 지침이라고 저는 얘기를 하죠."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선거방송의 공정성 유지를 위해 설치되는 합의제 민간 독립기구입니다.
그런데 이번 위원회는 보수 편향이라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자신의 논문 지도교수인 백선기 교수를 선거방송심의위원장으로 내세웠습니다.
언론시민단체 추천 몫은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창립한 보수 성향 단체 공정언론국민연대에 맡겼습니다.
방송협회에 주던 방송계 추천 몫은, TV조선에 줬습니다.
이렇게 구성된 선거방송심의원회에서 법정 제재를 크게 늘리고 있습니다.
2월 27일 MBC 뉴스 날씨 코너.
국민의힘은 숫자 1을 문제삼았습니다.
[한동훈/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2월 29일)]
"미세먼지 핑계로 1 넣었다고 하던데요. 2를 넣을 핑계도 많이 있을 거예요, 찾으면. 예를 들어서 '어제보다 2도가 올랐다' 이런 정도면 넣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선방위는 심의에 올렸습니다.
"날씨까지 이용하는 MBC의 교묘한 정치 편파에 상당히 분노한다."
"단위 표시도 없이 그냥 1만 딱 내놓은 건 다분히 어느 특정 정당의 기호를 연상하게끔 하기에 충분하다."
위원 9명 가운데 7명이 중징계 의견을 내, 법정 제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언론들은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일제히 이런 선방위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물론이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까지 나섰습니다.
조선일보는 "권력이 정부기관을 동원해 언론을 통제하려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공론장에서 시청자가 판단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출범 때부터 방심위가 보수 성향 단체에 추천권을 몰아줬다는 지적을 받았다"면서 "이러다간 방심위와 선방위 모두 ‘심기경호위’란 소릴 듣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준희/언론노조 방심위 지부장]
"제가 심지어 그런 생각도 해요. 이 사람들이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심의하는 자리에 온 건데 선거방송심의위원회잖아요. 마치 선거운동을 하러 온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드는 거예요."
선방심의위에서 최고 수준 징계인 '관계자 징계'는 20대 1건, 21대는 0건이었습니다.
그런데 활동 기간이 아직 한 달 넘게 남은 이번 총선에서는 벌써 9건이나 됩니다.
법정 제재로 감점이 쌓이면, 정부의 재허가나 재승인 심사에 치명적입니다.
매체별로 보면 MBC가 가장 많은 법정제재를 받았습니다.
[김경환/상지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공정성이라는 것들을 잣대로 행정적으로 제재를 하고 거기에 페널티를 가하고 방송사에 어떤 허가라든지 이런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게 만든다면 그건 상당히 언론의 어떤 본연적인 기능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이휘준 ▶
얼마 전에 있었던 대파값 관련 보도도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 민원이 접수됐다고 하던데, 이것도 선거와 관련된 보도라고 보는 겁니까?
◀ 정동훈 ▶
심의 대상으로 삼을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난히 이번 선거방송심의위는 선거와 무관해 보이는 여러 정치적 사안들까지 심의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 이휘준 ▶
이런 분위기면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당장 '김건희 여사' 특검법 용어가 달라지는 것만 봐도 그런 것 같습니다.
◀ 정동훈 ▶
그렇습니다. 상설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위원장의 '청부 민원' 논란까지 벌어지면서,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 VCR ▶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무마해줬다는 의혹 인터뷰를 담은 뉴스타파 보도.
검찰은 지난해 9월 이 보도가 허위라며, 압수수색으로 강제 수사에 돌입했습니다.
대통령실, 여당, 방송통신위원장이 잇따라 이 보도를 공격했습니다.
[이동관/당시 방송통신위원장 (2023년 9월 4일)]
"대선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범죄행위, 즉 국기문란행위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것은 지금 수사당국의 수사와 별개로 방심위 등 말하자면 이것을 모니터하고 또 감시하는 곳에서 엄중 조치를 할 예정입니다."
그날 오후부터 관련 보도를 심의해달라는 민원이 방심위에 쏟아졌습니다.
사흘간 160여 건, 이례적으로 많았습니다.
[박은선/변호사(공익신고자 대리인)]
"9월 4일에 국회에서 이거를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문제 삼고 더군다나 방심위는 독립기구라서 방통위가 흔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데 이동관 위원장이 방심위를 통해서 이걸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취지의 말을 하고 그날 오후부터 이제 민원이 쫙 쏟아진 거죠."
그런데 석 달 뒤 국민권익위에 부패신고가 접수됐습니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민원을 사주한 의혹이 있다는 신고였습니다.
누가 방심위에 민원을 넣었을까요?
류희림 방심위원장의 아들, 동생 부부, 처제, 동서, 조카, 전 직장 부하직원들까지.
류 위원장의 지인들 40여 명이 낸 민원이 줄잡아 1백 건 가까이 됐습니다.
내용도 복붙하듯 비슷했습니다.
'2022 대선을 앞두고'라고 시작해 '방심위가 제대로 된 심의를 해달라'고 끝납니다.
문장 중간, 똑같은 위치에, 잘못 적은 물음표까지 똑같습니다.
[김준희/전국언론노조 방심위 지부장]
"1년 반이나 지난 방송을 갑자기 난데없이 심의를 하는 건데 누가 봐도 이건 권력이 원하는 심의를 하는 거구나라고 오해를 사기 딱 좋잖아요. 그런데 안 그런 척하려고 민원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런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아요."
류희림 위원장은 가족과 지인들이 민원을 낸 사실을 몰랐고 보고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제보자가 누구인지 색출하겠다며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야권 추천 김유진 위원은 청부 민원 의혹 안건 내용을 외부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해촉됐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가처분 결정으로 김 위원을 다시 복귀시켰습니다.
법원은 "단순한 의혹제기에 불과해 보이지 않는다"며, "의혹이 사실이면 류 위원장의 심의 참여는 방심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은 아직 임기가 1년 가까이 남은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해촉하고, 그 자리에 류희림 위원장을 앉혔습니다.
그의 취임 일성은 가짜뉴스 차단이었습니다.
[류희림/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2023년 9월 8일)]
"심각한 가짜 뉴스의 경우는 긴급 안건으로 신속한 심의가 이루어져 초기에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습니다."
그 뒤부터 방송 보도에 대한 무더기 제재가 이어졌습니다.
뉴스타파 녹취록을 인용보도한 MBC, KBS, YTN, JTBC 4개 언론사에게 사상 최고액인 과징금 1억2천만 원을 부과했습니다.
청부 민원 의혹을 받은 류 위원장도 심의에 참여했습니다.
MBC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에 대한 MBC 보도에 대해서도 법정 제재를 내렸습니다.
법원은 두 건의 법정 제재 모두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제동을 걸었지만 방심위의 징계는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바이든-날리면' 논란을 빚은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발언 최초 보도, 그리고 후속보도에 대해 "MBC에 유리한 주장들만 선택적으로 방송했다"며 법정제재를 내렸습니다.
1심 판결 보도도 법정 제재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3연속 중징계입니다.
방심위 역시 방통위와 마찬가지로, 윤석열 대통령이 야권 추천 위원 위촉을 계속 미루면서 파행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김서중/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방송통신위원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위원회 구조로 만든 이유가 있습니다. 어차피 한쪽으로 좀 치우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논의해서 가능한 한 합의에 따라서 어떤 결정을 해서 한쪽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서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최소화하자 그런 뜻이 있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현 정권은 거의 일방적으로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방적인 결정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거죠."
2008년 방심위가 출범한 뒤, 징계가 부당하다며 방송사들이 낸 소송 33건 가운데 판결이 확정된 건 23건. 이 중 9건은 방심위가 패소했습니다.
법원 판결문들은 이렇게 밝혔습니다.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사회적 쟁점의 이념을 파헤치고자 하는 방송제작자의 주관적 관점 개입이 불가피하다."
“감시와 비판을 사명으로 하는 방송이 의문을 제기하고 조사를 촉구했다면 이는 공익을 위한 걸로 봐야지 불공정한 것이 아니다."
"국가는 방송 내용에 대한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심의 규정의 해석과 적용은 언론 자유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신중해야 한다."
[김경환/상지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권력자의 눈치를 보는 심의가 돼 가면 안 된다. 자꾸만 권력자의 불편한 보도를 했다는 걸 가지고 자꾸 제재 수위를 높여가게 되면 저는 그거는 나중에 그 기관의 존재에 그 가치를 없애버리는 그런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이휘준 ▶
그러니까 대법원의 판결 취지는 방송 내용에 국가가 개입하는 걸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거군요.
◀ 정동훈 ▶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핵심 가치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 이휘준 ▶
한국의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해외 언론들의 보도도 부쩍 많아진 것 같습니다.
◀ 정동훈 ▶
스웨덴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인데, 이 보고서는 한국을 독재화로 전환 중인 나라로 분류했습니다.
◀ 이휘준 ▶
독재화요? 어쩌다 그렇게까지 평가받게 된 겁니까?
◀ 정동훈 ▶
자유민주주의 지수가 마치 종 모양처럼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 위축입니다.
◀ VCR ▶
작년 11월 틱톡과 메타에 올라온 44초 분량의 영상입니다.
'가상으로 꾸며 본 양심고백연설'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윤석열 정부는 특권과 반칙,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중간중간 영상이 툭툭 끊겨, 실제 연설을 잘라 편집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의힘은 즉각 명예훼손이라며 경찰에 고발했고, 방심위는 '접속 차단'을 의결했습니다.
경찰은 최초 작성자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수사라는 논란도 있습니다.
실제로 속이기 위한 딥페이크 영상이 아니라, 누가 봐도 풍자가 분명한데 정색하고 수사한다는 비판입니다.
[심영섭/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전 선방위원]
해학이잖아요. 해학은 웃자고 하는 얘기이고 동시에 누군가에게 자기의 어떤 의견을 표현하는 거죠, 자기 불만족을. 그런데 그걸 다 지금 억누르겠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웃어서도 안 되고 누군가에게 그 패러디를 해서도 안 된다는 거죠. 물론 조롱하고 하는 것들은 문제가 되겠지만 공인에 대한 해학은 그게 비록 좀 기분 나쁠 수 있겠죠. 그러나 조선시대도 그렇게는 안 했잖아요."
한국의 이런 상황에 대해 해외 언론과 전문가들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치버스/영국 미디어개혁연합 연구원]
"정부가 풍자를 규제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있어서 매우 어두운 길로 가는 위험한 행보라 생각합니다. 풍자는 표현의 한 형태입니다. 이러한 열린 토론은 자유롭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본인이 국민의 대표이며 민주적 가치를 옹호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이라면 풍자적 비판이 본인을 겨냥한 것이라도 이를 환영하고 심지어 이에 대해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유력 일간지는 한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민주주의를 훼손하려 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카이스트 졸업식 입틀막 사건을 전하면서 "한국에서 대통령은 비판을 감당할 수 없는가" 반문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비판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해 억압한다"면서, 비판매체와 언론인에 대한 압수수색, 바이든-날리면 보도에 대한 고소를 사례로 들었습니다.
2024 브이뎀 보고서.
스웨덴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전세계 4천명 넘는 전문가들이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내는, 각국의 민주주의 지수입니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순위는 28위에서 47위로, 1년 만에 19계단 떨어졌습니다.
특히 한국을 민주화에서 독재화로 전환이 진행 중인 국가로 분류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지수가 올라가다 종 모양으로 확 꺾인 상위 10개 독재화 국가 중 한 곳이 바로 한국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최상위 그룹 32개 나라 가운데 독재화로 분류된 곳은 한국이 유일합니다.
[토마스 치버스/영국 미디어개혁연합 연구원]
"'국경없는 기자회' 분석을 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 국가로 여겨지지만 순위가 최근 몇 년 사이 하락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나 중동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은 물론이고 영국이나 한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고 싶지 않은 모습들입니다."
브이뎀은 한국의 예를 들며 "언론 표현의 자유 침해가, 가혹한 독재국가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한상희/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표현의 자유가 왜 가장 중요한 기본권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헌법재판소가 잘 정리를 했습니다. 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됨으로써 민주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됨으로써 진실이 거짓을 물리칠 수가 있고, 또 표현의 자유가 보장됨으로써 나의 인격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현대 민주사회가 지향하는 최선의 가치들이 표현의 자유에 의해서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죠."
◀ 이휘준 ▶
어쩌다 한국이 '독재화'되고 있다는 평가까지 받게 된 걸까요?
왜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총선을 앞둔 다음 주는 한 주 쉽니다. 2주 뒤에 뵙겠습니다.
대법원은 지난 2021년 1월 24일과 2월 28일에 방송된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탈북 작가 성폭력 의혹' 방송에 대해 장 모 씨 등 2명이 낸 소송에서, 방송 내용이 오보임을 전제로 명예훼손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mbc는 대법원의 판결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성폭력 의혹 보도에서 검증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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