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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오너'와 사모펀드 상처뿐인 고려아연

[스트레이트] '오너'와 사모펀드 상처뿐인 고려아연
입력 2025-01-26 21:18 | 수정 2025-01-2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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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영 ▶

    다음으로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소식을 알아보겠습니다.

    임명찬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며칠 전 주주총회가 열렸는데, 고려아연이 대주주 영풍의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영풍과 사모펀드 MBK 연합의 경영권 획득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 임명찬 ▶

    네, 특수관계에 있는 기업들의 상호출자와 의결권을 제한하는 공정거래법과 상법의 구멍을 이용한 방법이어서 많은 논란이 예상됩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사태를 정리하면서, 이 부분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VCR ▶

    굴뚝 위로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흰 연기.

    울산 울주군에 있는 고려아연 온산 제련소입니다.

    자동차, 조선 같은 산업에 필수적인 아연이 이곳에서 1년에 64만 톤 생산됩니다.

    고려아연의 아연 시장 점유율은 세계 1위입니다.

    이차전지 전구체 제조 기술 같은 국가핵심기술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2021년엔 영업이익 1조 원을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비철금속산업의 조용한 강자.

    그런데 지난가을부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대주주 집안 사이에서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겁니다.

    [최윤범/고려아연 회장 (2024년 11월 13일)]
    "MBK와 영풍의 적대적 M&A(인수합병)를 막아내기 위해서 고려아연은 그야말로 사투를 벌여오고 있습니다."

    [강성두/영풍 사장]
    "최윤범 회장이 소수 지분을 가지고 회사를 사유화해서 황제경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려아연은 영풍문고로 잘 알려진 영풍그룹의 계열사입니다.

    1949년 장병희, 최기호 두 창업주가 함께 만든 무역회사(영풍기업사)가 뿌리입니다.

    서린상사 - (주)영풍 - 고려아연 - 서린상사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짜서 장씨 집안은 영풍을, 최씨 집안은 고려아연을 맡아 경영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순환출자 규제에 따라 지배구조를 개편하면서 지난 019년 영풍그룹 장형진 고문이 서린상사가 갖고 있던 영풍 지분 10%를 취득했습니다.

    이에 따라 장씨 집안의 영향력은 커지고 최씨 일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었습니다.

    그러자 최씨 일가 3세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우호지분을 적극적으로 늘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김용진/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독립적 경영이라고 하는 것을 이제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호 지분들을 많이 모으기 시작했고 계속 우호 지분을 늘리면서 자기(최윤범 회장 측)가 33.3%, 그리고 영풍이 33.2% 이 상태. 0.1% 차이 우위를 만들게 되죠."

    고려아연이 지난 5년 간(2019~2023) 영풍에 건넨 배당금은 4천609억 원.

    이 기간 영풍의 영업이익은 32억에 불과했습니다.

    영풍이 운영하는 석포제련소는 중금속이 섞인 폐수를 유출했다가 적발되는 등 지난 10년간 환경 관련 법을 120여 차례 위반한 악명높은 제련소가 됐습니다.

    사실상 고려아연이 모그룹인 영풍을 먹여 살리는 구조입니다.

    [김용진/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그러니까 고려아연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사실은 '세계 제일의 아연 제련 회사를 만들었다.' 이런 생각도 하고 있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까 '그러면 우리가 경영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우리가 지배권을 가져야 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을 당연히 하겠죠."

    영풍은 배당을 더 늘려달라고 요구했지만, 고려아연은 거부했습니다.

    대신 신재생에너지와 수소, 2차전지 같은 신사업 투자를 늘렸습니다.

    [박기덕/고려아연 사장]
    "저희는 이제 '트로이카 드라이브'라는 미래 성장 전략을 저희가 진행을 해왔고, 그것을 하는 데 필요한 이제 향후에 들어가는 어떤 필요한 투자 자금이 필요할 텐데, 아마 영풍에서는 그것들이 향후에는 어떤 배당금 규모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나 하는 걱정을 하신 것 같아요."

    하지만 영풍 측은 신사업 투자를 명분으로 최 회장이 회사 자금을 우호지분 확보에 쓴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투자처 중엔 최 회장의 중학교 동창이 설립한 사모펀드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성두/영풍 사장]
    "<그 돈이 그런 식으로 거기서 돌려가지고 이게 자기 우호 지분 취득이나 이런 데 사용됐다는 거죠?> 그럴 공산이 있다고 보는 거죠. 또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쓰였거나. 어쨌든 그것이 회사의 공익과는 무관한, '사익 편취에 해당하는 그런 행위다'라고 본 거죠."

    결국 영풍 장형진 고문 측은 동북아 최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를 끌어들였습니다.

    영풍은 보유 중인 고려아연 지분의 절반 더하기 한 주를 MBK에 매각해 1대 주주 지위를 넘기기로 했습니다.

    이들은 고려아연 주식 공개 매수에도 들어갔습니다.

    최 회장 측도 반격에 나섰습니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탈과 손잡고, 경쟁적으로 공개매수를 선언했습니다.

    [최윤범/고려아연 회장 (2024년 10월 2일)]
    "오늘 고려아연 이사회는 기업가치 재고 및 주주이익 보호를 위하여 약 2조 7천억 원 규모의 자기주식 공개매수를 추진하기로 의결하였습니다."

    얼마 뒤 최 회장은 2조 5천억 원 규모의 대규모 유상증자 계획까지 발표했다가 기존 주주들의 반발로 철회했습니다.

    금감원은 공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사건을 검찰에 넘겼습니다.

    [김우진/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유상증자는 비싸게 해야 되고, 그다음에 자사주 매입은 쌀 때 해야 그래야 이제 남아 있는 기존 주주들의 가치가 극대화되는 건데 지금 고려아연이 한 것은 재무관리 교과서에서 하는데 정반대로 했기 때문에 굉장히 이상한 거고 그거는 아주 직접적으로 주주 가치 침해 행위 되는 거죠."

    공개매수 전 55만 원 정도였던 고려아연 주가는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한때 240만 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 연합이 최윤범 회장 측의 우호지분을 뛰어넘는 40%대의 지분을 확보하며 분쟁은 일단락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임시주총 하루 전 고려아연이 호주에 있는 손자회사를 통해 영풍의 주식을 취득하면서 기습적으로 순환출자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상호출자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이 국내 계열회사들에게만 적용되는 점을 노린 겁니다.

    그리고 순환출자 시 의결권을 없애는 상법의 규정을 근거로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해 최 회장의 경영권을 방어했습니다.

    하지만 영풍과 MBK 측은 신규 순환출자는 불법이고 이를 통한 최대주주의 의결권 제한은 자본시장 체계를 뒤흔드는 것이라고 반발했습니다.

    [김광일/MBK파트너스 부회장]
    "우리가 최대 주주인데 우리 돈을 이용해서 탈법을 저지르고 1대 주주 의결권을 행사 못 하게 한 거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상처는 고스란히 고려아연이라는 기업에 남게 됐습니다.

    최 회장 측이 자사주 공개 매수에 쓴 돈은 1조 8천억 원.

    대부분 고려아연의 차입금입니다.

    한 신용평가사는 이로 인해 재무부담이 크게 증가했다며 고려아연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박주근/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 대표]
    "이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서 미래 성장 산업에 대한 어떤 계획의 차질, 그리고 기업 가치의 훼손, 그리고 직접적인 부채의 증가, 직원들의 어떤 분쟁으로 인한 불안감. 실익이 없죠. 결론은 그 기업의 본연의 가치까지 깎아 먹는 이런 소모적인 경영권 싸움은 저는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봐요."


    ■ 총수 VS 사모펀드

    ◀ 이선영 ▶

    고려아연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경영권 다툼이 아니라 한국식 총수 체제와 사모펀드가 충돌한 사건이기 때문 아닙니까.

    ◀ 임명찬 ▶

    네, 사모펀드는 때로는 '기업사냥꾼'으로 불릴 만큼 명과 암이 확실하지만 갖고 있는 지분 이상으로 지배력을 유지하려 하는 기업 총수 일가의 문제도 한국 경제엔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 VCR ▶

    정치권에선 MBK가 몇 년 뒤 중국 등 외국 자본에 고려아연을 팔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해왔습니다.

    [박상웅/국민의힘 의원 (국회 산자위, 2024년 10월 24일)]
    "주요 국가 자산이 어떻게 처분될지 모르는 위험 지경에 놓이도록 산자부는 방치하고 제3자들 입장에 설 생각입니까?"

    MBK는 이런 우려를 부인했습니다.

    [김광일/MBK파트너스 부회장 (국회 산자위, 2024년 10월 24일)]
    "고려아연에 대해서는 장기투자가 되도록 하고 분할이나 쪼개 파는 일이 없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희는 중국에 기술 유출하거나 중국에 매각할 계획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모펀드는 보통 5년 내외의 기간에 투자자들에게 이익과 투자금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인력 구조조정, 자산 매각 등 단기적으로 수익을 높이는 방법을 동원하곤 합니다.

    [박주근/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 대표]
    "산업자본에 있는 여러 가지 매각해서 자본을 줄이면 돼요. 그러면 ROE(자기자본이익률)가 확 올라갑니다. 그건 외부적으로 봤을 때는 기업 가치가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맹이가 별로 없죠. 산업시설이 없는. 이걸 우려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술 유출이라든지 ‘산업 자체의 인프라가 붕괴되는 거 아니야?’ 이런 걸 우려하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2013년 MBK는 ING생명을 인수하면서 "10년 이상 장기 보유해 고용을 안정시키겠다"고 했지만, 반년도 안 돼 대규모 인력 감축을 하고 5년 만에 2조 원을 남기고 회사를 팔았습니다.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했을 때에도 1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잇따라 점포를 폐쇄하고 직원을 줄였습니다.

    [최철한/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 사무국장]
    "MBK가 가지고 들어온 돈은 7조 2천억 중에서 2조 2천억 정도였고요. 나머지 5조는 실제 은행에서 빌렸는데 홈플러스를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습니다. 그 은행 빚을 갚다가 다 못 갚으니까 그 이후로는 돈이 되는 점포들을 매각하기 시작했습니다. 2만 6천 명 있던 직영 직원들의 수를 2만 명으로 줄였고요."

    그렇다고 사모펀드가 사냥감만 노리는 부정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홍원식 전 회장 일가의 갑질과 과장광고 논란으로 추락을 거듭하던 남양유업.

    [홍원식/당시 남양유업 회장 (2021년 5월 4일)]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또한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습니다."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가 경영권 인수를 확정 지은 뒤 20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주가도 1년 사이 10% 이상 올랐습니다.

    [김우진/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여러 가지 이제 평판 리스크나 이런 것 때문에 기업 가치가 많이 훼손됐던 그런 측면이 있지 않습니까? 사모펀드들은 밸류 인크리스(가치 상승)하고 거기서 이제 엑시트(매각)하고 거기서 돈을 버는 것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무슨 문어발식 소수 지분으로 이걸 늘려서 뭘 비자금을 만들고 고액 보수를 받고 이런 게 관심이 아닙니다."

    총수 일가의 지배와 주가 약세.

    상속을 하면서 세금을 제대로 내면 지분율은 떨어지게 되는데, 그럼에도 총수 일가는 2세, 3세 체제에서도 계속해서 지배권을 유지하기를 원합니다.

    [김용진/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평균으로 갖고 있는 상장사들의 경우, 3세대를 해보면 평균 5.5% 정도를 갖고 있어요. 지배주주 지분이. 그러면 자기가 컨트롤링(통제), 완전히 과반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누군가 다른 사람하고 연합하면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고 경영권을 바꿀 수 있잖아요."

    기업의 장부상 순자산가치와 비교해 시가총액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보여주는 주가순자산 비율, PBR은 우리나라 기업이 유독 낮은 수준입니다.

    상속세 때문에 총수 일가가 주가 상승을 반기지 않는다는 해석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은 사모펀드 입장에선 저평가와 동의어입니다.

    경영구조만 바꿀 수 있다면 기업가치를 수월하게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우진/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회장님들이 주가 오르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아요. 주가가 낮으면 이제 MBK가 옵니다. 행동주의(펀드)가 오고. 그러면 그게 싫으면 주가를 올리든지. 가장 효과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은 주가를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거거든요."

    [이창민/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MBK도 그렇고 최씨 일가도 그렇고 계속해서 얘기하는 건 ‘자기가 경영의 적임자다.’, 자기가 경영을 맡으면 이제 거버넌스(지배구조) 개선을 어떻게 하겠고 이런 플랜(계획)을 내잖아요. 사실 이런 게 이런 어떤 지배권 경쟁의 순기능이에요. 공개적으로 하면서 주주들한테 자꾸 공약을 내고 주주들을 설득하는 거잖아요."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특수성을 발판으로 사모펀드는 급성장했습니다.

    2023년 말 기준 136조 원.

    국내 도입 20년 만에 300배 이상 커졌습니다.

    이번 고려아연-MBK 경영권 분쟁은 또 다른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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