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기념관의 '수난'
지난달 열린 광복 80주년 기념식
[이재명 대통령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사)]
"독립투쟁의 역사를 부정하고 독립운동가들을 모욕하는 행위는 이제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같은 시각.
지난해, 독립기념관 건립 이래 최초로 광복절 경축식을 취소해 버렸던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올해엔 독립기념관에서 광복절 경축 행사를 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형석/독립기념관장(제80주년 광복절 기념사)]
"'광복'을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입니다."
즉각, 독립기념관장의 공식 기념사가 맞냐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용길/전국비상시국회의 상임공동대표]
"광복절을 부정하는 자가 독립기념관장을 맡고 있는 나라가 독립국가입니까? 여러분!"
과거 독립운동과 광복절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폄하해왔고
[김형석/당시 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 (유튜브 '자유시민연합tv', 2023년 12월 22일)]
"1945년 8월 15일 광복되어졌다. 이 역사를 정확하게 모르는 겁니다."
취임 일성에서부터 친일파 명예 회복을 언급했습니다.
[김형석/독립기념관장 (취임 첫 기자간담회, 2024년 8월 8일)]
"친일인명사전의 내용들이 사실상의 오류들이 있더라…"
그리고, "일제 치하 선조들의 국적을 '일본'으로 볼 수 없다"는 독립기념관 내부 의견을 김 관장이 사실상 묵살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 임상재 기자 ▶
독립기념관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지난 1987년 8월 15일에 개관했습니다.
그냥 나랏돈으로만 세운 게 아닙니다.
일제 치하를 겪은 세대부터 고사리손의 어린이들까지.
국민의 피와 땀이 묻은 성금만 당시 돈으로 7백억 원이 투입됐습니다.
온 국민의 열망을 안고 출범한 독립기념관 38년 역사에 최근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관장으로 인해 독립기념관에 담긴 숭고한 정신이 훼손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 끝나지 않은 '역사 쿠데타'
지난달 25일 오전 독립기념관 앞 출근 중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차에서 내리자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역사단체 관계자 등 30여 명이 가로막습니다.
"김형석은 집에 가라! <집에 가라! 집에 가라! 집에 가라!>"
"김형석을 해고한다!"
독립운동 폄하 전력으로 자격 논란에 휩싸여있던 김 관장이 광복 80주년 기념사에서 '광복을 연합군의 선물'이라고 표현하자 분노가 폭발한 겁니다.
[김형석/독립기념관장]
"<여전히 광복은 연합군의 선물이라고 보시나요?> … <독립기념관 수장으로서 올바른 표현이라고 보시나요?> …"
김 관장은 또 광복 80주년 기념사에서 역사 이면에는 '다름' 즉 다양성이 존재한다며 국민 통합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로 윤봉길 의사가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를 들었습니다.
[김형석/독립기념관장 (제80주년 광복절 기념사)]
"(윤봉길 의사가) 그의 두 아들에게는 반듯하게 자라서 국가와 세계를 위해서 기여하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를 소망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역사의 이면에는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역사를 이해하는 데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그 다름이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쟁의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당장, 독립운동의 역할을 평가절하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김형석/독립기념관장]
"윤봉길 의사 유언 제대로 읽어봐. 다시 읽어봐, 다시 읽어봐. <독립투사가 되라는 거지.> 읽어봐 그래.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유언을 읽어봐."
김 관장 말대로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 의거 전 어린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 전문을 살펴봤습니다.
서두에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돼라"는 당부가 명시돼 있습니다.
후반부에는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한 사람들로 "동양에는 맹자, 서양에는 나폴레옹, 에디슨과 같은 이들이 있으니 그와 같은 사람이 돼라"고 끝을 맺습니다.
목숨을 버리기 직전 비장한 각오로, 아들들에게 조선을 위한 독립투사가 되라고 강조하고 있는데도, 과학자가 되길 희망했다고 해석 한 건 왜곡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한홍구/성공회대 석좌교수]
"유서를 언급한 부분은 이건 사학자로서 있을 수 없는 역사 왜곡이거든요. 젊은 윤봉길 입장에서 마음이 아팠었던 부분은 뭐냐 하면 이 아이들이 장차 자기는 죽고 어머니 밑에서만 살아갈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때 용기를 잃지 말아라. 너희 어머니도 훌륭한 어머니가 될 것이고 어머니가 키웠어도 맹자도 있고 나폴레옹도 있고 에디슨같이 훌륭한 사람들이 된 사람도 있지 않느냐."
[김형석/독립기념관장]
"<투사가 되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맥락을 조금 봐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 투사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읽어보세요. <그 의미가 뭔가요?> 그 문장도 제대로 안 읽어보고, 어?"
독립 유공자 후손들이 관장실을 점거한 채 사퇴를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가자 김 관장은 지금까지도 관장실로 출근하지 않고 있습니다.
광복절 축사 논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일부 언론의 편파 보도 때문이라며 언론에 책임을 돌렸고 사퇴 요구도 일축하고 있습니다.
[김형석/독립기념관장 (국회 정무위, 8월 21일)]
"기념사의 전체 맥락도 보지 아니하고, 무엇을 강조하고자 하는지도 잘라버리고 일방적으로 그렇게 주장하신 데 대해서는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김 관장은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되기 전부터 독립운동을 폄하해 비판을 받았습니다.
[김형석/당시 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 (유튜브 '자유시민연합tv', 2023년 12월 22일)]
"‘1945년 8월 15일 날 광복되어졌다, 그게 광복절이다’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참 많아요. 이 역사를 정확하게 모르는 겁니다. 그럼 광복은 뭐냐? 1948년 8월 15일 날 정부를 세우게 되어지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대한민국은 시작이 되어지는 겁니다."
취임 첫 기자 간담회에서는 친일 인명사전의 오류가 많다고 주장했습니다.
[김형석/독립기념관장 (2024년 8월 8일)]
"친일인명사전의 내용들이 사실상의 오류들이 있더라. 잘못된 기술에 의해서 억울하게 친일 인사로 매도되어지는 분들이 있어서도 안 되겠다."
특히 독립기념관장 면접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들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주장한 사실이 알려지며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김형석/독립기념관장 (2024년 8월 12일)]
"‘일제시대 우리나라 국민의 국적은 어디냐?’라고 물어서 '일제시대 국적은 일본이지요. 그래서 국권을 되찾기 위해서 우리가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닙니까'라고…"
그리고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지명된 김문수 당시 후보자도 같은 주장을 폈습니다.
[박홍배/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환노위, 2024년 8월 26일)]
"저의 부모님, 후보자의 부모님, 일제 치하의 국적이 일본입니까?"
[김문수/당시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
"일본이지, 그걸 모르십니까?"
지난 5월, 민주당 강득구 의원실은 독립기념관에 공문을 보내, 일제시대 우리 선조들의 국적을 일본으로 볼 근거가 있는지 질의했습니다.
스트레이트는 당시 독립기념관 담당자들이 작성한 답변서를 입수했습니다.
답변서에는, "한일병합조약이 강압적으로, 불의 부당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줄곧 병합 조약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또 "병합 조약의 불법성이 명확한 이상, 당시 한국인이 일본 국적이라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명시했습니다.
하지만 이 답변서는 국회에 제출되지 못했습니다.
독립기념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형석 관장이 답변서 제출을 막았다고 합니다.
일제 치하 선조들은 일본 국적이 아니라는 독립기념관의 답변이 선거 기간 중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스트레이트 취재가 진행되자 김형석 관장은 뒤늦게, "시기와 인물 지역 등에 따라 국적에 대한 해석 및 취급이 다르므로 일괄적으로 정리하여 답변하기 어렵다"는 내용으로 문서를 수정해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기존에 직원들이 작성했던 "일제 치하 한국인 국적을 일본으로 볼 근거가 없다"는 내용은 빼버렸습니다.
광복 80주년 기념식이 끝난 이후 스트레이트는 국회 정무위 이정문 의원실과 함께 여전히 일제시대 선조들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생각하는지 김형석 관장에게 공식 질의했습니다.
김 관장은 이번엔, "일제시대 조선인 국적이 일본이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정부 입장을 존중하고 반대하지 않는다"는 어정쩡한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이정문/더불어민주당 의원]
"독립기념관장이라는 분이 그것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고 애매모호하게, 또 그거를 부정하는 그런 발언을 계속한다는 것은 정말로 자질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한홍구/성공회대 석좌교수]
"보수적인 시각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기관의 원리 원칙에, 어떤 법에 정해져 있는 그 임무를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을 임명해야지 그 기관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게끔 만드는 그런 인사였기 때문에 이건 정말 최악의 문제이고."
역시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일제 징용과 위안부 강제성을 부정한 <반일 종족주의>의 공동 저자로 일제의 쌀 반출이 수탈이 아니라 수출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밖에도 허동현 국사 편찬 위원장.
역사 왜곡 문제에 대응해야 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의 박지향 이사장도 모두 뉴라이트 성향의 인사로 분류됩니다.
◀ 임상재 기자 ▶
이렇게 국민의 역사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요 기관의 장을 모두 뉴라이트 성향의 인사들이 장악했습니다.
이들의 임기는 앞으로 1년 6개월에서 2년까지 남아있습니다.
2025년.
그 어느 때보다 뜻깊은 광복 80주년을 기념했지만 독립운동의 업적을 깎아내리려는 시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요.
특히 색깔론을 덧씌운 공격 탓에 아직도 적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던졌던 그 공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 '색깔론' 못 넘는 독립운동 예우
지난 2021년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독립 전쟁사에서 최고의 전승을 올렸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조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머나먼 카자흐스탄에서 숨진 지 78년 만의 귀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감격도 잠시.
뒤이어 들어선 윤석열 정부에서 홍범도 장군 깎아내리기가 시작됐습니다.
이미 박정희 정부 시절 서훈을 받았던 홍 장군의 육군 사관학교 내 흉상을 이전하려는 시도.
[이종섭/당시 국방부장관 (국회 국방위, 2023년 8월 25일)]
"북한을 대상으로 해서 전쟁을 억제하고, 전시에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인데, 공산주의 경력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느냐."
국무총리는 이미 박근혜 정부가 이름 붙인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명칭 변경까지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한덕수/당시 국무총리 (국회 예결위, 2023년 8월 31일)]
"우리의 주적과 전투해야 하는 그 군함을 상징하는 하나의 이름이 공산당원이었던 사람으로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 전력을 문제 삼았습니다.
하지만 1920년대 레닌의 소련은 식민 지배를 받는 민족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홍범도 장군도 당시 소련 입국 조사서에 자신의 직업은 '의병'으로, 참가 목적은 조국인 '고려 독립'이라고 적었습니다.
무엇보다 1945년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는, 소련은 미국과 같은 편으로 독일 일본에 맞서 싸웠다는 점에서, 소련 공산당 가입 사실만으로 홍 장군을 공격하는 건 지나친 색깔론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홍범도 장군이 활동했던 시절에 소련이라고 하는 것은 레닌이 지배하던 소련입니다. 그 당시 레닌은 피압박 민족, 쉽게 말하면 식민지 해방 투쟁을 하던 조선인들에 대해서도 많은 조력을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지금 논란을 일으키는 자들은 그때 소련과 스탈린 소련을 섞어서 이야기합니다."
윤석열 정부의 몰락과 함께 홍범도 장군에 대한 정부 차원의 폄하 시도는 일단 중단됐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를 토대로 우리의 독립 전쟁사를 다룬 영화는 이재명 대통령도 함께 관람했습니다.
"독립을 볼 때까지 절대 죽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 2019년 일제의 간담을 가장 서늘하게 했던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선생에 대한 재평가 요구가 커졌습니다.
[문재인/당시 대통령 (제64회 현충일 추념식, 2019년 6월 6일)]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서 좌우 합작을 이뤘고, 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습니다."
영화 <암살>에 잠시 묘사된 것처럼 의열단과 조선의용대를 이끌며 가장 격렬하게 항일 투쟁에 몸담았고, 일제 말기 백범 김구 선생이 이끄는 임시정부에 합류해 광복군 부사령관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해방 뒤 월북해 북한 정부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현재까지 서훈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태룡/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장]
"독립운동가로 인정은 하는데 정부 쪽에서 이야기는 북한 정권 수립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에 이거는 우리 대한민국에서 볼 때는 명예스럽지는 못하다 이런 쪽이죠."
김원봉 선생의 월북은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붙잡혀 수모를 당한 뒤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욱이, 북한 권력 주변부에 머물다 결국 김일성에 의해 숙청당한 만큼 김원봉의 치열했던 독립투쟁만큼은 그 자체로 평가해 줘야 한다는 주장도 거셉니다.
[김주용/원광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김원봉이란 존재를 우리가 제외하고 한국 독립운동사를 쓴다? 그건 어불성설이죠. 독립운동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거죠. 그러니까 1945년까지 독립운동을 정말로 줄기차게 해온 사람들. 분단이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거 아니에요."
1919년 3.1운동 이후 국내 최대 규모의 항일 운동이었던 광주학생독립운동.
이 운동을 주도했던 장재성 선생은 일제 치하에서 7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하지만 광복 이후 통일 정부 수립을 논의하기 위해 북한 해주에서 열린 인민대표자회의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광주형무소에 수감됐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 중 후퇴하던 경찰에 의해 감옥에 있던 다른 사상범들과 함께 집단 처형됐습니다.
[장상백/장재성 선생 아들]
"시체를 찾으러 갔었어요. 이제 그때 여름이라서 시체가 다 부패해서 찾지를 못했어요. 그때 무덤이 세 구덩이였는데, 몇백 명 되었던 것 같아요."
유족들은 수차례 장재성 선생의 서훈을 신청했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을 이유로 계속 거부됐고, 아직까지 독립운동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황광우/장재성기념사업회 창립자]
"우리 김구 선생께서 북에 가서 남북통일 정부를 수립하자는 그런 운동을 하셨지 않습니까? 그런 시점에 장재성 어르신도 북에 가서 남북 통일운동, 통일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그런 흐름에 같이 서셨던 것 같고요."
여전히 남북 분단 상황인 만큼, 북한과 관련된 행적이 있는데 무조건 독립운동 서훈을 줄 순 없지 않느냐는 주장에도 분명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김일성 정권 핵심에 있었거나 남침 전쟁에 역할을 한 경우가 아니라면 독립운동 업적을 예우할 수 있도록 더 완화된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독립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모든 활동, 모든 활동이 목표이고 그 목표만 같으면 수단이 무엇이든, 그 수단이 민족주의건, 사회주의건, 공산주의건,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건 수단과 관계없이 목적이 같으면 독립유공자로 예우해야 되는 것이 당연하고 전 세계도 다 그렇게 예우하고 있습니다."
5시 뉴스
임상재
임상재
[스트레이트] 끝나지 않은 '역사 쿠데타'
[스트레이트] 끝나지 않은 '역사 쿠데타'
입력 2025-09-07 21:15 |
수정 2025-09-07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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