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준명 기자 ▶
중국인을 향한 혐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선, 대형참사 희생자에 대한 무분별한 혐오 역시 계속되고 있습니다.
159명이 목숨을 잃은 10.29 이태원 참사가 이제 3주기를 맞습니다.
아픔에 대한 공감은커녕 조롱과 비아냥으로 가득한 혐오의 표현들.
스트레이트는 지난 3년간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채 힘든 시간을 견뎌온 유족들을 만나봤습니다.
■ 3년간의 '혐오·2차 가해'
지난해 2월 성공회대학교 학위수여식.
속 한 번 썩인 적 없이, 경찰관의 꿈을 향해 하루하루 성실하게 지내왔던 둘째.
[유형우/고 유연주 씨 아버지]
"정의로운 경찰, 그게 꿈이어서 그 목표를 이루려고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나가는 모습이 너무 기특하고, 너무 저한테는 저는 너무 고맙고 소중한 아이였습니다."
이제 영정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21살의 어린 딸.
아버지는 영정 속 딸을 가슴에 품은 채 명예학사 학위증을 대신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소식을 담은 기사에 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던 딸.
국민 안전을 방치했던 국가 탓에 세상을 떠났는데도 피해자를 모욕하는 2차 가해에 아버지는 분노를 감추지 못합니다.
[유형우/고 유연주 씨 아버지]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2차 가해를 하고 막말을 남긴다는 그 자체가 저는 어떤 사고방식으로 그런 일들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화가 치밀어 가지고 그냥 그 분노를 어떻게 이기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이제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전주 이태원 참사 분향소.
지난 18일, 이 지역 피해자 유족들이 모여 3주기 추모제를 조용히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추모의 시간마저 쉽지 않았습니다.
[문성철/고 문효균 씨 아버지]
"이상한 사람들이 와서 '뭐 이제 다 끝난 거 아니냐', '왜 이걸 해야 되냐, 국가가 다 해줬는데' 어제 많았어요. 이제는 '무뎌졌다'라는 표현보다는 그냥 무시를 하죠. 왜냐하면 말 자체가 안 통하니까."
참사 직후부터 희생자를 추모하는 합동분향소가 설치된 곳엔 어김없이 극우세력이 나타나 피해자들을 비하하는 막말로 유족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습니다.
[김상진/신자유연대 대표 (2022년 12월 21일)]
"세월호 팔아가지고 집권해 놓고 <지금 분향하는데 뭐 하는 짓입니까?> 분향하는데 왜 구호질이야! <이 사람 예의가 이렇게 없어!> 뭐? 진실이 뭐냐고? 압사 사고야."
3년 전 성탄절 추모 미사 땐 소리 높여 캐럴을 부르며 유가족을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
놀러 갔다 죽었는데 왜 국가를 탓하냐는 폭언.
[정규재/전 한국경제신문 주필 (유튜브 '펜앤드마이크TV', 2022년 11월)]
"청춘을 엔조이하다가 일차원적으로 죽었죠. 이번 일로 국민 여러분들께 우리 아이가 걱정을 시켜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게 모든 문화국민들의 기본이죠. 누가 누구에게 사과를 하라고 요구를 합니까?"
극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태원 참사가 북한이나 중국의 소행이란 음모론을 퍼뜨리면서, 희생자와 유족들을 '빨갱이'라고 낙인 찍기도 했습니다.
[문성철/고 문효균 씨 아버지]
"여기 분향소 열렸을 때 저는 빨갱이였어요. 여기 관광지잖아요. 전국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와서 여기서 뭐 하면 저보고 빨갱이라고…"
[정미라/고 이지현 씨 어머니]
"아이를 잃은 부모한테는 그냥 또 칼로 이 가슴을 후벼 파는 이런 말들이에요. 북한의 소행이었다는 둥, 시체 팔아서 유가족이 장사한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이런 소리들 앞에 유가족들은 계속 무너지죠."
당시 여당 의원은 사회 불순 세력들이 거리에 기름을 뿌려 참사를 야기했다는 음모론까지 제기했습니다.
[이만희/국민의힘 의원 (국회 행안위, 2022년 11월 7일)]
"어떤 불순세력이 개입했다는 얘기도 있고 이 내용들이 명명백백하게 국민들한테 밝혀져야 됩니다. 청장님, 앞에 보이는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이게 떴다고 그러는데 이게 사실입니까? 옆에 각시탈 쓴 사람들, 특정 정당 관계자라고 많이들 얘기합니다."
"나라 구하다 죽었냐", "자식 팔아 장사한단 소리 나온다.", 자신의 SNS에 이런 막말을 올렸던 국민의힘 김미나 창원시의원.
모욕 혐의로 기소됐지만, 법원은 김 의원이 "반성하고 있다"며 징역 3월의 선고유예 결정을 내렸습니다.
정말 반성하고 있을까.
[김미나/국민의힘 창원시의원]
"<예전에 이태원 참사 관련해서 말씀을 하셨을 때…> 이태원 기사를 아직까지도 쓸 게 있어요?"
김 의원은 스트레이트에 "처음부터 유족분들께 욕을 하지 않았다"며 자신이 올린 글은 "민주당 것들과 합세한 단체들을 향한 말이었다"고 밝혔습니다.
또 "기사를 처음 쓴 분이 원초적으로 오보를 낸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김 의원은 지난달 유족들에게 총 1억 4,330만 원을 배상하라는 민사 소송 판결에 대해서도, 1인당 1백만 원 안팎의 배상금이 지나치게 과하게 책정됐다며 항소했습니다.
[윤복남/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대표]
"정치인들의 저는 2차 가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들이 아마 자기 표를 위한 의식된 발언일 텐데 거기서 이제 과격한 발언이나 모욕적인 발언을 하게 되면 그게 곧바로 유튜브라든가 일반 사람들의 어떤 2차 가해로 이어지거든요."
한 언론사가 지난 3년간 이태원 참사를 다룬 방송과 언론사 유튜브 영상 929건에 달린 댓글을 분석한 결과, 무려 4만 9천여 명의 사람들이 6만 4천여 건의 악성댓글을 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대응은 미온적이었고, 처벌 역시 솜방망이였습니다.
스트레이트 취재 결과, 이태원 참사 2차 가해 관련 검거 인원은 지난 3년간 고작 34명.
재판까지 간 경우는 11건에 불과했는데, 참사 희생자들을 성적으로 모욕한 혐의로 징역 6월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게 가장 무거운 처벌이었습니다.
대부분은 '음란물 유포' 혐의로 벌금형에 그쳤습니다.
[조인영/변호사·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이걸 형법으로만 규정하게 되면은 이게 과연 모욕에 이를 정도인가를 계속 판단 받아야 하는 거예요. 명확하게 재난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혐오 표현이고 모욕이고 명예훼손이라고 판단 받기는 쉽지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지난 정부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뒤 이태원 참사특별법은 여야 합의로 통과됐지만 참사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빠졌습니다.
[용혜인/기본소득당 대표 (이태원특별법 개정안 공동발의)]
"개개인들의 예의 없음, 생각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공동체 전체적으로 봤을 때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방해하는 뿐만 아니라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행위로써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엄벌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신준명 기자 ▶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힘들게 한 건 이런 2차 가해뿐만이 아닙니다.
진상조사 요구는 묵살됐고 당시 국민 안전을 책임졌어야 할 핵심 인사들은 대부분 그 책임을 피해 갔습니다.
그중에서도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
참사 이후 납득할 수 없는 행보를 보여 비판을 받아왔는데요.
스트레이트는 최근 박 구청장이 주변 지인들에게 국민의힘 입당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는 정황을 확인했습니다.
■ 책임 안 진 그들‥구청장은 '재선'?
이태원 참사 당시, 관할 지자체장으로서 안전관리계획을 세우지 않는 등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
[박희영/용산구청장 (2022년 10월 31일)]
"핼러윈 데이에 모이는 일종의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고 봐야 되겠죠. (밤) 9시에 다시 나와봤습니다. 그때 좀 (인파가) 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
[정미라/고 이지현 씨 어머니]
"그 큰 참사 앞에 본인이 아무 책임이 없다? 사실 제가 용산구청장 재판 때마다 쫓아다녔어요. 근데 정말 뻔뻔해요. 본인은 죄가 없다는 듯 말을 할 때 유가족 입장에서는 또 용산구청 가면 뻔히 그 청장 노릇을 하거든요."
박 구청장은 참사 이후 악화된 여론에 국민의힘을 탈당했습니다.
스트레이트는 최근 박희영 구청장이 사실상 국민의힘 당원과 다름없는 정치 행위를 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실제 박 구청장으로부터 입당 부탁을 받았다는 이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용산구 지역단체 회장]
"나한테도 한번 부탁은 하더라고. 당원 좀 입당해주면 안 되냐고. <회장님한테 직접이요? 박희영 구청장이요?> 네. 그건 아니지. 그래도 (구청장은) 공무원인데 선출직이라도…"
스트레이트가 확보한 국민의힘 입당 원서엔, 추천인으로 박희영이란 이름과 연락처 그리고 서명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스트레이트는 박희영 구청장으로부터 입당원서 100장을 받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말하는 녹취도 확보했습니다.
[제보자 - 용산구 산하 공기업 직원 (10월 16일 통화 녹취)]
"박희영 구청장이 100명 받아달라는 후원 그거 많이 받았니? <못 받았지, 해야 돼.> 한 장도 안 받았어? <한 10장 받았어.> (박희영) 구청장이 (입당 원서) 받아달라 했어? <어.> 100명 받으면? <아니, 100명을 다 해달라는 게 아니라 하는 만큼 좀 해달라는 거지.>"
박희영 구청장에게 부탁을 받았다는 사람은 용산구 산하 공기업 직원.
사실상 박 구청장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습니다.
이 직원은 박 구청장이 국민의힘 복당만 하면 쉽게 구청장 재선에 성공할 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보자 - 용산구 산하 공기업 직원 (10월 16일 통화 녹취)]
"만약에 왜 구청장이 안 되면 어쩌려고 그래? <안 되면 마는 거지 뭐. 될 수 있는 확률이 많으니까 그렇지 지금.> 나는 아니라고 보는데. <아니야 될 확률이 많아.> 누가 그래? <복당되면 100%야.> 어? <복당되면 100%라고.>"
스트레이트와 통화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원 입당 추천 건수는 그 사람의 당 활동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당 복당 심사에 긍정적인 정성평가 요소이고 공천심사 할 때도 반영된다"고 밝혔습니다.
박 구청장은 지난 8월, 용산이 지역구인 권영세 의원과 함께, 국민의힘 용산구 여성위원회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백준석/용산구의회 부의장]
"열 명만 모이면 거기에 참석한다라고 할 정도로 그렇게 활동을 하고 있고 그리고 입당 원서도 전방위적으로 받고 있다는 얘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걸 보면 분명히 재선에 대한 의지로밖에 보여지지 않는 거죠."
국민의힘에 복당한 뒤 내년 선거에서 구청장 재선을 노리는 걸로 보이는데, 국가적 참사를 예방하지 못한 관할 지자체 단체장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윤복남/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대표]
"유가족들 입장에서는 어쨌든 참사의 직접적인 책임자 중에 한 명이라고 보여지는 사람이 언론에서 자랑스럽게 인터뷰하고 다니고 그 언론에 노출되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힘들지요."
스트레이트는 주변 인물들에게 자신이 추천인 서명을 한 국민의힘 입당원서를 나눠준 게 맞는지, 또 용산구청 산하 공기업 직원에게 100명의 입당원서를 받아달라고 부탁한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박 구청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하고 문자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전혀 답하지 않았습니다.
박 구청장은 지난 8월 또 한 번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받았습니다.
용산구청이 서울시가 주최한 지역축제 안전관리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용산구청의 핼러윈 축제 안전관리가 모범적이었다는 건데, 이태원 참사에 대해 관리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던 박 구청장이, 이제 와선 안전 대책을 잘 세웠다고 자랑했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소라/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
"유가족과 희생자분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이거는 정말 행정적 윤리의식이 부재한 거고 도덕성이 부재한 게 아닌가."
국민 안전 담당 부처 장관이었던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그 어떤 법적,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이상민/당시 행정안전부 장관 (2022년 10월 30일)]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고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그리고 국정 총책임자였던 대통령.
[윤석열/당시 대통령 (참사 현장 시찰, 2022년 10월 30일)]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가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 내용이 충격을 줬습니다.
당시 김진표 의장으로부터 윤 전 대통령의 발언을 전달받은 민주당 의원은 듣자마자 그 내용을 메모해 놓았습니다.
[박홍근/더불어민주당 의원]
"그 사건이 우발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 범죄 세력에 의해서 사전에 기획된, 의도된 그런 범죄일 가능성을 본인이 갖고 있었다는 거예요"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은 참사 유족들을 초청해 국가가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며 처음으로 정부 차원에서 공식 사과했습니다.
정부는 지난 3개월간 진행된 감사를 통해 당시 용산으로 옮겨온 대통령실 주변에 경찰경비 인력이 집중 배치되면서 많은 인력이 모일 것으로 예상된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에는 경비인력이 전혀 배치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김영수/국무조정실 국무 1차장 (이태원참사 합동감사 결과브리핑, 10월 23일)]
"경찰은 이태원 일대에 대규모 인파 운집을 예상했음에도 교통 관리, 마약 등 범죄 단속에 주력하였고…"
스트레이트 취재 결과 특별법 통과 뒤 지난 6월부터 본격 가동된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희생자 중 110명 이상이 한 번에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했고, 두 군데 이상 병원을 돌다 숨진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를 근거로 당시 경찰과 소방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도 다시 한번 따져본다는 계획입니다.
딸의 마지막 체취가 남아 있는 그곳.
차마 마주할 수 없어 외면했던 그 거리를 힘들게 다시 찾았습니다.
[이효숙/고 정주희씨 어머니]
"애들이 살려달라고 하는 그 마음이 너무 가슴이 아파. 아직도 여기서 소리지르는 것 같아.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소중한 딸을 먼저 떠나보낸 죄책감, 이유 없이 사방에서 날아든 조롱과 비난까지 맨몸으로 맞으며 지금까지 견뎌온 이유.
참사의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고 더 이상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혐오가 사라지길 바라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이효숙/고 정주희 씨 어머니]
"누가 우리 애한테 2차적인 가해나 무슨 뭐 안 좋은 말을 하더라도 더 이렇게 (인터뷰에) 응한 것은 사회적 참사가 정말 앞으로 일어나지 않고 거기에 대해서 대책적인 그런 안전법이 나오고 이렇게 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서 꼭 참석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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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명
신준명
[스트레이트] 참사 3년, 쏟아진 '혐오'‥책임 안 진 그들
[스트레이트] 참사 3년, 쏟아진 '혐오'‥책임 안 진 그들
입력 2025-10-26 21:12 |
수정 2025-10-26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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