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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암 발병'과 직장폐쇄

[스트레이트] '암 발병'과 직장폐쇄
입력 2025-12-07 21:11 | 수정 2025-12-07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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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 발병'과 직장폐쇄

    앙상한 뼈대만 남긴 채 처참히 뜯겨 나간 지붕

    폭격을 맞은 듯 산산조각 난 유리창

    건물 내부는 모두 불에 타버려 검게 그을려 있습니다.

    사실상 폐허가 돼 버린, 가동을 멈춘 공장에 아직도 7명의 노동자가 남아서 농성을 이어갑니다.

    3년 전 화재 사고 이후, 공장을 폐쇄해 버린 회사.

    한때 5백 명에 달했던 노동자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모기업이 경영하는 다른 지역의 공장.

    지난 2000년 가동을 시작한 이후, 이 공장에선 20명의 노동자가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김정석(가명)/한국니토옵티칼 산재 피해자]
    "화학물질을 너무 많이 만지니까 언젠가는 이런 사고가 한번 터질 줄은 알았는데 그게 저일 줄은 몰랐던 거죠"

    일본 기업이 세운 이 두 공장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 임명찬 기자 ▶

    휴대전화와 텔레비전 액정 등 LCD 편광필름을 만드는 회사로 이 분야 세계 1위의 일본기업 '니토덴코'

    이 일본기업이 한국의 평택과 구미에 세운 공장이 각각 한국니토옵티칼 그리고 한국옵티칼하이테크입니다.

    이 두 공장에서 지난 20여 년 동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졌는데요.

    먼저 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판정을 받은 한 40대 노동자의 이야기부터 취재했습니다.

    ■ "죽어라 일만 했는데‥"

    경기도 평택에 있는 한국니토옵티칼 공장.

    지난 2002년 입사해 이곳에서 23년간 근무한 48살 김정석 씨.

    김 씨는 편광필름을 코팅·접합하는 공정 그리고 필름 생산에 사용되는 각종 화학약품을 제조하는 '용해 공정'에서 각각 10년 넘게 일했습니다.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를 비롯해 각종 독성 화학물질 수백 종을 취급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3, 4년 전부터 극심한 피로를 동반한 어지럼증과 메스꺼움 증상이 생겼지만, 생계를 위해 참고 버텼습니다.

    [김정석(가명)/한국니토옵티칼 산재 피해자]
    "톨루엔 자체랑 초산에틸 그런 걸 섞어가지고 사용을 하는데 시너 냄새랑 비슷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처음 맡는 사람은 토할 것 같다고 아마 느낄 거예요."

    그러다 지난해 말 건강검진에서 혈액 수치에 이상이 발견됐고, 정밀검사 결과 '만성 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김정석(가명)/한국니토옵티칼 산재 피해자]
    "황당했죠. 저는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 (백혈병) 발생하고 나니까는 너무 황당하고 너무 어이가 없고…"

    일하면서 치료를 병행할 생각이었지만,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통증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회사에 백혈병 발병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회사 관계자는 혈액암에 걸린 동료가 더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석(가명)/한국니토옵티칼 산재 피해자]
    "이사님께 '저 이러이러한 병에 걸렸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니까는 '너 같은 환자 두 명이나 더 있다'라고…"

    분명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정석 씨는 산업재해 신청 절차를 밟았습니다.

    하지만 회사 인사팀장은 회사에 백혈병 발병자는 김 씨 혼자뿐이라고 잘라 말했고, 산업재해로 인정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종란/노무사]
    "(사측과 면담에서) 피해 당사자가 직업병일 수 있으니 뭐 '회사가 미안하다' 이런 게 아니라 '직업병인지 어떻게 알까요? 직업병 아닐 수도 있는데 뭐 이렇게 회사에 자꾸 내놓으라는 식이냐'는 그러한 느낌이 되게 있었거든요."

    정석 씨의 산재 신청에 대해 회사 측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의견서입니다.

    재해사실을 인정하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부인한 뒤, 정석 씨가 "최근 10년간 비만과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등의 증상이 있어 간헐적으로 치료하고 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종란/노무사]
    "회사가 '산재가 아니라 이 사람 개인적인 문제로 발병한 거야'를 강조하려고 그렇게 써 놓은, 그렇게 해 놓은 거예요."

    사측은 해당 작업장에서 포름알데하이드의 사용량이 제한적이며, 김 씨에게 직접 노출된 빈도와 노출 시간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적었습니다.

    또 작업환경 내 충분한 환기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백혈병 발병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매우 낮다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사실일까?

    고용노동부의 실태조사 결과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유해물질 흡입을 막기 위한 배기장치가 설치돼있지 않거나 성능이 부실했고, 화학물질을 운반·저장할 때 밀폐하지 않는 등 안전조치 위반사항 10건이 적발됐습니다.

    [어원석/숭실대 안전보건융합대학원 교수]
    "화학 물질은 소화기나 호흡기나 피부를 통해서 우리 인체에 들어와서 축적이 되죠. 그게 이제 직업병을 일으키는, 대사를 일으키는 장기에서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요. 근데 환기 장치가 없게 되면 가장 처음에 노출되는 부분에 있어서 막아주지 못하는 거죠."

    회사 측은 공장 내 유해물질 측정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시민단체 반올림이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분석한 <니토옵티칼 작업환경 측정 분석보고서>입니다.

    김 씨의 백혈병 발병의 주원인으로 지목된 포름알데히드, 암, 눈 손상 등을 유발하거나 생식기능에 악영향을 주는 헥산 등 반드시 측정해야 하는 화학물질 16종의 측정이 누락됐습니다.

    [이상수/'반올림' 활동가]
    "누락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것에 대해서 저희가 이제 확인을 노동부에 요청을 했고 이거는 명백한 법 위반이니까 과태료 처분하라고 요청을 해놓은 상태고요."

    각고의 노력 끝에 정석 씨는 지난 7월 산업재해 승인을 받았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신청인이 장기간 업무 수행 과정에서 포름알데히드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을 것으로 보이고,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걸로 판단된다"고 밝혔습니다.

    회사는 정석 씨가 산업재해 판정을 받은 뒤에도 석 달 동안 단 한 차례의 사과도 없이 무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

    김 씨는 병가를 낸 채, 치료비도 스스로 부담하며 병마와 싸워야 했습니다.

    [김정석(가명)/한국니토옵티칼 산재 피해자]
    "간이 땡땡 붓고 지금 섬유화가 좀 돼 있다고… 저도 이젠 돈 벌려고 회사를 다닌 거지 병 얻으려고 회사를 다닌 게 아니잖아요."

    회사 대표가 국정감사에 출석해 질타를 받은 뒤에야 사측은 10개월 만에 사과 문자를 보냈고, 김 씨와 만나 보상 절차 등을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김정석(가명)/한국니토옵티칼 산재 피해자]
    "회사 일을 너무 죽어라 하고, 왜 내가 왜 회사에 목숨을 걸었나…"

    ◀ 임명찬 기자 ▶

    한국니토옵티칼에서 일하다 혈액암을 얻은 직원은 김 씨 말고도 3명 더 있었던 걸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지난 2000년 이후, 직원 수 1천 명 규모인 이 공장에서 재직 중 암에 걸린 노동자는 확인된 것만 20명입니다.

    하지만 질병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한 건 앞서 살펴본 김정석 씨가 유일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잘 납득이 되지 않는데요.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질병에 걸리더라도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던 건 아닐까, 의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 잇단 '암' 발병‥그런데 조용했다.

    <스트레이트>가 확보한 한국니토옵티칼 노동자들의 암 진단 현황입니다.

    김정석 씨처럼 혈액암 진단을 받은 사람은 모두 4명.

    혈액암 발병자 4명 가운데 3명은 오랫동안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는 생산공정에 투입됐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윤근/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
    "1년 동안에 백혈병으로 진단된 사람이 연령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지만 한 4명 내지 5명 정도 그거는 10만 명당 4명 내지 5명입니다. 그러면 (이 회사는) 아무리 못 잡아도 한 10배 이상은 높은 것 같아요."

    한국니토옵티칼 공장은 야간근무를 포함한 주야 맞교대 근무 시스템입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수시로 밤을 새야 하는 이런 스케줄을 '유방암' 발병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한국니토옵티칼에서 일하다 암을 얻은 20명의 노동자 중 유방암 환자는 6명, 갑상선암 3명, 위암 2명, 침샘암 2명, 난소암과 직장암, 자궁내막암이 각각 1명씩이었습니다.

    확인된 것만 20명일 뿐 실제 환자는 더 많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종란/노무사]
    "퇴직자 중에서도 있을 수 있고 또 암은 잠복기라는 시간, 기간을 거쳐서 발현하기 때문에 또 다른 피해자가 한참 퇴직한 이후에 한참 만에 걸릴 수도 있는데…"

    그런데 재직 중 암에 걸렸던 20명의 노동자 중 산업재해 신청을 한 건 왜 김정석 씨밖에 없을까?

    [김정석(가명)/한국니토옵티칼 산재 피해자
    "같은 회사에서 저와 비슷한 일을 하다 혈액암에 걸린 친구가 있습니다.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해선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어, 어차피 회사와 싸워봤자 이길 수 없기에 신청하지 않았다고…"

    어차피 신청해 봤자 회사는 인정하지 않을 테니 장기간 회사와 싸워야 하는데, 이런 상황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겁니다.

    질병과는 다르지만, 실제 한국니토옵티칼은 작업 중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직원들의 성과급을 깎는 제도를 운용해 왔습니다.

    [김정석(가명)/한국니토옵티칼 산재 피해자
    "저희 공정에 이제 압력 체크하는 게 있는데 압력 체크하러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미끄러져서 제 손목이 부러졌었는데, 제가 알고 있기로는 저 때문에 (성과급) 3%가 줄어가지고 애들(동료들)한테 좀 미안했죠."

    <스트레이트>가 확보한 같은 니토덴코 계열 회사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노사협의회 자료.

    여기에도 2016년과 2017년 안전사고가 2건씩 발생해 성과급 기준이 되는 실적평가 점수를 0.3점씩 감점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직무 관련성을 인정받기가 더 어려운 암 발병을 이유로 산재 신청을 하는 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박성우/노무사]
    "산재가 발생했을 때 여러 가지 근로 조건에서의 어쨌든 저하가 수반되는 이런 제도를 두고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일반 노동자 입장에서는 신청하기 어렵고 결국은 산재 은폐가 되고 산재 발생 사실을 숨기게 되고 이런 결과를 초래하겠죠."

    같은 일본 니토덴코 계열 회사였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평택의 니토옵티칼에 이어 지난 2003년 구미에 설립됐습니다.

    2019년부터 경영상의 이유로 수백 명을 구조조정을 하던 중 3년 전 공장에 원인 미상의 큰불이 났습니다.

    6백억 원이 넘는 화재 보험금을 수령했지만 바로 폐업을 결정해 버렸습니다.

    150여 명의 직원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생산 물량을 모그룹 계열사인 평택 니토옵티칼 공장으로 이전하면서도 직원들 고용 승계는 전혀 없었습니다.

    직원들이 모두 떠나갔지만, 7명의 노동자는 남아서 600일간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고공 농성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폐쇄된 구미공장의 생산물량을 인수한 한국니토옵티칼은 고용승계 대신 새로 178명의 직원을 뽑았습니다.

    고용승계 거부 사유는 두 회사는 엄연히 다른 법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회사는 과거 직원 인사교류까지 했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용우/더불어민주당 의원-이배원/한국니토옵티칼 대표이사 (국회 환노위, 10월 15일)]
    "양 회사 간의 파견 등 인사교류가 잦았고, 심지어 적을 옮겨 채용되기도 한 적이 많습니다. 그럴 때 상여금, 승진, 근속 등이 그대로 승계되어서 전적이 이루어지기도 했었습니다. 맞지요? <2명이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숙련된 직원들이 있었는데 고용승계 대신 왜 새 직원을 178명이나 채용했을까.

    지난 2022년 1월 직장 폐쇄 직전에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회사 측 노무대리인이 일본 모기업에 보낸 이메일입니다.

    "신임 노조 대표가 니토 그룹의 배려를 감사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의 선동에 휘둘려 노사관계를 악화시킬 경우 결국 한국옵티칼은 조기에 폐업할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니토그룹은 아무런 손해가 없지만,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고 가정이 파탄 날 수 있다"

    이런 내용을 노조 측에 통보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노조 측은 사측이 고용승계를 거부한 이유가 노조 활동 이력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최현환/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지회장]
    "지금 고용승계도 거부하는 거는 우리가 거기 공장에 평택공장으로 들어가면 '민주노총 금속노조'라는 이 노동조합이 새롭게 설립이 되고 노사 관계가 틀어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저희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지난 3년간 일본 모기업 본사에도 여러 차례 찾아가 고용승계를 호소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다카사키 히데오 사장님 만납시다. 노동조합이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빨리 꺼져!> 모른다고. <꺼지라고!> 한국말로 해. <꺼지라고!> 한국말로 하라고. <시끄러워! 시끄러워 일본어로 말해!>"

    <스트레이트>는 노동자들의 암 발병 그리고 직장폐쇄 이후 고용승계 거부 등에 대한 회사 입장을 묻는 질의서를 전달했지만, 회사 측은 답하지 않았습니다.

    관련 업계 세계 1위 기업 니토덴코 계열의 두 회사.

    한국 투자, 한국인 고용 창출 대가로 공장부지 무상 임대 그리고 법인세 등 각종 세제 혜택을 받았고, 평균적으로 매년 수백억대의 순익을 기록했습니다.

    기업의 최고 목적은 이윤 창출이지만, 이들 두 회사는 노동자들을 이윤 창출의 도구로만 대하고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마저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공유정옥/경기동부근로자건강센터 부센터장]
    "'노동권에 대한 존중' 이것이 없는데 안전 보건 관리가 잘 되는 기업은 본 적이 없어요. 중소 규모, 그 공급 사슬 생산망에서 조금 잘 보이지 않던 기업들 이런 곳에서 이런 문제들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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