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늑구'는 돌아왔지만
4월 8일 오전 9시 18분
대전 오월드 늑대 탈출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늑구라는 이름의 늑대가 탈출한 이후 벌어진 늑구 생포작전.
늑구의 행적 하나하나가 국민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 무사히 구조대에 의해 생포되길 바라는 목소리가 온라인과 SNS를 도배하다시피 했습니다.
9일 만에 발견돼 무사히 동물원으로 돌아온 뒤에도,
"숨 잘 쉬어요? <오케이.> 산소 주세요. 일단 빨리 옮길게요."
늑구를 주인공으로 한 각종 밈과 귀환을 축하하는 온라인 게시물이 쏟아졌습니다.
과거에도 동물원 야생동물의 학대 그리고 열악한 시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비판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2023년 김해 ○○동물원
두 평 남짓한 좁은 유리 사육장에 갇혀 있는 사자.
한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갈비뼈가 고스란히 비쳐 보일 정도로 야위었습니다.
경남 김해의 한 동물원에 있던 '바람이'입니다. 시민이 찍은 이 영상은 SNS에서 빠르게 퍼졌고, 바람이는 '갈비 사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소식을 접한 동물단체가 곧바로 구조에 나선 덕분에 바람이는 다행히 늦지 않게 다른 동물원으로 옮겨질 수 있었습니다.
2023년 대구 ○○동물원
대구의 한 동물원에 있던 낙타 '햇님이'는 끝내 구조되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폐업한 동물원에 남겨진 햇님이는 상처조차 치료받지 못한 채 방치됐습니다.
보다 못한 마을 주민이 직접 먹이를 주며 돌봤지만, 결국 기력을 찾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습니다.
연락이 닿은 동물원 주인은 치료 요청에도 적극 응하지 않았고, 사체마저 며칠 동안 방치했습니다.
2024년 거제 씨월드
거제 씨월드의 마스코트였던 큰돌고래 '줄라이', '노바'.
관람객들을 위해 각종 묘기를 보여주는 쇼에 동원돼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아쿠아리움 측이 병들어 아픈 줄라이와 노바에게 약까지 투입하면서 쇼를 강행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결국, 이 돌고래들은 숨이 끊어졌는데, 돌고래 '노바'는 죽기 나흘 전까지 무대에 섰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야생동물을 열악한 공간에 가둬두는 일부 동물원 그리고 그 안에서 제대로 관리받지 못하고 있는 동물들에 대해 다시 한번,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 조희원 기자 ▶
야생동물 학대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커지자, 지난 2023년 12월부터 동물원 및 수족관에 관한 법률이 개정 시행됐습니다.
보유 동물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만지기·올라타기 같은 체험 행위를 제한하고, 오락이나 흥행 목적으로 동물에게 고통과 공포,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를 금지했습니다.
법이 시행된 지 2년이 훌쩍 넘은 지금, 현장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해 봤습니다.
■ '동물 존중' 없는 동물원
제주의 한 수족관.
공연장에 등장한 바다사자가 사육사의 손짓에 따라 박수를 칩니다.
곧이어 사육사가 운동이라며 묘기를 시키고,
"우리 치코가 운동을 해보겠다는데요. 바로 원반던지기 놀이입니다. 준비되셨으면 던져주세요."
"성공!"
뒤이어 등장한 큰돌고래.
사육사의 손짓에 맞춰 하늘 높이 점프하고, 머리 위에 있는 숨구멍인 분기공을 통해 소리를 냅니다.
"노래를 한 곡 들려준다니까요, 잘 듣고 어떤 노래인지 알아맞혀 보세요."
"네, 지금까지 '곰 세 마리'였습니다."
기존에 봐왔던 돌고래 쇼와 차이가 없습니다.
개정된 법률에 따라 과거 광범위하게 행해졌던 돌고래 쇼 등은 동물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하고, 행동학적 특성에 반하는 행위로 해석돼 금지됐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이뤄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개정된 법률 시행령에서 금지하는 행위의 예외 조항을 뒀는데, 바로 '교육 목적 행위'는 제외하도록 했습니다.
돌고래쇼가 아닌 돌고래 생태에 대해 청중들을 교육하는 설명회로 이름을 바꿔 여전히 공연을 진행하는 겁니다.
[조약골/핫핑크돌핀스 대표]
"원래 돌고래들은 저렇게 인위적인 훈련을 받지 않으면 저 소리를 못 내는 거예요. 조련사가 또 어떤 사인을 보내거나 동작을 취하게 했을 때 그걸 수행을 해야만 반드시 먹이를 줍니다. 수행을 하지 않으면 먹이를 안 줘서 반복 학습을 시키는 거죠. 숙달 되도록."
서울의 한 동물카페.
관람객들 사이로 캥거루과 동물인 왈라비가 돌아다니고, 미어캣을 모아둔 공간에는 사람들이 차례로 들어가서 먹이를 줍니다.
일정 시간이 되자 이번에는 여우들이 체험 공간으로 나오고, 직원들은 여우를 관람객들의 무릎에 앉혀 먹이를 주며 만지도록 유도합니다.
이날 체험 과정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미어캣의 꼬리가 잘려 나가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간단한 지혈 후 별다른 치료 없이 관람은 계속됐습니다.
[동물카페 직원]
"사진 찍지 마세요."
개정법에 따르면, 야생동물카페 등에서 진행하는 '만지기' 체험 등의 행사도 금지 대상입니다.
관리 책임이 있는 관할 지자체에 법으로 금지된 '만지기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고 알렸지만, '직원이 직접 동물을 만지도록 유도하지 않았다'며 불법으로 보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관할구청 공무원]
"손님이 만지는 것 자체로는 과태료를 매기기가 어렵고 직원이 그 안에 가서 만져보라거나 이렇게 뭐 권하는 어떤 그런 의도가 있어야 저희도 과태료를 좀 매길 수가 있거든요."
[정진아/동물자유연대 이슈행동팀장]
"주의사항 같은 것들을 안내 문구까지 지금 정리를 했는데 얼마나 더 의도적이어야 체험으로 인정을 해 주시는 건가요?"
동물원 및 수족관 법 개정 취지는 야생동물에 대한 학대 행위를 금지하는 건 물론, 야생 서식지와도 최대한 유사한 환경을 제공해 동물들이 스트레스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대전의 한 대형 테마파크 시설.
호랑이와 재규어, 하이에나, 곰.
대형 포유류들이 모두 높이 3미터, 길이 5미터 남짓한 비좁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야생 환경을 닮은 수풀과 나무는 전혀 없습니다.
한낮에 강한 햇볕이 내리쬘 때에는 더위를 피할 그늘조차 없다 보니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습니다.
사막여우, 미어캣들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있습니다.
미어캣은 땅을 파는 습성이 있어 흙바닥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이런 습성을 고려하지 않은 겁니다.
[김봉균/공주대 특수동물학과 교수]
"바닥재가 부적절하게 제공이 되는 건 동물의 건강이나 신체 이상에도 굉장히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에 반드시 개선돼야 될 지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관람객들은 전시동물을 유리 벽 하나를 두고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의 많은 동물들은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쉼 없이 도는 모습을 보였는데, 야생동물이 정신적으로 불안할 때 보이는 대표적인 정형 행동입니다.
[김봉균/공주대 특수동물학과 교수]
"특정한 위치를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거나 고개를 계속 젓거나 혹은 어느 벽면이나 이런 데에 계속 매달리거나 뭐 이런 반복적인 행동을 보이게 되는데 동물원에서는 굉장히 흔하게 관찰이 되는 현상이고요. 야생의 개체들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테마파크 측은 "맹수 사육 시설이 비좁다는 지적을 수용해 공간을 넓히려고 계획을 하고 있다"면서 "완공까지는 몇 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동물들이 스트레스로 인한 정형 행동을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선 "외부 계약 수의사가 주기적으로 상태를 관찰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런 동물 스트레스 논란은 최근 서울 롯데월드몰 수족관이 보유 중인 흰 돌고래, 벨루가를 두고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동물 단체들은 벨루가가 수족관에 갇혀 지내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이상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조약골/핫핑크돌핀스 대표]
"수조 자체가 되게 작은데 두드리면 이 안에서 소리가 크게 나요. 지금도 또 이제 멜론(이마 부분)이 부풀었고 입을 물려고 하는데… 얘는 지금 너무 스트레스 때문에 열받아 죽겠고 막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이걸 이해를 못 하는 거죠."
롯데월드몰 측은 "벨루가의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방류를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밖에도 털이 대부분 빠진 상태로 방치되는 등 중·소규모 동물원을 중심으로 동물들이 방치되고 있다는 신고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 동물원이나 수족관으로 등록된 곳은 모두 146곳.
이 중 109곳은 민간이 운영합니다.
최근 5년간 매년 평균 7천여 마리의 동물들이 동물원과 수족관에서 폐사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폐사 이유가 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 조희원 기자 ▶
동물원과 수족관은 우리가 영상이나 책으로만 볼 수 있던 많은 야생 동물들을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장소입니다.
지난 175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일반 대중을 위한 동물원이 전 세계에서 처음 만들어진 이후, 270년이 넘도록 그야말로 우리의 일상과 함께하고 있는데요.
늑구 사태 이후, 이제는 기존의 동물원 문화를 조금 더 동물 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 조금 '불편한' 동물원으로
과거 곰 사육 농가였던 강원도 화천의 곰 방사장.
넓은 방사장 중앙에는 물을 좋아하는 곰을 위한 연못과 햇빛을 피할 수 있는 큰 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지난 2021년 정부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곰을 이용한 웅담 채취 산업에 대해 국제사회의 비판이 지속되자 웅담 채취를 금지했습니다.
그러자 곰 사육 농가들은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 곰들을 방치한 채 떠나버리기 시작했고, 보다 못한 한 동물단체가 사육 농가 부지를 인수해 야외 방사장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사육되던 곰 15마리는 마리당 1천만 원을 주고 샀고, 다른 사육 농가에서 어미 곰과 아기 곰을 추가로 데려왔습니다.
이 모든 비용은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마련했습니다.
[최태규/수의사·곰보금자리 프로젝트 대표]
"지금 국가가 지원하는 돈은 마리당 50만 원씩의 곰 밥값, 사실은 곰 밥값은 그거보다 훨씬 많이 드는데 그것만 지원하고 있고 그 외에는 전혀 지원하는 게 없습니다."
웅담 채취 금지 조치만 내렸지, 버려진 곰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선 정부 대책이 없었던 겁니다.
현재 전국에는 220마리의 사육 곰이 여전히 농가에 남아 있습니다.
[최태규/수의사·곰보금자리 프로젝트 대표]
"시민단체가 개별 농가와 접촉해서 '곰을 얼마에 파실 거냐', '얼마에 팔겠다'고 하면 사오는 거고… 적어도 합법적으로 운영하던 산업을 국가가 불법으로 규정하고 없애기로 했으면 그에 대한 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보상이나 거기에 이용되던 동물들은 국가가 어느 정도는 책임을 져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2023년 동물원 및 수족관 법을 강화하면서, 정부는 새로운 동물원은 동물 친화적인 시설 기준을 충족해야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꿨습니다.
기존 등록 동물원들도 내년 말까지 모두 허가제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즉, 기준에 맞지 않으면 허가를 취소해 폐원까지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폐원시킬 경우, 남겨진 동물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빠져있어서, 곰 웅담 채취를 금지했을 때처럼 많은 동물들이 버려지거나 방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박홍배/더불어민주당 의원]
"허가 시부터 폐업 시에는 동물을 어떻게 이전하고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들을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또 보증보험이나 기금의 적립 의무 같은 사후 책임 장치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참에 국내 동물원들의 운영 방식도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국내 1호 거점 동물원으로 지정한 청주동물원.
'동물을 보기 어려운 동물원'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곳은 최대한 야생과 비슷하게 꾸며졌습니다.
동물들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피해 몸을 숨길 수 있는 은신처가 많다 보니 관람객들이 동물을 보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사막여우와 미어캣 사육장에는 땅굴을 파는 습성을 고려해 모랫바닥을 깔아놨고, 가파른 절벽에 사는 산양 사육장은 아예 산에 울타리만 둘러친 형태입니다.
청주동물원에서는 더 이상 좁은 공간에 동물을 가두지 않습니다.
관람객들에게도 스라소니가 쓰던 사육장에 들어가 동물들이 얼마나 답답한 공간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지 체험해 볼 수 있게 했습니다.
동물원 가장 높은 곳에는 이곳에서 생을 마친 동물들의 이름과 사진을 모아둔 작은 추모관도 마련돼 있습니다.
청주동물원에서 태어나 많은 사랑을 받다 세상을 떠난 시베리아 호랑이, 이호.
수달 달순이, 고라니 고돌이, 표범 표돌이 등 여러 이름들이 걸려 있습니다.
동물들과 함께하며 행복을 느꼈던 어린이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쓴 편지와 꽃을 가져다 놨습니다.
이곳에서는 야생동물을 관람하는 동시에 그 동물들의 소중한 생명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한된 공간에 동물을 가두어 사육할 수밖에 없는 동물원.
인간의 볼거리와 즐거움을 위해 야생동물들의 고통과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게 현실입니다.
우리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동물권을 보장하며 야생동물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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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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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동물 존중' 없는 동물원
[스트레이트] '동물 존중' 없는 동물원
입력 2026-05-24 21:14 |
수정 2026-05-2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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