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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리포트

북한은 왜? <신상옥, 최은희 부부는 왜 납치됐나?>

북한은 왜? <신상옥, 최은희 부부는 왜 납치됐나?>
입력 2016-10-10 18:10 | 수정 2016-10-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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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강균]
    "최근에 북한과 관련된 아주 흥미로운 영화가 나왔습니다. 바로,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상옥, 최은희 부부의 납치 사건을 다룬 연인과 독재자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인데요. 이 영화 속 김정일의 육성이 담겨져 있어서 더욱 화제입니다."

    [구은영]
    "신상옥, 최은희 부부의 납치부터 탈출까지 그리고 영화를 통해서 북한 체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분을 모셨는데요. 바로 신상옥, 최은희 부부의 아들인 신정균 감독입니다. 어서 오세요."

    [신강균]
    "안녕하십니까?"

    [신정균]
    "안녕하세요?"

    [구은영]
    "그리고 안창일 박사님 함께 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창일]
    "안녕하십니까?"

    [신강균]
    "이번, 영화의 주인공인 신상옥 감독님을 타개하셨고. 그리고 최은희 여사님은 여전히 건강하시죠?"

    [신정균]
    "네,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니까 조금 기력은 떨어지셨지만 아직도 건강하십니다."

    [신강균]
    "당시 정말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는데요. 당시에 최고의 배우와 감독을 한꺼번에 납치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남북관계가 어땠는지 안창일 박사님 혹시 기억나십니까?"

    [안창일]
    "네, 그때 2년 전, 그러니까 우리 최은희 여사께서 납치되기, 2년 전. 76년 8월에 판문점 도끼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 당시 이제 김일성 최고 사령관이 우리 UN군 스트렐 대장에게 사과하는 북한 초유의 패가망신을 당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마, 김정일은 그와 무관하게 자기가 이제, 70년대 초반에 5대 혁명가 꽃 파는 처녀, 피바다, 밀림**하라. 이거를 이제 한 번 히트를 쳤기 때문에, 다음은 이제 영화다. 그래서 영화를 한 번 히트를 쳐보려고. 우리 최은희, 신상옥 부부를 납치할 구상을 한 거 같습니다."

    [구은영]
    "신상옥, 최은희 부부의 납치 과정이 영화 속에 생생하게 녹아 있는데요. 화면으로 만나보시죠."

    [이안 홀 (왕립 홍콩 경찰 조사관)]
    "손님 한 분이 돈도 안 내고 사라졌습니다. 흔하지 않은 짐 가방이랑 소지품들 화장실에 화장품까지 다 있었어요."

    [신강균]
    "네, 1978년 1월이죠? 홍콩에서 최은희 씨가 실종됐다. 라는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 신정균 감독님은 그때 몇 살이셨습니까?"

    [신정균]
    "제가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 올라갈 때니까. 15살? 그때였습니다."

    [신정균]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죠. 왜냐하면, 워낙 부모님이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셨기 때문에 그냥 며칠 더 늦어지시나 보다 했는데. 이제 형사들이나 기자 분들이나 막, 들이닥치면서 이게, 어쩌면 어머니를 못 볼 수 있겠구나. 라는 두려움이 엄습해온 거죠."

    [최은희]
    "큰 배에 큰 선장실에다가 앉혀 놨더라고요. 날 죽이는 줄 알았다고, 날 죽이려고 배에도 또 저기 의사가 있더라고요, 그런 걸 장비를 다 준비해서 다니는 것 같아 와서 주사를 놓더라고 한 8일 걸려가지고 기절을 했다가 깨어났다 기절을 했다가 깨어났다가 아무것도 못 먹고."

    [구은영]
    "강제로 배에 실려서 북한에 간 겁니까?"

    [신정균]
    "이제, 수면제 같은 걸로 해서 깨어나시면 또 재우고. 깨어나면 또 재우고 하는데, 배 안에서 흐릿하게 김일성 사진이 걸려있는 거를 보셨데요. 그래서 너무 앞이 캄캄하고 가면 죽었구나."

    [최은희]
    "남포항에 도착해서 뭐라고 그러나 항구에 그저 둑 있는데 이렇게 걸어가는데 남자 목소리가 굵게 들려요. 악수를 청하더라고요. 아, 오시느라고 수고했습니다."

    [신강균]
    "이번에는 고 신상옥 감독의 육성입니다. 홍콩에 비밀 공작원이 있었던 거지 내 동업자였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았어 그들은 나를 홍콩 섬에 있는 리펄스베이로 데리고 갔지 도중에 차를 세우더니 서너 명이 올라타는 거야 모두 긴 머리 가발을 쓰고 있었어 가방을 머리에 씌우더니 클로로폼(마취제)을 들이마시게 했어."

    [신강균]
    "신정균 감독님. 당시 그 북한에서는 두 분들이 자진 월북했다. 그리고 이 한국에서도 혹시 자진월북한 것이 아니냐는 그런 기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자진월북 했다는 소식을 듣고 상당히 착찹하셨 겠어요?"

    [신정균]
    "네. 근데 그 당시의 상황은 어떻게 절묘하게 또 그런 소문이 날 수 있는 상황이 많이 있었습니다. 일단은 아버님의 영화사가 사양길에 있었고요. 또 예고편의 검열에서 이제 삭제된 부분을 붙여서 상영하는 바람에 영화사 자체가 등록 취소되셨고 또 거기에 잇따른 영화흥행 실패로 인해서 빚을 좀 많이 지셨고."

    [신강균]
    "글쎄요. 재정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가 자진월북 한 거 아니냐 뭐 그런 기사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신정균]
    "예. 그러다가 그 당시에는 영화사가 허가제였기 때문에요. 등록이 한번 취소되면 더 이상 영화를 만들 수 없는 거죠. 대한민국에서 그러니까 이제 그러신 와중에 실종되시니까 북한으로 영화 측으로 자진해서 가지 않았냐라는 이야기도 설득력 있게 소문이 났었죠."

    [신강균]
    "네. 영화에 대한 열정이 워낙 많다 보니 네."

    [구은영]
    "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확실하게 증언을 해주는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납치를 지시한 김정일의 육성입니다. 함께 들어보시죠."

    "도대체 왜 화면 장면마다 자꾸 저렇게 초상난 집처럼 우는 것만 찍게 만드나! 우리 영화는 안 우는 영화 안 되겠나? 상갓집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만드냐?"

    [구은영]
    "그리고 지금은 들으시는 게 바로 김정일의 육성입니다."

    [김정일]
    "남조선에서 누구 자료가 제일 두껍나? 그래 신 감독이다. 자기 발로 자기 뜻대로 그렇게 뜻을 가지고 오는 방법이 없냐? 신 감독을 유인할 유혹 하려면 뭐가 필요한가? 두 분을 내가 영화 하는 대상으로 내가 집었단 말입니다. 오는 과정에서부터 오늘날 이르기까지 두 분이 만날 때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단 말입니다. 두 분이 꼭 필요하니까 데려와라."

    [최은희]
    "이렇게 해가지고 들어갔어요. 그래가지고 녹음한 거예요."

    [신강균]
    "신 감독을 유인할 혹은 유혹하려면 뭐가 필요하겠느냐라고 하는 그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지요. 그렇다면, 바로 김정일이 신 감독을 납치했다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대목 아니겠습니까?"

    [안찬일]
    "김정일이 유인하는 또 납치를 지시하는 걸 직접 여기서 자기가 실토하지 않았습니까? 그 당시 최은희 여사가 김정일의 방에 들어갈 때 핸드백에다가 이 녹음기를 숨겨가지고 들어갔습니다. 만약에 그 당시 김정일이 무슨 북한의 주석이고 최고사령관이었다면 들고 들어갈 수가 없었겠죠. 그 당시 김정일의 직책은 아무런 고위직을 차지하지 않은 그냥 후계자일 뿐이기 때문에 가지고 들어갔고."

    [신강균]
    "네. 후계자의 상태였기 때문에 수색이 철저하지 않았을 수 있다?"

    [안찬일]
    "네. 수색이 철저하지 않고 또 이 최은희 여사가 얼마나 비중이 높으냐 하는 걸 경호원들이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걸 감춰가지고 들어갔고 어쨌든 그걸 가지고 들어갈 때는 거의 목숨을 각오하고 가지고 들어갔는데 대단한 결단이라고 봐야 될 것입니다."

    [신강균]
    "그렇다면, 지금 저희가 들려드린 녹음 그것을 담은 녹음테이프를 우리 신정균 감독님이 가지고 나오셨다고 합니다만."

    [신정균]
    "예. 제가 여기 지금 가지고 나왔는데 그러니까 납북이라는 얘기를 녹음하기 위해서 수차례 녹음을 하셨기 때문에 테잎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신강균]
    "네."

    [신정균]
    "이 녹음기를 가지고 이제."

    [신강균]
    "핸드백에 넣어서."

    [신정균]
    "핸드백에 집어넣으시고 그리고 들어가시기 전에 레코드를 누르고 들어가서 테이블 밑에 이렇게 내려놓으셨다고 하더라고요."

    [신강균]
    "네."

    [신정균]
    "그래서 이걸 이제 들어 보시면 이제."

    [신정균]
    "잘 못 알아들으실 것 같은 이 목소리가."

    [신강균]
    "지금 이 목소리."

    [신정균]
    "김정일의 목소리입니다. 그래서 어머니하고 아버지하고 김정일하고 세 사람만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대화를 자유스럽게 할 수 있었고."

    [신강균]
    "두 분의 입장에서는 자진월북이 아니고 납치돼서 납북됐다라고 하는 부분을 어떻게 해서 증명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굉장히 노심초사했다는 그런 증명이기도 하네요?"

    [신정균]
    "네. 그래서 무조건 이 김정일이 본인 스스로 납북했다는 거를 녹음을 해야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신 거죠."

    [신강균]
    "네. 그 분량이 상당히 많은 것 같은데 몇 분 정도의 분량인 것 같아요?"

    [신정균]
    "이게 테이프 하나에 한 시간 해서 왕복으로 두 시간 해가지고 한 열 대 여섯 개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신강균]
    "어떻습니까? 영화의 관련된 거 말고도 다른 북한 당시의 체제를 엿볼 수 있는 그런 무슨 암시라든지 뭐 정보라든지 그런 게 담겨 있습니까?"

    [신정균]
    "아 주로 이제 영화이야기하고 그 와중에 납북한 이야기, 납치한 이야기가 주가 되겠는데 이게 자료적으로 굉장히 가치가 있었던 거는 그 당시만 하더라도 김정일의 육성을 들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 cia에서도 굉장히 깜짝 놀라 했고 또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그러니까 이게 김정일이 목소리냐 아니냐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그렇게."

    [신강균]
    "많지 않았겠어요?"

    [신정균]
    "쉽지가 않았기 때문에 그거만 큼으로도 큰 자료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신강균]
    "안 박사님은 북한에 계실 때 김정일위원장의 육성을 혹시 군대에 특별히 전하는 메시지 같은 거를 통해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안찬일]
    "아 없었습니다. 김정일이가 이제 최초로 자기 육성을 공개한 게 군중에게, 북한군중에게 공개한 게 이제 1992년 4월 25일 북한군 창설 60주년 기념행사에서 이제 주석단에 나와 가지고 영적 조선인민군 장병에게 영광이 있으라, 이 한마디가 유일한 연설이고."

    [신강균]
    "그것도 그 한마디."

    [신강균]
    "그전에도 무슨 이 대규모 간부들을 상대로 대규모회의를 해서 현장에서 육성 지도한 게 아니고."

    [안창일]
    "그렇죠."

    [신강균]
    "그때도 녹음을 따로 해서."

    [안창일]
    "그렇죠. 비밀교시해서 이제 전달하고 그랬습니다."

    [구은영]
    "김정은 위원장의 목소리가 더 굵고 허스키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하지만, 말투나 억양은 아무래도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안찬일]
    "네, 이 김정은은 김일성의 그 헤어스타일에서 이제 목소리까지 모방하려다 보니까 뭐 거의 김일성을 흉내 내고 있죠. 근데 김정일은 그냥 그 좀 말하자면 유아독존적이고 무소불위의 말을 하거든요. 이 최은희 여사님이나 신상옥 감독님하고 녹음한 거 들어봐도 그냥 이 고조가 거의 없습니다.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 거니까."

    [안창일]
    "저 혼자, 저 혼자 떠드는 겁니다."

    [구은영]
    "네 육성 녹음테이프를 들어보면 김정일과 김정은의 목소리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신강균]
    "네, 그런데 김정일이 당시 이 우리나라의 최고의 배우, 감독을 납치한 이유가 영화 때문이었다고 그랬는데 이 엄청난 사건을 감행할 만큼 북한에서의 영화가 그렇게 중요했는지 아니면 김정일의 개인적인 취향이었는지 그게 좀 궁금해요."

    [안창일]
    "네, 김정일은 이제 아버지처럼 뭐 빨치산 경력도 없고 뭔가 내세울 만한 업적과 캐릭터가 없기 때문에 주로 이제 문화예술의 천재 김정일 초기에는 그걸 부각시켰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제 피바다 가극단 뭐 꽃 파는 처녀 이런 걸 5대 혁명가극을 통해서 일단 엘리트들을 장악했고 그다음부터는 이제 영화를 좀 많이 만들어야 되겠다. 근데 북한의 영화배우들이나 감독이나 수준이 아주 일천하니까 결국 한국에 있는 저 최은희 배우라든지 신상옥 감독이라든지 이런 뭔가 좀 거물급 감독 배우를 모셔오면 자기도 영화를 많이 만들어서 좀 리더십이 부각될 것이다. 이래서 아마 그 당시 그 납치를 계획하고 그것이 이제 노동당 조사위에 연락해서 이 사람들이 이제 홍콩에 와서 또 홍콩에 북한의 공작망이 다 있고 지금도 뭐 마카오나 홍콩에 북한의 공작망이 다 있듯이 그 당시 북한은 좀 돈을 조금 그래도 지금보다는 각박하지 않으니까 거금을 풀어서 납치를 해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구은영]
    "네, 김정일의 영화에 대한 사랑 어느 정도였나요?"

    [신정균]
    "저희 아버님, 어머님 말씀에 의하시면 그 당시에 한국에는, 한국에는 필름보관소보다 김정일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필름 라이브러리가 더, 더 좋았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에 영화가 1만 5천 편에서 2만여 편이 있고."

    [신강균]
    "한국 영화뿐만이 아니고 세계 영화를 다 모았던 모양이죠."

    [구은영]
    "그렇죠. 그래서 저희 아버지도 깜짝 놀란 게 그 당시에 한국에서 심필름에서 만든 빨간 마후라라는 필름 원본이 한국에는 절반밖에 없는데 북한에 가 있는 김정일은 그걸 다 소장하고 있더라는 거죠. 그래서 그걸 보고 신 감독님 우리도 이런 영화 좀 만들어 주시라요라고 했을 정도로 그 한국 영화 중에서도 좋은 영화들은 거의 다 소장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신강균]
    "어떻게 안창일 박사님도 북한에 계실 때 김정일 위원장의 그런 그 영화사랑 그 부분에 대해서 들으신 바가 있습니까?"

    [안창일]
    "그렇죠. 뭐 영화 그 무슨 영화를 이제 새로 만들면 그때 군인들한테 공개할 때도 김일성의 교시와 김정일의 말씀을 전달하고 돌리는 겁니다. 그 영화를 돌리기 전에 꼭 그 두 사람의 말씀을 전달하고 영화가 좋습니다. 돌리시오. 그 정도로 그 두 사람의 그 영향력이 영화 예술분야에 뻗쳐 있었고."

    [신강균]
    "그 신정균 감독님 이번 그 영화가 대한민국 사회의 미치는 뭐 의미랄까 뭐 그런 거를 우리가 정리를 하자다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요?"

    [신정균]
    "뭐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일단 그 아직도 지금 거의 한 30년이 지난 지금도 ** 가지고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 영화를 보고 판단하셨으면 좋겠고요. 또 하나는 뭐냐면 북, 우리, 우리 부모님처럼 북한에 전역을 다녀보신 분이 안 계십니다. 한국에서 북한을 뭐 방문하는 사람들이 갔을 때는 준비 되어 곳만 가고 짜여 진 곳만 가지만 저희 아버지하고 어머니께서 보신 북한의 실상은 여기 한국에서 생각하는 북한하고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 다르다는 건 이제 체제나 이런 것들이 여기서 좀 미화시키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거기는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예 못 된다는 말씀은 누누이 하셨고요. 그 가난과 헐벗음에 한 사람을 위해서 모두가 굶주리고 헐벗는 거에 대해서 너무 실감을 하고 오셨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서는 아주 좀 안 좋은 생각을 많이 가지고 계시고."

    [신강균]
    "그렇겠습니다."

    [구은영]
    "김정일의 영화 욕심 때문에 전대미문의 납치사건이 벌어졌고 이후에 두 분이 김 씨 일가에 대한 세뇌를 당하고 탈출하기까지 이 파란만장 했던 실화가 영화에 담겨져 있습니다."

    [신강균]
    "네, 고 신상옥 감독님 같은 경우에는 세뇌를 당하다 못해 탈출도 2차례나 시도했고 강제수용소에까지 갇히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이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전해주신 두 분 선생님 감사합니다. 오늘 통일전망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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