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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전망대

[생생 통일현장] 17살 소녀병사의 끝나지 않은 전쟁

[생생 통일현장] 17살 소녀병사의 끝나지 않은 전쟁
입력 2020-06-27 09:02 | 수정 2020-06-2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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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쾅' 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 소리에 내 몸이 붕 뜨는 것까지만 알아요."
    "M1 총도 배우고 카빈 총도 배우고."

    6.25전쟁 70주년을 맞았습니다.

    "[군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흐르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6월이면 생각나는 이곳은 전쟁기념관인데요.
    6.25전시실을 돌다보면 그냥 스쳐지나가기 쉬운 여군전시관이 한켠에 있습니다.
    최전방에서 함께 싸웠지만 대한민국 여군이라는 이름조차 없었던 그 시절,
    여자의용군이 있었습니다.

    [고한빈/전쟁기념관 학예연구사: 1950년 9월 낙동강 방어선이 한창 치열하던 시기에 1기생으로서 2,000여 명이 지원했다고 알려져 있고 500여 명이 선발되어서 이 분들이 여자 의용군 1기가 되셨습니다.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건 사실 학교 교사였습니다. 자신이 배운 만큼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 하고 싶다는 의식이 상당히 강해서 이런 여군(여자의용군) 지원율이 높았던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갓 스무살, 초등학교 교사였던 이인숙 할머니는 여자의용군 1기였는데요.

    [이인숙/90세/여자의용군 1기: 사범학교를 나와서 대구서 초등학교 교사를 했어요. 낙동강까지 이북 인민군이 쳐들어왔기 때문에 대구가 비워야 될 그런 판국에 '우리 여자들도 가서 그냥 싸웁시다.' (그래서 여군에 지원했어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자원해 이등병으로 입대했습니다.

    [이인숙/90세/여자의용군 1기: 여자가 무슨 군인이냐 하고 그 난리를 쳐서 아주 식구들 하고 등 질 정도로 그냥 그렇게 했어요.]

    "군번 몇 번이셨어요?"
    "188."

    [이인숙 /90세/여자의용군 1기: 훈련을 아주 호되게 받았어요. 산꼭대기 가서 포복도 하고 또 권총 들어 메고 가서 권총 쏘는 것도 배우고 M1 총도 배우고 카빈 총도 배우고.]

    호된 육체적인 훈련 뒤에 맡은 임무는 행정병이었는데요.
    다른 동기들은 대부분 적군을 교란하는 심리전이나 정훈, 선무방송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남은) 동기생 지금 몇 분 되실까요?"
    "한 2~30명도 안 남았을 거예요."

    서울이 수복된 뒤 3개월이 지나 입대한 여자의용군 2기 이복순 할머니입니다.
    당시 여고생 2학년, 열일곱 나이. 그리고 150센티미터 남짓의 키.
    몸이 채 다 자라지 않아 맞는 군복도 없었던 어린 병사였습니다.

    [이복순/87세/여자의용군 2기: 그러니까 귀엽다고만 그랬죠. '꼬마 병정, 꼬마 병정' 그래서 군복은 사지 군복이에요. 미군들 입은 거 있었죠. 남자 것 중에서 제일 작은 건데 (저한테는) 너무 커요.]

    강원도 정선 9사단에 배속된 꼬마 이등병 이복순 할머니는 인민군으로부터 기밀서류를 사수하라는 임무를 맡았는데요.

    [이복순/87세/여자의용군 2기: '이 병사' 그렇게 불러요. '네!'하면 총을 줘요. 기밀 서류. 명단 같은 거 부대에서 저기에(인민군에게) 넘어가면 안 되는 기밀 서류. '한 장이라도 지켜야 돼.' '책임완수하겠습니다!' 딱 경례하고선..]

    임무에 대한 책임감만큼이나 생사가 오고가는 전쟁의 두려움도 컸던 그때였습니다.

    [이복순/87세/여자의용군 2기: '쾅!' 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 소리에 내 몸이 붕 뜨는 것까지만 알아요 그것까지만 기억나요. 근데 차가 전복한 거예요. 내가 여기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슬퍼서 가슴 아파하실까 하는 그 생각에. 그때 그 생각만 하면 너무 너무 고통스럽고.]

    6.25 전쟁 후유증은 70년이 흘러도 할머니의 몸과 마음에 여전히 남아있는데요.
    몸을 바치며 나라를 지킨 여자의용군들의 공은 컸지만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여군이 창설되기까지의 그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김현숙 씨. 초대 여군 단장."

    [이인숙/90세/여자의용군 1기: 대통령에게 가서 우리도 여군을 창설 하겠다. 무기가 없어가지고 남자들도 싸움을 못하는데 여자들 뭐가지고 싸우겠냐. 김현숙 단장이 여자들은 옛날부터 부엌에서 부지깽이 가지고 싸우지 않습니까. 그거라도 가지고 싸우겠습니다 하니까..]

    1950년 9월, 당시 소령이었던 김현숙 단장에 의해 마침내 우리나라 최초의 여군이 탄생했습니다.
    대한민국 여군의 시초인 건데요.

    열일곱 소녀병사였던 할머니에게 전쟁은 7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참혹한 순간이었습니다.

    "오, 보아라. 저 대지 위에 쓰러진 전우를. 피를 흘리며 영혼은 가고 오직 시신만 남았노라. 전우의 영혼이여, 편안히 지하에서 잠을 자거라."

    [이복순/87세/여자의용군 2기: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요즘 사람들이) '전쟁이라는 것은 옛날에 있었나..' 할 정도로 생각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이인숙/90세/여자의용군 1기: 그거 같이 비참한 게 없어요. 그 참상은 말도 못 하죠. 그래서 다시는 그러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70년 전 우리의 아픈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인데요.
    다시는 전쟁 없는 평화로운 땅에서 살아갈 날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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