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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전망대

군 제대 했는데 또 험지로 집단배치

군 제대 했는데 또 험지로 집단배치
입력 2021-04-24 07:55 | 수정 2021-04-2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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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시간에 북한 청년들이 농촌이나 탄광처럼 힘든 곳에서 일하겠다고 자원하는 이유와 함께 무리 배치라는 북한의 집단배치에 대해 살펴봤었는데요.

    북한 아닌 곳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인데요. 오늘은 이 무리배치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겠습니다. 함께 하실 두분 모셨습니다.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북한 당국이 특정한 곳에 청년들을 집단으로 보내서 일하게 하는 이른바 무리배치를 한다고 했잖아요? 주로 어떤 현장으로 보내나요?

    농촌, 건설장들, 발전소 건설장이라든지 이런 것들 그 다음에 탄광, 광산에 많이 가고요. 그 다음에 제철소, 제광소, 청진, 김책제철소, 청진 제광소 이런 데들. 그 다음에 바다, 임산사업소. 일단은 그쪽이 노력이 모자라는 데는 다 무리 배치를 합니다.

    중요시하는 사업이 때마다 다를텐데, 그럼 시기별로 집단배치 하는 산업 현장도 다르겠습니다?

    대표적으로 보면 60년대는 함흥지구에 2.8 비날론 농장 건설하면서 비날론 세대가 있고요. 70년대는 발전소 건설. 그래서 대건설 세대라고 이야기하고, 80년대에는 농촌하고 탄광에 많이 갔습니다. 그래서 어디 가면 항상 발전소 세대 뭐 그 다음에 탄광세대, 광산세대 세대별로 많이 나눠집니다.

    조충희씨도 무리배치 돼서 일 하셨다고 했는데 어떤 세대세요?

    저는 사회주의 건설 세대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가 70년대 말이니까 북부 철길하고 그때 대표적인 공사가 광복거리 건설, 거기 참가했으니까 사회주의 건설 세대.

    그렇게 집단 배치해서 일을 시키면 월급은 줍니까?

    월급 개념은 아니고요. 생활비입니다. 그래서 생활비라고 해서 주는데 제가 돌격대 나가서 처음 받았던 생활비가 55원 54전이었거든요. 잊혀지지도 않는데.

    뭘 할 수 있는 돈입니까, 그 정도면?

    식비 내고 작업복 비용 다 내고나면 식당에 나가서 닭 한 마리 먹을 수 있을까요? 그 때 당시에. 70년대 말에. 지금은 한 4천원에서 5천원 정도인데 쌀 1kg 값입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에 고등학교 졸업생들도 무리배치받고 심지어 대학생도 무리 배치 한다고 하셨는데요. 그 중에서도 최고는 제대 군인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열일곱 살에 나와서 10년 동안 군복무하면서 명령하면 오직 알았습니다만 배워왔거든요. 규율 세지 명령 잘 지키지. 생산성 올리는 데는 아마 제대 군인이 최고죠.

    군대 갔다 온 남자들 가장 무서운 악몽이 또 군대가는 꿈이거든요, 저도 몇 번 꿨었는데 10년 가까이 군복무하고 제대했는데 또 군대 가는 그런 느낌이겠는데요.

    그쵸, 청춘을 다 바쳐서 복무를 했으니까 얼마나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겠습니까. 군을 제대할 때쯤에 되면 20대 후반 정도가 될 텐데, 그럼 그 때 결혼도 해야 되고 가정도 꾸려야 되고 여러 가지 발달 과업들을 해야 되는데 보통 집단 배치가 험지나 오지에 가다보니까 굉장히 안타깝고, 다시 험한 곳으로 집단 배치를 하니까 굉장히 공포스러울 거 같아요.

    대표적인 사례가 대홍단입니다.

    대홍단이 할 게 많은가 봐요, 감자 노래로 유명한 곳 아니에요?

    "둥글둥글 왕 감자 대홍단 감자
    감자 감자 왕 감자"

    대홍단이란 데는 굉장히 고산지대고 쌀 농사나 옥수수 농사 같은 걸 지을 수가 없거든요. 고난의 행군 때 90년대 말에 먹을 게 너무 없다보니까 김정일 위원장이 감자를 대규모로 심자 그런 감자 농사 혁명을 하다 보니까 당연히 노동력이 엄청나게 투입돼야 되고 그래서 제대 군인들이 많이 집중적으로 집단 배치를 받게 됐고요.

    당시 상황을 볼 수 있는 화면 준비했습니다. 함께 보시죠.

    "1천명 제대군인 당원들의 무진장한 힘에 의거해서 기어이 결속해야합니다."

    "결사 옹위하자."

    "옹위하자..옹의하자."

    1천명 제대군인이라고 하는데요. 제대하고 바로 여기 간 거네요?

    99년에 처음 보낼 때 천명 정도 갔을 겁니다. 와글와글한데 2015년에 또 천 명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감자 농사 규모가 커지면서 사실은 제대로 되려면 기계가 들어가야 되는데 규모가 커지면서 또 이제 천 명의 제대 군인들 또 보내게 되는 거죠.

    제대 군인들이 일을 하러 가는데요. 그런데 반대편에서 여성들이 단체로 옵니다.

    "동무들 지원자 처녀들이오.. 자 동무들 꽃다발."

    "동무들 우리도 꽃다발을 만들자요."

    이 상황은 뭔가요?

    대홍단에 누가 시집가려고 안 하거든요. 양강도 처녀들도 양덕고개 넘는 게 평생 소원이에요. 그러니까 당국의 목적은 제대 군인들 하고 결혼시키려고 짝 맺느라고 저런 거 하는 겁니다.

    다음 장면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제대 군인과 여성들이 합동 결혼식을 합니다.

    결혼도 억지로 시켜주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박사님.

    제대 군인들이 거기에 집단 배치가 되면 도망치는 일도 생기고 이탈한 다음에 돌아오지 않는 일도 생기고 이렇다보니까 당국의 차원에서는 어쨌든 이 사람이 가정을 꾸리면 정착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되고 도망가지 않고 거기에서 아이도 낳게 되고 하면 그 지역에 계속 거주할 수 있겠다는 판단 때문에 어떻게 보면 강제로 결혼을 시킨 거라고 할 수 있죠.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대홍단 제대군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의 이름도 지어줬다는데요.

    "장군님을 만나 뵙고 너무도 기뻐 이제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귓속말로 청을 드렸더니 아들을 낳으면 대홍이 딸을 낳으면 홍단이라 부르자 하셨으니!수많은 대홍이와 홍단이들이 태어난 대홍단!"

    이 지역엔 대홍이 홍단이가 정말 많겠습니다?

    엄청 많습니다. 김대홍이 박대홍이 차대홍이 다 있고요. 큰 홍단이 작은 홍단이 해가지고 엄청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대 군인이 대거 무리배치 되면 그 지역 주민들도 바빠지겠어요?

    북한 당국이 일방적으로 집단 배치를 하는 거긴 하지만 가기 싫은데도 불구하고 보내는 거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살 수 있는 집이라든가 의식주 같은 것들은 준비를 당연히 해줘야 되는 거고요.

    최고 지도자의 명으로 집단 배치를 오는 것이기 때문에 대우를 잘 해 주지 않으면 비판을 엄청 받거든요. 가정 기물, 이불장, 양복장 이런 것들을 해줘야 해서 실제로 지역 주민들과 당 간부들이 많이 고생합니다.

    농촌이나 탄광. 그리고 돌격대에 무리배치 되면 중간에 빠져 나올 수는 없나요?

    정말 힘들어요. 대학 추천 받거나 아니면 힘이 막강한 인맥이 있거나 아니면 전염병이라든가 질병에 걸리거나 이렇게 되면 빠져나오는데 농촌이나 탄광은 거의 종신입니다.

    요즘은 장마당에서 돈을 벌거나 하는 약간의 신흥 부자들이 생겨나게 되면서 어떻게든 무리 배치를 받기 전에 사업을 하거나 뇌물을 주거나 해서 무리 배치를 안 받는 게 최선이고요. 일단 배치를 받으면 그 뒤에는 아무리 뇌물을 써도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그래서 반드시 전에 사업을 해야 된다는 것들이 보통 탈북민 분들의 증언입니다.

    저 같으면 도망갈 거 같거든요, 도망가서 잡히면 어떻게 돼요? 처벌 강도가 높을 것 같은데요?

    도망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처음에 한두 명일 때는 잡으러 다녔는데 한두 명이 아니고 너무 많아서 많아가지고 잡지 못 하고, 여기서 내가 일하다 죽느니 도망치다 맞아죽는 게 낫겠다 이런 각오로 나가기 때문에 거의 힘들죠. 공간이 생기면 또 다음 무리 배치가 또 그 자리를 채우고 또 채우고 이런 방식으로 인원 보장하는데 죽자구나하고 도망가는 애들은 정말 잡기 힘듭니다.

    북한에선 힘든 현장으로 자원하거나 무리배치되서 일한 사람들을 추켜세우는 방송을 내보내기도 하는데요.

    이곳은 북창지구 임포청년단광인데요. 화면에 보이는 이 사람이 탄광에서 30년 가까이 일을 했다고 합니다.

    "갱장동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17살 때부터 이곳 탄전에서 탄을 캔 탄부입니다. 원래 그는 탄광이 아니라 다른 곳에 배치 받게 됐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편안한 곳으로 가겠는가. 탄광으로 가자."

    원래는 좀 편한 데 배치됐었는데, 더 힘든 탄광으로 자원했다는데요, 왜 탄광으로 자원했을까요?

    농촌은 하루 종일 뙤약볕이나 밖에서 뭐 10~12 시간 이렇게 일해야 되는데 탄광은 그래도 교대 작업하고 상대적인 개념인데 편하긴 합니다.

    무역들이 가능할 때는 어쨌든 철광석이라든가 석탄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수출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탄광에서 일하시는 분들한테는 그래도 배급이 비교적 잘 나오는 편이어서 예전에는 탄광이 그래도 가면 굶지 않고 그럭저럭 잘 먹는다는 인식들이 좀 있었습니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배치된 곳에서 평생 일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요.

    북에서는 개인이라는 게 없죠. 개인은 단순히 전체를 위해서 존재할 뿐 개인을 위한 개인이 없기 때문에 그런 국가를 이바지하는 목적으로만 개인이 존재할 뿐이거든요.

    정말 인생의 황금기를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곳에서 의무적으로 보내야 한다면 참 안타까울텐데요, 이런 무리배치는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네 그렇습니다. 저도 이제 무리 배치돼서 9년 동안 돌격대 생활을 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무슨 내가 힘으로 돌격대 생활을 9년이란 세월을 견뎌냈을까 하고 이제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경제가 좀 개선되고 제도가 좀 바뀌고 이렇게 하면 없어지지 않을까 근데 지금 상황에서는 없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집단 배치 같은 경우에 북한에 어떤 인권 침해에 굉장히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되곤 하는 것들입니다. 아마 북한도 국제 사회에 건강한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런 북한 인권 문제 노동권 문제 같은 것들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아마 알고는 있을 겁니다. 북한이 좀 더 전향적으로 이러한 기조의 어떤 노동력 그런 동원이 영원히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빨리 인식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해봅니다.

    네. 오늘 도움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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