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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전망대

탱크 막던 곳, 문화기지로

탱크 막던 곳, 문화기지로
입력 2021-05-01 07:42 | 수정 2021-05-0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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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필국 앵커 ▶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주요 침투로였던 서울 외곽지역에 군사 방어시설로 지어졌다가 몇 년 전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이 있죠?

    ◀ 차미연 앵커 ▶

    네, 재작년 저희 통일전망대에서 소개해드리기도 했던 평화문화진지라는 공간인데요.

    코로나19 위기를 뚫고 최근 다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답니다.

    이상현 기자가 그 현장을 찾아가봤습니다.

    ◀ 리포트 ▶

    [단장(斷腸)의 미아리고개(이해연, 1956)]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이별고개

    한국전쟁 당시 북쪽으로 끌려가던 수많은 청년들이 뒤돌아보고 또돌아봤고, 가족들은 창자가 끊어질 듯이 아파했다는 미아리고개.

    그 고갯길을 넘어 북쪽으로 조금 더가면 왼쪽엔 도봉산, 오른쪽엔 수락산이 나타나고, 그 두 산 사이의 외길은 당시 탱크같은 북한 전투차량의 침투로이기도 했습니다.

    그 외길 한복판에 2017년말 새롭게 들어선 복합문화공간, 평화문화진지.

    1970년 북한의 재침략에 대비해 1층엔 대전차방호시설이, 2,3,4층엔 위장 목적의 시민아파트가 들어섰던 곳인데요.

    2004년 아파트가 노후화로 철거된 이후 1층의 군사시설만 10년 넘게 방치돼있다가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장소입니다.

    "제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평화문화진지 위입니다. 과거 시민아파트가 들어섰던 공간인데요, 지금은 이렇게 산책길로 바뀌었고요, 보시는 것처럼 도봉산과 수락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빼어난 풍광을 자랑합니다."

    "(그때는) 분위기 자체가 일단은 살벌했고 무거웠고 음침했고 그런 분위기였는데, 그때는 이렇게 숲이 없었어요 여기가. 일단은 이렇게 해놓으니까 참 좋습니다. 시민휴게공간도 이렇게 해놓아서 참 좋고"

    살랑살랑 봄바람이 완연했던 지난 주말.

    전철역에서 나오면 바로 이어지는 평화문화진지 초입에선 한 인디밴드의 버스킹이 한창이었습니다.

    [박로와/인디밴드 보컬]
    "요즘 다들 코로나때문에 너무 힘든데, 이렇게 마스크 벗고 노래한지가 언젠지 모르겠어요.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를 해야 사는것 같은데 공연이 너무 없었어요."

    코로나19로 저마다 마스크를 쓴채 띄엄띄엄, 듬성듬성한 거리공연이었지만 돗자리를 핀 가족부터, 무대를 장악한 꼬마숙녀들까지, 모처럼 즐거운 한때를 만끽하는 표정들이었습니다.

    [박로와/인디밴드 보컬]
    "저는 약간 앞에 산이 보이니까 일단 거기서 얻는 에너지가 되게 큰것 같아요. (그 에너지로 노래도 훨씬 잘 나오던가요?) 그렇죠 아무래도 노래가 빵!!!"

    비슷한 시각, 건물 한켠에선 '보이는 라디오'가 진행됐습니다.

    개방형 스튜디오에 지역의 젊은 뮤지션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음악도 틀어주는건데요.

    이름하여 '오늘의 예술가'.

    "오 예! 저희들의 공식적인 인사에요. 오 예! 이렇게 인사하셔야 되거든요. 왜냐하면 오늘의 예술가니까요 여기는. 오 예!!!"

    또다른 공간에선 수공예 교실이 한창이었고, 바로 옆 공간은 평화와 관련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작업실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홍원석/서양화가]
    "아무래도 역사가 살아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예술을 창작한다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지 그런 창작적 영감들이 엄청나게 발산되는 곳이라서 너무나도 영광스럽게 작업하고 있죠."

    평화문화진지에 들어섰다 해서 이름붙여진 진지한 책방.

    시민들이 기부한 책들로 채워진 도서관이자 책 대여 공간인데요.

    이곳에선 위대한 사상가의 삶과 철학을 토론해보는 인문학 강의가 한창이었습니다.

    [심성보/부산교육대학교 명예교수]
    "군사기지인데 이걸 평화적인 진지로 만들고 또 평화적인 진지에 인문학 강의, 시민들을 위한 강의를 한다는게 큰 의미가 있는거죠 그러니까 전쟁문화에서 평화문화..."

    코로나19로 전 강좌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다보니 일어나게 되는 해프닝은, 딱딱한 내용으로 자칫 지루할 수도 있을 분위기를 한 순간에 일소해버립니다.

    "그렇게 할때 우리는 이상사회가 가까워오지 않겠는가? (그런데 심교수님, 지금 음소거가 돼 있는 상태..) 어이쿠, 제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완전히 꺼버렸네.."

    250미터 길이로 길다랗게 늘어선 이 건물의 이런 한칸 한칸은 과거 이곳이 대전차방호시설이던 시절, 각각이 적군의 진격을 막기 위한 우리 전투차량의 진입공간이었다고 합니다.

    폐허같은 건물의 잔해와 지하벙커 등을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지금도 군사시설로 분류돼 있어 유사시엔 또다시 서울 도심으로 가는 길목을 끊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는데요.

    이때문에 오히려 평화를 더 강조하며 시민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개방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안세용/ 도봉문화재단 문화공간팀장]
    "주민들이 원하는 공간에서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주민들이 악기연습을 할 공간이 없다든가 혹은 목공을 하고 싶은데 당장 집안에선 할 수 없는게 있지 않습니까? 그런 공간을 제공해드릴 예정에 있고요."

    평화문화진지 뒷마당.

    우리의 방어용 총구가 겨눠지던 북쪽 방향엔 거대한 잔디밭이 조성됐고, 어린이들이 해맑게 뛰어노는, 가족들의 나들이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오래된 흉물에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대결과 분단의 상징에서 문화와 창조의 공간으로, 평화를 위한 군사기지는 그렇게 평화로운 문화진지로 바뀌었고, 이제는 시민들의 문화사랑방을 꿈꾸며 수도 서울 끝자락의 외길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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