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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전망대

남북출신 청소년들의 특별한 동행

남북출신 청소년들의 특별한 동행
입력 2021-06-05 07:52 | 수정 2021-06-0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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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필국 앵커 ▶

    현충일을 앞두고 남한과 북한 출신 청소년들의 특별한 동행이 있었다고 합니다.

    ◀ 차미연 앵커 ▶

    네 현충원 참배를 같이하고요.

    남북의 치열했던 격전지에서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를 찾는 작업도 함께 했다는데요.

    그 특별한 동행 현장을 이상현 기자가 따라가 봤습니다.

    ◀ 리포트 ▶

    18만여위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잠들어있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현충일을 앞둔 지난 월요일, 이곳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충남 천안에 있는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드림학교 학생들이 인근의 일반 고등학생들과 함께 참배를 온겁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하여 경례!..바로 ..일동 묵념!"

    곧바로 독립유공자 묘역과 임시정부 요인 묘역 등 현충원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남북출신의 어린 학생들.

    특히 자신들과 비슷한 나이에 전쟁에 희생됐던 학도병들, 그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앞에선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정미경/ 드림학교 3학년(탈북민)]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한분한분 너무 멋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저도 저런 분들처럼 멋있는 사람이 되고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주상현/고등학교 2학년]
    "평소에 교과서로만 역사공부를 주로 해왔었는데 이렇게 직접 제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참전용사들, 독립운동가들, 의병장분들의 묘를 직접 보니까 좀더 감회가 새롭고 평소 존경했던 마음이 마음 속에서 북받쳐 오른다는 느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참배를 마치고 같이 버스에 오른 이 남북의 학생들이 향한 곳은 남북접경지역인 강원도 인제군.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참관하고 또 직접 체험해보기 위해선데요, 참관에 앞서 사전 교육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전쟁에서 유해가 수습되지 못했던 전사자와 실종자는 모두 16만여명.

    이 가운데 1만 2천여구가 지난 20년간 유해발굴사업을 통해 발굴됐고, 이중 172구는 신원이 확인돼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함성제 상사/ 국방부 유해발굴사업단]
    "지금도 연인원 10만여명의 인원이 36개 부대에서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남한지역과 DMZ 화살머리고지에서 유해발굴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총기와 총탄, 면도용품 칫솔 등 유해와 함께 발굴된 각종 유품들을 직접 살펴보는 학생들의 표정엔 진지함이 가득합니다.

    [이영주/ 드림학교 교장]
    "이런 경험을 우리 남북출신 학생들이 직접 함께 참여하면서 또 서로 교제하면서 이를 통해서 서로가 느끼는 것들을 교류하고 또 앞으로 평화통일을 위해서 본인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서로서로 찾아가는 그런 귀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다음날 아침.

    지난주 유해발굴작업이 새로 시작됐다는 남북의 70년전 격전지를 찾아가기 위해 북으로 북으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민간인통제구역에 들어선 학생들.

    먼저 군용천막에서 전투식량으로 일단 배를 채워둡니다.

    "전투식량이라고 해서 그냥 간단하게 먹을줄 알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여러가지가 많아가지고 맛있어요, 집에서 먹는 밥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아요."

    허기를 채운뒤 향한 곳은 북쪽으론 금강산, 남쪽으론 설악산을 잇는 백두대간의 한복판이었습니다.

    "전방을 바라봤을때 북쪽을 바라봤을때 저 전방에 있는 저 뒤에 산, 구름이 있는 위치, 혹시 산 이름이 뭘까요?" "백두산요" "금강산?" "오 정답, 박수!!! 어떻게 알았어요?" "저 북한 출신이에요 ㅎㅎㅎ

    휴전회담이 시작된 직후였던 1951년 8월.

    남북은 한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고지전을 펼쳤고, 이곳에선 40일간의 혈투끝에 5천명에 달하는 전사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 유해를 찾는 작업이 시작됐다는 고지를 향해 70년전 젊은 남북의 군인들이 걸었을 그 길을 이날은 비슷한 또래의 남북출신 학생들이 함께 내딛습니다.

    한시간 가까운 가파른 산행길끝에 도착한 70년전 그때의 그 고지.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제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남북의 치열한 고지전이었던 노전평 전투가 있었던 곳입니다. 지금은 휴전선과 불과 3km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민간인통제구역 안인데요, 뒤에 보시는 것처럼 현재 전사자 유해발굴작업이 한창 진행중에 있습니다."

    지난주부터 매일 100여명의 장병들이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는 이곳에선 격전지였던만큼 1주일만에 270여구의 유해가 발견됐고, 이가운데 6구의 신원이 확인됐다고 합니다.

    [박정효 발굴팀장/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여기가 정강이뼈입니다 양쪽 정강이뼈가 있고..그 다음에 허벅지뼈, 그리고 여기 버클이 이렇게 있습니다. 여기에 허벅지가 있으니까 여기에 골반이 있다고 추정을 할 수가 있습니다 현재는 보이지 않지만. 그러면서 팔뼈 여기가 아래팔, 이 부분이 위팔입니다. 그러면 이 분은 이러한 형태로 누워있지 않을까 그렇게 지금은 추정을 하고 있고.."

    발굴된 유해에 헌화하고 묵념을 한 남북출신의 학생들은 서로의 마음이 이해되는 듯 금방 친숙해졌습니다.

    "가까운 데에 왔잖아요. 북한과, 그래서 고향 생각도 좀 나고.. 올라와보니까 험한 산이라도 이렇게까지 험한 데를 못봤는데 돌밖에 없는데.. 돌아가신 분들도 저 속에 묻혀있다는 것에 약간 좀 슬픈 것 같아요."

    "저는 고향이 아무래도 북한이다보니까 조금 묘한 감정이 들긴 하는데.. 서로 이념이 달라서 싸우긴 했지만 서로간에 상처가 됐고.. 동족간에 다시 싸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남북의 산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 비극의 현장.

    70년의 세월이 흐른 그곳의 풍경은 그때 그대로였지만 70년전과는 달리 남북의 청년들은 그곳에서, 그렇게 하나가 되었습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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