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필국 앵커 ▶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동물, 바로 백두산 호랑이죠?
북한에선 조선 범이라 부르기도 하는데요.
◀ 안주희 앵커 ▶
북쪽으론 만주나 러시아 극동에 이를 만큼 넓게 분포했고, 한반도 전역에 걸쳐 서식했었다죠?
◀ 김필국 앵커 ▶
한반도 남단의 섬, 진도에도 불과 100년 전 까지만 해도 이 백두산 호랑이가 살았다고 합니다.
◀ 안주희 앵커 ▶
호랑이가 섬에는 어떻게 갔을까요?
임인년을 맞아 백두산 호랑이의 흔적을 찾아가봤습니다.
이상현 기잡니다.
◀ 리포트 ▶
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 있는 조그마한 공간.
실향민 2세인 40대 사진작가의 작업실인데요.
수년간 백두산 호랑이의 흔적을 추적하며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호랑이 사진 등을 촬영해왔다고 합니다.
[김신욱/사진작가]
"사람이 오가는게 막힌 것처럼 동물들도 어느정도 제약이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상상 속에서나마 좀 연결이 되고 자유롭게 오갈수 있는 날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책상 위에 펼쳐진 옛 사진 사이로 유럽에서 구했다는 오래된 책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1915년 한 영국인 사냥꾼이 런던에서 출판했다는 <아시아와 북미에서의 수렵>.
특히 시베리아 호랑이, 만주 호랑이로도 불린 백두산 호랑이를 설명한 부분에선 주목되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나의 성공적인 사냥은 한반도 남서쪽 모퉁이에 있는 목포라는 개항장에서 남동쪽 일직선으로 30마일 정도 떨어진 진도에서 이뤄졌다>
1900년대 초반 전남 진도에서 네 마리의 호랑이를 목격했고 이중 두마리를 잡았던 경험을 당시 사진과 함께 실어놓은건데요.
지금까지 구체적인 설명이 명시된 것 중 가장 오래된 한국호랑이, 백두산 호랑이의 사진으로 추정되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최서남단, 그것도 바다 건너 섬에서 발견됐다는 백두산 호랑이.
그 사진 속 이야기를 따라 한반도에서 3번째로 큰 섬, 진도로 향했습니다.
진도의 동남쪽으로 내려가면 나타나는 한 해변.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지금 이곳에서 저기 멀리 보이는 섬 모도까지의 거리가 2.8km에 달한다는데요. 매년 봄이 되면 이 바닷길이 가장 크게 열린다고 해서 신비의 바닷길로 불립니다."
호랑이가 많아 옛이름이 호동리였던 이곳 회동리 사람들이 호랑이 침입을 피해 모도로 피신했을때, 미처 따라가지 못했던 뽕할머니의 기도로 바닷길이 열렸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
여러 기념상과 체험관이 설치돼 있고, 바닷길이 열리는 봄엔 인파로 가득한 축제도 열립니다.
[오귀석/진도군청 홍보담당]
"관광객들이 오시면 꼭 들리는 1번지 관광지로.. 물이 갈라지는 장면을 스토리텔링화한게 뽕할머니와 회동마을 이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보여주듯 진도엔 100년전까지만 해도 호랑이가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조선초기 말 공급을 위한 국영목장이 진도에 조성되자 육지의 호랑이들이 먹이를 찾아 헤엄쳐 건너온거라는데요.
호랑이는 원래 수영에 능숙하고 산 속보다는 먹이가 많은 저지대 습지를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수백년간 호랑이들과 함께해온 탓에 진도 곳곳엔 아직도 호랑이와 관련된 전설과 지명들이 숱하게 남아 있습니다.
[박주언/진도문화원장(향토사학자)]
"전체적으로 진도에서 나온 구전되는 호랑이 이야기가 30가지 정도 돼요. 그래서 올해는 그것을 묶어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옛날 호랑이가 그렇게 많았어요."
호랑이굴도 곳곳에 남아있다는데요.
그중 하나를 찾아가봤습니다.
진도의 상징 진돗개를 볼 수 있었던 향동리.
이 마을 주민과 함께 과거 범골이라고도 불렸다는 인근 야산을 올라가봤습니다.
[조성환/진도 향동리 주민]
"할머니 말씀 들어보면 들녘에 가서 일을 하는데 호랑이가 나오면 논밭과 바다 사이에 있는 웅덩이에 엎드리면 호랑이가 막 넘어가고 그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그러니까 엄청 호랑이가 많이 살았다는거에요."
산 중턱쯤에 다다르니 남쪽으로 나 있는 비좁은 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들어가보니 과거 호랑이가 새끼를 넣어 키웠다는 틈이 눈에 띄었고요.
새나 살쾡이 멧돼지같은 야생동물의 흔적이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었습니다.
[조성환/진도 향동리 주민]
"항시 여기가 호랑이굴이라고 알고는 있었죠. (어렸을때도요?) 네, 그렇지만 여기가 음습하고 그러니까 무서워서 안들어왔죠."
호랑이굴 옆쪽으로 가니 안으로 이어져 있는 커다란 굴 2개가 나타났는데요.
이곳에선 최근까지도 무속행위가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호랑이굴을 떠나 이번엔 호랑이마을이란 곳을 찾아가봤습니다.
호랑이가 입을 크게 벌린 모습과 닯았다해서 이름붙여진 호구마을.
마을 입구엔 용맹스런 모습의 호랑이 조각상이, 담벼락엔 귀여운 호랑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옛날 호랑이가 민가에 내려오면 진돗개가 도망가도록 만들었다는 개구멍의 흔적을 볼 수 있었던 한 집에선 1920년대, 100년전 얘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환산/진도 호구마을 주민]
"할머니가 여름에 마루에 누워서 있는데 발을 자꾸 건드렸는데 개가 그러는줄 알고 하지마라 하지마라 했는데 (호랑이가) 물어버리고 도망갔어요. 발가락이 이렇게 올라가바렸어. 그래서 친할머니를 호랑이도 못 물어가는 여자라고 그러면서 웃었대요."
백두산에서 백두대간을 타고 진도까지 내려갔던 범, 한국호랑이.
[김신욱/사진작가]
"제가 호랑이였어도 진도가 참 살기에 괜찮았을것 같아요. 호랑이가 한반도 전역을 오가면서 살았지만 진도가 따뜻하고 상대적으로 완만하고 잘은 모르지만 먹을 것도 풍부했을 것 같고"
한민족의 표상, 백두산 호랑이의 흔적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한반도를 관통한 국토의 끝자락에서 그렇게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통일전망대
"범 내려온다" 진도의 백두산 호랑이
"범 내려온다" 진도의 백두산 호랑이
입력 2022-01-29 08:01 |
수정 2022-01-29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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