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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북한 잠수정 그리고 '고래'

1998년 북한 잠수정 그리고 '고래'
입력 2022-06-04 07:55 | 수정 2022-06-0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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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필국 앵커 ▶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1998년 6월, 강원도 속초 앞바다에서 북한 잠수정이 꽁치잡이 그물에 걸려 표류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 차미연 앵커 ▶

    당시 잠수정 안에선 9명의 무장간첩이 모두 숨진 채 발견됐었죠?

    ◀ 김필국 앵커 ▶

    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연극이 최근 다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는데요.

    ◀ 차미연 앵커 ▶

    극 제목이 고래라고 합니다.

    어떤 의미일지, 이상현 기자가 그 고래의 세계를 찾아가봤습니다.

    ◀ 리포트 ▶

    서울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조그마한 공간.

    이곳 저곳 공연 포스터가 붙어있는 이곳은 2010년 창단해 지금까지 18번의 정기공연을 해왔다는 고래라는 이름의 극단 사무실입니다.

    공연 포스터들중 특히 눈에 띄던 한장의 포스터.

    극단명과 같은 고래라는 이름의 연극으로 1998년 6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하나의 사건이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1998년 6월 22일 뉴스데스크]
    "동해안에서 또 북한 잠수정이 발견됐습니다. 속초시 11마일 해상에서 우리 어선 그물에 걸린 북한 잠수정은 지금 우리 군 당국이 예인하고 있습니다."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에 이어 2년 만에 다시 동해의 깊은 바닷속을 이용해 북한 요원들이 침투한 사건으로, 무장간첩 9명 전원이 잠수정 안에서 총상과 함께 숨진채 발견됩니다.

    이 사건을 다뤘던 연극 고래는 2007년 처음 연극무대에 오른 이후 2008년과 2014년에 다시 관객들을 만났고, 현재 네번째 공연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해성/극단 '고래' 대표]
    "이 잠수정이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북한의 잠수정이지만 마치 우리가 뭔가 잃어버린 것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고..한마리 고래가 죽은 듯한"

    그 네번째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는 서울 대학로의 소극장을 찾아가봤습니다.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연극 고래가 8년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벌써 4번째 이뤄지는 앵콜 공연이라는데요, 티켓 매진 행렬을 이루고 있다는 이 소극장으로 한번 들어가보겠습니다."

    오래전 사건, 그것도 가볍지 않은 사건을 다룬 조그마한 연극.

    하지만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줄지어 입장했고, 80여개의 관람석은 어느새 빼곡하게 채워졌습니다.

    "잠시 안내말씀 드릴께요. 저희 오늘 만석이에요. 그래서 지금 여유있게 앉으셨는데 나중에 밀착시킬 수 밖에 없거든요. 그점 양해 부탁드리고.."

    불이 꺼지고, 멀어지는 헬기소리와 함께 비좁은 잠수정 조종실이 등장하며 연극은 시작됩니다.

    속초 앞바다에 침투한 북한 잠수정과 간첩들은 처량한 고래울음 소리 속에서, 말그대로 '작전중 이상무' 상황을 즐기고 있습니다.

    [정장]
    "전투원 동무들 오는대로 임무 확인하고 기지로 복귀하자우. 고저 이쪽 아새끼들 우리가 왔다가는 줄은 꿈에도 모를 거이야.(기럼요)"

    해안에 상륙해 정보수집을 마치고 돌아온 전투원들은 선물로 여러 남한 상품을 구해왔고, 귀한 선물에 웃음이 넘치다가도 이념적 논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전투원1]
    "기럼 저쪽에서 수없이 많은 인민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고, 이따위 이쪽 물건들을 구걸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케 생각하네?"

    [전투원3]
    "고난의 행군은 과도기적 현상일 뿐입네다."

    논쟁을 접고 원산항을 향해 출발하려던 순간, 갑자기 굉음과 함께 선체가 흔들립니다.

    [정장]
    "빌어먹을 고기잡이 그물이다."

    [기관장]
    "방금 전에 꽁치잡이 배가 뿌리고 간 그물인 모양이야요."

    남한 어선의 그물에 걸린 북한 잠수정은 결국 정체가 발각돼 어뢰공격을 받게 됩니다.

    [무전수]
    "10분의 여유를 주갔답네다. 투항을 결정하랍네다."

    투항 여부를 놓고 간첩들은 내분에 휩싸이며 서로가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눴고, 정장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9명중 둘만 남게 된 상황.

    산소부족으로 호흡이 거칠어지는 심연 속에서도 두 사람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뒤엉키고 비틀거렸고, 고래 울음소리와 함께 하나 둘,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홍철희/부기관장 역할 배우]
    "이 작품이 어떻게 보면 가장 큰게 본질을 말하는거기 때문에 대단한 메세지나 대단한 질문을 던진다기보다는 어떤 거대한 담론을 다루는 것도 아닌 정말 원초적인 본능과 질문을 말하는거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아직도 (관객들에게) 닿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최후의 1인이 됐던 무전수 역의 20대 배우에겐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사건이 데뷔무대가 되었고요.

    [박형욱/무전수 역할 배우(데뷔작)]
    "(삶의) 의지를 놓지 않고 정신의 끈을 놓지 않고 행동하는 것들이 저랑 좀 많이 닮아 있어서 그래서 조금은 다가가기가 수월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구순이 다 된 비전향 장기수 출신의 할아버지 관객에겐 여러 생각이 들게 한 가슴 벅찬 무대였습니다.

    [양희철/비전향 장기수 출신]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전개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주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남과 북으로, 또 좌로 우로 갈라진 우리에게 이데올로기는 무엇이고, 삶과 죽음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시간을 주고 싶었다는 연극 고래와 극단 고래.

    [이해성/연극 '고래' 作-연출]
    "그렇게 살갑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 단 한 순간에 어떠한 계기로 이쪽과 저쪽으로 나눠가지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그런 상황들이 생기잖아요. 우리 속에 수많은 이쪽과 저쪽이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에 대한 혐오의 물결을 거슬러, 잃어버려서는 안될 또 잊어서는 안될 우리 사회의 숨어있는 또다른 고래들을 찾아나서고 있습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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