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필국 앵커 ▶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후계 교육을 담당했던 현철해 국방성 총고문의 장례식이 얼마 전 화제가 됐었죠?
◀ 차미연 앵커 ▶
네, 김위원장이 직접 관을 메고 눈물을 보였었는데요.
지난주에는 현철해를 다룬 기록영화가 새로 방영됐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김위원장의 후계자 준비 과정이 담겨있다고 하네요.
◀ 김필국 앵커 ▶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로 공식지명된 2009년 훨씬 전부터 당시 김정일 위원장에게 올라가는 군부의 모든 보고서를 받고 결정도 내렸다는 겁니다.
최유찬 기자가 이 기록영화를 토대로 김정은 후계권력 장악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 리포트 ▶
현철해의 병실,
김정은 위원장이 멎어가는 심장 박동을 모니터로 확인하며 그의 임종을 지킵니다.
[김정은 발언 中]
"현철해 동지, 내가 왔습니다, 한번 눈을 떠보십시오, 이렇게 영영 떠나려고 합니까"
눈물을 흘리고, 직접 그의 관을 멜 정도로 각별했던 현철해와의 관계는 그와 주고받았던 편지에서도 드러납니다.
[김정은 편지 대독]
"이 '정은이'도 현철해 동지를 하루 한순간도 잊은 적 없습니다."
이 기록영화는 스스로를 '정은이'라고 부를 정도로 특별했던 김정은 위원장과 현철해와의 관계와 함께, 김위원장의 후계 체제 수립의 중요한 단서를 보여줍니다.
2010년 9월, 27살의 김정은은 인민군 대장,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당중앙위 위원이 되며 후계자로 공식 등극합니다.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진 2년만에 후계체제가 선포된겁니다.
[정성장/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
"(2008년에) 김정일이 이제 자기가 3년 밖에 못살 것이라는 걸 알고서 후계 작업을 서두르기 시작했고.."
하지만 이 기록영화는 이보다 훨씬 전 후계 작업이 진행됐음을 보여줍니다.
활짝 웃고 있는 젊은 현철해의 옆 손을 꼭 잡고 있는 이 소년.
10대 초반, 많아야 중반 어린 김정은입니다.
현철해는 일찌감치 김정은위원장을 3대 세습 후계자로 직감했습니다.
[현철해 발언 中]
"백두혈통의 진짜배기 원기둥감이 우리에게 있다는 안도감, 혁명의 만년대계인 영도의 계승문제는 걱정이 없다는 확신"
현철해는 그렇게 군부에서 시작된 김정은의 후계수업과 정치경력을 총괄합니다.
[현철해 발언 中]
"김정은 동지께서 우리 군대사업을 맡으셔야 한다, 젊으신 지도자동지께 우리 군대사업을 통째로 맡겨드리자"
김위원장이 후계자로서 군부 장악을 시작한 시점은 2000년대 중반으로 보입니다.
지난 2014년 북한이 발간한 김정은 위원장 우상화 교사용 참고도서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스물 세살이던 2006년 말, 군사대학 졸업과 동시에 인민군 지휘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설까지 합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군부에 자신의 아들을 사실상 후계자로 공표한 겁니다.
현철해는 이미 이 무렵 김정은을 김정일에 버금가는 군부의 최고지도자로 받듭니다.
[현철해 발언 中]
"오래전부터 전사는 김정은 동지께 스스럼없이 모든 문제를 아뢰고 우리 혁명무력의 천만대소사를 빠짐없이 보고드렸으며 무력기관의 장군님께 올리는 모든 보고문서를 김정은 동지께 먼저 보고올려 결론을 받는 사업체계부터 세워놓았습니다"
[정성장/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
"1974년에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북한 당 내부에서 결정이 됐을 때 이미 그때부터 김일성에게 올라가는 모든 보고가 김정일을 거쳐서 올라갑니다. 이런 것을 잘 알고 있는 현철해가 김정일에게 올라가는 보고가 김정은을 거쳐서 올라가도록 하는 데 앞장섰다고 봐야겠죠."
외부세계에 김정은 후계자 내정 소식이 전파된 것이 2009년.
후계자로 공식석상에 나온게 2010년이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그보다 훨씬 전, 현철해의 주도로 북한 군부를 장악해가며 후계자로 우뚝 서 있었던 겁니다.
이후 김정은위원장은 아버지가 사망하기 전까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의 군사행동을 진두지휘 했습니다.
[기록영화/ 백두의 선군혁명위업을...]
"이번에 인공위성을 요격하겠다는 적들의 책동에 반타격을 가한것이 우리 김대장이라고, 그가 반타격 사령관으로서 육해공군을 지휘하였다."
현철해 기록영화에서 주목되는 또다른 부분은 그가 '군부 숙청'을 주도했다는 대목입니다.
1969년 군부 실세 김창봉 등을 숙청하고, 군을 노동당의 통제아래 두면서 김정일은 후계권력을 차지하게 됩니다.
김정일이 사망하고 3대 김정은으로 세습이 이뤄진 직후 권력초기 대대적인 군부 숙청과 물갈이도 현철해가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비대해진 선군정치의 군부를 약화시켜야만 김정은 위원장이 군권을 장악할 수 있었고 또 가장 걸림돌인 선군정치로 비대해진 군부를 숙청할 필요성을 김정은 위원장이 가장 먼저 인식을 했다고 보여질 때 그 군부 장악에 현철해가 가장 앞장을 섰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김정은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직접 현철해 기록영화를 만들라고 지시한 배경에는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손을 잡아 이끌며 군부내 권력기반을 조성하고 권위와 경력을 만들어준 후견인 현철해에 대한 보은인 셈입니다.
어린 소년이 20대에 최고지도자가 되고 11년차 절대 권력자로 지위를 굳힌 그 배경에는 오랜시간 철저하고 치밀한 준비가 있었음이 현철해의 일대기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통일전망대 최유찬입니다.
통일전망대
최유찬
최유찬
베일 벗은 '청년 김정은' 권력 장악 과정
베일 벗은 '청년 김정은' 권력 장악 과정
입력 2022-06-18 07:35 |
수정 2022-06-19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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