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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문정실 작가

아이들도 '천리행군' 김일성 고생 따라 배워라

아이들도 '천리행군' 김일성 고생 따라 배워라
입력 2023-04-29 07:53 | 수정 2023-04-2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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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필국 앵커 ▶

    최근 북한 방송에서 눈여겨볼 만한 기행 프로그램을 방송했는데요. 배움의 천리길이라는 제목으로 4부작을 잇따라 내보냈습니다.

    ◀ 차미연 앵커 ▶

    네 이 배움의 천리길이 뭔지 무엇을 배우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세대가 다른 탈북민 두 분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차미연 앵커 ▶

    천리라는 말 요즘에는 잘 안 쓰잖아요.

    ◀ 김필국 앵커 ▶

    그렇죠.

    ◀ 차미연 앵커 ▶

    이 천리가 어느 정도 됐는지 아세요?

    ◀ 김필국 앵커 ▶

    대한민국에서 군대 갔다 온 사람이면 거의 다 들어서 알았을 텐데요. 천리 행군이라고 해서 완전군장하고 천리 즉 400키로미터를 걷는 훈련입니다.

    ◀ 차미연 앵커 ▶

    천리가 400키로미터 그렇다면 이 북한에서 말하는 배움의 천리 길은 어떤 길인지 또 누가 다녀오는지 영상으로 만나보시죠.

    ◀ 김필국 앵커 ▶여기는 압록강을 끼고 있는 양강도의 포평 지역. 털모자를 쓴 앳된 얼굴의 학생들이 행진을 합니다. 바로 배움의 천리길 답사에 나선 학생들입니다.

    "우리 답사행군들이 이번 천리행군길에 처음으로 령을 넘음. 산세가 가장 험한 령길입니다"
    "학생동무 힙듭니까?"
    "좀 힘듭니다."
    "좀, 힘듭니까?"
    "예"

    ◀ 강미진 ▶

    사실 배움의 천리길은 말 그대로 배움의 천리입니다. 천리를 걸으면서 배우라는 건데 김일성 주석이 1923년에 12살 때 그런 조선을 배워야 된다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서 중국 중강진에서 팔도구에서 만경대까지 천리 구간을 걸은 데서부터 비롯 됐고요. 1974년도에 처음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5000명의 답사생을 처음으로 모아가지고 걸었던 그런 데서부터 비롯해서 지금은 해마다 하고 있는 게 배움의 천리길입니다.

    "사나운 눈 바람을 헤치시며 천리길을 걸으셨으니 위대한 대원수님 그 얼마나 힘드셨을까."

    ◀ 김필국 앵커 ▶

    험한 길을 행군하는 건 물론이고요. 스스로 밥을 짓고 고구마를 삶아서 먹는 일 등 모두 어린 시절 김일성의 고생을 따라 배우기 위한 거라고 합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을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 걸으신 배움의 천리길인데, 이 길에서 절대로 쓰러질 수 없습니다."

    ◀ 차미연 앵커 ▶

    학생들은 천리길을 행군하면서 김일성이 머물렀던 여관 김일성이 전보를 붙였던 우체국 등 김일성의 유적지를 그대로 돌아봅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지역 주민들이 환영 행사로 맞아주는데요. 북한 TV는 학생들에게 귀중한 수업 과정이라고 선전합니다.

    "혁명의 천만리길을 억세게 걸어갈 이 땅의 새 세대들의 답사행군은 끝없이 이어질 것 입니다."

    ◀ 김필국 앵커 ▶

    김일성이 12살 때 고생하면서 배운 걸 따라 배우라는 배움의 천리길 나민희 씨도 혹시 가본 적 있으세요?

    ◀ 나민희 ▶

    저는 가보지는 못했었어요. 특별히 선발된 사람들만 가는 거라서 저희 할머니랑 부모님 세대만 해도 굉장히 어떤 그 충성심이 높으셔 가지고 저한테 항상 그러셨던 게 이제 우리 수령님께서는 열두 살에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셨는데 너는 공부도 제대로 못 하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항상 들었거든요. 배움의 천리길이라는 노래도 있어요. 시험에 가장 많이 나올 만큼 굉장히 중요한 이 과정이거든요. 배움의 천리길로 정운~ 팔도구 보평 월탄리~ 오거산룡 화평 흑수진고개 강계 진천 지나고 있네~ 이런 식으로 아~ 어서 가자 배움의 천리길~ 희천 향상 구장계천 신한주 평양 칠궐 만경대 이렇게 끝나요. 아직도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 차미연 앵커 ▶

    집에서 매일 부르는 거 아니죠?

    ◀ 나민희 ▶

    이걸 왜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 강미진 ▶

    저는 가봤어요. 그 배움의 천리길 답사권을 저의 노력으로 제가 토끼 2400마리 키워서 그걸 이제 국가에다 바쳐 가지고 배움의 천리길 답사권을 땄거든요. 그래서 온 동네가 진짜 정말 잔치하듯이 했고요. 제가 그때 걸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구간이 있어요. 오가산영이라고 있거든요. 배움의 천리길 노정도가 팔도 보평 월탄리 오가산 이렇게 자강도 그 영을 넘는데 그 오가산이 거의 45도 각을 이제 올라가야 돼요. 거의 엎드리다시피 이렇게 올라 가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그것뿐이 아니고 또 어떤 게 있냐면 야간 행군을 하는 게 있어요.

    ◀ 김필국 앵커 ▶

    깔딱고개인가 봐요

    ◀ 차미연 앵커 ▶

    그러니까요.

    ◀ 강미진 ▶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밤에 자다가 행군하다가 며칠 인원 조회를 해 보면 없어요. 그러면 다시 길을 돌아가 보면 길에서 자고 있거든요. 그런 애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혁띠를 벨트를 메고 다니잖아요. 그 벨트를 뒤에 애를 묶어요. 그렇게 해서 안 자는 애가 뒤에 애를 끌고 가고 이렇게 해서 걷던 적이 있고 그렇게 힘들었어도 저는 상당히 그때 당시 정말 뿌듯했던 것 같아요.

    ◀ 차미연 앵커 ▶

    그러니까 수학여행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정치적 행사네요. 단순한 답사가 아니고

    ◀ 강미진 ▶

    배움의 천리길 자체가 김일성 주석이 걸었던 그 모든 노정을 따라서 가는 거거든요. 언제 어느 날 김일성 주석이 어디서 뭐 했다면 그 자리를 그대로 따라가서 그 행적을 해야 돼요.그래서 강계 우체국에서 김일성 주석이 부모님한테 강계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보를 치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그 강계에 도착을 하게 되면 우체국에 다 데리고 가는데 우체국에서 집에다가 전보를 다 쳐요. 매 행적마다 그대로 따라 가야 되는 거죠.

    ◀ 차미연 앵커 ▶

    자 북한은 이 배움의 천리길을 다녀간 학생이 오십만 명이 넘는다고 선전을 합니다. 그런데 이 길 말고도 또 다른 천리길이 있다고 합니다.

    "만경대혁명학원의 높이 모신 김일성 대원수님과 김정일 대원수님의 동상 앞에서 출발모임이 진행됐습니다."

    ◀ 김필국 앵커 ▶

    여기는 평양 만경대혁명학원. 거리에선 답사 행군을 떠나는 학생들을 위한 환송 행사가 열립니다. 이 학생들은 이른바 광복의 천리길을 떠나는 중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제의 총 칼 밑에서 시름하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에 새기시며 걸으신 불명의 로정을 따라 1000여리의 행군을 진행하게 됩니다."

    ◀ 나민희 ▶

    배움의 천리길은 중국에서부터 만경대까지 걸어 나온 거라면 광복의 천리길은 그 뒤로 2년 뒤에 1925년인가 그때 이제 조선을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 라는 결심을 갖고 또 천리길을 걸었다고 해요. 그래서 만경대에서부터 팔도구까지 갔다. 라고 해서 그 정신을 따라 배워야 한다고 해서 평양 학생들은 대부분 다 광복의 천리길을 떠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배움의 천리길 같은 경우에는 3월이다 보니까 좀 그나마 봄 날씨라서 괜찮은데 이제 광복의 천리길은 1월이라서 굉장히 추울 때 떠나서 엄청 고생을 하는 거죠.

    ◀ 차미연 앵커 ▶

    한편 보시는 곳은 김일성이 항일 무장 활동을 했다는 왕재산 혁명지입니다. 김정일이 한국전쟁 때 머물렀다는 장자산 혁명사적지도 있고요. 이렇게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관련 행적이나 혁명사적지를 따라서 답사 행군을 한다고 하는데요. 특히 가장 신성시되는 곳은 김정일이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백두산입니다.

    ◀ 차미연 앵커 ▶

    답사 행군지가 계속 추가되고 늘어나고 이렇네요.

    ◀ 나민희 ▶

    북한에서 답사는 굉장히 흔한 일이다. 라고 볼 수 있는데 초등학교 때도 그렇고 중학교 때도 그렇고 대학교 졸업할 때도 여러 가지 어떤 답사 노정들이 있어요. 그래서 백두산까지 안 가더라도 왕재산 전적지 답사도 있고 보천보 전투가 진행됐다고 하는 보천보까지도 답사를 가는 경우도 있고 대학교 졸업할 때 무조건 가야지만 졸업증을 주거든요. 근데 그때 백두산 걸리는 친구들은 굉장히 힘들어하는 거예요. 그니까 이게 백두산 평양에서 백두산 갔다 왔다 하는 게 보통 몇백 달러가 들거든요. 근데 이거를 일괄적으로 다 가야 되니까 굉장히 부담이 되잖아요. 없는 친구들은 근데 다행히 저는 시내 답사가 걸려 가지고 시내에 있는 어떤 당창궐 사적관이라든가 이런 곳들을 돌아다녔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 김필국 앵커 ▶

    김정은 집권 이후 특히 요즘엔 백두의 칼바람을 맞아봐야 뭐 선대의 혁명성을 알 수 있다. 뭐 이렇게 얘기하면서 백두산 답사를 특히 강조하더라고요.

    ◀ 강미진 ▶

    백두산이라고 하게 되면 일단 김정일이 태어나기도 했지만 김일성의 그런 혁명사적이 깃들어 있는 곳이고 그래서 김정은이 이제 어떤 국가의 중대한 결정을 지을 때마다 백두산을 가요. 그러니까 그것처럼 한 번씩 그런 일정이 있게 되면 학생들은 그걸 따라 배워야 되는 그냥 답사나 행군이나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런 감상문도 다 해야 하고 나는 갔다 와서 어떻게 나라에 충성하겠다. 그런 결의도 다시 해야 하고 여러 가지 행사가 있다라는 거죠.

    ◀ 나민희 ▶

    그렇죠. 아무래도 김정은 정권 들어서서 백두산이 굉장히 더 강조가 되는 것 같아요. 모란봉악단 노래에도 가리라 백두산으로 이런 거 나오고

    "가리라~가리라~백두산으로 가리라~"

    ◀ 나민희 ▶

    백두의 열풍으로 백두산의 칼바람 이런 식으로 또 김정은이 직접 말을 타고 백두산에 가기도 하고 이랬는데 북한의 어떤 정통성을 주장하는 그런 곳이잖아요. 북한 주민들을 좀 더 이제 적극적으로 일도 잘하고 여러 가지 국가에 충성하도록 하는 그런 사업의 일환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 김필국 앵커 ▶

    김일성이 걷고 김정일이 시작했다는 배움의 천리길 북한은 김일성이 처음 천리길을 걸은 지 100년을 맞은 올해 특히 그 의미를 강조합니다.

    ◀ 차미연 앵커 ▶

    북한 노동신문 기사입니다. 적대 세력들이 다시는 북한을 건드릴 엄두조차 낼 수 없게 군사적 강세를 다져나가는 데 최대의 애국이 있다면서 이 중심에 세 세대 청년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 김필국 앵커 ▶

    김일성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자강도에 설립된 배움의 천리길 학생 소년 궁전 얼마 전엔 기념보고회를 열어 3대의 업적을 칭송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최근 젊은 세대의 사상 무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잖아요. 배움의 천리길도 이런 흐름하고 관련이 있겠죠?

    ◀ 강미진 ▶

    사실 북한이 최근 반동 사상문화배교법 청양교양법 평양문화 그런 법을 여러 가지 제정을 하고 있는데 이걸 제정한다는 그 자체가 젊은 세대들의 사상에 대한 거하고 결부시키거든요. 배움의 천리길도 혁명사상을 배워야 되니까 그런 나쁜 사상을 머리에 두지 말고 정말 빨간 사상을 배워라. 이 연장선이 되는 것 같아요.

    ◀ 차미연 앵커 ▶

    이 배움의 천리길이 국가 입장에서는 뭐 배움의 길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이게 고생의 천리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강미진 ▶

    사실 저는 배움의 천리길을 걸었던 경험자로서 하는 얘기인데 북한에서 살 때는 정말 긍지롭다. 내가 자랑스럽다. 이렇게 대단하다 그렇게 생각을 했고 그런데 외부에서 보는 시각으로는 정말로 한국에서는 정말 보물처럼 만지잖아요. 14살 12살 이런 애들은. 그런 나이에 봐서는 참 부모들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 나민희 ▶

    1923년에 걸었다. 라고 하는데 그때는 뭐 너도 나도 다 걸어 다닐 때였으니까 당연히 걸을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여기 남한에서도 거의 부산까지 2시간 반이면 가잖아요. 어쨌든 그만큼 북한은 아직 좀 제대로 된 발전을 이룩하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 이런 혁명 사상만 강조하는 게 되게 효과가 없지 않을까 차라리 경제적인 발전을 이뤄 놓고 그때는 그렇게 이렇게 걸어 다녔지만 지금 너희는 이렇게 열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이걸 보여주면 오히려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차미연 앵커 ▶

    성장기에 어린아이들이 천리길 400킬로미터나 걸어야 한다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 김필국 앵커 ▶

    북한 아이들 삶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기를 바라봅니다. 오늘 도움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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