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금지했는데 회장님 연봉은 41억 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되자마자 현안 보고를 받는 등 경영 복귀한 것을 두고 취업제한 조치를 어겼다는 논란이 거셉니다. 취업제한 규정이 있으나마나, 무용지물이 된 실태를 세 차례에 걸쳐 다룹니다.
판돈만 80억‥'상습 도박' 회장님
죽이고 싶을 만큼 싫은 사람이 있으면 이걸 가르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악마의 게임'이라고 불리는 도박, '바카라'입니다. 중독성이 강해 한번 맛보면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도 이 덫에 빠져 두 차례 곤욕을 치렀습니다. 1990년에는 마카오 원정 도박이 들통나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요. 2015년에도 상습 도박 혐의가 포착돼 구속됐습니다. 이번에는 카지노의 본고장 미국 라스베이거스였습니다.
장 회장은 특급호텔 카지노 VIP 게임룸을 드나들었습니다. 큰손만 출입이 가능한 곳입니다. 수억 원의 수표를 '예치금' 명목으로 팩스로 보내 예약했고, 그러면 카지노 측이 전용기를 보내줬습니다. 장 회장 말로는 한 번에 최대 5천 달러까지 베팅했다고 합니다. 검찰 수사에서 10여년 간 상습적으로 도박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전체 판돈은 750만 달러, 우리 돈 80억 원 정도였습니다.
자투리 철근 팔아 비자금 조성
장 회장은 빼돌린 회삿돈도 도박판에 걸었습니다. 횡령 수법은 기발했습니다. 공정 과정에서 철근을 자르고 나면 '파철'이라고 불리는 자투리가 생기기 마련인데, 자투리 철근을 협력업체에 세금 계산서 없이 팔아넘기고 현금으로 받은 겁니다. 이렇게 조성된 비자금은 회장실에서 임원들을 통해 한 번에 수천만 원, 수억 원씩 직접 건네받았습니다. 장 회장이 이렇게 횡령한 회삿돈은 77억 원입니다.
장 회장은 결국 지난 2016년 횡령과 상습 도박으로 3년 6개월 징역형이 확정됐습니다. 도박만 두 번째 인 게 아니라, 횡령도 두 번째였습니다. 장 회장은 앞서 2004년에도 서울중앙지법에서 횡령 및 배임죄 등으로 징역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선고 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또 횡령을 저지른 겁니다.
출소 이후 철강업계 연봉 1위에 올라
장 회장의 경영 복귀는 예정보다 일렀습니다. 지난 2018년 4월, 만기를 6개월 앞두고 가석방으로 풀려난 겁니다. 동국제강은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사내 강연과 해외 공장 직원 격려에 나선 장 회장을 조명했습니다. 장 회장이 공석일 동안 그 자리를 채웠던 동생 장세욱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긴 하지만, 최대주주로서 장 회장의 지배력은 여전한 겁니다.
장 회장은 직함도 상근 회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연봉도 고액입니다. 출소한 2018년에는 16억 원, 지난해 41억 원을 받아 철강업계 연봉 1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범죄 도돌이표를 막자는데, 출근 중인 회장님
문제는 장 회장이 취업 제한에 걸린 상태라는 겁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법)에 따라 5억 원 이상 거액의 횡령, 배임, 사기, 재산국외도피 등 범죄를 저지른 이른바 나쁜 경제인들은 일정 기간 기업체 취업을 제한하는데, 장 회장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범죄 도돌이표를 막아 주주와 피해 기업을 보호하자는 취지입니다. 형 집행이 끝난 뒤 5년, 그러니까 장 회장의 경우에는 2023년 11월까지 동국제강에 취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고액의 연봉을 받아가며 경영에 복귀할 수 있었을까요?
법무부 통지가 없었으니 "난 괜찮아"
장 회장은 동국제강 홍보팀을 통해 "취업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자신은 법무부의 취업제한 통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취업제한 대상자가 아니라는 논리였습니다. 특경법에는 법무부 장관이 취업제한 통지를 반드시 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동국제강 홍보팀은 미통지의 의미에 대해서 "법무부가 장 회장을 취업제한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리하자면 법에 취업제한 대상자가 되면 법무부 장관이 통지하도록 돼 있는데, 통지가 없었으니 장 회장은 취업제한 대상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대놓고 규정 무시한 법무부
법무부에 확인했더니 통지가 없었던 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법무부가 해야 할 일을 안 해서였지, 장 회장이 대상자가 아니라서 통보를 빠뜨린 건 아니었습니다. 통지하라는 규정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법무부가 그동안 대놓고 무시했던 겁니다. 법무부는 그러다 국회 지적이 있고 나서야 2018년 9월부터 취업 제한 사실을 통지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장 회장 뿐만 아니라 2018년 이전 같은 처지였던 SK 최태원, CJ 이재현, 한화 김승연 회장 모두 법무부 통보를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취업제한 대상자 관리에도 구멍 숭숭
법무부가 통지 업무만 게을리 한 건 아닙니다. 아예 누가 취업제한 대상자인지 명단조차 관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법무부는 "2018년 9월부터 매월 검찰청 등으로부터 자료를 송부 받아 취업제한 대상자인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2018년 이전까지는 누가 취업제한 대상자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취업제한 규정을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집니다. 하지만 누가 취업제한 대상자인지 모르니 위반하더라도 책임을 묻기 힘든 상황이 된 겁니다.
그럼 장 회장처럼 취업제한이긴 한데, 법무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인원은 얼마나 될까요? 법무부는 통지 업무를 제대로 하기 시작한 뒤 2018년에는 304건, 2019년은 1,002건, 2020년에는 875건을 통지했다고 밝혔습니다. 법무부가 현재 매년 1천명 안팎의 사람들에게 취업제한 사실을 통지하는 걸 감안하면, 그 이전까지는 연간 1천명 안팎의 대상자에게 통지를 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법무부, "업무 부담 커" 일괄 통지 계획 없다
그럼 지금이라도 일괄 통지를 하면 되지 않을까요? 법무부는 그럴 계획이 없다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업무 부담이 크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법무부는 2018년 이미 그렇게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법 시행 후 오랜 기간 누적된 미통지자 중 관리대상자를 선별하는 일선 청 업무 부담, 한정된 관리팀 인력 사정, 위반사범 관리업무 병행 필요성 등을 고려하여 ’18. 9. 이후 유죄판결 확정된 대상자에 대해 취업제한 등 통지를 시행하기로 하였습니다. [법무부 답변]
손 놓은 법무부‥"답변하기 어렵다"
통지를 받지 않은 나쁜 경제인들에 대해서는 법무부가 사실상 손을 놓은 겁니다. 그럼 장세주 회장에게는 지금이라도 뭔가 조치가 필요하진 않을까요? 법무부에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봤습니다. 법무부는 "단편적인 상황이나 가정적인 사안을 전제로 한 문의사항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취업제한 대상인데도 상근 임원으로 해마다 거액의 보수를 받고 있는 게 엄연한 사실인데, 어떤 부분을 단편적인 상황이고 가정적인 사안이라고 지칭한 걸까요? 추가 설명을 요구했지만 법무부는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장 회장이 정말 몰랐을까?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장세주 동국회장은 법무부 통지가 없었다고 정말 본인이 취업제한 대상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을까요? 1심 재판에서만 변호인 13명이 장 회장을 변호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특검을 맡았던 변호사도 있고, 나중에 법무부 차관까지 한 인물도 있습니다. 이런 내로라하는 변호인들이 취업제한 규정을 몰랐다, 법무부 통지가 없으니 취업제한 대상자가 아니다, 이렇게 판단했을까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듭니다.
물론 취업제한 대상자인지 몰랐어도, 혹은 통지를 받지 않았더라도 취업제한 대상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법무부는 "특정경제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별도의 통지 없이도 선고된 형에 따른 기간 동안 법령에 규정된 기업체 등에 취업이 제한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통지가 없었다면 처벌에 다소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은 뒤에서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취재: 백승우 기자 자료: 이승주 리서처
[연관기사]
② 이재용 부회장이 침묵하는 이유(https://imnews.imbc.com/news/2021/society/article/6299918_34873.html)
MBC 뉴스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전화 02-784-4000
▷ 이메일 mbcjebo@mbc.co.kr
▷ 카카오톡 @mbc제보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