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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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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M본부] 여전한 물음표, 참사는 왜 일어났나?‥수사기록 속 무책임한 변명들

[서초동M본부] 여전한 물음표, 참사는 왜 일어났나?‥수사기록 속 무책임한 변명들
입력 2023-10-29 09:21 | 수정 2023-11-0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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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동M본부] 여전한 물음표, 참사는 왜 일어났나?‥수사기록 속 무책임한 변명들
    책임지지 않는 책임자들의 변명… "아랫사람 책임이다"


    1년이 지났습니다. 1년 전 오늘 서울 이태원에서 159명이 숨졌습니다. MBC는 지난 일주일 동안 <뉴스데스크>와 온라인을 통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수사기록을 분석한 내용들을 전해드렸습니다. 수사기관의 보고서 161건, 169명의 진술조서 등 모두 1만 2천쪽의 분량이었습니다.

    수사기관의 수사는 죄를 묻기 위해 이뤄집니다. 당연히 기록에는 책임자들과 실무진들의 진술이 담겼습니다. 처벌을 하기 위한 조사인만큼, 도의적인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업무에 문제는 없었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유형을 분류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랫사람 책임이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부하직원을 추켜세우며 책임을 돌렸습니다. 당일 상황관리관 당직 근무에 나선 류미진 총경이 112분야의 베테랑이라며 류 총경이 "서울청장을 대리해 근무하고 휴일을 책임진다"고 책임을 돌렸습니다. 김 청장 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참사 당일 대응에 대한 책임을 공통적으로 아랫사람에게 돌렸습니다.

    김 청장이 책임을 떠민 류미진 총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사 직전 압사 예고 신고가 11건이 쏟아진 사실도 몰랐고, 참사 발생 1시간여 지난 밤 11시 39분에야 알게 된 류 총경은 다시 아랫사람에 책임을 넘깁니다. "지휘를 하려면 보고가 있어야 한다. 상황팀장이 보고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하나 알 수 있나"고 반발했습니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 관리 뒤, 뒤늦게 참사 현장에 와서야 상황을 파악하게 됐습니다. 용산 자서망(내부망) 무전으로는 사고 직후 다급했던 현장의 지시와 비명소리 등이 송출됐지만 이 전 서장은 '보고가 없어 몰랐다'는 입장입니다. "송병주 112상황실장을 현장 컨트롤타워로 지정하고 맡겼다"는 겁니다. 송 상황실장도 똑같이 아랫사람을 거론했습니다. "팀장에게 부탁하고 나왔다, 각자 맡은 역할 있는데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의아하다"고 말했습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1차적으로 부구청장의 탓이라고 말합니다. "부구청장이 알아서 한다고 했고 저는 취임 4개월차인데 그런것까지 챙길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꼼꼼히 잘해달라 했다"고 주의를 기울였다는 주장도 했지만 유승재 부구청장은 "그런 말 들은 기억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런 유 부구청장도 용산경찰서와 협의가 없었던 점에 대해선 "부서장들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서초동M본부] 여전한 물음표, 참사는 왜 일어났나?‥수사기록 속 무책임한 변명들
    (2) 관행 대로 했다… "매뉴얼이 꼭 맞냐?"

    부실했던 112 신고 대응에 대해선 "관행"이란 말이 가장 많이 등장한 변명이었습니다. 112신고는 서울청112상황실→용산서112상황실→일선 파출소/순찰차로 지령이 하달됩니다. 전산 뿐 아니라 무선망으로도 지령을 하달하도록 돼 있지만 압사 신고에선 상당 부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근무팀장은 "용산서에서 특별히 문제가 없다고 해서 그렇게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서울청112 상황실은 접수요원 외에 분석 요원이 신고 특이사항을 점검하도록 돼 있습니다. 접수자가 '코드0'을 부여하면 분석요원이 함께 듣는 '공청' 절차도 거치지만 "대형 사고 일보 직전"이란 참사 당일 신고는 공청하지 않았습니다.

    불꽃축제처럼 다중 인파가 모이는 경우 "깔려죽을 것 같다"는 신고가 원래 많다는 112상황실의 관성적 사고도 노출됐습니다. 개방된 넓은 한강공원 부지에 인파가 몰려 상대적으로 통제가 쉬운 불꽃축제와, 가파른 경사와 좁은 골목이 많은 이태원은 같은 '압사 우려' 신고라도 무게가 다릅니다. 지령요원이 한 차례 '코드0' 발령으로 경고음을 울리고 일선 파출소까지 경고 메시지를 보내 주의를 환기시켰지만, 모두 간과했습니다. 이중 삼중으로 설계된 상호 검증 절차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개선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특히 용산서 112상황실은 이 '코드0' 신고와 10분안에 집중된 3건의 압사 우려 신고를 무전지령 하지 않았습니다. 매뉴얼 위반이지만 당시 지령요원은 업무 부담을 들어 “매뉴얼 대로 하는 게 꼭 옳은 것이냐”고 반문했습니다. 이태원 파출소는 긴급성이 있는 112신고도 출동없이 종결했습니다. "급한 신고에 대응하다보면 일일이 다 나갈 수 없다"는 건데, 분석결과 일부는 상담 없이도 “안내 종결”했다며 허위 내용을 기재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서초동M본부] 여전한 물음표, 참사는 왜 일어났나?‥수사기록 속 무책임한 변명들
    용산구청은 지역 특성인 경사로 문제와 수년 전부터 핼러윈에 인파가 몰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만큼, 예방 하지 못한 책임이 더 무겁습니다. 그러나, 용산구청 관계자들이 문제 의식 없이 '하던 대로 했다'는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용산구는 이태원 핼러윈 축제 직전에 열렸던 지구촌축제를 준비하며 안전관리계획에 '넘어짐 사고' 우려를 담았습니다. 참사를 예견한 듯한 대목입니다. 막상 핼러윈데이 대비계획엔 없던 내용인데, 그 이유는 허탈했습니다. 실무자는 "그냥 계속 내려왔던 멘트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박희영 구청장 등 용산구 관계자들은 이번 참사 이후 "주최자 없는 축제라 관리 책임이 없고 참사는 예견 못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용산구가 수립한 '2022년 안전관리계획'에는 핼러윈데이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번엔 안전이 아닌 실적 때문이란 답이 돌아왔습니다. "코로나 방역 대책 일환으로, 안전 재난 부서에서 할 수 있는 시설물 안전점검 실적을 올렸다"는 겁니다.

    또한 용산구는 참사 당일 핼러윈데이 비상근무 명단을 짜놓고 당사자들에겐 통보도 하지 않았습니다. 비상근무라 명칭만 붙였을 뿐 휴일 근무 순번자들로 채워 넣었기 때문입니다. 핼러윈 데이에 맞춰 이태원 역에 안전요원 배치를 요구하는 공문엔 "방문자의 폭발적 증가가 예상된다, 철저한 안전 관리가 요구된다'고 적었습니다. 사고를 예견했냐는 질문엔 "원래 문구는 강력하게 적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서초동M본부] 여전한 물음표, 참사는 왜 일어났나?‥수사기록 속 무책임한 변명들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참석한 박희영 용산구청장 [연합뉴스 제공]

    (3) 우리 일 아니다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는 변명도 곳곳에서 등장합니다. 박희영 구청장은 참사 예측은 불가능해 대비책 마련도 어려웠고, 사고 뒤 "인파 관리나 군중통제는 경찰 업무"라는 입장입니다. "권한도 책임도 없다"며, 오히려 자신이 나섰으면 "직권 남용"이라는 주장까지 펼칩니다. 또 사고 당일 현장에서, 귀가한 이유는 "구조활동이 우선인데 소방 경찰이 먼저 움직여 할 게 없어서"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법은 지자체가 재난 발생 위험이 높은 시설과 지역을 지속 관리하고, 대응 복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긴급구조지원 기관으로서 소방활동을 지원할 의무도 있습니다. 더구나 지자체는 재난관리책임기관이고, 구청장은 재난안전대책본부장을 맡아 총괄 조율하도록 돼있습니다. 그런데도 박 구청장은 물론, 용산구 안전재난과 소속 직원들은 하나같이 "맡은 업무에는 최선을 다했다"고 답했습니다. "압사사고는 매뉴얼이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용산서 정보과장은 예년처럼 핼러윈 상황을 살펴보겠다는 이태원 담당 정보관을 나무랐습니다. 정보관은 과장이 "집회 총력 대응해야한다. 핼러윈은 크리스마스 같은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정보관이 나가냐"고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우리 일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다른 정보관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까지만 해도 과장은 대규모 야외 행사는 정보관이 확인하는 것이 역할이라고 했다"며 "최근엔 집회 관리에만 '올인'했다"고 여러차례 증언했습니다.

    정작 적극적으로 챙긴 일은 따로 있었습니다. 집회에 간첩이 침투했다는 신빙성 낮은 신고는 즉각 이첩돼, 용산서장과 각 과장들에게 곧장 전파됐습니다. 용산서장은 집회 관리 후 이태원 파출소로 이동하다 차가 막히자 대통령이 입주하기도 전인 대통령 관저 교통 상황을 걱정했습니다.

    이유있는 변명도 있습니다. 핼러윈 축제 대비 업무를 다중 인파 통제에 효율적인 경찰 경비과가 아닌 112상황실에 맡긴 것에 대한 지적입니다. 참고인 진술에서, 한 경찰 간부는 "핼러윈 대비는 112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며 "주무과장인 112상황실장이 현장에 나가있고, 현장에 경찰 인력도 없어서 대응 안됐다"고 했습니다. 당시 용산서 경비과는 주무 부서로 지정된 112상황실이 각 과에 대비책을 요구해, 취합하는 과정에서도 아예 빠졌습니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 있었던 탓으로 풀이됩니다. 112상황실은 직전 다른 행사에서도 경비 기능으로부터 기동대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112상황실은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서울청 경비 기능에 기동대 공식 지원 요청조차 없이 핼러윈 축제를 맞았습니다.
    [서초동M본부] 여전한 물음표, 참사는 왜 일어났나?‥수사기록 속 무책임한 변명들
    수사기록으로 풀지 못한 의문…"또 다른 참사 막을 수 있나"


    MBC 취재팀이 수사기록 분석을 통해 확인한 건 단지 몇몇 개인들의 근무 태만과 일탈 뿐이 아니었습니다. 기능별 칸막이가 있는 경찰 조직 문화의 한계, 꼭 매뉴얼대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의주의와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인한 현장의 부담, 집회 관리를 우선시 한 경찰 지휘부, '해오던 대로만 하면 된다'는 지자체의 안이함까지 드러났습니다. 왜 그랬을까, 또 어떻게 바꿔야 할까.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한 형사 재판에서 의문이 해소되긴 어려운 대목들입니다. 수사로 답을 낼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한국재난관리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문현철 교수는 참사 이후 수사에 모든 것을 맡겨놓는 듯한 현재의 구도는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우리는 참사가 발생하면 법이 정하고 있는 시스템이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별로 하지 않는다"면서 "바로 수사로 넘어가고, 시설과 장비가 부족했다는 논의로 가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사상자 집계하고 예산 신청하고 복구해달라고 아우성 치는 것이 지자체 역할이라고 오해한다"며 "기초 지자체부터 뭐가 잘못됐는지 정밀하고 집요하게 따져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비록 책임을 피하기 위한 주장이지만, 박희영 구청장의 "전임자도 대비 안하지 않았냐"는 항변은 고민해볼 만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전 구청장 시절에도 관행적으로 안전관련 문구를 담은 계획서 등을 만들었을 뿐, 구체적으로 좁은 골목과 경사로가 많은 이태원 지역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적극 분석하고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조사에 참여했던 박상은 전 조사관은 "‘사과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방식만으로는 안된다"며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까'가 핵심 질문이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처벌에 집중할 경우 자칫 법적 책임을 지우기 쉬운 아랫 사람들만 처벌 받고 끝날 수 있다는 겁니다.
    [서초동M본부] 여전한 물음표, 참사는 왜 일어났나?‥수사기록 속 무책임한 변명들
    "왜 필요한 조치 없었나" 여전히 묻는 유가족


    아들을 이태원에서 잃은 프랑스인 파스칼씨는, 숨진 아들의 깨진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프랑스 파리의 자택을 찾은 MBC 취재진에 물었습니다. "예년에는 경찰 단속이 있었다는데, 왜 작년에는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냐"고 말입니다. 미국인 친구를 잃고 고국 벨기에로 돌아간 벨기에인 유학생 와심 에세나베씨는 난데없는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모든 기사와 트위터까지 찾아봤다고 말했습니다. 답을 구하지 못한 와심씨는 "도로만 통제했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도로로 나와 움직일 공간이 있었을텐데 왜 고려하지 않았냐"고 품어온 질문을 던졌습니다.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이주현씨도 "주최가 없는 이전 핼러윈이나 축구 거리 응원도 매번 문제가 없었다"며 "왜 그날은 국가가 부재했는지가 황당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의문이 해결된 것도, 처벌이 이뤄진 것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냐"고 되물었습니다. 앞세워 보낸 아들의 장례를 치내고 부의금을 아들 학교에 기부한 아버지는 "이 사건을 잊지 말고 좀 기억해서,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당부했습니다. 참사 1년이 지났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이 질문과 요구에 응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독] 박희영 "나는 신이 아니다"‥수사기록 속 '무책임한 책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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