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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홍신영

[탐정M] 기자가 직접 정리한 '길이 삼촌'의 마지막 흔적 (특수청소업체 동행취재기)

[탐정M] 기자가 직접 정리한 '길이 삼촌'의 마지막 흔적 (특수청소업체 동행취재기)
입력 2021-08-20 17:12 | 수정 2021-08-2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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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M] 기자가 직접 정리한 '길이 삼촌'의 마지막 흔적 (특수청소업체 동행취재기)
    [관련기사] 냄새로 겨우 알아챈 '길이 삼촌'의 죽음…"하루 11명"
    https://imnews.imbc.com/replay/2021/nwdesk/article/6294722_34936.html

    2021년 여름…승용차에서 옥탑방에서, '고독사'가 이어졌다

    지난 8일 노원구 월계동 초안산 인근 길가에 세워져 있던 승용차에서 5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차에서 숙식을 해결한 남성의 주변에는 테가 부러진 안경과 먹다남은 편의점 도시락이 있었습니다.

    지난달 29일에는 서대문구 다세대 주택 옥탑방에서 3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남성은 밀린 월세를 받으러 온 집주인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홀로 사는 사람이 혼자 임종을 맞고 일정 시간이 흐른 뒤 발견되는 죽음, <고독사>.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어지는 고독사를 단발성 보도로 전하며, 먹먹한 마음과 함께 부채감이 들었습니다.

    현장 취재 위해 연락한 특수청소업체들…처음에는 모두 손사레

    일단 고독사 현장에 가겠다는 취재진에 특수청소업체들은 손사레를 쳤습니다.

    '여기로 오세요. 그럼' 10년 넘게 고독사 현장 정리를 해온 김새별 대표의 메시지 한 통을 받고 새벽 5시, 충북 증평으로 향했습니다.
    [탐정M] 기자가 직접 정리한 '길이 삼촌'의 마지막 흔적 (특수청소업체 동행취재기)
    유일한 복장 규정은 '검은 옷'…'산 자'들을 위해 '첩보 작전'처럼 이뤄지는 특수청소

    특수청소는 '첩보 작전' 처럼 이뤄졌습니다. 이른 아침, 승합차에 가득 실린 청소 도구들과 장비를 하나씩 꺼냈습니다.

    위 아래 검은색의 옷, 고독사 현장을 치우는 이 특수청소업체의 유일한 복장 규정입니다. 주민들이 이동이 적은 시간대에, 최대한 신속하고 '눈에 띄지 않게'. '산 자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원룸 건물 3층, 청테이프로 문틈을 꼼꼼하게 막은 한 집 앞. 들어가기 전 묵념으로 인사를 전했습니다.

    묵념으로 인사하고 들어간 집에선 지독한 냄새…쓸쓸한 죽음을 알린 신호

    청테이프를 떼고, 문을 열자마자 지독한 냄새와 맞닥드렸습니다. 냄새는 '길이 삼촌'이라 불린 58살 남성의 쓸쓸한 죽음을 알린 유일한 신호였습니다.

    하지만 그 냄새가 또 새어나갈까 문부터 닫고 청소가 끝날 때까지 문과 창문을 열 수 없었습니다.

    행여 냄새가 베일까 엘리베이터도 사용하지 못하고 하루종일 계단을 오르내렸습니다. 이것도 '산 자들을 위한 배려'구나..생각해 좀 서글퍼졌습니다.

    공기가 통하지 않고 지독한 냄새만 가득한 집 안에서 고인의 흔적을 하나씩 지우고, 정리하는 과정이 시작됐습니다.
    [탐정M] 기자가 직접 정리한 '길이 삼촌'의 마지막 흔적 (특수청소업체 동행취재기)
    집안 바닥의 얼룩들은 '길이 삼촌'의 마지막을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특수약품을 뿌리며 바닥을 닦아내자, 숨이 차고 땀이 났습니다. 방진복, 방진마스크도 할 수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오염된 바닥과 가구를 다 닦아낸 다음에는 하나, 둘 '길의 삼촌'의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손 때가 묻은 안경과 옷가지들..3주전까지 홀로 방안에서 일상을 보냈을 '길이 삼촌'이 느껴졌습니다.

    세탁기에는 널지 못한 빨랫감이 그대로 들어 있었고, 냉장고에는 음식보다 약봉지가 많았습니다. 사다놓고 먹지 못한 참외도.. 다 썩어 이제 먹을 수 없게 됐습니다.
    [탐정M] 기자가 직접 정리한 '길이 삼촌'의 마지막 흔적 (특수청소업체 동행취재기)
    당뇨와 합병증 앓았던 망자…새로 만든 여권과 새 구두 남아있어

    한 곳에는 병원에서 진료받은 서류들 모아져 있었습니다. 당뇨와 합병증을 앓았을 '길이 삼촌'의 작은 탁자에는 여권과 새로 찍은 증명 사진이 놓여 있었습니다. 몸이 나으면 여행을 가고 싶었던 걸까.
    [탐정M] 기자가 직접 정리한 '길이 삼촌'의 마지막 흔적 (특수청소업체 동행취재기)
    옷장 안 상자에서는 신은 흔적이 없는 검정 구두 한 켤레가 나왔습니다. "하아..구두 다 낡았던데 이거 신으시지." 김새별 대표의 말에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말이 나오지 않아 한동안 구두만 어루만졌습니다.
    [탐정M] 기자가 직접 정리한 '길이 삼촌'의 마지막 흔적 (특수청소업체 동행취재기)
    파란 주머니 속 사진첩…'길이 삼촌'이 남긴 앨범에는 모두 독사진 뿐

    '꼭 챙겨활 물건', 삐뚤빼뚤 맞춤법이 틀린 쪽지가 붙어있는 파란 주머니에서는 사진첩이 나왔습니다. 사진 속에는 '그 순간' 남기고 싶었을.. 환하게 웃는, 젊은 시절부터의 '길이 삼촌'이 있었습니다.
    [탐정M] 기자가 직접 정리한 '길이 삼촌'의 마지막 흔적 (특수청소업체 동행취재기)
    그런데 다 독사진 뿐이었습니다. 누군가 사진을 찍어줬을텐데..왜 사진 속은 '길이 삼촌'은 혼자일까. 언제부터 혼자였을까.

    2년 넘게 살았다는 다섯평 짜리 집에서 나온 단출한 살림살이는 금새 정리됐습니다. 오염물을 청소한 시간보다 짧았습니다.

    '길이 삼촌'의 흔적은 스무개 남짓한 검은 봉투에 담겨 미리 준비된 사다리 차에 실려 건물 밖으로 옮겨졌습니다.
    [탐정M] 기자가 직접 정리한 '길이 삼촌'의 마지막 흔적 (특수청소업체 동행취재기)
    망자의 흔적도 엘리베이터 대신 창문 통해 이동

    계단도 엘리베이터도 이용하지 못하고 창문 밖으로 옮겨져 집을 떠나는 걸 또 한참 바라봤습니다.

    흔적과 물건들이 다 치워진 방, '길이 삼촌'의 마지막은 그렇게 정리됐습니다.
    [탐정M] 기자가 직접 정리한 '길이 삼촌'의 마지막 흔적 (특수청소업체 동행취재기)
    공식 통계조차 없는 '고독사'…'고독사 예방법'은 올 4월부터야 시행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독사하고 있는지, 통계조차 없습니다. <고독사 예방법>은 올 4월에서야 시행돼 이제막 실태 조사가 시작된 수준입니다.

    경찰 현장감식결과보고서를 토대로 추정된 지난해 고독사로 생을 마감한 이는 4천200명. 하루 평균 11명이 홀로 죽음을 맞이한 겁니다.

    코로나로 비대면이 일상이 된지 오래, 어쩌면 통계보다 더 잔혹한 현실에 이미 직면해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탐정M] 기자가 직접 정리한 '길이 삼촌'의 마지막 흔적 (특수청소업체 동행취재기)
    많은 이들의 공감과 위로…'길이 삼촌'에게도 전해지기를

    보도 이후,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유튜브에 올린 리포트는 하루만에 100만회 가까이 조회됐고, 2천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올해 본 뉴스 중에 가장 가슴에 와 닿지만 시린 뉴스입니다', '남 일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 속상하다', '길이 삼촌이 이제 아프지 말고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 '취재해줘서 고맙습니다'… 수많은 분들이 위로와 공감을 보내주셨습니다.

    이걸 꼭 보여주고 보고 싶은 사람은..바로 '길이 삼촌' 입니다. '길이 삼촌' 집을 정리한 이튿날, 익숙하지 않았던 작업에 몸살이 나고 한 없이 무거웠던 제 마음도 조금은 짐을 덜은 듯 했습니다.

    고독사…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마음들이 모이며, 줄이고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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