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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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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M] 고가 외제차 싸게 사는 묘수?‥'장기렌트'했다 견인된 차들은 어디로

[탐정M] 고가 외제차 싸게 사는 묘수?‥'장기렌트'했다 견인된 차들은 어디로
입력 2021-11-07 13:20 | 수정 2021-11-0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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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M] 고가 외제차 싸게 사는 묘수?‥'장기렌트'했다 견인된 차들은 어디로
    [제보는 MBC] 갑자기 사라진 고급 외제차들‥부산 렌터카 실종사건 (11월 3일 뉴스데스크)
    https://imnews.imbc.com/replay/2021/nwdesk/article/6312063_34936.html



    "탐정입니다, 차 가져갑니다"‥의문의 '렌터카 실종사건'

    "멀쩡하게 타고 다니던 차들이 잇따라 사라졌다"는 제보를 받은 것은 지난달 초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취재하기 위해, 차량 견인과 실종이 집중되고 있다는 부산을 찾았습니다.

    A씨는 지난 2월, 가족과 함께 지하주자창에 갔다가 2년째 타던 고급 외제차를, 처음 보는 남성 3명이 다짜고짜 견인차에 연결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황당해서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1명은 법원 집행관이었습니다. 집행관은 "점유자는 집행관에게 자동차를 인도하라"는 주문이 적혀 있는 결정문을 보여줬습니다.

    다른 2명은 '서울에서 내려온 탐정'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습니다. 탐정이 왜 차를 가져가는지 물을 새도 없이, 차는 물론 안에 있던 각종 문서와 후불카드까지, 졸지에 사라졌습니다.
    [탐정M] 고가 외제차 싸게 사는 묘수?‥'장기렌트'했다 견인된 차들은 어디로
    "'하·허·호' 3년만 타면 내 차‥계약서까지 썼는데"

    이 차는 A씨가 지난 2019년 1월, 부산의 대형 렌터카 업체에서 빌린 장기렌트 차량이었습니다. 제값을 주고 구매하려면 차값 6,400만 원에 취등록세 수백만 원까지 내야 하는 고가의 차량입니다.

    장기렌트 계약서를 확인해봤습니다. A씨는 '인수 조건부 장기렌트'를 이용했습니다. 렌트 비용이라 할 수 있는 '선납금' 3,100만 원과, 3년 뒤에 돌려받는 '보증금' 3,100만 원을 지불했고, 장기렌트 만기가 되면 차가 내 것이 되는 조건이었습니다.

    신차를 사려먼 세금까지 합쳐 7천만 원이 넘어가는데, 이런 방식은 수중에 현금 6천 2백만 원만 있으면 되니, 10% 이상 저렴한 셈입니다.

    부산 해운대구의 B씨 역시, 같은 렌터카 업체에서 A씨와 비슷한 사양의 외제차를 장기렌트했다 인수 2달을 앞두고 견인당했습니다. 본사의 설명은 들을수록 조건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이상했다고 합니다. "단점은 없느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직원 설명은 이랬다고 합니다.

    "하·허·호 번호판을 3년 동안 써야 하는데, 번호판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렌터카라는 것을 알아챈다는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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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4시, 도난 경보음 울린 뒤‥사라진 렌터카 3대

    문제의 업체에 2억 원이 넘게 투자하고 차량 3대를 제공받은 C씨도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C씨는 지난해 10월, 잠을 자다 새벽 4시에 요란한 차량 도난 경보음이 울려 나가봤습니다. 차 3대는 모두 견인돼 흔적조차 남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대신 땅바닥에는 청테이프로 '차량 인수 통보서'라는 A4 종이 한 장만 붙어있었습니다. "자동차 소유자의 요청에 의해 '운행정지 명령'을 처분받았고, 제3자가 불법 운행중인 사실을 확인했다"고 적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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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최대 규모였는데‥주소 4곳 찾아갔지만 가는 곳마다 회사는 '증발'

    계약서까지 쓰고도 수천만 원을 허공에 날린 고객들. 업체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문제의 업체는 차량 282대를 보유한 부산 OO렌터카. 전국 단위 대기업인 롯데렌터카와 SK렌터카를 제외하면 부산 최대 규모의 렌터카 회사입니다. 이렇게 큰 회사이니 찾기 쉬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법인 등기부등본상의 본사 건물은 부산 센텀시티의 한 오피스텔입니다. 전혀 관계없는 부동산 업체가 입주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자동차 등록원부'에 적혀있는 차고지 건물. 초대형 국제전시장 벡스코였습니다. 이곳에는 다른 렌터카 업체가 입주해 있었습니다. 업체 관계자는 "OO렌터카와는 지배구조도, 임직원도 전혀 다른 회사"라며 "OO렌터카 채권자들이 자주 찾아와서 따지는 통에 우리도 힘들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온라인 쇼핑몰에 OO렌터카가 '업체 주소지'라고 올려놓은 마린시티의 한 오피스텔도 가봤습니다.
    우연히 이곳에서 만난 한 이 인물은 "김 대표가 지난해 구속됐고, 회사는 공중 분해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습니다.

    'OO렌터카' 간판을 여전히 달고 있는 업체도 한 곳 찾아냈지만 이 업체 대표는 "구속된 김 모 대표가 OO렌터카에 합류한 이후 그 회사에서 분리돼 나와 지금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탐정M] 고가 외제차 싸게 사는 묘수?‥'장기렌트'했다 견인된 차들은 어디로

    (사진출처: OO탐정사무소 SNS)

    탐정사무소 SNS에 등장한 차들‥의뢰인은 "내가 최대 피해자"라는 유명 병원장

    번번이 막힌 실마리는, 서울 문정동의 한 '탐정 사무소'에서 나왔습니다. 사라진 장기렌트 차량들의 사진이, 탐정 사무소의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겁니다.

    견인을 의뢰한 사람은 서울 강남에서 유명 피부과를 운영하는, 업계에서 유명한 대표원장이었습니다. 원장을 찾아갔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내가 OO렌터카에 가장 많은 돈을 뜯긴, 피해자들 중에서도 최대 피해자"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차용증과 법원의 결정문을 내밀었습니다. 지난 2018년부터 OO렌터카에 투자금으로 36억 원을 빌려줬지만, 2억 원밖에 돌려받지 못해 소송을 했고, 법원에서 지급 명령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빌려준 돈을 못 받아 담보로 잡은 차를 경매에 넘기려고 법적 절차를 밟아 견인했다는 해명이었습니다. 원장은 "실제 장기렌트 고객이 차량을 이용하고 있다는 건 견인 전까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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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MTN)

    알고보니 '시스템 트레이딩'으로 망하고‥'렌터카 투자'로 사기 판 더 키워

    OO렌터카 대표가 구속된 과정을 알아봤습니다. 이 과정에서 OO렌터카를 공동 운영한 88년생 동갑내기 두 명, 김 모 씨와 또다른 김 모 씨의 재판 기록을 입수했습니다.

    사기와 불법 유사수신 등 혐의로 지난해 구속 기소된 이들의 범죄 행각은 지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들은 부산 마린시티에 '증권투자연구소'를 만들어 "확률과 통계의 원리를 이용한 주식·선물 투자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꾸준한 고수익을 보장한다"면서 한 경제방송에도 출연했습니다.

    '시스템 트레이딩'을 한다고 했지만 사실 기초적인 투자 실력조차 없었고, 불과 1년 만에 자본잠식 상태가 돼 빚독촉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아예 렌터카 회사를 인수해 더 큰 사기행각을 벌입니다. "차량 렌트 사업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투자자들은 렌터카 차량을 담보로 잡으면 되니 원금도 안전하게 보장된다"고 홍보했습니다.

    고수익 약속에, 원금 보장까지 된다고 하니 투자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물론, 이들은 사업 계획도 없었고 받아챙긴 돈은 돌려막기로 다 써버렸습니다. 이렇게 낭패를 본 피해자가 무려 392명, 피해액은 111억 3천만 원을 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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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대표의 옥중 편지‥"병원장이 허위 저당해 불법 견인" vs. "적법하게 저당권 설정

    구속 상태의 두 공동대표는 옥중에서 투자자들에게 자필로 사죄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최대한 많은 이해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해, 형량을 줄이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차량 3대를 견인당한 C씨도 김 대표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지난 3월 발송된 자필 편지를 보면 "나는 지난해 5월 이후 피부과 원장에게 추가적인 차량 저당을 승인한 적이 없다"며 "(빼앗긴) 차량을 확보하시는 게 우선일 것 같다"고 적었습니다.

    C씨는 이 편지를 근거로, 피부과 원장이 인감도장과 위임장 등 법인 서류를 위조해 차량을 담보로 잡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원장이 합법적으로 저당 잡은 차량만 가져가야 하는데, 엉뚱한 차들까지 모두 허위 저당을 잡아서 가져갔다"는 겁니다.

    원장에게 입장을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원장이 똑같은 글씨체로 적힌 손편지를 취재진에게 내밀었습니다.

    김 대표는, 지난해 12월 원장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주위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원장님의 피해 변제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차량 (저당권) 이전은 피해자들의 피해 변제를 위해 진행될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원장은 "구속된 김 대표가 동의해, OO렌터카 사무실을 방문해 적법하게 저당권 설정을 결재받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이런 저당권 설정과 차량 견인 과정의 적법성 여부를 수사하고 있습니다.

    고가 외제차 싸게 구입?‥주택 매매처럼 '저당'여부 꼼꼼히 확인해야

    비싼 외제차를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장기 렌트' 방식으로 고객들을 끌어모았던 김 대표.

    취재 중 만난 한 렌터카 업체 대표는 "렌터카 회사들은 주로 '단기렌트'를 하거나, 교통사고가 나면 수리기간 동안 빌려주는 '사고대차' 영업을 한다"고 전제하면서, "OO렌터카는 집요하게 '장기렌트'에 집중했고, 할인율을 높게 책정해 고객들을 끌어모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 차량들은 김 대표가 진 1백억 원이 넘는 빚 때문에 이미 저당이 잡혀있거나, 대여 계약 이후 저당권 설정이 된 상황이었습니다. 계약서를 쓰기 전, 그리고 이후에도 저당 여부를 확인했어야 한 건데, 업체가 이런 사실을 전혀 알려주지 않아 몰랐던 고객들은 사라진 차에 대한 보상을 받을 방법이 사실상 전혀 없는 상황입니다.

    손하늘 기자 (sonar@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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